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박정희 대통령 탄신 102주년 ‘박정희 재발견’ 보고행사 개최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박정희 대통령 탄신 102주년 ‘박정희 재발견’ 보고행사 개최
  • 미래한국 편집부
  • 승인 2019.11.1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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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세미나와 출판기념회 및 전시회 등으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다양한 평가 작업과 학문적 연구 마무리 및 새로운 100년에 대한 준비 취지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오는 14일(목) 박정희 대통령 탄신 102주년을 맞이하여 박 대통령의 사상·통치철학과 업적을 기리고 재조명하는 한편 ‘박정희 재발견’ 보고 행사를 개최한다.

재단에 따르면 13일(수)에는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자유한국당 송언석 의원실·자유시장안보포럼 공동주관으로 <한국의 근대화와 새마을 운동> 주제로 기념 세미나가 열린다.

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이 <새마을운동과 한국의 경제발전>으로 기조발제하고 새마을 정신과 한국경제 근대화와 관련, 김준경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와 김용삼 펜앤마이크 대기자의 발표 및 종합토론 순서로 진행된다.

이날 오후 3시부터 4시까지는 박정희대통령기념관에서 박정희 대통령 휘호 서각 전시회 및 도록집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12일부터 시작된 박 대통령 휘호 서각 150여점에 대한 전시회는 오는 23일까지 계속된다.

14일에는 오전 현충원 묘역에서 재단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박정희 재발견’ 보고 행사가 열린다.

재단 측은 “‘박정희 재발견’ 보고 행사는 지난 2017년 11월 박정희 대통령 탄신 100주년을 계기로 ‘박정희 재발견’을 위해 세미나·책자발간 등 다양한 평가 작업과 학문적 연구를 진행해 온바, 금번 박 대통령 탄신 102주년을 계기로 그간의 활동을 마무리함과 동시에 새로운 100년에 대한 준비의 취지를 담아 박정희 시대 치적을 14개 항으로 정리하여 박정희 대통령님께 보고하는 자리가 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이 강연하는 모습.
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이 강연하는 모습.

‘박정희 재발견’

➊ 기업부국 산업혁명으로 근대 국가건설에 성공: 박정희시대는 인류역사상 신생국으로서 가장 빠른 시간에 근대 국가건설에 성공한 사례입니다. 박정희시대 산업혁명은 영토침탈이나 식민지배 없이 기업육성을 통해 대외시장을 개척하고 중화학공업을 일으켜 자력으로 성공한 유일한 사례이며, 또한 이를 바탕으로 반공안보체제를 강화하여 전쟁 없이 공산주의의 침공을 막아냄으로써 근대 국가건설에 성공한 사례입니다. 박정희 산업혁명은 ‘기업부국’의 산업혁명 패러다임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소득 3만 불의 선진 한국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➋ 당대 최고의 동반성장을 이룬 한강의 기적: 박정희의 한강의 기적은 세계 최고의 동반성장 경험이며 불평등과 불균형적 성장이라는 통념은 사실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기업육성으로 수출을 일으켜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의 동반성장을 유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새마을운동으로 농촌을 근대화하여 농촌지역 간의 그리고 도시와 농촌간의 동반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박정희시대는 소득분배의 개선 속에 당대 세계 최고의 성장을 실현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세계가 경탄하는 한강의 기적의 진실입니다.

➌ ‘유신’으로 조국근대화 목표 조기달성: 정치적으로 장기집권의 독제체제라는 비판을 받는 유신은 결과적으로 중화학공업화를 통한 산업혁명의 실현과 방위산업육성으로 공산화의 위험을 막아내어 조국근대화를 앞당겨 달성함으로써 자임했던 목적을 완수하였습니다. 유신이 선포되기 직전 3-4년 기간 동안의 국내외 정세는 가히 대한민국호의 존망위기 그 자체였습니다. 68년 북한 게릴라의 청와대습격사건(1.21 사태)을 비롯 북한의 지속적인 대남도발, 69년의 닉슨독트린, 그 이후 미국의 베트남포기조짐 가시화, 71년 중국의 UN가입과 대만의 UN 회원국 지위박탈 및 미·중간 데탕트, 71년 주한미군 7사단의 일방적 철수 등 한국 외교·안보의 기존 패러다임 자체를 뒤흔드는 감당하기 어려운 대형 사건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습니다. 국내 경제적으로도 1972년 8월 3일에는 한국경제의 고질적인 병폐였던 기업들의 고리사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긴급명령으로 사채동결조치까지 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당시 농업경제에 바탕을 둔 반(反) 공업화 대중경제론과 용공민주주의적인 주장을 하는 정치세력이 집권했다면 한국의 산업혁명 실현은 물론이고 반공민주주의체제 보존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➍ 중화학공업화 정책의 탁월한 선택: 중화학공업화정책이 실패라는 제5공화국 정부의 속단은 잘못된 예단이었으며 한국의 산업혁명은 중화학공업화 없인 불가능했습니다. 더구나 20세기 후반 이후 자력으로 중화학공업화라는 산업고도화혁명에 성공한 사례가 없음에 유념하여야합니다. 이제 자랑스럽게 우리의 성공경험을 새로운 산업정책이론으로 정립하여 중진국 함정에 빠진 수많은 후진국들이 선진국도약의 길잡이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➎ 세계가 배우는 새마을운동: 새마을운동은 장기집권을 위한 정부의 강압에 의한 정치운동이었다는 일부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 그 실적에 비추어 검증되지 않은 주장입니다.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실적에 따른 차별적 지원전략이 모든 마을과 주민들의 치열한 경쟁의식과 자발적인 참여를 촉발함으로써 근면·자조·협동정신을 일깨우고 세계경제발전사에 전례가 없는 동반성장의 기적을 가져왔습니다.

➏ 용공민주주의를 극복한 반공민주주의: 당시 비판받은 박정희의 한국적 (반공) 민주주의 주장은 오늘날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민주주의의 좌경화경향에 비추어 볼 때 그 의의를 재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이념적 국가정체성 혼란도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민주화란 이름하에 ‘반공민주주의(反共民主主義)’ 정신을 청산하고 ‘용공 민주주의(容共民主主義)’를 수용한데 따른 부작용입니다. 용공민주주의자들은 박정희시대를 언필칭 소위 ‘반민주시대’였다고 비판하지만 이는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 주장입니다. 우선 18년 집권기간 중 간첩 및 공안사건이 무려 1,250건에 달하였다 하니 반공민주주의사수가 얼마나 어려웠겠는지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대통령님 사후 용공민주주의자들이 제기한 재심에서 이중 단지 1.25%에 해당하는 10여건만이 재심무죄로 판정이 났을 뿐만 아니라 이것도 대부분 용공적 행위라는 사실관계의 잘못이 아니라 일부 절차상의 하자에 의한 번복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이와 같이 박정희 반공민주주의는 적어도 법치를 존중하고 민주적 절차에 따랐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민생을 안정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서구적 기준만으로 이 시대를 비민주적이었다고 폄훼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하겠습니다.

➐ 박정희의 실체적 민주주의실천: 박정희의 경제발전은 바로 민주주의 발전의 토양이 되었습니다. 민주주의의 근본은 주인인 백성을 잘살게 하는데 있음은 불문가지입니다. 민주주의정치와 국민을 배불리 먹고 살 수 있게 하는 “경제발전”은 결코 분리해서 볼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선거를 잘하고 형식적으로 민주주의 원칙을 잘 따라한다 해도 주인인 국민의 배고픔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건 실제 민주주의를 제대로 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역사를 보면 민주주의가 배고픔문제를 해결하기도 어렵지만 배고픔 속에서 민주주의가 성공하기는 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배고픔은 민주주의의 무덤인 셈입니다. 박정희는 민주주의 정치의 제일의 조건인 경제발전을 이뤄 5천 년래의 백성의 가난을 해결함으로써 실체적 민주주의를 실천했습니다.

➑ 시장기능을 강화시킨 박정희경제정책: 박정희의 소위 정부주도 경제운영이 반 시장적이라는 비판은 시장의 본질적 기능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며 자유로운 시장의 본질적 기능은 경제적 성과에 따른 차별적 선택과 지원에 있습니다. 박정희 정부의 수출산업육성, 중화학공업육성, 새마을운동지원 등 모든 산업지원정책은 철저히 성과에 기반한 차별적 지원이었습니다. 정부는 시장의 차별화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기업들의 성과와 수월성 경쟁을 촉진하여, 자조정신에 기반한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습니다. 박정희시대야 말로 시장경제의 역동성이 꽃핀시대입니다.

➒ 포용적 동반성장을 가져온 ‘정치의 경제화’: 정치가 경제의 성장과 발전을 담보 하려면 시장의 성과에 따른 차별적 선택기능을 보호·장려하는 ‘정치의 경제화’가 필요하며, 이에 반하는 평등지향의 경제정책을 추구하는 ‘경제의 정치화’는 경제의 몰락을 초래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박정희시대의 동반성장기적과 공산·사회주의체제의 몰락이 바로 이 명제의 산 증거입니다. 지금의 한국경제의 저성장과 분배악화 현상은 바로 성과를 중시하는 박정희식 ‘정치의 경제화’ 전략을 청산하고, 지난 30여 년간 경제민주화라는 이름하에 경제를 정치화하여 성과와 수월성을 무시하는 경제평등주의 정책을 채택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하루빨리 박정희 대통령이 일찍이 추진했던 시장과 기업 친화적인 경제정책으로 복귀하는 것만이 근로자 중산층의 복원을 통한 포용적 동반성장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➓ 기업인과 과학·기술자가 견인한 자본주의 산업혁명: 박정희시대는 5천년 역사에 기업인과 과학·기술자가 가장 대접받은 시대였습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농경 사회 계급이념 속에 소위 정치인 등 사대부(士大夫)라는 지식인들에 억눌렸던 기업인들과 과학·기술자들이 자신들을 우대하는 박정희의 상공농사(商工農士)의 실사구시적인 자본주의 계급이념 속에서 그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여 산업혁명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습니다. 자본주의경제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동시에 이를 적극 활용하는 기업의 성장을 통해서만 마차 경제에서 기차, 자동차, 비행기, 우주선 경제로의 고차원의 창발적 성장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이중 어느 하나라도 결핍되면 경제는 이미 몰락한 과거의 공산주의국가들이나 지금의 북한처럼 저성장과 양극화된 유사 농경사회 경제로 전락하게 됩니다. 박정희 한강의 기적은 바로 상공농사의 혁신적 계급이념을 창출하여 농경사회에서 고도 산업사회로의 동반성장을 실현한 반면, 박정희 이후의 한국경제는 기업인과 과학·기술자를 홀대하여 저성장과 분배악화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⓫ 대한민국은 공간디자이너 박정희의 기념관: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토개발과 도시개발 현장은 박정희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제주 5.16도로와 경인·경부 고속도로 건설의 교통혁명에서부터 시작된 국토 대 개조사업은, 홍수예방과 수력발전을 위해 강을 막아 땜을 건설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산림녹화 성공으로 벌거벗은 산을 울창한 숲으로 만들었고,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주요도시와 신도시에 대규모 산업 및 아파트 단지를 유치하여 일자리 창출과 주거기능, 교육기능을 두루 갖춘 현대식 복합도시를 건설하고, 새마을운동을 통해 보릿고개라는 5천년 이래의 빈곤에 찌든 농촌의 경제구조와 삶을 획기적으로 탈바꿈시킴으로써, 온 국토를 역동적이고 활기에 찬 새로운 근대산업국가구조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인류역사상 2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국토 공간을 전래의 농경사회구조에서 상전벽해처럼 산업사회구조로 전환시킨 천지개벽의 역사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박정희는 세계 최고의 국토 공간 디자이너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대한민국 국토현장은 ‘박정희 역사기념관’이나 다름없다고 하겠습니다.

⓬ 한반도 공산화를 막은 한·미·일 동맹체제: 박정희의 한일국교정상화와 한·미동맹 강화가 한국의 고도경제성장과 자유민주주의 체제유지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사회주의 통일도 감수할 수 있다는 민족지상주의적 이념세력의 한·미·일 동맹해체 시도는 우리의 국가안보체제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적화통일야욕이 지속되는 한,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는 유일한 길은 이미 우리의 성공역사가 입증하듯이 박정희가 구축했던 한미일 동맹 체제를 지속 강화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⓭ 박정희 모델, 북한경제발전의 유일한 대안: 북한의 개혁개방은 자본주의시장경제체제를 바탕으로 한 박정희식 ‘기업부국’ 산업혁명 패러다임을 실천해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도시와 농촌간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는 중국도, 중진국 함정으로 빠져드는 베트남도 결코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북한 경제발전의 유일한 대안은 기업육성과 새마을운동을 통해 당대 세계 최고의 동반성장을 일으킨 박정희의 모델뿐입니다.

⓮ 지워질 수 없는 박정희 성공신화: 종북세력을 포함한 좌파적 사상을 가진 집단의 ‘박정희 지우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사는 물론 세계사에 남긴 그의 족적을 지우기는 불가능하며 국내 일부세력의 반(反) 박정희교육과 정치적 배척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의 박정희 배우기는 여전히 인기가 높습니다. 시간은 박정희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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