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아베 정부는 극우인가?
[심층분석] 아베 정부는 극우인가?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9.12.1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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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위대를 사열하고 있는 아베 총리 / 연합
일본 자위대를 사열하고 있는 아베 총리 / 연합

일본에 ‘극우(極右)’는 있을까. 당연히 있다. 소위 ‘넷우익’이라는 광적인 혐한 천황파 그룹들과 ‘재특’이라 불리는 행동파들이다. 여기에 폭력조직인 야쿠자들도 가세한다. 이들은 시커먼 자동차에 욱일승천기를 붙이고 커다란 확성기를 여러 대 달고서는 일본 도심에 출현해 소란을 피운다.

재일 한국인들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는 워낙 심해서 최근에는 법으로까지 제재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외딴곳에서는 폭력도 행사된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가진 이 ‘극우’에 대한 시선은 대체적으로 곱지 않다. 문제는 아베 정부다. 일본 극우세력들이 아베 정부에 지지를 보내고 있기에 한국과 중국에서는 아베 정부가 이들 극우세력과 한통속인 것처럼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정상국가’와 ‘패권’사이

그런 인식은 아베 총리의 가문으로부터도 발생한다. 아베는 탈냉전 후 민족주의와 일본의 전통, 가족, 국가재건을 주장하는 신보수주의 그리고 신국가주의라는 이념을 가진 강경한 보수우익을 상징하는 정치인이다. 아베는 외조부가 A급 전범용의자였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이고, 조부는 중의원 의원을 지낸 아베 히로시(安陪寬)이며, 부친은 외상을 지낸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로 정계의 명문 출신으로 정·재계에 폭넓은 보수 인맥을 가지고 있다.

아베는 2006년 1차 집권했을 때도 여러 우경화되고 민족주의적 발언과 정책으로 인기를 얻었다. 아베는 2012년 12월 총선거에서 고노담화의 수정, 헌법 개정을 통한 자위대의 국방군으로 승격, ‘다케시마’(독도)의 날을 정부 행사로 격상, 개헌발의 요건 의원 과반수로 변경, 자학사관 편향 교육 중단 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압승했다.

이 때문에 아베의 우경화 행보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베가 아니더라도 일본의 보수우파 정치세력이라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절망의 늪에 이어 중국의 부상, 북한의 핵, 여기에 한국 경제의 추격 등의 문제로 일본인들의 자존감과 위기감을 달래야 했음은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베 정권은 ‘정상국가’라는 개념을 통해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가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를 두고 중국은 일본의 ‘군사대국화’라는 개념을 붙였다. 하지만 미국의 국력이 적어도 100년간은 슈퍼파워로 존재하며, 미국이 태평양 아시아로 이해관계를 유지하거나 확대하고 있는 한, 일본이 과거 1930년대처럼 아시아에서 패권을 추구할 수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그럼에도 아베 정권에게 ‘극우’라는 딱지가 붙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종문 한신대 일본사 교수는 진보적 입장에서 아베 정권의 우경화에 미국의 일조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미국은 경제위기로 인해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과의 정면 대결에 부담을 느끼면서,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과 연계해 이 지역에서 좀 더 적극적인 군사적 역할을 하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아베 역시 최근 G2국으로 부상해 미국을 추격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도를 간파, 미국에 편승해 일본 재무장의 기회를 잡으려고 하는 상황에 있다고 진단한다.

오바마의 미국은 공개적으로는 아베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서는 불만을 표명했으나, 일본의 센카쿠 영토분쟁에 일본 지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용인을 위한 헌법 재해석 지지, 그리고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을 통해 미일동맹을 강화하면서 아베 정부의 우경화정책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 대체로 일본의 아베 정권이 극우 성향을 띠는 이유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정상적인 국가라면 자국의 안보와 국민의 재산에 대해 보호능력이 없는 국가를 헌정으로 내세울 수는 없다는 반론도 있다. 다시 말해 일본의 재무장화는 정상적인 국가라면 당연히 추진할 수 밖에 없는 정치행위라는 것이다.다만, 역사 인식에서 아베 정부가 보이는 문제는 그 차원을 달리한다.

2014년 10월 31일 ‘소프트 파워’로 유명한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일본 사회에 상당히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담화를 수정하려는 일본 내 움직임에 대해 “고노담화를 다시 문제 삼으면 일본이 상처를 입게 된다”고 지적했던 것.
 

ⓒ 미래한국 고재영
ⓒ 미래한국 고재영

아베 정부의 극우 딱지는 ‘위안부’

조셉 나이 교수는 단순한 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미국의 국방차관보를 지낸 대표적인 지일파 인사였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조셉 나이 교수의 우려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놓고) 일본이 80년 전의 과거를 들추는 것은 큰 잘못이며 중국, 한국, 그리고 다른 나라가 일본을 공격하는 수단을 제공하게 된다”고 인용했던 것.

조셉 나이 교수의 예언은 한국에서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2011년 12월 14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중심이 된 시민 모금으로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세워졌던 ‘평화의 소녀상’은 이 전만해도 그야말로 상징적인 의미만이 있었다.

그러나 2014년 일본 자민당의 고노담화 재검토 소식이 알려지면서 소녀상은 다시 주목을 받으며 전국적 설치 확대로 나아갔다. 이러한 상황은 다시 일본의 극우 단체들인 ‘넷우익’과 ‘재특’ 등을 통해 과장되거나 왜곡되어 일본 국민들 사이에 확산되면서 일본내에서 혐한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에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솟아 올랐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간 일본군 ‘위안부’ 관련 협상 타결은 바로 일본 아베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고노담화 재검토를 꺼내 든 이후여서 한국의 좌파 진보단체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고 그 빛이 바랬다. 그러면 도대체 이 고노담화란 무엇인가.

고노담화는 1993년 일본제국 육군이 2차 세계대전 동안 위안부로 알려진 여성들을 군용 성매매 업소에 종사하도록 강요했음을 발견한 정부 연구의 결과 후 고노 요헤이 내각관방장관에 의해 발표된 성명을 말한다. 일본 정부는 이때까지 여성들이 강요받았다는 것을 부정했다.
 

이영훈 교수의‘ 반일종족주의’는 일본에서 30만부나 팔렸다.
이영훈 교수의‘ 반일종족주의’는 일본에서 30만부나 팔렸다.


그 발표 원문을 보자.

이번 조사 결과, 장기간에, 또한 광범한 지역에 걸쳐 위안소가 설치되어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것이 인정되었다. 위안소는 당시의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영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구 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하였다. 위안부의 모집에 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맡았으나, 그 경우에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된 사례가 많이 있으며, 더욱이 관헌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하였다는 것이 명확하게 되었다. 또한, 위안서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태 하에서의 참혹한 것이었다.

또한, 전장에 이송된 위안부의 출신지는, 일본을 제외하면 조선반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당시의 조선반도는 일본의 통치 하에 있어, 그 모집, 이송, 관리 등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대체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행하여졌다.

결국, 본건은 당시 군의 관여 하에서,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준 문제이다. 정부는 이 기회에, 다시금 그 출신지의 여하를 묻지 않고, 이른바 종군위안부로서 허다한 고통을 경험당하고, 심신에 걸쳐 씻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께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올린다. 또한, 그런 마음을 우리나라로서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에 대해서는, 유식자의 의견 등도 구하면서, 앞으로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1993.8.4

고노담화는 미국이 태평양 군도를 점령하면서 그곳에 있었던 종군위안부들과 모집업자, 그리고 일본군 포로들을 심문해 기록한 보고서가 1992년 비밀 해제되어 공개되자 이를 바탕으로 자체 조사를 통해 발표된 것이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직간접의 영향력이 있었음을 인정했기에 그 사죄의 배경으로 배상금이 책정되었다.
 

‘반일종족주의’의 위안부 = ‘매춘부론’도 수정 필요

고노담화는 일본에서 몇몇 보수파들에 의한 비판의 대상이었다. 2007년 아베 총리는 첫번째 임기 동안, 여성들이 군 위안소에 종사하도록 강요받았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발언했다.

고노담화의 초안 작성 시의 이시하라 노부오 내각관방부장관은 일본 국회에 선서되지 않은 증언에서 조사 과정 동안 인터뷰한 여성 16명의 진술을 증명하는 어떤 문서 기록도 발견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집권당 자민당의 의원들과 내각관방장관 스가 요시히데는 2014년 2월 20일에 열린 중의원 예산 위원회 보고의 ‘배경’을 재검토하기 위해 모임이 형성됐다고 공고했다. 결국 담화에 수정을 하겠다는 의지였고 아베가 주도하는 정부에서 그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아베 정권에서 위안부에 대한 입장이 과거 인정에서 부정으로 전환되는 때에 한국에서는 낙성대경제연구소를 중심으로 ‘식민지근대화론’이 보수우파진영의 반일에 대항하는 대안적 이념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비록 타율적인 식민지 근대화를 조선이 겪었지만, 그 과정에서 반일론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수탈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 내선일체를 중요하게 봤던 일본의 근대화 교육과 산업융성 정책이 해방 후 박정희 정부의 산업화 기반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이영훈 교수 등을 중심으로 주장된 식민지근대화론은 객관적인 통계와 자료를 기반으로 했기에 좌파진영에서 반론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는 상황이 다르다.

고노담화의 배경이 되었던 미군의 위안부 실태 조사와 맞지 않는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라는 일반론이 ‘반일종족주의’의 주요 핵심 테제가 되면서 역풍을 맞은 점이 있다. 당시 낙성대연구소와 이영훈 교수측은 도쿄와 같은 곳의 위안소와 남태평양의 종군위안소간에 형편과 사정을 현실적으로 구분하는 데 실패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일반적인 자발적 위안부가 아니라, 기망과 강요가 관철된 전선의 ‘종군위안부’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반일종족주의에서 말하는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이라는 일반론과 실제 위안부 할머니들의 구체적 기억 간에 불일치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진정한 이유일 것이다.

한일간의 서로 증폭되고 있는 증오심은 일본의 우파 정치세력이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미 위안부 문제는 미국을 비롯해 유엔과 세계인권기구가 ‘전쟁 노예’로 규정한 바가 있다. 일본의 전통적인 군사문화가 매춘부들을 전선에 데리고 다니는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기독교 정신이 바탕된 미국과 서구의 관점에서는 그런 군사문화는 용납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따라서 한일간의 상호 증오심은 이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 우파정치세력의 결단이 관건이 된다. 아울러 반일에 대항하는 한국의 보수우파 진영에서도 위안부 문제만큼은 인간의 보편적 인권과 일본 군국주의 폐해라는 점에서 그 수정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이와 함께 일본에 대한 ‘자민당=극우세력’이라는 고착된 진보의 사고도 수정될 필요가 있다. 어느 국가든 자국의 국민을 타국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할 수 없는 정책을 헌법으로 정하는 국가는 없다. 일본은 과거 천황과 군신들이 지배하던 나라가 아니다.

일본은 총리도 불법이 있으면 체포되는 나라다. 그만큼 법치와 민주적 제도, 무엇보다 자유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하기에 과거 군국주의나 국가주의와 같은 정치세력이 통치할 수 없는 나라라는 것을 수용해야 한다.

일본에 극우는 있으나, 그런 극우에 일본의 정치와 사회를 맡기겠다는 일본 국민은 현실적으로 없다는 것이 현재 일본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한국의 보수나 진보, 우파나 좌파 모두 일본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를 피하고 한미동맹을 통해 일본을 견제하면서도 협력의 파트너로 삼는 전략이 중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의 친중, 친북노선이 현재의 한일관계를 최악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점을 국민들은 깨달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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