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산정책연구원 국제전망 2020 ] 동북아 질서 2020의 新지정학
[ 아산정책연구원 국제전망 2020 ] 동북아 질서 2020의 新지정학
  • 미래한국 편집부
  • 승인 2020.02.1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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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김정은에 대한 대화 제스처는 북한을 전통적인 북중 관계로부터 이탈시키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의 김정은에 대한 대화 제스처는 북한을 전통적인 북중 관계로부터 이탈시키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국제관계 전문 싱크탱크인 아산정책연구원이 최근 ‘2020년 세계전망보고서’를 발간했다. 과거와 달리 ‘하이브리드 新지정학’이라는 새로운 관점이 보고서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미래한국>이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편집자 주)
 

2019년 평가

‘새로운 질서를 향한 주도권 경쟁의 서막’, ‘하이브리드 지정학·지전략의 가시화’. 2018년 동북아 질서를 함축적으로 설명하는 두 키워드일 것이다. 물론, 전 세계적 차원에서 볼 때 이는 2019년에만 국한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미중 간의 전략경쟁과 이에 따른 새판 짜기는 이미 수년 전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북아 지역에 있어서는 2019년처럼 이러한 기류가 뚜렷이 각인된 적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9년 동북아 정세의 특징은 미중과 이에 합종연횡(合從連橫)하는 주요국 간의 전선(戰線)이 과거보다 더 다변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하이브리드 지정학 시대와 결합해 다음의 세 가지 양상을 나타냈다. 첫째, 지리적 전선에 더해 특정 과학기술의 선점이나 수호를 둘러싼 또 다른 가상의 국경선이 그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한 지정학적 경쟁도 가시화됐다. 둘째, 과학기술의 발달과 국제적 제도(레짐)를 바탕으로 지리적 특성이 희석되었던 20세기와는 달리 지리적 인접성을 바탕으로 한 국가들 간 연대가 타지역에 근거를 둔 국가를 견제하려는 19세기적 양상도 다시 나타났다. 중러가 동북아 지역의 지리적 특성을 바탕으로 기능적 행위자인 미국을 견제하려는 시도가 그 대표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 인터넷 등을 통한 정보의 전달·공유와 여론 형성이 더 중요해짐으로써 ‘버추얼 국경’의 특성 역시 뚜렷해졌다.

미중 양국이 2019년 10월 뉴욕에서 열린 13차 고위급 무역협상에서 부분적인 합의를 끌어냄으로써 다소 소강 국면에 들어서기는 했지만, 이것은 문제의 해결이라기보다는 유보이며 단순한 숨 고르기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미중 무역분쟁 과정에서 지적재산권 보호, 중국의 관치(官治)경제의 문제점이 제기되었고, 무엇보다 화웨이 사태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기술 도용 의혹을 받는 기업·업종에 대한 구체적 제재가 암시되었다.

또한 미국은 이러한 제재에 대한 유럽이나 아시아의 주요 국가들의 동참을 요구하고 나섰다. 일본은 6월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 아베-시진핑 회동을 통해 중국과의 협력 의지를 과시하면서도 화웨이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과 행동을 같이했다.

푸틴은 중국과의 전략적 연대를 지속하면서도 미국과의 갈등 현안을 확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동북아에서의 미중 각축이 심해지는 과정을 활용, 중·근동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행보를 보였다. 이 모두 하이브리드 지정학에 따른 국가 간 경쟁과 협력·연대의 다변화를 보여주는 추세라 할 수 있다.
 

뚜렷해지는 하이브리드 지정학

지리적 위치라는 변수는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2018년 이전까지 동아시아에서 미중 간 무력시위를 동반한 분쟁이 주로 남중국해에서 전개되었다면, 2019년에는 한반도와 그 인근 지역에서도 그 분쟁의 가능성이 시사됐다. 물론 남중국해를 둘러싼 신경전은 여전히 지속됐다.

2019년 미국은 대만해협에 여러 차례 ‘항행의 자유’ 명목으로 군함을 파견했으며 9월 초에는 남중국해의 베트남 해역에서 아세안 국가들과 함께 연합 해상훈련을 했다. 중국 역시 미국의 함정 파견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단호한 대응 의지를 표명했으며 남중국해에 부유(浮遊)식 원전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함으로써 맞불을 놓았다. 미국이 해외군사판매(FMS) 방식을 활용해 대만에 M1A2 에이브럼스 전차와 F-16V 등을 판매하기로 한 것 역시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다. 그러나 2018년과 같이 양측 함정이 직접적 군사 충돌 일보 직전까지 가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2019년 3월 중국 군용기가, 7월에는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10월 또다시 러시아 군용기가 한국방공식별구역(Korea 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 KADIZ)에 진입한 것은 단순한 실수나 오인으로 보기는 힘들다.

7월 당시 러시아 군용기 일부는 우리의 동해 영공을 침범하기도 했으며 KADIZ에 진입한 중러 군용기는 모두 중러 합동훈련에 참여하고 있었다. 특히 7월의 시점은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둘러싼 한일 간 갈등이 시작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또한 진입 지역이 ‘동해’라는 지역이라는 사실 역시 유의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KADIZ 진입을 통해 한미일 안보협력의 이완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한편, 북극항로를 겨냥한 행동 반경을 넓혔다.

문서나 계획을 통한 주요국 간의 상호 견제 역시 2019년 중 변함없이 지속됐다. 미국은 6월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Indo-Pacific Strategy Review)’를 통해 이 전략이 점증하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대응의 성격이 있음을 밝혔으며, 중국 역시 2019년 국방백서인 ‘새로운 시대의 중국국방(新時代的中國國防)’을 통해 ‘방어적 국방정책’을 표방했으나 동시에 ‘패권 확장 반대’를 통해 미국과의 경쟁을 피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했다.

중국의 국방백서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세계 전략과 무역의 중심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본 사실이다. 이는 결국 중국의 가장 큰 이익이 존재하는 핵심지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일 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서의 주도권을 중심으로 세계 질서를 재편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이 러시아와의 중거리핵전략(INF) 조약에서 탈퇴하고 아시아 지역에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시사하자 중국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발사 테스트 장면.
미국이 러시아와의 중거리핵전략(INF) 조약에서 탈퇴하고 아시아 지역에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시사하자 중국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발사 테스트 장면.

확대되는 전장, 전가되는 부담

동북아 더 나아가서는 아태지역의 군비경쟁에서 핵전력의 업그레이드 및 강화가 경쟁적으로 추진될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점 역시 2019년 정세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8월 2일 중거리 핵전력조약(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 INF)에서 공식 탈퇴했다. INF 탈퇴 하루 뒤인 8월 3일 이번에는 에스퍼(Mark Esper) 미 국방장관이 “지대지 중장거리 크루즈 미사일을 수개월 내 아시아 동맹국에 배치하고 싶다”고 언급한 바 있다. 중러는 미국의 INF 탈퇴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으며 미국의 중장거리 미사일이 아시아 지역에 재배치될 경우 이에 대응하는 핵전력 배치 조정 역시 뒤따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2019년 10월 1일의 건국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차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둥펑(東風·DF-4) 등의 신형 핵전력을 선보였고 러시아는 10월 30일 신형 핵잠수함에서의 ICBM급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를 시행했다. 이 모두 새로운 아시아 지역 핵 군비경쟁의 우려를 낳게 하는 것이었다. 특히 중국의 경우 미국의 핵전력이 동북아 지역의 동맹국에 배치될 가능성에 관심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이것이 현실화될 경우 과거의 사드(THAAD) 국면을 훨씬 상회하는 미중 간 그리고 중국과 배치국가 간의 갈등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하이브리드 지정학의 특성은 2020년에는 더 뚜렷해질 것이다. 문제는 전통적·지리적 국경선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국경, 인터넷과 해외동포 등으로 인한 ‘버추얼 국경’의 형성으로 인해 각 국가가 신경 써야 할 전선의 영역은 더 다변화되었다는 점이다.

지리적 공간을 중심으로 한 지정학 경쟁은 역내 군비경쟁과 결합하면서 군사적 충돌이나 갈등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2018년 남중국해에서 충돌의 위험성을 맞이한 이후 2019년 이후에는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지나친 자극을 배제한 이유도 이러한 위험성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대신, 우회적인 방법으로 상대방을 압박하고 포위(hedging)하면서 결국은 지역의 질서에서 배제시키려는 시도는 향후 더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미중 간 전략경쟁을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라고 보는 미국이나 “이번에 꺾이면 체제 자체가 흔들린다”고 보는 중국은 물론이고 중러 역시 다양한 산식에 따라 미래의 동지가 누가 될 것인가를 판단할 것이다. 이를 고려할 때 2020년의 동북아 정세는 대부분의 국가들에 고민스러운 선택의 한 해가 될 것이며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일 것이다.
 

전략적 제휴 시도의 확대

미중의 전략경쟁은 2020년에도 여전히 지속될 것이며 애초 갈등을 촉발했던 무역 분야보다는 다른 영역에서의 또 다른 각축장이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각축장에는 ‘체제 문제’ 역시 포함될 것이며, 2019년 미 의회나 엘리트들이 홍콩 시위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이 때문에 홍콩이나 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중 간의 갈등은 2020년 오히려 증폭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며 특히 미국의 경우 동맹국들이나 우방국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더 뚜렷한 입장 정리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중국의 입장에서 이러한 미국의 공세에 동참하거나 이를 지지하는 국가들에 대해 직·간접적 보복으로 응수하게 될 것이며 이는 한국 등 역내 국가들의 선택 문제를 촉진할 것이다.

이미 기술표준과 지적재산권을 둘러싼 전쟁 역시 본격화되었으므로 이와 관련된 미중의 줄세우기 역시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양국과의 경제·기술적 연계 관계가 모두 존재하는 국가들의 선택 딜레마는 더욱 더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 과거와는 달리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부담이 분담되는 것이 아니라 고스란히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이들 국가의 고민은 더 커진다. 즉, 과거의 경우 미국이 특정 국가에 대한 배제를 위해 동맹·우방국의 동참을 요구할 때 이것이 방위 공약 등 타분야에 있어서의 감안 요인이었다면 이제는 당연한 부담으로 치부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2000년대 들어 사이버 안보 문제를 중대한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기 시작한 점, 그리고 2016년 대선 이후 러시아 스캔들이 불거진 사실 등을 고려할 때, 해킹과 SNS 등을 통한 정치개입 논란은 이제 미러뿐만 아니라 미중 관계에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사이버 분야로까지 갈등이 확대될 경우 화웨이 케이스와 유사한 사태로 발전할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중 경쟁을 바라보는 역내 국가들에 있어서는 고민거리가 또 하나 늘어나는 셈이다.

좁게는 미중 경쟁, 보다 넓게는 역내 주요 국가들 간의 상호 경쟁이 심화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동맹자를 중립화시키거나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유혹은 어느 국가에나 당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다. 어떤 면에서 2018년 이후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대화 국면이 촉진된 이유의 하나는 북한을 전통적인 북중 관계로부터 이탈시키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계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 불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도자 간 좋은 관계를 과시하는 트럼프의 언행은 단순히 자기 치적의 과시나 정책적 실패의 부인을 넘어선 또 다른 의도를 추론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북한 역시 이러한 미국의 의중을 어느 정도 읽었기에 오히려 북중, 북러 연대의 수시 과시를 통해 대미 협상력을 높이면서도 트럼프와의 개인적 신뢰를 강조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동일한 계산은 중국과 러시아에서도 성립할 수 있다. 특히 2019년 한일 간 갈등의 여파가 2020년에도 일정 부분 잔존할 수밖에 없음을 감안하면, 중국과 러시아는 수시로 한미일 안보협력관계의 틈새를 파고드는 행보를 보일 것으로 판단된다. 2019년에 나타난 중국과 러시아의 KADIZ 진입은 2020년에도 지속되거나 오히려 횟수 면에서 증가하고 또 대담해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한중, 한러 간 KADIZ 진입과 관련된 정보를 교환할 장치(핫라인 등)가 논의되기는 했지만 이들의 행보가 오인이나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농후한 만큼 이 협의 장치가 KADIZ 무단 진입 자체를 억제하기는 힘들 것이다.

또 하나 유의해야 할 2020년의 특성은 이러한 전략적 제휴의 과정에서 미중러가 공히 기존협력자들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은근한 압력의 수단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대북 교역을 통해, 미국은 동맹의 방위비 분담 등을 이용해 기존 우방국의 이탈을 방지하려 할 것이다.

해결보다는 관리에 중점을 둔 주변국들의 한반도 문제 접근

미중, 더 포괄적으로는 미일과 중러의 신경전이 지속됨에 따라 비핵화를 비롯한 한반도 이슈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보다는 관리되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주요국 간 전략경쟁 자체가 이들의 공조나 연대에 의한 조치의 실현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세는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서 특히 심각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여전히 북한 포섭에 대한 미련을 버리려 하지 않을 것이지만 동시에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유용한 압력수단인 제재 카드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결국 ‘빅딜’과 같은 대타결보다는 서로가 ‘새로운 길’이나 군사조치 같은 극단적 길을 피하면서 갈등을 관리하는 수준에서 비핵화 협상이 지속되는 상황으로 이어질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도 북미의 ‘쌍중단·쌍궤병행’에 입각한 극적 타결을 수사적으로는 옹호하지만 이를 무조건 반길 입장은 아니다. 급속한 북미 관계 개선은 중국 입장에서 한반도에서 신뢰할 만한 오랜 완충지대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중국이 비핵화를 위한 과도한 대북 압력을 행사하지 않는 동시에, 북미 간의 급격한 관계 개선에도 일정한 제동을 하는(평양과의 우호관계에 대한 주기적 과시) 행태를 유발할 것이다. 러시아 역시 종전선언과 같은 선언적 조치를 넘어 한반도 평화체제의 제도화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 단계에서는 일정 부분의 자기 지분을 보장받으려 할 것이다. 결국, 대화는 지속하지만 누구도 선뜻 중대한 기여를 하지는 않으려 하는 주요국들의 행보로 2020년에도 한반도 비핵화의 의미 있는 진전은 기대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동북아시아는 신냉전의 하이브리드 지정학에서 코어에 해당한다. 이어도 남방해상은 한중일의 방공식별구역이 중첩된다. 중국의 빈번한 한국방공식별구역 침범은 하이브리드 전쟁의 일환이기도 하다.
동북아시아는 신냉전의 하이브리드 지정학에서 코어에 해당한다. 이어도 남방해상은 한중일의 방공식별구역이 중첩된다. 중국의 빈번한 한국방공식별구역 침범은 하이브리드 전쟁의 일환이기도 하다.

주요 국가들의 논리적 모순성, 그리고 가중되는 불투명성

이미 2019년 중 나타난 바 있지만 트럼프는 세계적 차원에서 미국의 질서 유지나 적극적 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2020년에도 지속할 것이다. 대신 트럼프는 자기의 의중에 호응하는 동맹·우방국을 중심으로 미중 전략경쟁에서의 우위를 점하려 들 것이다.

미국의 기여는 축소하지만 미국의 지도력 역시 포기하려 하지 않으려 하는 트럼프의 태도는 분명 이율배반적인 모순을 지니고 있다. 이는 미국의 동맹·우방국이 기존의 안보공약이 제대로 유지될 수 있는가를 우려하게 하는 주요한 동력이기도 하다. 중국의 행태, 즉 조화세계와 각국의 주권 존중을 표방하면서도, 중국의 이익 침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기 이익의 침해에 대해 인내하지 않는 방침 역시 모순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행태는 결국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저하시킴으로써 한국과 같은 역내 국가들의 외교·안보정책의 효과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이는 미중 양국과 중장기적 협력의 비전이나 방향을 어렵게 만들며 이슈별·사안별로 다른 정책적 조치를 요구하게 된다.

과거는 특정한 지정학적 위치가 지니는 단점이나 효과가 비교적 명확하게 예측될 수 있었다. 하이브리드 지정학 시대에는 주요국 간 각축의 영역별로 다른 지도와 경계선을 그려나가야 한다. 이러한 고민은 주요국들보다 국력격차가 큰 국가들의 커다란 딜레마이며 2020년은 그 고민이 깊어지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중국 팽창에 맞서 미일동맹은 동아시아 안보의 축으로 자리잡았다.
중국 팽창에 맞서 미일동맹은 동아시아 안보의 축으로 자리잡았다.

한국의 선택: 모호성의 이점 상실

물론 한국이 미중 전략경쟁으로 인해 일정한 반사이익을 누릴 수도 있다. 과거 제기되었던 러브콜 논리도 이에 기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적 영입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 어떤 일을 되게 할 수 있는 긍정적 레버리지,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그 국가의 동의나 지원 없이는 외교·안보적 노력의 성사가 어려운 부정적 레버리지라도 지녀야 한다. 과연 한국에는 이 레버리지가 현재 존재하는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둘째, 사안별로 입장이 투명해야 한다. 주요 국가들이 자신들의 무기로 내세우는 전략적 모호성을 그보다 역량이 약한 국가의 입장에서 동일하게 활용하면 이는 소외와 불신의 근원이 된다. 사안별로 한국이 지향하는 바와 선호하는 바가 뚜렷해야 협력의 촉진도 갈등의 관리도 제대로 될 수 있다. 셋째, 남북관계에서도 한국의 의제 및 정책 주도력이 되살아나야 한다. 강대국들이 러브콜을 보내는 대상은 해당의 소지역 단위의 안보구도를 좌우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경쟁이 동북아로 전이되고 한반도까지 이르는 것이 주요국간 갈등의 진행양상이었다. 반면 이제는 한반도 혹은 동북아가 갈등을 촉발하는 주요한 원인이 될 수도 있으며 2020년에는 그 가능성이 더 뚜렷해질 것이다. 하이브리드 지정학 시대에서 한국이 생존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일변도의 외교·안보 관행에 변화를 줘야 하며 북한의 행위에 한국이 분명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미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변국에 심어줘야 한다. 이 능력이 없다면 2020년은 한국에게 더 혼란스러운 한 해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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