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포커스] 대북사업가 의문의 사망, 북·중 합작품인가?
[안보포커스] 대북사업가 의문의 사망, 북·중 합작품인가?
  •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 승인 2020.07.01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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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대변인은 A씨의 사망을 확인하면서도 수사는 중국 공안이 맡아 하고 있다는 원론적 답변만 했다.
외교부 대변인은 A씨의 사망을 확인하면서도 수사는 중국 공안이 맡아 하고 있다는 원론적 답변만 했다.

지난 6월 4일 한 인터넷 매체가 “중국 단둥에서 한국인 사업가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 사업가의 죽음이 ‘암살’이라는 의혹이 단둥 교민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고 현지 소식통이 전했다.

‘프리덤 앤 라이프’라는 매체는 한국인 사업가 A씨의 죽음에 대해 보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A씨는 6월 1일 거주하는 아파트 앞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매체는 “일부 지인들은 A씨가 갑작스레 사망한 점을 들어 타살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A씨가 대북 무역을 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북한 관련 동향을 한국 정보기관에 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를 알게 된 북한이 A씨를 자살로 위장해 살해했을 수 있다고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한국 정부와 현지 상황을 취재한 결과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현지 소식통이 확인한 결과 A씨는 10년 넘게 중국과 북한 사이에서 무역업에 종사했다. 한국이나 미국 법에 따르면 북한과의 무역이 문제가 되지만 중국 현지에 업체를 차려 북한과 무역을 하는 경우 중국 측이 문제 삼지 않으면 괜찮기에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설명이었다.

50대 남성인 A씨의 시신은 아파트 현관 앞에서 발견됐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얼핏 보면 베란다에서 자살하거나 실족사한 것처럼 보였지만 현지 교민들 사이에서는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평소 과음을 하는 사람도 아닌데다 우울증도 없고 가족 관계에도 문제가 없고, 사망 이후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 이상하다는 지적도 교민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고 한다.

소식통이 공안 등에 확인한 결과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아파트 베란다 바로 아래가 아니라 거리가 좀 떨어진 곳이었다. 마치 2018년 7월 노회찬 당시 정의당 원내대표의 자살 사건 때 떠돌았던 음모론을 연상케 했다.

무엇보다 단둥 교민들을 술렁이게 한 것은 A씨가 한국 정부를 위해 북한 내부 동향을 제공했다는 설이다. 소식통은 “A씨의 일부 지인들은 그가 생전에 국가정보원과 국군정보사령부를 위해 북한 정보를 수집해 제공했다고 믿고 있다”고 전했다. A씨가 북한 내부 정보를 국정원 등에 제공하는 사실을 알게 된 북한 측이 공작원을 보내 그를 자살로 위장해 암살했다는 것이 일부 지인들의 주장이라고 소식통은 전했다.

 

임무 수행중 순직한 국정원 요원은 ‘이름없는 별’로 남는다.
임무 수행중 순직한 국정원 요원은 ‘이름없는 별’로 남는다.

외교부 “중국 공안에서 조사 중” 국정원·정보사 “우리는 무관”

이와 관련해 중국 선양총영사관에 문의했다. 선양총영사관 사건담당 영사실은 통화에서 “관련 내용에 대해 내부적으로 논의한 뒤 입장을 알려주겠다”고 답했다. 몇 시간 뒤 선양총영사관 측은 “관련 내용에 대해 외교부 본부와 논의했으며, 알려드릴 수 있는 내용은 모두 대변인실로 인계했다”고 밝혀왔다. 외교부 대변인실은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A씨의 사망은 사실이다. 단 그의 사인이나 수사 상황 등은 중국 공안이 맡아 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A씨 사망에 대해 중국 공안 측에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으며 A씨 유족들에게 필요한 영사조력을 제공하고 있다.”

언론대응요지(PG) 내용 이외에는 답할 수 없다고 외교부 대변인실을 강조했다. “유족과 접촉할 수 있느냐”고 묻자 외교부 대변인실은 “유족이 언론과의 접촉을 거절했다”고 답했다.

단둥 교민과 A씨의 지인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국정원과 국군정보사에 관련 사항을 문의했다. “내부적으로 검토한 뒤 입장을 알려주겠다”고 밝힌 국정원과 정보사는 몇 시간 뒤 “우리와는 무관하다”는 공식 입장을 알려왔다.

외교부와 국정원, 정보사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응했지만 A씨가 사망한 곳이 중국 단둥이다 보니 그의 죽음에 의문을 갖는 사람은 줄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 음모론이 나오는 사망 사건은 주로 정치권과 관련된 사람의 죽음이다. 반면 중국, 특히 단둥에서 사망 사건과 관련해 나오는 음모론은 북한과 관련돼 있다. 중국 단둥은 북한과의 접경인 만큼 북한 보위성, 보위사령부, 정찰총국 등의 공작원은 물론 중국 정보기관 국가안전부, 무장경찰, 인민해방군 총참모부 등의 공작원과 방첩요원들도 득실거린다.

이들은 한국과 미국, 일본, EU 등에서 온 스파이가 있는지 찾아내는 데 혈안이 돼 있다. 동시에 서방 스파이에 협력하는 사람을 잡아내는 데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쉽게 말해 방첩활동에 적극적이다. 그런데 두 나라의 방첩활동은 그 방향성이 조금 다르다.

중국의 경우 탈북자나 탈북자를 돕는 북한인권단체, 대북선교단체 관계자들을 체포한 뒤에는 강제 추방하거나 이중간첩을 만드는 데 주력한다. 아니면 북한에 거주하는 화교를 교육시킨 뒤 북한 보위부나 정찰총국의 대남공작원으로 심는다. 북한 첩보기관이나 방첩기관 내부 사정과 한반도 상황을 동시에 파악하기에 이런 이중간첩이 가장 좋다.

북한은 다르다. 북한은 탈북자 체포 및 강제북송과 함께 탈북을 지원하는 북한인권단체나 대북선교단체 관계자들을 납치해 북한으로 데려가는 일이 많다. 한국 정보기관 요원이나 이들이 고용한 에이전트의 경우 납북하거나 살해한다.

중국 단둥에서 북한에 의해 납북된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장 최근의 사례가 2017년 8월에 있었던 사건이다. 당시 30대 탈북민 A씨는 북한에서 탈출하는 사람들을 데려오기 위해 단둥시 둥강 주변에서 중국인과 함께 대기 중이었다. 이때 북한 통일전선부 반탐과(방첩과)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건장한 남성 7~8명이 다가와 A씨를 폭행한 뒤 끌고 갔다. 함께 있던 중국인은 공안에 신고했지만 A씨는 찾을 수 없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북한에서 탈출하던 주민 27명을 태운 배가 단둥에 접안하기 전 북한 당국에 적발됐다. 선주는 당국에 붙잡혀 고문을 당하면서 A씨의 소재를 실토했다. 이후 통일전선부 공작원들이 중국에 와서 A씨를 납치해 북한으로 끌고 갔다는 것이다.

북한은 그 이전에도 단둥에서 탈북민을 돕고 북한 주민들에게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던 김정욱 선교사, 김국기 목사를 납치해 북한으로 끌고 갔다.
 

북한, 반북활동 인사는 조선족 조직폭력배 통해 암살

이처럼 북한은 중국에서 한국인을 납치할 때는 공작원을 보낸다. 반면 중국에서 한국 정보기관 관계자나 에이전트를 살해할 때는 중국인에게 청부를 맡긴다고 한다.

북한인권단체 대표를 맡고 있는 B씨는 중국 단둥에서 일어난 A씨 사망 사건에 대한 설명을 듣더니 “북한이 배후에 있을 개연성이 충분히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000년 1월 중국 옌지에서 북한 공작원들에게 납북된 고 김동식 목사의 사례를 설명했다.

자유아시아방송(RFA) 등의 보도에 따르면 김동식 목사는 옌지에서 일행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향하다 건장한 4명의 남성에 의해 납치됐다. 당시 남성들로부터 탈출한 일행은 이들이 북한 공작원임을 직감했다고 전했다.

이 일행은 “한국 영사관에 연락을 했지만 한국 당국은 ‘김 목사가 납북됐는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며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고 폭로했다. 중국의 묵인과 한국 정부의 무관심으로 김동식 목사는 북한 공작원들에 납북된 뒤 계속 고문을 받다 1년 만에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북한은 탈북민 단체나 북한인권단체의 중요한 관계자를 납치해 끌고 갈 때는 공작원을 직접 보내지만 누군가를 ‘제거’해야겠다 그러면, 최근에는 조선족 중국인을 고용해서 사고사로 위장하는 사례가 많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언론 보도도 있다. 2017년 2월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 조선일보는 “북한 정찰총국은 물론 보위부, 보위사령부에서도 조선족 중국인이나 제3국 범죄조직을 고용해 탈북민과 반북 인사들에 대한 납치·청부살인을 자행하고 있다”고 탈북민들과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북한군 정치장교 출신의 한 탈북민은 “1990년대 말 중국 동북 3성에서 반북 활동을 하다 보위사령부 지령을 받은 조선족 암살자들에게 배에 칼을 맞고 겨우 목숨을 건졌다”며 “북한은 그때도 중국인 암살자나 조직폭력배를 고용해 반북인사에 대한 청부 살인을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전직 대외 공작원 출신 탈북민은 “중국에 거주하는 북한 공작원이 현지의 전문 암살자나 조직폭력배 정보를 본부에 보고하면 암살조 책임자가 적임자를 골라 암살 청부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대북소식통은 1996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의 위조지폐와 마약거래를 추적하다 숨진 최덕근 영사의 경우에도 시신에서 북한 공작원들이 주로 사용하는 독침이 발견됐다며 북한의 사주를 받은 러시아 마피아의 소행으로 보인다는 주장을 폈다고 신문은 전했다.

사실 단둥을 비롯한 중국 동북 3성은 외교부의 여행유의지역이다. 이 지역 자체의 치안이 문제가 아니라 북한에 의한 납치, 암살 등을 우려한 한국 정부의 여행 경보다.

중국 범죄조직과 북한 공작원들이 중국에만 있다면 한국 정부의 여행 경보도 효과가 있으리라. 하지만 현실은 이미 ‘구멍’난 상태다. 한국의 입국 감시망이 얼마나 엉망인지는 지난 4월 20일부터 6월 4일까지 충남 태안반도 일대에서 일어난 밀입국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 4월 20일 검정 고무보트, 5월 23일 소형 모터보트, 6월 4일 회색 고무보트 모두 중국 산둥반도에서 출발, 한국에 밀입국한 중국인들의 배다. 한국 정부는 5월 23일 모터보트만 중국인 밀입국이라고 했다. 4월에 발견된 고무보트는 한국인 것이라고 6월 초까지도 우겼다.몇몇 정부 관계자는 이 문제에 의혹을 제기한 기자들에게 강압적으로 기사 수정을 요구했다. 그러다 6월 4일 똑같은 고무보트가 발견되고 기자들이 제기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자 이후로는 묵묵부답이다.

6월 13일 해양경찰에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4월 20일 검정 고무보트를 타고 입국한 중국인은 5명, 5월 23일 모터보트를 타고 입국한 중국인은 8명, 6월 4일 회색 고무보트를 타고 온 중국인은 5명이다. 한국 수사 당국은 이날까지 각각 4명, 5명, 3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폭력도 사용하지 않고 철저히 인권을 지켜주는 한국 경찰에게 이실직고를 했을까.

열영상감시장비(TOD), 해안경계용 복합광학감시장비, 해안 레이더로 무장한 해안경계가 고무보트 타고 다니는 영세 밀입국자에 뚫릴 정도라면 북한이나 중국 거대 폭력조직이 밀입국을 안 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코로나가 급속히 확산되던 지난 2월과 3월에도 한중 항공노선을 그대로 유지했던 문재인 정부의 대중국 정책까지 생각해 보면 항공편이나 여객선을 통해 국내로 유입된 중국 조직폭력배나 암살자가 없다고 단정하기가 어렵다.

한국 사회에 널리 퍼진 말 가운데 하나가 “자살 당했다”는 표현이다. 자살로 위장한 타살이라는 뜻이다. 단둥에서 일어난 A씨의 죽음과 같은 일이 국내에서도 점점 더 빈번해지지 않겠느냐는 두려움을 불러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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