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로 읽는 전염병 ] 역병(疫病))이 움직인 세계사
[ 역사로 읽는 전염병 ] 역병(疫病))이 움직인 세계사
  • 한정석 미래한국 객원기자
  • 승인 2020.02.2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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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을 죽음으로 몰고간 흑사병. 중세 교황 권력이 몰락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세 유럽을 죽음으로 몰고간 흑사병. 중세 교황 권력이 몰락하는 계기가 되었다.

강대국의 흥망에는 석연치 않은 비밀들이 있었다. 그것은 역사학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나 세균이라는 존재다.

기원전 430년 스파르타의 침공으로 수많은 촌락민들이 아테네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아테네에 오두막을 짓고 덥고 숨막히는 공간에 밀집해 살았다. 역병이 돌았다. 5년간 아테네 인구의 4분의 1이 줄었다. 처음에는 홍역이었을 거라 추정되었으나 2006년 아테네 대학교에서 공동묘지 시체의 치아를 통해 치수속의 장티푸스균을 확인했다. 그나마 장티푸스는 환자가 전염시키기 전에 먼저 죽어 그 피해가 아테네 시민 전체를 시체로 만들지는 못했다.

서기 165년 메소포타미아로 출정을 갔던 로마군들이 회군했다. 군영에 역병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이탈리아로 돌아온 후 역병은 로마에 퍼져 나갔다. 창궐할 때에 이르러서는 로마에서만 하루 5000명이 죽었다고 전해진다. 15년 후 총 사망자는 500만 명. 당시 그리스의 의사 갈렌의 설명으로 현대 학자들은 이 역병이 천연두라고 추정했다. 이 역병 때문에 사망한 두 명의 로마 황제 중 한 사람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의 이름을 따서 병명을 ‘안토니우스병’이라 명명했다.
 

신의 채찍, 중세의 페스트

541년부터 750년까지 약 30년간 동로마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역병이 돌았다. 병은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이듬 해 봄 콘스탄티노플에 도달했다. 비잔틴 제국의 역사가인 프로코피우스의 설명에 의하면 하루 동안 1만 명이 사망하고 비잔틴 도시 거주자의 40% 이상이 사망했다. 최초로 기록된 선페스트의 대유행이었다. 당시 세계 인구의 절반이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550-700년 사이에 중세 유럽 인구는 이로 인해 50%가량 감소했다.

14세기에 이르면 비로소 흑사병이 인류를 위협하기 시작한다. 발원지조차 알 수 없던 가운데 흑사병은 유럽 전체를 휩쓸어 25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당시 전 유럽 인구의 1/4에 달했다. 페스트균에 의해 임파선이 검게 변하고 살아 있는 동안에 피부가 검게 썩어 들어갔다.

감염된 사람의 50%가 3~7일 안에 사망하며 최초 24시간 이내 항생제 투여를 하지 않으면 감염된 사람은 2~4일 사이 100% 사망에 이르는 병이다. 이 시기에 유럽은 우울했다. 죽음은 낯선 것이 아니었다. 영국에는 1361년부터 1940년까지 2년에서 5년 주기로 페스트가 돌아왔다. 1370년에는 영국의 인구가 50% 감소되었다. 1665년부터 1666년까지의 런던 대역병은 마지막 영국 흑사병이었다. 질병은 런던에서 10만 명을 죽여 인구의 20%를 사망시켰다.

19세기 중반에는 3차 페스트 범유행이 있었다. 중국에서 시작해 모든 사람이 살고 있는 대륙을 전염시키고 인도에서만 1000만 명 이상을 사망시켰다. 공식적으로 흑사병은 1959년 사라졌다.
 

나폴레옹의 몰락을 가져온 발진티푸스

발진티푸스는 전쟁 중 활활 타는 캠프의 모습을 따 ‘캠프 열병’이라고도 한다. 또한 감옥이나 선박 같은 좁은 곳에서 생기기 때문에 ‘구치소 열병’ 또는 ‘선박 열병’이라고도 한다. 십자군 전쟁 동안 발진티푸스는 1489년 스페인에서 처음 발발했다.

그라나다에서 이슬람교도와 크리스트교도가 전투하는 동안 스페인은 전투 중 사망자가 3000명인 반면 발진티푸스로 2만 명이 사망했다. 1528년 프랑스는 이탈리아에서 1만8000명의 병력을 잃고 스페인은 이탈리아에서의 영향력을 잃었다. 1542년 오스만 제국군이 발칸 반도에서 전투하는 동안 3만 명이 사망했다.

30년 전쟁(1618-1648) 동안 약 800만 명의 독일인이 발진티푸스와 선페스트로 사망했다. 이 질병은 또한 나폴레옹의 1812년의 러시아에서 대육군의 절멸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펠릭스 마크햄은 1812년 6월 25일 네만 강에서 45만 명의 병력 중 4만5000만 도하하는 데 성공했다.

1813년 초 나폴레옹은 러시아에서 50만 명의 손실을 입었다. 나폴레옹의 병력은 21만9000명 이상이 발진티푸스로 사망했다. 발진티푸스는 아일랜드 대기근 당시 수십만 명을 사망시켰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세르비아에서 15만 명 이상이 발진티푸스로 사망했다. 발진티푸스로 인해 러시아에서 1918-1922년까지 약 250만 명에서 300만명이 사망했다. 발진티푸스는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2차 세계대전 동안 포로의 거의 대부분을 사망시켰다.
 

전사자보다 많았던 1차 세계대전 스페인 독감 사망자

콜레라는 아시아에도 옛날부터 존재했었지만 세계적인 유행성 확산을 나타낸 것은 19세기 접어들면서부터이다. 우리에게는 괴질(怪疾)로 불렸으며 신사년(1812년)에 유행한 괴질이라는 의미에 신사년 괴질로 불렸다. 콜레라의 초기 발생 지역은 인도의 갠지스 강 하류의 벵골에서 방글라데시에 걸친 지역으로 생각된다.

가장 오래된 콜레라의 기록은 기원전 300년경의 것이다. 그 다음은 7세기 중국과 17세기 자와섬에서 콜레라로 추정되는 악성 역병의 기록이 있지만 세계적인 대유행은 1817년 시작된다. 1860년까지 인도 대륙에서 콜레라로 1500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 2300만 명이 1865년부터 1917년 사이 사망했다.

러시아 제국에서 비슷한 기간에 2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 해 캘커타에 생긴 유행성 콜레라는 아시아 전체로 확산되었으며 아프리카에도 퍼져 1823년까지 계속되었다. 일부는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다. 1826년부터 1837년까지 크게 유행하여 아시아,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유럽과 남북아메리카에 확산된 전 세계적인 규모였다. 이후 1840년부터 1923년까지 총 8차례에 걸친 아시아 형의 대유행이 있었다.
 

인류 최초의 독감 즉 인플루엔자는 BC 412년,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가 처음으로 언급했다.

첫 번째 인플루엔자 범유행은 1580년에 기록되어 그 후 모든 독감 주기는 10-30년으로 찾아왔다. 1889-1890년까지의 아시아 독감이 유행했다. 매우 높은 감염률과 사망률을 보였다. 약 100만 명이 인플루엔자로 사망했다. 1918-1919년까지의 스페인 독감이 악명을 떨쳤다.

최초의 발견은 1918년 3월 초 미군이 캔자스의 포트 릴리에서 훈련 중 발견되었다. 1918년 10월 이 병은 모든 대륙에 퍼져 세계적인 유행병이 되었고 결국 세계 인구(당시 5억 명) 중 3분의 1이 감염되었다. 이례적이고 치명적인 병이었지만 18개월 내 사라져 병은 빨리 사라졌다.

6개월 동안 50만 명이 사망하고 일부 추정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사망한 사람들은 두 배 이상 된다는 주장도 있다. 17만 명이 인도에서, 675만 명이 미국에서 사망하고, 20만 명이 영국에서 사망했다. 이 바이러스는 최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 알래스카의 영구 동토층에서 재발견되었다.

1957-58년까지 아시아 독감이 유행했다. 미국에서 7만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1957년 2월 말 중국에서 시작되어 1957년 6월에는 미국으로 퍼졌다. 전 세계적으로 200만 명이 사망했다. 1968-69년까지 홍콩 독감도 있다. 미국에서 3만4000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이 바이러스는 1968년 초 홍콩에서 발견되어 그해 말에 미국으로 확산되었다. 1968-69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100만 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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