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워싱턴 움직이는 이스라엘 로비단체, ‘북한인권’ 주목
[포커스] 워싱턴 움직이는 이스라엘 로비단체, ‘북한인권’ 주목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9.11.21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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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American 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 AIPAC)는 미국의 유대인 로비단체이다. 재미(在美) 유대인 7명에 의해 1947년 워싱턴DC에서 시작되어 1953년 정식 로비단체로 확대되었다. 유대인의 단결을 통해 미국의 친(親)이스라엘 정책을 유지ㆍ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AIPAC은 435개 연방 하원 선거구 모두에 관련 조직이 있다.

연례총회 마지막날에는 그동안 미국 의회내 활동을 분석해 AIPAC에 우호적인 활동을 벌인 의원들을 성적순으로 발표한다. 4년 임기의 회장은 미국 대선보다 1년 먼저 선출해서 미국 대선과 긴밀하게 연결되도록 한다. 650만 재미 유대인 가운데 2만여 명이 핵심적으로 재정 기여를 하고 100달러 이상의 기부금을 내는 회원도 3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모임은 재미 유대인 7명에 의해 1947년 워싱턴DC에서 시작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참전이 하루라도 빨랐으면 유대인 학살을 그만큼 빨리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취지가 발단이 됐다. 이어 1953년 정식 로비단체로 확대된다. 강인한 단결력이 특징인 유대인답게 AIPAC은 치밀하고 조직적인 활동을 한다.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미국과 이스라엘의 동맹 강화를 유도하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국익을 절묘하게 일치시키고 있다는 평가가 그래서 나온다.

그런 AIPAC은 2017년 행사에서 주목할 만한 정책 방향 전환을 선언했다. 1996년부터 사무총장으로 AIPAC을 이끌고 있는 하워드 코어 변호사는 “앞으로 소수민족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대계만 너무 잘나간다는 인식이 퍼지면 그만큼 반감도 커지기 때문에 미국 내 흑인이나 개신교도, 아시아계들과 연계해 그들의 현안도 챙겨주는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미 유대인단체 북한인권에 관심 커

북한인권 로비에 미국 내 이스라엘 옹호단체가 나섰던 것도 주목할 만하다.

뉴욕에 본부를 둔 ‘미국유대인위원회’는 미국 내 역사가 깊은 이스라엘 옹호단체 중 한 곳인데, 2008년과 2017년 북한인권법 재승인 법안 지지 로비를 했다.

사실 북한인권 문제에 미 유대인 단체들이 보인 관심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난 2012년 3월 워싱턴의 중국 대사관 앞에서 열린 탈북자 강제북송반대 시위에서는 한인들뿐 아니라 다양한 배경의 미국인들, 특히 키파라 불리는 검은 모자를 쓴 유대계 국제인권단체 사이먼 위젠탈 센터의 아브라함 쿠퍼 부소장도 참석했다.

유대교 랍비이기도 한 쿠퍼 부소장은 과거 국제적십자사 본부를 방문해 북한의 정치범관리소 방문 조사를 촉구하는 서한을 전달하는 등 미국 내 유대인 사회에서 북한의 인권 문제를 적극 제기하고 있다. 쿠퍼 부소장은 ‘미국의 소리’ 방송에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옛 나치정권이 자행한 홀로코스트, 즉 유대인 대학살의 교훈은 단지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유대인협회(AJC) 산하 민간단체인 제이콥 블라우스타인 인권증진재단은 워싱턴에서 발표된 북한 정치범관리소 관련 보고서 작성과 국제회의 개최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이 단체의 펠리스 게르 국장은 행사에서 북한 정치범관리소의 잔인한 인권 유린은 매우 충격적이라며 미국이 대북관계에서 이 문제를 핵심 사안으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 조금 더 과거로 올라가자면 미 유대인협회의 로버트 구드킨드 이사장은 김정일이 사망하자 김정은 새 정권에 인권 개선을 촉구하고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북한인권위원회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미국의 소리’ 방송에 유대인들이 북한의 인권 개선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한 부분은 한국과 이스라엘간에 대북 공조가 가능함을 시사한다. 미국의 각 분야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유대인들이 나설 경우 여론을 움직여 미 정부의 대북 인권정책 강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국제 정세에 기민하게 대응했던 이스라엘이 AIPAC 낳아

1948년 미국은 이스라엘의 건국을 승인했다. 하지만 그 당시만하더라도 두 나라는 어떤 측면에서도 결코 동맹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비록 미국이 언제나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기는 했지만 미국의 정책이 실제로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1948년에 미국의 주된 관심사는 소련의 팽창을 억제하는 것이었으며 주로 터키와 그리스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후원국은 소련이었다. 소련은 이스라엘이 영국에 반대하며 나아가 자신들과 동맹을 맺을 수도 있는 국가라고 봤다. 이때까지도 미국은 중동 지역에 대한 폭넓은 전략 목표에서 이스라엘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간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에즈 운하 문제가 발생한 뒤 자신의 전략적 관계들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집트를 대신해 수에즈 문제에 개입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랍 사회주의 노선을 내걸고 있던 이집트의 나세르 정권은 친소 노선을 취했다. 특히 나세르 정권이 오랫동안 중동을 좌지우지하던 영국과 프랑스의 군사적 압력을 견뎌내고 수에즈 운하 국유화에 성공하자 아랍민족주의, 아랍사회주의를 내건 나세르 노선이 아랍인들 사이에서 엄청난 열풍을 불러왔다.

1960년대에 들어서자 아랍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점점 더 회의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식량이 전부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랍 세계는 단호하게 반미(反美)로 돌아섰다. 오랫동안 외세에 시달려온 아랍인들은 미국을 영국과 프랑스를 대신해 등장한 새로운 외세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이웃 아랍 국가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자 미국에서는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이라는 수렁에 빠진 채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여서 이스라엘이 미국인들에게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신속하고 결정적인 승리의 모델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스라엘은 그런 정서를 활용해 미국에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승리는 이집트와 시리아에서 소련의 영향력을 더 강화시켰고 이는 이스라엘을 미국의 유용한 동맹국으로 만들었다. 미국· 관계를 위한 전략적 기초가 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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