[서평] 명왕성 연대기.... 우리가 사랑한 작은 행성의 파란만장한 역사
[서평] 명왕성 연대기.... 우리가 사랑한 작은 행성의 파란만장한 역사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10.02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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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2006년 8월 25일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날 이전의 모든 날들은 BD(Before Dwarf, 왜소 행성 이전)이고 그 이후의 모든 날들은 AD(After Dwarf, 왜소 행성 이후)이다. 명왕성의 행성 자격을 박탈하고 왜소 행성으로 추락시킨 2006년 8월 24일 국제 천문 연맹(IAU) 총회 투표일 이전과 이후로 천문학의 역사가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AD 14년인 2019년 (주)사이언스북스에서 펴낸 닐 디그래스 타이슨(Neil deGrasse Tyson)의 『명왕성 연대기: 우리가 사랑한 작은 행성의 파란만장한 역사(The Pluto Files: The Rise and Fall of America's Favorite Planet)』는 이 천문학적 사건의 전말을 이 사건의 일부로서 휘말렸던 한 천문학자가 추적하고 정리하고 평가한 르포이자 귀한 자료집이다.

명왕성 행성 자격 논쟁이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노출된 것은 2000년 2월부터다. 뉴욕 시에 있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의 부설 시설인 프레더릭 피니어스 앤드 샌드라 프리스트 로스 지구 및 우주 센터(Frederick Phineas and Sandra Priest Rose Center for Earth and Space, 로스 센터)가 개관할 때 내부 시설 중 하나인 헤이든 천체 투영관(천문관) 주변에 설치한 태양계 행성 관련 전시물 중에서 명왕성을 빼 버리면서 관람객과 천문관 사이의 소규모 교전이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1년 정도 뒤 2001년 1월 22일 《뉴욕 타임스》의 케네스 창 기자가 “명왕성은 행성이 아니다? 오로지 뉴욕에서만”이라는 제하의 전면 기사를 쓰면서 미국 전체, 나아가 세계 천문학계를 뒤흔든 전면전으로 비화되었다.
 

이 결과 헤이든 천체 투영관의 관장이자 로스 센터 천문학 관련 전시물의 전시 책임자였던 닐 디그래스 타이슨은 명왕성 마니아들로부터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혔고, 2006년 8월 24일 IAU가 행성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명왕성을 공식적으로 태양계 행성에서 왜소 행성으로 강등시키면서 종료될 때까지 6년 동안, 명왕성 탐사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뉴 호라이즌스 탐사 프로젝트의 연구자들은 물론이고, 미국인 천문학자가 발견한 유일한 행성이라는 국가주의적 명성을 소중히 하는 언론인과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명왕성을 사랑한 어른과 어린이 모두를 끌어들인 거대한 논쟁으로 전개되었다.

실제로 명왕성 행성 자격 논쟁은 천문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천문학이 발상하고, 고대 그리스 인들이 배경 별들 사이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천체들에 ‘방랑자’라는 뜻의 ‘플라네테스(planetes)’라는 이름을 붙인 이래, 수천 년 동안 인류는 ‘행성’의 정의를 명확하게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명왕성 행성 자격 논쟁으로 국제 천문학계는 행성의 정의를 정식화했고, 행성도 위성도 아니지만 태양계의 일원인 천체들을 정의하는 ‘왜소 행성’, ‘태양계 소천체’ 같은 개념도 태양계 형성과 진화 과정에 부합하도록 재정립하게 되었다.

이 『명왕성 연대기』는 이 거대한 천문학적,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논쟁의 한복판에서 명왕성 마니아들의 ‘공적’으로 몰렸던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 자신이 받았던 수많은 찬반 편지들, 언론을 뜨겁게 다룬 기사들과 만평들, 천문학 전문가들과 주고받았던 논쟁들, 심지어 명왕성 행성 자격 논쟁을 다룬 노래들을 집대성한 책이다.

『날마다 천체 물리』 밀리언셀러 과학 저술가 지위에 올랐고, 트위터 팔로워 1350만 명을 자랑하는 타이슨은 탁월한 필력으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선거의 개표 결과 의혹을 덮어 버리고, 이라크 전쟁, 다르푸르 대량 학살, 지구 온난화 관련 뉴스를 압도할 정도로 과열되었던 명왕성 행성 자격 논쟁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전개 과정을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명왕성을 비롯한 해왕성 궤도 너머에 있는 천체들, 즉 카이퍼대 천체, 오오트 구름의 혜성과 얼음 천체, 목성과 화성 궤도 사이의 소행성대 같은 작은 태양계 식구들에 대한 과학적 탐사의 역사를 살필 수 있고, 태양계의 구조와 형성 및 진화의 역사에 대한 교육 방법론에 대해서 세계 최고의 천문학자들이 어떤 식으로 고민했었는지 엿볼 수 있다.

AD 14년(2019년) 현재 명왕성 행성 자격 논쟁은 천문학적으로는 완전히 끝난 논쟁이다. 뉴 호라이즌스 호가 2015년 7월 14일 명왕성을 스쳐 지나가면서 생생한 영상 자료를 보내 줘 명왕성의 실체가 밝혀진 상태이지만, 미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명왕성을 행성으로 복귀시키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2019년 8월 26일에는 트럼프 정권이 임명한 NASA 국장(미국 공화당 정치인)인 짐 브라이든스틴(Jim Bridenstine)이 명왕성은 행성이라는 주장을 폈다는 기사가 전 세계에 타전되기도 했다. 미국 뉴멕시코 주 주의회와 캘리포니아 주 주의회는 명왕성을 행성으로 인정하라는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왕년의 행성이 새로 얻은 지위를 축하해 줘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 타이슨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미국 시민으로서, 나는 명왕성의 영예를 지켜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왕성은 20세기 우리 문화 및 의식 깊숙이에 생생히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여느 대가족마다 으레 있게 마련인 문제아처럼 우리 태양계 행성 가족의 다양성을 보장해 준다. 또한 미국에서 거의 모든 어린 학생들에게 명왕성은 마치 옛 친구처럼 여겨지는 존재다. 심지어 아홉 번째라는 것이 사뭇 시적인 느낌마저 불러일으키지 않는가. 그러나 교수로서는 무거운 심정으로 명왕성의 강등에 찬성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명왕성은 가르치기 난감한 주제였다. 하지만 이제 명왕성도 별 불만이 없으리라 확신한다. 행성들 속에서는 천덕꾸러기였지만 지금은 카이퍼대의 명실상부한 제왕이 되었으니 말이다. 우주 캠퍼스에서 명왕성은 이제 ‘거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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