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청년 외면 정치가 극단의 위기 부른다
[이슈분석] 청년 외면 정치가 극단의 위기 부른다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0.10.3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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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에 환호하는 이탈리아 청년정당, 오성운동(Five Star Movement) 지지자들.
승리에 환호하는 이탈리아 청년정당, 오성운동(Five Star Movement) 지지자들.

2018년 3월 4일 이탈리아 총선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40세 미만의 청년 당원들이 주축이 되어 ‘이탈리아 청년당’이라는 별칭을 가진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이 단일 정당 득표율 32.22%를 기록하며 이탈리아 최대 정당으로 도약했던 것. 2위를 차지한 민주당(득표율 18.9%)을 거의 더블 스코어로 따돌리는 기염마저 토했다.

9년 전 등장한 오성운동은 한마디로 변방의 시민운동단체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2013년 총선에서 창당 4년 만에 상원에서 23.8%, 하원에서 25.6%를 득표해 각기 54석과 109석씩을 차지함으로써 일약 제3당으로 뛰어올랐다.

당의 창건자는 베페 그릴로라는 코미디언 출신 시민사회운동가였다. 반부패, 반기득권, 시민참여 민주주의 등을 주창하며 설립된 오성운동의 대표는 31세의 루이지 디 마이오. 만 26세에 역대 최연소 하원 부의장으로 선출된 그는 지난해 9월 오성운동의 대표가 됐다. 이탈리아 정치에 세대 혁명이 발생한 것이다.

이탈리아 청년정당 오성운동이 급부상하던 시기에 스페인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급진적 좌파 포퓰리즘 정치세력 포데모스가 2015년 12월 스페인 총선거에서 21%를 득표해 총 350석 중 69석을 차지, 국민당과 사회노동당의 30여 년 양당 체제를 무너뜨리는 기염을 토했던 것.

포데모스 소셜미디어팀의 일원인 엠마 아버레즈(Emma Alvarez)는 “포데모스는 새로운 정치 플랫폼에서 개인이 직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며 “포데모스를 포함한 여러 사회운동들이 실제로 현 스페인 정치부패에 무기력함을 느껴왔던 청년들 또한 정치에 참여하게끔 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일어난 포퓰리즘 청년 정치세력의 부상은 그 배경에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에 대한 반발이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설이다. 제론토크라시란 ‘노인에게 유리한 정치체제’ 또는 ‘노인 정치’를 비판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이 문제를 연구한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는 2016년 자신의 논문에서 ‘노인정치가 작동하는 민주국가에서는 노년층은 과대 대표되고 청년층은 과소 대표된다’고 분석했다. 최태욱 교수의 분석에 의하면 노인정치가 가능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투표율 격차 때문이다.

흔히들 일본은 출산이나 보육 등의 가족복지보다 노인복지를 위한 지출에 열 배를 더 쓰는 이른바 ‘노인의 나라’라고들 하는데, 그렇게 된 핵심 원인은 청년층의 낮은 투표율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 역시 노인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한 나라라고 평가된다.

결국 청년세대들이 노인을 위한 정치 ‘제론토크라시’에 반기를 든 현상이 이탈리아의 오성운동과 스페인의 포데모스로 등장했다는 것. 실제로 ‘이탈리아에서의 노인정치는 정권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는 것이 최 교수의 분석이다.

1994년에서 2011년에 걸쳐 무려 세 번이나 총리직을 맡았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재집권할 때면 언제나 세금의 감면이나 철폐 혹은 노인연금의 수령액 인상 등을 공약으로 내걸곤 했다.

노인을 위한 정치의 위험성

문제를 일으켜 쫓겨났다가도, 노장년층의 환심을 살만한 정책들을 팔아 정권을 되사곤 했다는 이야기다. 세 차례에 걸친 베를루스코니의 집권 기간 동안 이탈리아의 국가부채는 매우 위험한 수위까지 불어났다. 2011년에는 그 규모가 2016년에는 GDP의 120%에 달하는 무려 1조9000억 유로(약 2375조 원)에 달할 정도였다.

하지만 나라 빚이 그렇게 눈덩이처럼 쌓여가는 중에도 수많은 노인들은 풍요로운 삶을 즐기고 있었다. 박종훈(2015: 52~53)의 보고에 의하면, 중산층 은퇴 노인들 가운데는 매월 300만~500만 원 정도의 연금을 받으며 노후를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탈리아 전체 실업률은 11% 정도였지만 청년실업률은 무려 37%였다. 의료 등 여타 노인복지의 수준도 대단한 것이어서 전체 복지지출 중 노인복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60%였다. 선진 복지국가인 스웨덴이나 핀란드의 노인복지 지출이 전체의 40%를 조금 넘는 것과 비교하면 지나친 것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최태욱 교수는 ‘이탈리아의 제론토크라시와 그 사회경제적 결과에 대한 청년들의 분노는 정치적으로 표출되었다’며 ‘청년들이 자신들을 대표할 수 있는 정당으로 모여든 것’이라 분석했다. 스페인의 청년세대 정치세력의 급부상도 같은 배경이었다.

청년들의 경제적, 사회적 불만은 정치적 운동력을 갖기 쉽다. 문제는 그 방향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기보다는 극단적인 이념을 동반한 포퓰리즘으로 흐르기 쉽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가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도 등장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청년정치를 안정적인 제도권에서 흡수하고 수용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2020년 윤혜영의 박사학위논문과 이후 보완된 논문에 의하면 유럽지역 국가들은 비교적 청년의원 비율이 높다. 반면 한국의 청년의원 비율은 OECD 국가들과 비교해서도 현저하게 낮다는 점이 드러난다. 2013년 기준으로 국제의원연맹의 자료를 토대로 분석해 보면 29개 회원국 중 해당 자료가 집계되지 않은 일본을 제외하고 28개 회원국 중 평균 연령이 가장 낮은 국가는 네덜란드(44.4세)이며, 가장 높은 국가는 미국(57세)이다.

OECD 주요 회원국의 평균 연령 역시 45세 이상이 27개국에 이를 정도로 의회 구성원의 연령이 낮지 않으며 한국은 OECD 국가에서도 평균 연령이 미국 다음으로 높다. 2019년 기준으로 최연소 의원의 연령이 ‘20대’인 국가는 오스트리아, 캐나다, 체코 등을 포함한 21개국이며 ‘30대’인 국가는 그리스, 일본, 한국이 포함된 3개국이다.

우리 의회에 젊은 세대가 더 많이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선거제도를 통해서겠지만 청년들이 지역구 공천을 받아 당선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때문에 선거제도 개선 논의의 한 축으로서는 청년의 정치후보 할당제 도입이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국제의원연맹에서도 최근 입법화된 청년 정치후보 할당제(Youth Quotas)를 권고하고 있다. 정부와 정당, 의회 차원에서 젊은 정치후보의 선출을 위한 더 낮은 연령 기준을 채택하는 방안과 함께 청년 정치후보 할당제의 확대가 그것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미래세대권리재단에서도 독일 연방의회의 노령화를 지적하면서 젊은 세대의 과소 대표에 대한 문제 인식을 바탕으로 의사결정기구에서 신인과 청년 할당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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