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2.5단계로 강화했다. 작년 말 처음 발생한 무렵에는 바다 건너 이웃 나라의 걱정스러운 사건으로만 여겨지던 일이었지만 1년 남짓 지난 지금 우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가 마비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마스크를 써야 사회생활이 가능하고 연말연시 가족이나 지인들과의 모임은 음성이나 문자, 영상으로 대체해야 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감염병 대유행이 간혹 영화의 주제가 되기는 했지만 실제 우리가 거의 1년이 다 되도록 이렇게 갑갑한 생활을 살아가야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학교에 가고, 출근을 하고, 운동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상을 그리워하게 될 줄은 꿈에도 떠올리지 않았다. 식당이나 카페, 노래방, 헬스클럽, 학원… 우리 자신의 안위를 위해 유지했던 직장이라는 터전조차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게 되었으며 결국 일부 시설들은 전면적으로 혹은 제한적으로 영업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코로나가 처음 우리 사회에 출몰했을 때 우리는 바이러스 그 자체가 무서웠다.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증으로 인해 열이 나고, 근육통이 발생하며, 후각이나 미각을 마비시키고, 숨을 쉬기 어렵고, 중증 환자들에서는 생명이 위협받는다는 뉴스로 인해, 바이러스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 방역을 강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국민들은 받아들였다. 접촉을 줄이고 거리를 유지하고, 위생을 강화하면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로워지리라 믿었다. 그러나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찾아오면서 감염 전문가들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고, 출처가 어디인지 모르는 바이러스가 그냥 우리 주변에 도사리고 있다가 부지불식간에 환자가 되어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정말 거리두기를 지속하면 감염자가 줄어들 것인지, 언제까지 이렇게 개개인의 욕구를 제약하는 방법에만 매달릴 것인지 지쳐가기 시작했다. 매번 반복되는 ‘2주간의 강화’가 수십 차례 반복되면서 어느새 방역 당국의 호소는 양치기 소년의 메아리처럼 힘을 잃었다.
방역을 위한 제약을 지금 당장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보건 당국의 호소에 따라 우선은 연말까지 각종 모임을 자제하는 것은 적절하며 따라야 하는 지침임은 분명하다. 다만 우리 시민들의 정서적 인내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경고를 하는 것이다.
개인의 욕구를 절제하라는 요구에 순종적이기만 했다면 인류의 삶은 유지될 수는 있었겠지만 전제적이고 획일화되어 현재 우리가 누리는 자유로운 세상으로 발전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결코 동일하지 않은 개개인이 모인 집합체가 우리가 사는 사회인 것이다.
우울증 유발하는 불안한 사회
어떤 사람은 조금 더 인내심이 많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우선적인 가치 기준일 수 있지만, 또 어떤 사람은 답답한 세상을 견디기 어려워할 수도 있고, 일부에게는 세상이 옥죄는 것 같은 요즘의 분위기가 숨이 막힐 듯이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러한 모습들이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을 통해 확인해 보면 불안, 공포, 불면, 짜증, 분노 그리고 우울증으로 나타난다. 최근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편견이 낮아진 영향도 있겠지만 어찌 되었든 정신과적인 문제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최근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신용욱 교수와 예방의학과 조민우 교수팀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약 100만 명 이상의 진료 빅데이터를 활용해 표본 코호트 자료를 분석한 결과가 여러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요약하면 우리나라 국민 100명 중 5명 이상은 우울증을 가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였으며 지난 10여 년간(2002∼2013) 우울증 유병률은 2.8%에서 5.3%로 2배 증가했다는 것이었다.
이는 2017년 발표된 정신질환 실태조사와 그 숫자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는 결과이지만, 당시에는 약 5100명의 응답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표본조사였다면 이번 연구는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전국의 각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환자들 중 연령과 상관없이 무작위로 101만여 명의 임상 데이터를 추출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표본 코호트 자료를 활용해 국내 우울증 유병률, 우울증과 자살의 상관관계 등을 분석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해당 논문의 내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면 남성의 약 3.9%, 여성의 약 6.8%가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여성이 우울증 위험이 더 큰 것으로 분석되었다.
연령이 높을수록 우울증 환자의 비율도 증가했는데 20, 30대의 약 2.7%가 우울증이 있었던 반면 40, 50대는 약 5.7%, 60, 70대는 약 13.9%, 80대 이상은 약 18.4%가 우울증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 연구에서 우울증이 자살률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번 연구를 통해 우울증 환자들의 경우 자살 위험이 약 4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물론 코로나 이전의 사회 현상에 대한 분석이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이러한 상황은 보다 악화되었을 것이다.
우울증이 이렇게 증가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단순하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정신건강의학과의원이 동네에 증가했다거나, 정신과 의사가 많이 배출되었다거나 하는 공급적인 측면으로만 그 원인을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가 상당히 불안정해지고 예상치 못했던 사건과 사고들이 이어졌다. 최근 10년만을 돌아봐도 지하철사고, 가습기세정제 사건, 세월호, 대형화재, 지진 등이 거의 매년 발생했으며 이러한 재난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이 받았던 심리적 충격이 상당했다.
청년의 실업률은 이미 고착화되었고 결혼과 양육에 대한 부담감은 출산율의 저하를 야기했다. 그외에도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와 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의 괴리감, 경제적 불평등의 악화 및 이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등 우울증이 만연할 만한 다양한 문제점들이 우리 사회에는 산적해 있다. 미래가 더 이상 희망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은 사회와 그 구성원들을 무기력하게 한다. 무망감(無望感, hoplessness)과 무원감(無援感, helple ssness)은 우울증 발병의 가장 핵심적인 기전이다.
결국 코로나는 팬데믹 상황에 있고, 우리 사회는 해결이 용이하지 않은 사회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게임체인저는 아직 우리 손에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그 현실을 원망하고 있을 수는 없다. 이는 사회의 우울증에서만이 아니라 개인 차원의 우울증에서도 동일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거나,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봤거나,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했거나 하는 경우 우울증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러한 현실에서 넋을 놓고 가만히 있으면 우울감은 악화되고 결국 일상생활이 중단되거나 사회적 관계를 포기하고 심지어 생명을 단념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하지만 치료가 시작되고 수주가 지나면 대부분의 우울증 환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본연의 자리로 복귀한다.
떠나간 사람이 돌아오거나 금전적 손실이 회복되거나 하지 않았더라도 그러하다. 정신과 의사들은 치료를 통해 환자들에게 현실을 바꾸지는 못해도, 현실에 맞설 용기는 북돋워줄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항우울제는 뇌에서 세로토닌의 활성을 증가시키고 지친 신경세포에서 잘 활용될 수 있도록 돕는 작용을 하여 우리의 뇌가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우며 정신과적 상담을 통해 실제 현명한 사회 적응을 이끌어낸다.
요즈음 심리적 방역이라는 용어를 흔히 사용한다. 국립트라우마센터 및 서울시 COVID-19 심리지원단에서는 감염병 팬데믹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관리함으로써 정신위생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권고하는 지침을 발표한 바 있다. 불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혐오를 피하고, 나의 감정과 몸의 변화를 느끼며, 지인들과 비대면 접촉은 유지하고, 가치 있고 긍정적인 활동을 유지하라는 등등의 권고이다.
약간은 막연하다는 그리고 팬데믹 초기와 달라진 최근의 사회적 인식이 제대로 반영되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누구나 쉽게 마음먹고 실천할 수 있는 덕목이다. 안 그래도 다들 민감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현실에서 자신과 다른 사람의 지치고 힘든 감정을 이해하고, 소외감을 해소하며, 팬데믹은 우리 사회가 함께 극복해 나가야 하는 현상임을 공감하면 머지않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공동체의 노력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이미 우울한 세대이다. 다양하고 복잡한 이유로 우울감이 팽배해져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시대인 것이다. 우리가 우울하지 않다고 부정하는 것이 극복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상황을 인식하고, 공감하고, 위로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치료가 필요하면 권고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직도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으면 보험 가입이 안 되거나, 보험 지불에 제약이 있거나 하는 경우가 있으며, 이를 이유로 정신건강의학과 방문을 꺼려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우울증을 단순한 의지의 부족으로 여기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면 헤어날 수 있는 문제로 치부하거나, 치료를 받겠다는 환자를 나약하거나 수치스러운 사람으로 간주하는 가족도 여전히 있다. 그래서 가족과의 이해와 대화가 절실히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정신과 방문을 숨기는 사례도 존재한다.
우울증은 숨긴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표현하고 대화하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아들임으로써 벗어날 수 있는 질환이다. 몰이해와 편견, 배제와 차별은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이는 개인의 우울증에서는 명확하다. 어쩌면 우리 세대가 겪는 사회의 우울증도 비슷한지 모르겠다. 상호 인정과 이해와 용서와 양보가 너무 늦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조근호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중앙대 의학박사
전 국립정신건강센터 성인정신과장 및 정신건강사업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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