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당선인과의 전화통화가 있었다.
전화 통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이 함께 쓰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를 썼고, 바이든 당선인은‘북핵’이라는 용어를 썼다. 쓰는 용어만을 보아도 한미 양측의 입장 차를 명백히 알 수 있다.
현재 북한은 미국 대선과 관련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일각에서는 바이든이 대선 막바지 TV 토론에서 김정은을 ‘폭력배’(thug)라 칭했는데도 북한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이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물론 대단히 이례적이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동향은 이미 예견된 것이다.
김정은은 이미 지난 7월 10일 동생 김여정을 내세워‘트럼프 대통령과도 상대’하며 ‘그 이후 미국 정권, 나아가 미국 전체를 대상으로 상대’하겠다며 장편의 정책대안을 발표했다.
담화내용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는 앞으로의 북미협상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이 차기 바이든 행정부에 어떤 협상 전략으로 다가가려는가는 7월 10일 김여정의 담화내용통해 알수 있다.
차기 미 행정부에 대한 북한의 협상 전략은 한마디로 미소사이에 있었던 SALT, START식 핵군축 협상을 하자는 것이다.
김여정은 담화에서‘미국은 우리의 핵을 빼앗는데 머리를 굴리지 말고 우리의 핵이 자기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데로 머리를 굴려보는 것이 더 쉽고 유익할 것이다’고 했다. 쉽게 말해 북핵 자산 중 단거리와 중거리 핵미사일은 회담 의제에서 제외하고,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ICBM 감축 혹은 폐기를 위한 핵군축 협상을 하는 것이 미국에게‘쉽고 유익한 협상’이라는 것이다.
김여정은 한발 더 나아가 향후 협상에서 트럼프 행정부 때 했던 ‘비핵화조치 대 재제해제’ 주제를 버리고 ‘적대시철회 대 조미협상재개’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하노이 회담 때 트럼프가 제안했던 ‘영변핵시설폐기+@’를 북한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미국에도 맞지 않으니 이제는 절차상 쉽고, 시간적으로도 단기간 내에 과시적 성과를 볼 수 있는 실용적인 협상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앞으로 미북협상중심이 ‘제재해제’로부터 ‘적대시 철회중심’으로 이동한다면 북한은 그 숫자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ICBM을 폐기하거나 감축하는 조건’ 으로 ‘한미연합훈련중지와 핵추진항공모함, 전략폭격기와 같은 미전략자산의 한반도 반입 중지’ 등을 요구할 것이다.
만일 미북사이에 이러한 협상이 시작된다면 이것이야 말로 상대방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부분적인 핵 위협을 줄여나가는 미소사이의 SALT, START식 협상의 시작일 것이고, 과거 미소관계처럼 미북관계가‘핵 공존’,‘핵 있는 평화’로 가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바이든 행정부가 핵 신고가 없는 이런 북한의 협상안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럼 북한은 가능성도 없어 보이는 핵군축 협상카드를 왜 다시 꺼내는 것일까? 북한은 오랫동안 바이든 당선인의 과거 행적을 지켜보았다. 바이든은 1979년 미국과 소련의 핵 경쟁에 실질적 제동을 건 SALT2(제2차 전략무기제한협정) 협상 때 지미 카터 대통령을 적극 설득하였고 안드레이 그로미코 러시아 외무장관과 직접 담판한 주인공이다.
즉 바이든은 상원 외교위원장을 2번이나 역임한 외교협상전문가로서 미소 핵군축협상에 기여한 군축협상 전문가라고 평가될 수 있다. 그러므로 북한이 핵군축에 자신있고 일가견 있는 바이든의 심리를 한번 자극해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북한이 핵군축 카드를 꺼내든 것은 바이든 캠프의 외교안보라인 구성과도 무관치 않다. 바이든 외교안보라인은 북핵문제에 대해 ‘처음부터 완전한 비핵화 협상을 주장하는 진영’ 과 ‘핵동결과 핵감축으로 넘어가는 비확산 우선 추진 진영’으로 나눠져 있다고 한다.
앞으로 정책설계과정에서 어느 진영이 우위를 차지해 갈지는 알 수 없다. 지금 미국의 대북협상가들은 아무런 결과물도 만들어 내지 못한 수 십년의 미북협상에 지쳐 있어 이제는 무엇이라도 해서 성과를 내보자고 할 수도 있다.
북한의 7월 10일 핵군축 협상 제안에 대해 바이든 캠프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도 여러 가지 협상 가능성에대해 열어 놓고 보자는 내부 사정과도 관련 있다 생각한다. 현재 대부분의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이 역대 미국 대선 이후 ‘정책리뷰기간’에 향후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신형 무기실험 등 도발 패턴을 보였으므로, 이번에도 지난 열병식 때 공개한 화려한 무기들로 도발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7월 10일 김여정 담화는 ‘그저 우리를 다치지만 말고 건드리지 않으면 모든 것이 편하게 흘러갈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4차례, 트럼프 대통령을 3차례나 만난 김정은도 이제는 정상회담의 쓰고 단 맛을 다 보았을 것이고 지난 시기처럼 경솔하게 나올 것 같지는 않다. 북한이 7월 10일 입장을 견지한다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윤곽이 잡힐 때까지는 지켜볼 가능성이 크다.
다만 여기에 한가지 변수가 있다. 내년 초 ‘키리졸브’ 한미연합훈련 재개 여부이다.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 주요 추진 방향인 ‘한미연합훈련 중지’ 기조는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북한이 바이든의 대북정책을 판단하는 리트머스지는 내년 상반기 진행될 수 있는 ‘한미연합훈련’이다.
트럼프의 대북정책을 실패로 규정한 바이든이 취임하자마자 ‘한미연합훈련 재개’라는 강경 입장을 펼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어제 바이든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말한 Linchpin이‘한미연합훈련’을 필수적으로 포함한 것인지 아닌지는 눈여겨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나는 차기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이 파놓은 미끼인 SALT, START 식 핵군축 협상에 유혹되지 말고, 장기적이라도 핵신고와 검증원칙 합의하에서 포괄적 핵합의를 먼저 한 후 단계적 이행으로 가는 FM 방식의 정석적인 비핵화 과정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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