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인터뷰] 김미애 국회의원 “약자와의 동행은 보수의 가치, 저출생 문제 해결은 돌봄에서 시작”
[미래인터뷰] 김미애 국회의원 “약자와의 동행은 보수의 가치, 저출생 문제 해결은 돌봄에서 시작”
  • 고성혁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0.07.22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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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 최고위원, 저출생대책특위 위원장

인터뷰 김범수 미래한국 편집위원
정리·사진 고성혁 미래한국 기자
 

이달 7월 1일 출범한 미래통합당 저출생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김미애 의원(부산 해운대을)이 임명됐다. 김 의원은 조카 둘과 입양한 딸 키우고 있는 미혼의 ‘싱글맘’으로 통합당이 핵심 어젠다로 내세우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저출생 문제와 ‘약자와의 동행’을 책임질 적임자로 평가받는다.

학창 시절 집안의 어려움으로 학교를 중퇴하고 방직공장과 봉제공장, 관광회사, 식당 등을 전전하다 20대 후반 공부를 시작해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변호사가 된 뒤에는 소외계층을 찾아다니며 국선사건만 760여건을 도맡았다. 지난 7월 10일 국회 저출생특위 간담회 자리에서 <미래한국>이 김미애 위원장을 만났다.

김미애 국회의원,  미래통합당 최고위원, 저출생대책특위 위원장

- 국회에서 저출산(생) 문제를 다루기 위한 위원회가 만들어진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은데 특위의 설립 취지가 무엇인가요? ‘저출생’이라는 용어가 조금 낯설기도 합니다.

기존에는 저출산이라는 개념을 사용해왔고 행정부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출산이라고 하니 마치 여성의 문제에만 국한하는 듯하고 범위를 국한시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출산이 아니라 출생이라는 사회 전반적인 현상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다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취지로 제가 설명을 드렸더니 비대위에서 모두 공감을 해주셨습니다.

오늘 특위에 통계청에서 나와 자료를 설명하는데 우리나라 상황이 매우 심각한 수준입니다. 합계출산율이 0.91 정도로 세계 최저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100조 이상 예산을 썼다고 하지만 효과가 없었기에 이 문제에 우리 당이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저출생 문제, 해답은 현장에 있다”

- 지금까지 정부의 대책이 효과가 없었다면 저출생특위에서는 어떤 다른 대안이 있다고 보고 있는지요?

저희 특위에서는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미 태어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데 아이는 단지 부모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라는 겁니다. 국가가 부모의 돌봄의 공백을 국가가 메워줘야 합니다. 아이 낳는 것이 부담이 아니라 축복으로 인식될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다른 관점은 현재 현실은 아예 아이를 낳을 생각조차 못한다는 겁니다. 제가 서울에 와보니 더더욱 꿈도 못 꿀 것 같더군요. 집 하나 얻는 것조차 너무나 힘듭니다. 내 한 몸 제대로 건사하는 것조차 힘든데, 가정을 이뤄 집을 마련한다? 주거가 안정돼야 아이를 낳아 키우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주거 결혼 임신 출산 보육 직업 등 관련 범위가 매우 넓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문제 해결도 형식적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그래서 저희 저출생특위에서는 범위를 줄였습니다. 임신 출산 보육 양육 중등교육까지만 한정시켰습니다. 이것만이라도 제대로 해보자는 취지입니다.
 

- 특위에는 어떠한 분들이 참여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특위를 운영할 생각이신지요?

우리 특위 위원 구성을 보면 기존의 명망가 출신들이 아닙니다. 외부 위원들이 다양합니다. 입양가족도 있고, 한부모 가족도 있고, 대안학교 교장선생님도 있습니다. 기존 같으면 교수나 관료 출신 위주였을 텐데 그것을 탈피했죠. 그래야 현장과 당사자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경험한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야 제대로 된 대안이 나옵니다. 지난주 특위의 첫 활동도 한 부모가정 10가구가 모여 있는 곳에 가서 그분들 목소리도 듣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경험하지 않으면 어떤 대책을 만들더라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분들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지엽적인 문제로 보일지 몰라도 그것이 약자를 돕고 보다 현실적인 대안과 정책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7월 8일 저출생특위에서 한부모가정 현장에서 간담회를 열고 있다.
7월 8일 저출생특위에서 한부모가정 현장에서 간담회를 열고 있다.

-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은 얼마전 전일제 교육제도를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구체적인 대책은 아직 나와 있지 않습니다. 현장에서 얘기를 듣고 앞으로 많은 토론도 거쳐야죠.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 당의 정책으로 정할지 말지를 결정할 겁니다. 전일제 교육방안도 토론해야 하고 양육비 이행 문제, 남성육아휴직 의무제 등도 토론을 거쳐 당의 정책으로 채택해 나갈 예정입니다.

현재 나와 있는 전일제 교육 제도는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냥 만들어 놓고 ‘맘이 편하다’ 정도 수준 입니다. 정부나 공급자 위주 정책이죠. 수업 마치면 학교 안에서 방과후 활동하고 그 다음에는 부모가 올 때까지 지역아동센터에 맡긴다는 것인데 현실적으로는 좀 거친 표현일지는 몰라도 일종의 ‘방임’ 같습니다. 실제로 아이들의 만족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런 제도 속에 그냥 맡겨버리는 겁니다.

그 시간에 아이 혼자 둘 수 없으니까 그냥 시간 때우는 것이 되는 거고 실질적인 돌봄이나 교육이 안 되죠.
 

- 일선 학교의 선생님들이나 학부모들은 전일제 교육제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일반적으로 학교 선생님들은 ‘교육’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1,2,3학년은 교육뿐 아니라 보육도 필요합니다.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육이 제대로 되려면 학부모들의 마음이 편해야 합니다. 어떤 학부모들은 아침 일찍 출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방과후가 아니라 이른 아침 프로그램이 필요한거죠. 그래서 영국 같은 경우에는 조식클럽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학교에서 아침부터 책을 읽는다든가 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또 저녁에도 찾아갈 수 있는 곳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름을 지은 것이 ‘동네 이모집’입니다. 언제든지 필요할 때 찾아가거나 찾아올 수 있는 곳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여가부, 고용노동부, 교육부 등에 흩어져 있는 것을 이제는 ‘ONE STOP’으로 만들어야 하는 시점이라고 봅니다.

“방과후 수업, 방임에 그쳐…전일제교육 인식전환 이뤄져야”

- 비대위 최고위원을 맡고 계신데 당 지도부에 들어가 보니까 어떻습니까. 당이 비상 상황의 위기에 잘 대처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비대위원장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비대위가 출범한 지 이제 두 달 정도 지났는데 모두 각각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8월말정도 되면 성과가 나오겠죠. 그 성과라는 것이 결국은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고 그것에 국민들이 호응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정책 문제들에 대한 이해도와 준비가 탁월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출생 문제에 대해서도 누구보다도 문제의 심각성을 가장 잘 아시고 특위를 발족하도록 했습니다.
 

- 여당이 상임위원장 자리를 100% 독식하는 등 독주를 하고 있는데 제1야당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 거대 여당 앞에서 야당이 너무 무력한 것이 아니냐는 지지자들의 비판이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우리 당을 열렬히 지지하시는 분들은 더 답답하시겠죠. 그런데 방법은 두 가지인데요, 작년처럼 거리로 나가 투쟁을 하는 것인데 그 방법은 실패한 것으로 증명이 되지 않았습니까? 저도 작년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특히 부산에서는 새벽 5시에 버스 대절해서 서울에 왔다가 집에 가면 다음날 새벽 1시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성과도 없었고 저는 올 때마다 솔직히 허탈했습니다. .

그렇다면 어떻게 하느냐? 법대로 하는 겁니다. 법대로 투쟁하는 겁니다. 그것이 답답할 수는 있습니다. 속시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속시원하자고 뭘 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궁극적으로 우리는 정권 탈환을 해야 하잖아요. 그러려면 답답해 죽을 것 같아도 일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하지 않았던 일을 찾아 세미나든 토론회든 입법 활동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쌓이면 힘을 발휘하게 되고 상임위 활동을 하게 되고 거기서 성과를 내면 국민들이 ‘아, 일은 제대로 하고 있구나’ 하고 공감을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당의 성과는 일하는 모습, 정책으로 보여줄 것”

- 통합당의 열성 지지자들과 보수진영 일부에서는 최근 당내 보수 용어사용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면서 도대체 당의 정체성이 뭐냐, 여당에 끌려가며 보수를 포기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통합당이 보수 맞지요, 보수 맞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이 제시한 것을 보면 기본소득제를 검토해야 한다는 것인데 검토해야죠. 안하는 것이 위험한 것이죠. 검토한다고 바로 도입하는 것도 아니고 검토한다고 보수가 아닌 것도 아닙니다. 물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기회를 얻어야 하는 것이 공정한 것 맞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해 기회를 얻은 사람이 이 사회를 위해 나누면 되는 것이고 그것이 정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젊은이에게는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회조차 얻지 못한 젊은이들에게는 기본소득을 제공해줘야 하는데 사실 지금도 사실상 시행중 아닙니까. 기초수급이든 노령연금이든 그런 것 말입니다. 이런 것들을 통합해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에게는 일자리, 노인 장애인들에게 기본소득이 바람직한 것인데 그것을 이해 못하고 사회주의 정책 아니냐, 혹은 좌파정책 따라 하느냐고 힐난하시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이런 것을 논의하는 것 자체도 사실 보수의 가치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약자를 돌보는 것도 보수의 가치입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저 주는 것이 아니라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사람을 돌보는 것도 필요한 것입니다.
 

김미애 국회의원(우)과 김범수 미래한국 편집위원(좌)이 대담하고 있다.
김미애 국회의원(우)과 김범수 미래한국 편집위원(좌)이 대담하고 있다.

- 요즘 통합당에서 말하는 ‘약자와의 동행’ ‘나눔’ 이런 가치가 보수의 가치가 될 수 있을까요.

노블리스 오블리제 측면에서 보면 충분하게 보수의 가치로 볼 수 있다고 봅니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벌고, 세금 충실히 납부하고 그러면 격려받고, 그런 분들에게 감사해야 하고, 그런 사람들이 나눠야죠.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소외계층과 나눠야죠. 그것이 보수의 가치 아닌가요? 우리 보수가 나눠 주는 것에 대해 너무 백안시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 보수가 아직 ‘탄핵의 강’을 건너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국민들이 볼 때 통합당은 탄핵 당한 당이라는 시각이 있고 보수진영 내에서는 아직도 저 사람은 탄핵의 책임이 있다는 식의 낙인찍기가 만연합니다.

그런데 PK에서는 탄핵 문제가 별로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하태경 의원만 봐도 해운대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보수 어른들이 매일 비판 시위를 했어도 하 의원이 득표율 60%를 넘는 최다득표를 했으니까요. 돌이켜 보면 보수 내부의 말에만 너무 치중할 필요는 없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중도 외연 확장을 위해서 말이죠.
 

-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으로 정치권의 소용돌이가 예상됩니다. 특히 내년 4월 보궐선거가 엄청나게 중요한 선거로 치러질텐데 어떻게 보십니까?

보궐선거가 정말 중요하게 되었죠. 부산시장 보궐선거만 보더라도 저는 여기에서 바람을 일으키지 않으면 우리 당의 대선은 없다고 생각을 했어요. PK에서 좋은 사람이 나와 바람을 일으켜야 바로 대선으로 이어져 우리에게 승산이 있는데 만약 신선하지 않은 사람이 나온다면 별로 기대할 것이 없지 않겠나 생각했습니다.

그나물에 그밥이구나 하는 인식만 줄 테니까요. 이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까지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확실한 바람을 일으켜야죠. 보수의 가치를 제대로 구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 지금까지 언론에 나온 것으로만 본다면 박원순 시장의 사망은 결국 성추행 관련 ‘Me Too’ 사건으로 보이는데요.

위력에 의한 강제추행으로 봐야죠. 게다가 여성을 성착취의 수단으로 본 것이죠. 해당 여성은 몸과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입니다. 저도 고소장을 읽어 봤습니다. 그 밤에 그런 문자를 보냈다는 것이 보면 볼수록 혐오감을 갖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대권을 꿈꾸고 했다는 것 아닙니까? 자기가 말하는 여성과 비서는 다른 여성인가요? 그야말로 이중적이고 위선적이죠. 수시로 여성 인권을 말하면서 그때 여성과 지금 성추행을 당한 여성은 다른 여성입니까? 너무 충격적이죠.

그리고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죠. 그 여성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처벌을 받든지 해야죠. 살아 있어야 하는데 성적 수치심을 주고 그냥 가버리면 이 여성을 두 번 죽이는 꼴입니다. 한마디로 무책임의 전형이라고 보입니다. 2차 피해가 심각해질 것 같습니다.
 

“박원순 시장 유감, 무책임의 전형”

- 여공 출신 국회의원으로 요즘 정치권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어떤 과정으로 어떻게 정치인이 됐는지 소개를 해주세요.

여공 출신이 사실이고 그렇다고 스타도 아니죠. 저도 제 인생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정치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 완전 시골에서 바다, 들, 산에서 그냥 그렇게 자랐죠. 학원도 안다니고 그냥 아이들과 놀면서 자랐습니다. 그러다가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학교마저 못 다녔죠. 포항여고 한 달 정도 다녔을 겁니다.

그리고 부산에 가서 공장에 취직했죠. 17살 어린 나이에 너무 자존심 상하는 일도 많고 어렵고 해서 한동안 우울증에 빠졌어요. 사춘기잖아요. 그런데도 3교대 일하고 야간근무도 하고 하다가 너무 힘들어 1년 정도 일하다가 도망 나왔어요. 스스로 방직공장에서 봉제공장으로 찾아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나 몰라요. 그 속에서도 제 머릿속에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은 계속 있었어요. 그런데 현실은 따라주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할 수 있는 곳을 찾은 것이죠. 그리고 20대가 되면서 친구들하고 어울려 다니면서 놀기도 했죠.

다시 현실을 인식하고 돈을 차곡차곡 모으기 시작했어요. 500만 원, 1000만 원, 3000만 원 늘었죠. 그래서 15평짜리 실비 초밥집을 오픈했어요. 다른 것은 몰라도 청결과 서비스에 최선을 다했죠. 그러니까 손님들이 한 분 두 분 찾아와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그때 월수입이 한 200만 원 정도 됐어요. 90년대에 저한테는 정말 큰돈이죠. 그러다가 또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90년대 일반 식당은 자정을 넘어 영업을 하면 안 되던 때였거든요. 그때 제가 걸렸어요. 사실 좀 억울하죠. 저는 장사 마치고 청소하고 있었고 단골손님 한분이 식사하고 있던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단속반이 와서 불러주는 대로 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썼죠. 그랬더니 그것이 자술서가 된 겁니다. 한 달 영업정지 때리더라고요. 그 일을 겪으면서 또 제 자신이 바뀌었습니다. 9년간 떠나 있던 신앙도 회복하고 다시 공부해야겠다고 맘 먹은 겁니다.

28살에 수능 공부해서 대학 가고, 대학 가서는 너무나 행복하게 공부했습니다. 변호사 된 이후에는 늘 빚진 자의 맘으로 살았습니다. 대학 때 저한테 장학금 주고 숙식 제공해주고 해서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저로서는 처음 받아보는 혜택이었거든요. 공부만 열심히 했으면 됐으니까요.

이 고마움을 빨리 갚아야겠다고 생각하고 2005년 변호사 개업해서 학교에 1000만 원, 1000만 원씩 가난한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1억을 채웠습니다. 제 할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변호사 활동하면서도 사회에서 받은 혜택을 돌려주고자 소외계층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다보니 국선사건을 760건 넘게 했습니다. 특히 소년원은 수시로 다녔습니다. 그 소년들이 건강한 사회의 일원이 되게끔 하기 위해서죠.
 

“불우했던 어린 시절, 그래도 빚진 마음만 남아…”

- 그리고 미혼이면서 아이를 입양하셨지요.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까.

항상 막연하게나마 감사한 마음에 제가 결혼을 해도 아이를 입양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저한테 14살짜리 조카가 있는데 이 애가 19개월째일 때 형부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신 겁니다. 언니도 불안정하고 이 아기는 돌봐야 하고 또 내가 너무 사랑했던 조카라 제가 애를 키웠죠. 업고 우유 먹이고, 이 애가 예쁘게 자라니까 저는 너무나 행복했어요.

그래서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었죠. 그러다가 2011년 나도 마흔이 넘으면서 빨리 입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바로 신청했죠. 80일 된 우리 딸을 얻고 아이 중심으로 살았죠. 일은 좀 줄이고 말입니다. 칼퇴근도 하구요. 그러다가 작은언니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래서 11살짜리 조카애를 또 데려왔죠. 그 상황에서 애를 내버려 둘 수 없는 거예요.

내가 어렸을 때 어려움도 겪었잖아요. 내가 남을 위해 일을 한다고 하면서 내 조카를 안 돌본다면 그것은 우스운 일이잖아요. 그래서 지금 애들을 그렇게 키우고 있습니다.
 

- 작년 1월 당협위원장을 맡으면서 정치에 입문하고 이번 21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하신 건데 해보니까 어떻습니까?

불우청소년 문제, 미혼모 문제 등 소외계층의 어려움에 대해 제가 변호사하면서 칼럼도 쓰고 목소리를 내지만 사실 결과를 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제 국회의원이 되어 입법 발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좋습니다. 지금도 외롭고 힙듭니다.

저의 이런 간절한 마음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좋겠는데, 약자를 위한 동행이라는 것이 한두 번 간다고 동행이 아니거든요.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데, 아직도 여전히 고군분투해야 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죠. 그리고 정치판이라는 곳이 저처럼 순진하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현실을 깨달아 가는 것이 쉽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 어린 시절 공부를 하겠다는 꿈이 있었다면 지금의 꿈은 무엇입니까?

조금이라도 제가 하고자 했던 일을 제대로 해서 약자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이죠. 그리고 대한민국이 편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지금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도 불편합니다.

- 제대로 된 정치, 그리고 집권, 잘될 것 같습니까?

잘 해야죠. 그런데 쉽지 않지만 노력해서 가능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외치는 구호가 실제 우리의 행동으로 다 나타나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이 다 알거든요. 지금도 이 정권이 좌파들이 하는 짓이 이제 밑천들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이 실망하게 되는데 과연 우리는 당당할 수 있을까 하는 겁니다.

다시 한번 정권을 잡고, 이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대로 변해 가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말을 구호로만 그치지 않고 진짜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남이 볼 때 폼이 나든 안 나든 말이죠. 그리고나서 우리가 정권을 가져와야 국민들이 계속 박수를 보내고 좋아하고 유지가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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