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나루히토 일왕 즉위, 아베의 개헌 막는 쐐기 될까?
[집중분석] 나루히토 일왕 즉위, 아베의 개헌 막는 쐐기 될까?
  •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 승인 2019.11.07 10: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후미히토 왕자, 궁내청 등에 업고 일왕 지위 노려…새 일왕, 개헌 반대 가능성 커
일왕 즉위식에 참석한 이낙연 국무총리가 10월22일 궁정연회에 참석해 나루히토 일왕 내외와 인사하고 있다. / 일본 내각부 제공
일왕 즉위식에 참석한 이낙연 국무총리가 10월22일 궁정연회에 참석해 나루히토 일왕 내외와 인사하고 있다. / 일본 내각부 제공

10월 22일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즉위식이 도쿄에서 열렸다. 세계 80개국의 정상급 인사가 즉위식에 참석했다. 나루히토 일왕은 아키히토(明仁) 선왕의 장남이라 자연스럽게 왕위를 물려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개헌에 반대하는 일왕과 이를 어기려는 정치권의 권력 다툼이 원인이었다.
 

3년 전 아키히토 일왕 ‘생전 퇴위’ 발표

아키히토 일왕은 2016년 8월 8일 생전에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발표했다. 몇 달 동안 소문으로 돌던 것이 사실이 됐다. 생전 퇴위는 200년 만의 일이었다. 이를 두고 일본 정치권에서는 ‘황실전범(왕실 관련 규정집)’을 들어 생전 퇴위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세졌다.

당시 일본 언론들은 황실전범 제4조 “일왕 별세 시 그 후계자가 곧바로 즉위한다”는 조항을 들어 아키히토 일왕의 생전 퇴위는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여론 몰이를 했다. 특히 왕실 사무를 담당하는 궁내청은 “천황의 뜻을 받들어 극히 일부의 정부 관계자들이 극비리에 시뮬레이션을 실시한 모양”이라며 “천황이 생전에 왕위를 물려주는 것을 제도화하려면 국민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반대 의견이었다. 일본 교도통신은 “황실전범을 개정하려면 정부가 전문가 회의 등을 통해 논의해야 하는데 결론을 내려면 몇 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며 반대 의견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아키히토 일왕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아베 정부는 그 뜻을 수용했다. 당시 NHK는 “아베 신조 총리가 아키히도 일왕의 생전 퇴위 의향을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의 결정에 따라 일본 정부는 황실전범 개정 작업에 착수했고, 2017년 6월 9일 일왕의 생전 퇴위가 가능하다는 조항을 담은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아키히토 일왕은 퇴위 결정에 이어 장남 나루히토에게 왕위를 승계하기로 결정했다. 얼핏 장남이 왕위를 계승하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실은 일본 정치권, 특히 여당에 큰 영향을 주는 결정이었다. 아키히토 일왕의 결정은 아베 정부를 후원하던 세력에게도 적지 않은 타격을 줬다. 이들은 사실 후미히토 왕자를 후계자로 옹립하려 했었다.
 

왕위 노리던 후미히토, 그의 배후에는 우익세력

나루히토 일왕은 슬하에 딸인 도시노미야 아이코만 있다. 반면 후미히토 왕자는 장녀 마코, 차녀 카코, 아들 히사히토를 두고 있다. 1947년 제정된 현재의 황실전범은 남성만이 왕위를 물려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베 정부의 후원세력들은 이를 내세워 아키히토 일왕이 서거하면 아들이 있는 후미히토가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명분에 불과했다. 사실 후미히토 왕자는 아키히토 선왕, 나루히토 일왕과 달리 아베 정부와 그 후원세력이 바라는 개헌에 긍정적인 인물이다. 이들은 후미히토 왕자가 일왕이 되면 개헌에 부정적인 국민들의 여론을 바꿀 수도 있다고 기대했다.

후미히토 왕자가 처음부터 극우적 성향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2006년 일본 왕실에서 41년 만에 남자아이(히사히토 왕손)가 태어나자 권력욕을 보이기 시작했다. 시작은 형 나루히토 당시 왕세자에 대한 적대감이었다. 이후 후미히토 왕자는 “아버지를 위해서”라며 일왕 정년제를 주장하거나 형 나루히토 왕세자를 비판하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폈다.

후미히토 왕자의 주장은 곧 일부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됐다. 나중에 일각에서는 “나루히토는 후미히토를 위해 왕세자 자리를 내놓으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어떤 언론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듯 나루히토 왕세자의 딸 아이코가 자폐증이라거나 정신지체라는 루머를 퍼뜨리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일본 일각에서는 “우익 세력이 후미히토 왕자를 앞세워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일본 왕실 업무를 관장하는 궁내청이 일부 종교 세력과 함께 나루히토 왕세자의 왕위 승계를 반대하고 있고 아베 정부가 이에 동조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일부 일본 언론은 후미히토 왕자를 내세워 나루히토 왕세자를 헐뜯는 세력들이 일본회의를 중심으로 한 개헌세력이라고 지적했다. 아키히토 선왕, 故 노리히토 왕자, 나루히토 왕세자로 이어지는 일본 왕실의 평화주의 전통을 깨부수려는 시도라는 지적이었다.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 모습. 아베 총리는 일왕 앞에 만세를 불렀다.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 모습. 아베 총리는 일왕 앞에 만세를 불렀다.

아키히토 선왕부터 이어지는 일본 왕실의 평화주의

나루히토 왕세자는 일본인들에게 평화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일본제국주의와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아시아 국가들의 피해에 대해 자주 언급하며 평화를 강조하는 발언을 많이 했다. 지난 5월 1일 일왕에 취임할 때도 올바른 역사인식과 평화를 강조했다. 이런 인식은 사실 부친 아키히토 선왕과 故 노리히토 왕자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아키히토 선왕은 어린 시절 2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방공호 안에서 몇 달 동안 지내기도 했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원폭으로 사라지는 것도 봤다. 연합군의 해상 봉쇄로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 것을 봤고 일본 제국군이 가미카제로 군인들에게 자살공격을 강요하는 것에 반발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아키히토 선왕을 평화주의자로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생일이나 아시아 국가를 방문했을 때 일제가 저지른 만행에 대해 사과하고 미래에도 일본이 평화주의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노태우 정부 시절과 김대중 정부 시절 한국 국민들에게 일제 학정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했다. 야스쿠니 신사의 경우 1978년 A급 전범들이 합사된 뒤로는 아예 참배를 하지 않았다. 아키히토 선왕은 특히 일본회의를 비롯한 극우세력에 대단한 반감을 보였다.

아키히토 선왕의 사촌 동생으로 일본축구협회 명예회장이었던 故 노리히토 왕자 또한 평화주의자였다. 故 노리히토 왕자는 5촌 조카로 6살 어린 나루히토 일왕을 막내동생처럼 귀여워했고 그의 생각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나루히토 일왕이 연애결혼을 할 때도 많은 지원을 해주는 등 든든한 후원자였다고 한다.

故 노리히토 왕자는 한국에 대해서도 선입견 없이 대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에는 부인 히사코 비와 함께 한국에 와서 개막식을 포함해 여러 경기를 관람했다. 그의 방한은 광복 이후 일본 왕족의 처음이자 마지막 공식방문이었다. 그는 방한 당시 서울과 부산, 경주 등을 돌아본 뒤 기행문을 남기기도 했다.

일왕 계승 서열 1위인 일왕 동생 후미히토와 그의 아들 히사히토(서열 2위)
일왕 계승 서열 1위인 일왕 동생 후미히토와 그의 아들 히사히토(서열 2위)

궁내청과 신사, 일본회의의 목표 ‘제2의 메이지 유신’

이런 일본 왕실의 평화주의는 후미히토 왕자가 새 일왕이 됐다면 무너질 수도 있었다. 후미히토 왕자 본인은 개헌 등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를 왕으로 옹립하려는 세력들은 딴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베 정부의 개헌을 후원하는 세력은 알려지다시피 일본회의다. 일본회의는 1930년 다나구치 마사하루가 창설한 종교단체 ‘생장의 집’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이 1960년대와 1970년대 ‘신우익 활동’을 하면서 만든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와 ‘일본을 지키는 모임’을 바탕으로, 그들의 대를 잇는 사람들이 1997년 통합해 만든, 일종의 종교기반 이익단체다.

일본회의는 회원인 아베 신조 총리를 전면에 내세워 정치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회의 산하 의원 간담회에는 중의원과 참의원 280여 명이 참여하고 있고, 아베 총리의 2차 내각 각료 20명 가운데 16명, 3차 내각 각료 가운데 13명이 이곳 회원이다. 일본회의 지방의원연맹 소속 의원도 1700여 명이나 된다.

그런데 일본회의가 주장하는 개헌은 ‘전쟁이 가능한 보통국가’가 아니다. 실제 목표는 ‘메이지 유신 시대로의 회귀’다. 즉 천황 주권제 부활과 국민주권주의 부정, 국방 충실, 애국교육 추진, 이를 위한 헌법 개정, 전통가족 부활 등이다. 즉 현재의 자유민주주의를 전면 철폐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바꾸겠다는 뜻이다. 일본회의의 일부 회원은 현재 일본 사회를 “미제 침략군이 만든 시스템”이라고 비난하며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신(천황)이 지배하는 일본 전통 제도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상징적 지위만을 갖는 현재 일왕을 실질적 군주로 만들고, 맥아더 군정 시절에 사라진 ‘국가신도’를 부활시켜, 신도를 실질적인 국교로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과거 일본의 남성우월주의 사상으로 국민들을 통치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다른 말로 하면 국민주권을 빼앗고 전제군주제를 실시하겠다는 뜻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들리지만 2012년 자민당이 야당일 때 내놓은 개헌안을 보면 “일왕을 국가원수로 승격시킨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일본회의의 후원세력, 즉 신사(神社)가 있다. 일본에는 8만여 개의 신사가 있다. 이 가운데 7만 개 이상을 거느린 곳이 신사본청이다. 신사본청의 실질적 본부는 이세신궁이다. 미에현 이세시에 있는 125곳의 신사를 이세신궁이라고 일컫는데 핵심 신사는 코타이진구 내궁이다. 이곳은 일본 왕실의 시조신이라는 아마테라스 오오카미를 받든다. 때문에 이세신궁은 일본 궁내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일본 왕실 일족 중에 이 코타이진구 내궁에서 일한 사람도 있다.

즉 과거 메이지 시대의 영광을 꿈꾸는 일본 왕가의 일부 사람들과 궁내청, 이들의 후원을 받는 일본회의가 현재 아베 정부의 개헌을 지지한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연간 수백억 원이 넘는 예산을 사용하며, 현재 중의원과 참의원 의원 과반 이상이 회원인 일본회의, 이들을 돕는 전국 7만여 개의 신사, 그리고 일본 왕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며 언론 플레이까지 하는 궁내청, 이들은 자신들이 뭉치면 개헌도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의 꿈은 3년 전 아키히토 일왕이 생전 퇴위를 발표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여전히 일본 국민들에게 일왕은 정신적 지주이자 역사적 전통의 상징이다. 이런 일왕의 발언을 일개 정치인이나 언론이 반대하거나 뒤집을 수 없었다.

아키히토 선왕은 사실 자신이 죽은 뒤 개헌세력들에 의해 ‘왕자의 난’이 벌어질 것을 우려해 생전 퇴임을 결심한 것이다. 아키히토 선왕은 200년 만의 생전 퇴임과 함께 황실전범의 개정을 통해 여성도 왕위 계승이 가능하도록 하는 논의의 길을 열었다.

아베 정부와 궁내청, 일본회의의 합작과 이를 등에 업은 후미히토 왕자의 행동은 아키히토 일왕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결국 아키히토 일왕은 자신이 생전에 왕위를 물려줘야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 나루히토 왕세자를 왕으로 만든 것이다.

이는 일본 왕실의 존속뿐만 아니라 일본회의와 그 후원을 받는 정치세력들이 ‘메이지 유신’ 시대로 퇴행하는 것을 막는 길이기도 했다. 일왕이 국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왕위를 장남에게 물려주겠다”고 밝히면 아베 정부는 물론 궁내청과 신도, 일본회의도 대놓고 반대할 수 없다. 일왕이 일본 국민들에게 갖는 상징성이 워낙 커서다. 실제로 아키히토 일왕이 생전 퇴임 의사를 밝히자 아베 총리는 “사안의 성격상 제가 뭐라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정부가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삼가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나루히토 일왕이 가져올 희망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식이 끝난 뒤부터는 여성의 왕위 승계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는 300년 만의 여왕 탄생은 물론이고 일본 왕실에서도 남녀 평등이 이뤄진다는 의미를 갖는다.

더 나아가 나루히토 일왕이 향후 일본 왕실에서 극단적 우익세력이 발호하는 것을 제지하는 균형자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갖게 만든다. 아베 정부를 지원하는 일본회의는 개헌을 통해 여성들의 참정권을 단계적으로 박탈한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서구교육을 받은 여왕이 있는 나라에서 여성의 참정권을 박탈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나루히토 일왕의 성격상 전제군주제는 커녕 국수주의적 개헌조차 용인할 가능성이 극히 드물어 극단적 우익세력들의 활동을 공개적으로 비판할 가능성도 높다. 그렇게 되면 아베 정부를 앞세운 세력들의 개헌 노력은 물거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