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노키아의 변신 TRANSFORMING NOKIA
[리뷰] 노키아의 변신 TRANSFORMING NOKIA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12.02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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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그 노키아의 현 회장 리스토 실라스마다. 그가 최연소로 이사회에 합류한 2008년만 해도 노키아는 전 세계 휴대전화 업계에서 가장 막강한 시장 주도 기업으로 핀란드의 상징이자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하지만 노키아는 2007년 애플의 아이폰 출시를 기점으로 서서히 기울기 시작하더니 2012년 자사 가치의 90퍼센트를 잃어버렸다. 그는 자기 눈앞에서 펼쳐지는 몰락의 과정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았다. 여기까지가 총 2부로 구성된 책의 1부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즉 1부(1~8장)는 리스토 실라스마가 처음 소프트웨어 공급자로서 노키아와 관계 맺은 순간부터 나중에 그 회사의 이사가 되기까지의 시기를 포괄한다. 각 장들에서는 이사회와 경영진이 어떻게 당시 상황을 진단하고 거기에 대처했는지, 노키아가 항로를 이탈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와 달리 어떻게 했으면 좋았을지에 대해 다룬다.

이어지는 2부(9~18장)는 리스토 실라스마가 노키아의 회장이 되고 나서부터 현재까지 시기를 아우른다. 2012년 5월 침몰하는 배의 키를 넘겨받은 그는 불과 몇 년 사이 기업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것으로 꼽히는 전설적인 거래들―노키아지멘스네트웍스(NSN)의 소유권을 완전하게 매입한 것, 노키아의 핵심사업인 휴대폰 부문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한 것, 그리고 알카텔-루슨트를 인수한 것―을 연거푸 성공시킴으로써 죽음 직전의 노키아를 되살려놓았다. 노키아는 그저 살아남은 데 그친 게 아니라 이제 세계 디지털 통신 인프라 시장의 선두주자로서 새로운 시대의 산업을 이끌어가고 있다.

무선 통신이라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고 그 산업을 선도하면서 승승장구하던 노키아는 어째서 애플이나 구글에 맞설 수 없었는가? 저자는 이 질문에 노키아가 스스로 거둔 성공의 제물로 전락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2000년대 말에서 2010년대 초 성공의 달콤함에 취한 노키아는 한때 자신들을 위대하게 만들어준, 위험을 감수하는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문화를 서서히 잃어버렸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현실안주와 무사안일이었다.

실패의 징후를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알아차리고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리더와 지도부의 태도, 그리고 문제점, 위기, 나쁜 소식을 무능력과 동일시하고 비판하는 그들의 대응은 문제 상황을 충분히 조기에 드러내지 못하도록 막았다. 허용 불가능한 것을 허용 가능한 것처럼 보이도록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손쓰기에는 너무 늦은 때에야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달았다. 성공을 맛본 사람이 몰락의 기미를 간파하고 실패 가능성에 미리 대비하기란 극도로 어렵다. 실패의 씨앗이 서서히 싹트고 있을 때에도 여러 측정지표들은 아직 충분히 괜찮다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했어야 했단 말인가?

극적인 성공, 처참한 몰락, 화려한 재기, 이 세 가지를 순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업의 사례는 흔치 않다. 《노키아의 변신》은 노키아가 왜 성공의 정점에서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로 몰락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 들려준다. 그 과정을 총지휘한 리스토 실라스마는 ‘편집증적 낙관주의’, ‘기업가적 리더십’, 나쁜 소식에 대해 들려주기를 권장하는 열린 기업문화, 조직 구성원 간의 신뢰, 그리고 각고의 연습에 수반된 행운 따위를 재기의 비결로 꼽는다. 다음에서 보듯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비단 기업의 경영진이나 이사회 구성원, 기업인만이 아니라 극적인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유용한 지침이다.

‘편집증적 낙관주의’는 편집증과 낙관주의의 융합이다. 한마디로 철저히 현실을 기반으로 한 낙관주의다. 긍정적·부정적 시나리오를 편집증적일 정도로 샅샅이 검토하고 그에 대비한 끝에 얻게 되는 미래에 대한 낙관이다. 상상력을 발휘해 여러 가지 상이한 성패 시나리오, 그리고 그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을 떠올리는 시나리오 플래닝이 그 핵심이다.

‘기업가적 리더십’은 온갖 도전, 문제, 위기, 나쁜 소식도 배움과 개선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로, 성공에 다가가는 발판으로 삼는다. 본문에서 저자는 제아무리 어려운 문제라 해도 그것을 감당 가능한 요소들로 분해하고 그 요소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다 보면 결국에는 문제 전체를 풀 수 있다고, 집요함을 발휘하면 누구나 도전을 이겨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행운에 대한 저자의 해석도 일면 상식적이지만 흥미롭다. 노키아는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되어준 중요한 몇 가지 거래에서 더없이 운이 좋았다. 하지만 그 운을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과정을 살펴보고 나면 그것을 그저 운이라고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물론 치열하게 노력하고도 실패하는 사례가 수두룩하므로 그들이 운이 좋았다는 거야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말이다. 노키아의 재탄생은 행운 역시 준비된 자에게만 허락되는 것임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저자는 18장 말미에서 다음과 같은 절묘한 말로 현재의 노키아를 표현했다. “알카텔-루슨트 인수 거래가 마무리된 직후 나는 중국에서 개최된 한 위원회에 유명한 중국의 기업가 마윈, 마화텅, 리옌홍과 함께 참가했다. 나는 청중들에게 참가 기업인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와 비교해볼 때 노키아는 가장 오래되고 그러면서도 가장 젊은 회사라고 소개했다. 최근에 150주년 기념식을 치렀으니만큼 가장 오래되었고, 또 우리의 재탄생 결과 그들보다 더 새로운 스타트업이라는 점에서 가장 젊다고 말이다.……우리는 새로 태어난 기업이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자긍심과 겸손함을 동시에 심어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재치 있는 말로 책을 마무리했다. “모름지기 좋은 책이란 끝이 적절해야 한다. 하지만 노키아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므로 끝이 따로 없다. 오직 새로운 시작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언젠가 노키아의 다음번 변신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하지만 그 순간이 그리 빨리 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저자의 이야기에 힘입어 나를 비롯한 이 책의 모든 독자들도 자신이 속한 집단 차원에서든 개인 차원에서든 노키아와 같은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펼쳐나갈 수 있길 빌어본다. 딱 한 번 사는 인생이지 않은가. 아니 그렇게까지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한 발 앞에 다른 한 발을 놓기만 하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그의 기업가적 신념이 위기의 연속인 우리 삶에 뜻하지 않은 위로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저마다 죽을힘을 다해 사는 우리,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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