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길] 공수처와 검찰개혁, 그리고 정의(正義)
[미래길] 공수처와 검찰개혁, 그리고 정의(正義)
  • 김범수 미래한국 발행인
  • 승인 2019.10.3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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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이 ‘팡세’에서 거론한 바 “피레네 산맥 이 쪽의 정의(正義)는 산맥 저 쪽에서는 불의(不義)” 라고 한 명제는 두고 두고 우리를 방황케 한다. 무엇이 정의인지에 대해서는 법학자나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쟁이 존재해 왔다. 정의가 곧 법이 아니고 법이 곧 정의도 아니다.

문재인 정권이 사활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공수처법은 그들이 말하는 정의(justice)에 대한 의지로 이해된다. 하지만 그러한 정의도 세우려는 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권위가 결정된다. 권위를 잃은 정의에는 복종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과연 정의를 세울 만한 자격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었고 그것으로 국민은 ‘두 쪽으로’(사실 대다수는 反조국 편으로) 갈라졌다. 그 책임은 온전히 문재인 대통령이 져야 할 것이었지만 대통령의 사과는 형식적 치레로 끝났다.

김범수  미래한국 발행인
김범수 미래한국 발행인

‘조국 이후’ 우리에게 던져진 것이 공수처와 검찰개혁의 문제다. 공수처와 검찰개혁 사이에는 과연 어떤 연관관계가 존재할까. 법학자 장영수 교수와 검사장 출신 정점식 의원은 공수처에 대해 ‘대통령이 찬 칼’이라고 말한다. (본지 16p/24p)

검찰에 대해서는 수사권과 공소권을 분리해서 권리남용을 방지해야 한다는 검찰개혁의 원칙이 대통령 직속의 공수처에 대해서는 수사권과 기소권 모두를 부여해야 한다고 바뀌는 여권의 발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황스럽다.

적어도 검찰개혁의 수사-공소 분리가 정답이라면 공수처 역시 그래야 하는 것이 일관된 정칙(正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직속이라는 공수처에 그런 정칙을 무시하겠다는 발상이 결국 ‘공수처=게슈타포’라는 비판을 정당화 시킨다. (공수처가 어떻게 과거 나치의 게슈타포나 중국식 공안 기구와 유사한지에 대해서는 본지 커버스토리에 담겼다.)

더구나 공수처가 위헌적이라는 점이 법무부에서도 지적됐다. 공수처와 같은 사법기구는 헌법에 의해 명시되어야 하고 그런 사법기구는 행정부 소속하에 두어서 국회의 감시와 견제를 받게 해야 하는 것이 헌법의 삼권분립 정신에 맞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권이 주장하는 공수처는 행정부 소속이 아니라 대통령 직속이라는 점에서 결국 감독의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다는 말이 된다.

공화제에서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자 대내적으로 주권의 최고 위임결정자이다. 그렇기에 대통령의 권리남용은 임기중 형사상 소추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결국 대통령이 공수처를 통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남용은 탄핵이 아니라면 정권이 교체된 후에나 그 소추가 가능하게 된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던 여당은 적어도 공수처에 대해서만큼은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더욱 강화하려 드는 극명한 모순을 보이고 있다.

검찰개혁이든 그 올바른 방향은 대통령의 권한 강화가 아니라 국민 권리의 강화로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검찰개혁과 공수처만이 정의로운 사법기구로서 정당성이 존재한다. 문재인 정권이 추진하는 공수처는 그들이 구호로 내세우는 검찰개혁과 아무런 관계를 찾을 수 없다.

정의는 옳음과 함께 결과의 좋음도 보장되어야 한다. 공수처는 결과의 예후가 매우 불량한 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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