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100주년] 3·1 운동과 미국, 한국, 그리고 일본
[임시정부 100주년] 3·1 운동과 미국, 한국, 그리고 일본
  • 박명수 미래한국 편집위원·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
  • 승인 2019.12.13 10: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차 세계대전은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과거 황제가 지배하던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와 같은 제국주의는 붕괴되고 새로운 질서가 탄생했다. 그것은 1917년 시작된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이었고, 1918년 미국 대통령 윌슨이 선언한 민족자결주의였다. 전자는 국제공산당을, 후자는 국제연맹을 만들었다.

볼셰비키는 제국주의를 반대하며 노동자와 농민이 지배하는 프롤레타리아 국가를 만들고자 했고 결국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맹이 탄생했다. 이들은 사회주의를 중심으로 세계를 재편하고자 했다.

 

카이로 회담에 참석한 장개석(왼쪽). 카이로 회담은 이승만의 미국, 중국, 한국을 연대해서 반일전선을 만들려고 한 구상과 맥을 같이 한다
카이로 회담에 참석한 장개석(왼쪽). 카이로 회담은 이승만의 미국, 중국, 한국을 연대해서 반일전선을 만들려고 한 구상과 맥을 같이 한다

3·1운동 당시의 국제 정세와 한민족의 선택

윌슨 미국 대통령은 1차 세계대전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국제질서를 내세웠다. 그것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이 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당시 윌슨은 서구민주주의의 오랜 명제를 꺼냈다. 그것은 “통치자는 피통치자의 동의에 기초해서 통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의 동의가 없는 정부는 불법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런 원칙은 이전의 제국주의들의 식민지 정책을 공격하는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 소련과 독일이 다 같이 피통치자의 동의 없이 약소국가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미국의 이런 민족자결주의는 사실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적인 질서를 주장하는 것이며 이런 민주적인 나라들이 건설되는 것이 바로 세계평화를 가져오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1919년 3·1운동은 바로 이런 국제 정세 가운데 일어난 것이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리아, 독일 등의 구 제국들은 전쟁에서 패배했고 이제는 소련 중심의 국제공산당(코민테른)과 미국 중심의 국제연맹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일부 한국인들은 국제공산당에 관심을 가졌으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소련 공산당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인들은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말하면서 자유민주주의적인 새로운 질서를 강조하는 것을 환영했다. 특히 미국에 있는 한인교포들은 오랫동안 한반도에 민주국가를 건설하기를 원했고 이런 꿈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와 함께 구체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한국인들의 꿈은 당시 각종 문서를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각종 독립청원서들은 한국이 독립될 경우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연맹에 가입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이것은 일본이나 중국 상해와 같은 친 서방 지역만이 아니라 당시 볼셰비키 혁명이 진행되고 있던 연해주에서 발표된 독립선언서에도 정확하게 나타나 있다.

아울러 이런 한국인들의 결단은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헌장에 정확하게 나타나고 있다. 헌장 7조는 “대한민국은 --- 인류의 문화와 평화에 공헌하기 위하야 국제연맹에 가입함”이라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3·1운동에서 한국인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자유진영의 국제질서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한국 독립운동가들은 독일이 유럽에서 평화를 깨뜨리고 전쟁을 가져왔다면 지금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그런 일을 하고 있다고 봤다. 그래서 일본을 아시아의 프로이센이라고 불렀다. 프로이센은 당시 독일을 일컫는 말이었다. 1918년 11월 25일 미국의 대한인국민회가 윌슨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 의하면 지금 유럽에서 프로이센이 패망하고 있어 세계 평화를 되찾고 있지만 아시아에서는 또 다른 프로이센(일본)이 그 야욕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아시아는 평화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독립운동가들이 이해한 일본의 정체

미국은 독일이 어떻게 유럽 여러 나라를 차례로 침략했는지 잘 알고 있다. 1919년 11월 말 상해에 있는 신한청년당은 윌슨에게 보낸 청원서에서 일본이 어떻게 아시아 대륙을 침략하고 있는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일본은 조선을 이미 식민지로 삼았고, 만주는 이미 그 손에 들어갔고, 몽골은 그 세력 하에 있으며, 지금은 중국에서 우월권을 인정받아 산동반도를 차지하려고 하고 있다. 아울러 대만을 근거지로 하여 남양군도를 장악하고 있다. 일본은 결국 세계적인 제국이 되려는 야심을 갖고 있으며, 미국과도 언젠가는 전투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들은 일본은 세계의 평화를 추구하는 국제연맹의 일원이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원래 일본은 과거 1000년 동안 무단정치를 해왔기 때문에 자유주의나 평화주의를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며, 따라서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국제연맹과 같은 기관에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나라이다. 따라서 이들은 미국이 일본을 파트너로 하여 국제연맹에서 협력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동경의 유학생들이 발표한 2·8 선언서에는 일본이야말로 동양평화의 가장 큰 위협이라고 지적한다. 과거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가 동양의 평화를 해치기 때문에 이것을 막기 위해 전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 소수민족의 해방을 주장하고, 중국도 과거를 벗어버리고 신국가를 건설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 일본의 조선지배는 조선 사람들의 원한을 맺게 만들어 오히려 아시아 평화를 해치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많이 있다.

이 같은 일본에 대한 염려는 1919년 3·1절에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서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일본의 조선지배는 한반도의 사람들의 마음에 원한을 맺히게 하여 동양평화를 어렵게 만들고 더 나아가 “동양의 안전과 위태함을 가르는 주된 축인 4억 중국 사람들이 일본을 두려워하고, 질시하는 마음을 만들어 그 결과 동양 전체가 함께 넘어져서 망하는 비운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하면 일본은 중국인들을 두렵게 만들어 결국은 동양평화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된다는 것이다. 즉, 독일이 유럽의 평화를 파괴하는 것처럼 일본은 동양의 평화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3·1운동 당시에 아시아의 평화를 헤치는 국가가 일본이었다면 현재는 중국이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사진은 중국 왕이 외교부장.
3·1운동 당시에 아시아의 평화를 헤치는 국가가 일본이었다면 현재는 중국이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사진은 중국 왕이 외교부장.

독립운동가들이 꿈꾼 조선의 미래

그러면 이 같은 국제정치 가운데서 조선은 과연 어떤 나라를 추구하는가? 독립운동가들은 무엇보다 조선은 미국이 바라는 국가, 즉 민주주의를 꿈꾸는 나라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신한청년당은 조선에 대해 원래는 대제국이었으나 평화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현재는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었다, 조선은 일본과는 달리 무력을 숭상하지 않고 문화를 사랑하는 나라이다, 현재 조선은 윌슨과 같이 국가는 그 구성원의 동의에 기초하여 세워져야 한다는 원칙에 절대 긍정을 하고 있으며, 따라서 조선이 독립이 된다면 선진제국의 모범을 따라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사실 이 같은 민주국가에 대한 꿈은 대한제국이 멸망할 때 이미 미주에 있는 교포들에게 나타났다.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한일병합이 이뤄진 1910년 가을 미주에 본부를 둔 대한인국민회는 앞으로 세워질 나라는 대한제국이 아니라 민주공화제를 기초로 한 대한민국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주의 신한민보는 독일이 미국에 항복하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이제는 세계가 미국 주도의 자유민주질서에 편입되게 되었다고 언급하면서 한국도 그런 민주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신생 민주국가에 대한 꿈은 1919년 4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대한인총대표회의에서 잘 나타나 있다. 한국에서 3·1운동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고 열린 이 대회에서 미주의 교포들은 자신들이 세우기를 원하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들이 바라는 나라는 첫째, 기독교적인 정신에 입각한 나라이다. 이들은 3·1운동과 앞으로 만들어진 임시정부에 기독교적인 교양을 가진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다는 사실을 주장하면서 새로 세워질 국가는 기독교적인 정신에 입각한 국가여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미국의 정부 형태를 따른 민주정부여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민주주의가 많이 있다. 그러나 미주의 교포들은 그 중에서도 미국식 민주주의를 선호했다. 이것은 개개인의 인권에 기초한 대통령제와 삼권분립을 주장하는 제도이다.

이런 미주 한인들의 소원은 그대로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헌장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 헌장은 우선 3·1운동이 하나님과 사람의 뜻이 어우러져(神人協應) 이루어진 것이며,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세워진 나라이며, 동시에 이 나라는 앞으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의 기초가 된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기독교만이 독점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명칭인 것도 사실이다. 두 번째로 이 헌장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권력은 분산되어야 하며, 개인의 인권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대통령제도 결국에는 수용되었다.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속하기 위하여 국제연맹에 가입하여 자유민주세계의 일원으로서 사명을 다 감당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당시 변화하는 국제질서에 대한민국이 어디에 편입되기를 원하는지를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박명수 미래한국 편집위원·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

태평양전쟁 시대의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자유세계는 대한민국을 승인하지 않았다. 결국 3·1운동은 실패도 돌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세계는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이 주장한 대로 발전했다. 일본은 더 군국주의적인 나라가 되었고, 1920년대 후반부터는 더 이상 미국과 서방국가를 뒤따르는 2등 국가가 아니라 미국과 맞먹는 1등 국가가 될 것을 꿈꿨다. 그래서 일본은 만주를 침략하고 결국 국제연맹에서 탈퇴했다. 이런 일본의 태도는 점점 더 극단화되어 1937년에는 중일전쟁을 시작했고 1941년에는 미국과 전쟁을 일으켰다. 3·1운동 당시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이 이미 예언한 대로였다. 일본은 미국과 더불어 자유세계를 이끌고 갈 수 있는 나라가 못되었던 것이다.

태평양전쟁은 한국인들에게는 커다란 소망을 가져왔다. 그것은 일본의 실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과거 일본과 연대했던 미국에 이제는 한국과 연대해 대일전에 나설 것을 강조했다. 이승만은 미국, 중국, 한국을 연대해서 반일전선을 만들려고 했다.

여기에는 중국의 장개석이 포함된다. 그러면 이런 연대관계를 만드는 공통분모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기독교와 민주주의이다. 특별히 기독교인들인 미국이 중국과 한국의 기독교인들을 도와 아시아에 기독교문명을 건설하고 더 나아가 아시아를 민주적인 질서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승만은 한국에서 일했던 미국인 선교사들뿐만이 아니라 중국에서 일했던 피치 부부와 같은 이들도 포함해 기독교인친한회를 만들었다. 미국의 기독교인들은 중국과 한국의 기독교와 손을 잡고 아시아를 자유민주주의적인 질서 속으로 포함시키기를 원했던 것이다.

현재 한미동맹은 상당한 위기를 겪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과거 이승만은 한국과 미국의 공통점을 찾아 한미의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이것을 기반으로 하여 일본과 싸우려고 했다. 그렇다면 현재 한미관계의 공동 기반은 무엇인가? 이 기반이 분명하지 않으면 결국은 한미관계는 모래 위에 지은 집에 불과할 것이다.

운동 당시 아시아의 평화를 해치는 국가는 일본이었다. 그렇다면 현재 누가 아시아의 평화를 가장 위태롭게 하는가? 그것은 중국이 아닌가? 중국은 과거 일본처럼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이런 중국의 위협에 맞서려면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과거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한미관계를 강화해 일본을 막으려고 했던 것처럼 지금은 중국의 위협을 막아내야 할 것이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