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SK하이닉스 ‘갑질’에 두 번 우는 중소기업
[단독] SK하이닉스 ‘갑질’에 두 번 우는 중소기업
  • 한정석  객원기자
  • 승인 2020.02.1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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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하도급 알았면서도 ‘모르쇠’…2차 협력사 피해 방치 
SK하이닉스 청주 사업장 공사 현장
SK하이닉스 청주 사업장 공사 현장

2018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은 충북 SK하이닉스 청주공장을 방문했다. 대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독려하기 위해서였다. 문 대통령은 충북 청주 소재 테크노폴리 내 현장에서 열린 SK하이닉스 청주 M15 반도체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청주공장은 올해 말까지 1000명, 2020년까지 2100명의 직원을 직접 고용할 것”이라며 “협력업체의 신규고용 인원도 30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 청년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시간, 대통령의 방문에 맞춰 7개월간 밤낮없이 노예처럼 일하며 청주 SK하이닉스 공장 준공에 협력했던 한 중소 전문건설사 대표는 피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45억 원에 달하는 폐수처리 시설 공사대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사에 하자가 있다거나 계약 위반을 한 것도 아니었다.

20여년간 전문건설사로 사고 없이 일을 해 온 (주)아산은 2017년 SK하이닉스의 1차 하도급사인 (주)코웨이엔텍과 폐수정화시설 2차 재하도급 계약을 체결했다. 1차 협력사 코웨이엔텍은 웅진코웨이로부터 분리된 폐수처리 전문건설기업이다. 이러한 재하도급 계약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따라서 (주)아산의 직원들은 코웨이엔텍과 합의해 파견 직원 신분으로 SK하이닉스 건설현장에 참여했다.

당시 건설 관리업체는 SK건설이었고 발주처인 SK하이닉스와 관리사인 SK건설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눈감아줬다는 것이 ㈜아산 측의 주장이다.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의 방문기간 전에 공장 시설들을 준공해야 하는 시기적 촉박함 때문’이었다는 것. 결국 SK하이닉스, SK건설, 코웨이엔텍 등은 ‘갑’이었고, (주)아산은 ‘을’의 입장으로 이들은 함께 업무회의를 진행했다. 피해자인 (주)아산 관계자는 ‘SK하이닉스 측이 회의 때마다 업무를 직접 지시했다.’고 말한다.

(주)아산이 SK하이닉스를 상대로 준비 중인 소송서류
(주)아산이 SK하이닉스를 상대로 준비 중인 소송서류

SK하이닉스, 불법 하도급 알고서도 눈감아, 내부 비리 엄벌해야

문제는 중간에 폐수처리 면허를 갖고 실제로는 아무 공사도 진행하지 않았던 코웨이엔텍이 SK하이닉스로부터 받은 공사대금 중 일부인 45억 원을 (주)아산에 지급을 하지 않았던 것. “저희가 계약을 불이행한 거라면 모르지만, 재무상태가 나빠 저희에게 지급할 돈이 없다는 겁니다. 20년 넘는 거래 중에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한마디로 황당한 거죠.” (주)아산 대표의 말이다.

코웨이엔텍은 사실상 자신의 하도급처에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것과 같았다. 문제는 실제 공사를 (주)아산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건설 관리회사인 SK건설도 알고 있었고 업무를 지시하며 매일 회의를 했던 SK하이닉스 측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발주처인 SK하이닉스는 원청인 코웨이엔텍이 불법 하도급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눈감은 셈이 된다.

“저희는 그냥 철공소가 아닙니다. 고난도 엔지니어링 공법을 요구하는 전문 기술에 오랜 경험을 가진 전문기업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님이 방문한다는 말에 정말이지 7개월 동안 밤이고 낮이고 노예처럼 일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힘없는 ‘을’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당해도 되는 건가요.” (주) 아산 대표는 직원들 급여는 물론이고, 자신들의 비용으로 공사에 필요한 자재를 구매한 비용을 지급하지 못해 부도 직전에 몰려 있다고 말한다. 

현재 (주)아산은 코웨이엔텍과 SK하이닉스 임직원을 상대로 법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률가들은 이런 소송의 경우 대법원 판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 진행 자체가 어렵다고 진단한다. 법리상 불리해서가 아니라 중소기업의 상황에서 소송비용과 재판과정을 버티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을 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문제가 있다고 봤기에 SK하이닉스 측에 출석요구를 했을 텐데 SK하이닉스는 출석하지 않았어요. 건설관리사인 SK건설은 대금과 자신들은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고 코웨이엔텍은 배째라는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코웨이엔텍은 왜 이렇게 무모한 태도를 취하는 것일까. 이쪽 사정을 잘 아는 한 변호사는 ‘코웨이엔텍이 SK하이닉스에 당시 경쟁사인 코오롱을 제치고자 덤핑 제안을 해서 계약을 딴 후, 경영관리 미숙으로 자신들도 적자를 보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다만 재하도급 거래 자체가 불법이기에 문제가 불거지면 SK하이닉스 측도 이에 눈감은 책임이 있으니 알아서 해결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코웨이엔텍 측에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해 봤으나 책임자로부터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우리 건설업계에서 발주처-원청-재하청 간의 하도급 문제는 고질적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여러 차례 입법 개정도 있었고 행정지도도 있었지만 현실은 간단하지가 않다는 것이 현장 업체들의 입장이다. 건설산업기본법(건산법) 29조에 따르면 시공사에서 공사를 하청받은 업체는 공사를 다시 재하청 줄 수 없게 명시돼 있다. 시공사(원청업자)의 허락을 받거나 공사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예외적인 경우만 가능하다. 하지만 건설 현장에서 불법 재하청이 비일비재하다. 공사 범주가 넓은 건설업계의 특성상 발생하는 ‘사각지대’다.

강운산 대한건설협회 전문위원은 “하청업체는 재하청을 줄 수 없고 직접 시공해야 하지만 불법 재하도급이 만연한 상황”이라며 “조사 결과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임금 및 대금체불의 80%가 재하청 과정에서 근로자나 자재장비업체에 대한 체불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한다. 

건산법에는 하청의 불법 재하도급에 대해 영업정지(또는 과징금)를 하도록 제재하고 있다. 하지만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에서는 이를 제재하는 내용이 없다. 결국 하도급법이 원청업자(시공사)에 대해서만 각종 규제를 갈수록 강화하고, 불법 재하청을 일삼는 1차 하도급자에 대해서는 약자라며 관대하게 대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진짜 경제적 약자인 2차 협력사가 방치되고 있는 것이 우리 건설산업 현장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해 대기업 일자리 창출을 독려한 SK하이닉스 공장에서 정작 이런 불공정 관행으로 건설전문기업들이 파산하고 엔지니어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정부 당국은 이런 현실을 제대로 보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보다 시급한 것은 대기업 내부에 부패한 일부 임직원들의 사익추구를 위한 독직행위를 뿌리 뽑기 위해 징벌적인 조치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들이 2차 협력사들에게 피해로 돌아오는 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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