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온라인에서는 중국의 ‘김치공정’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김치공정은 중국 정책을 홍보하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공산당 중앙기관과 선전매체까지 끼어들어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 1월 9일 ‘리츠치’라는 중국 유튜버가 영상 하나를 공개했다. ‘라이프 시리즈 마지막 에피소드: 배추의 삶’이라는 14분짜리 영상이었다. 리츠치는 영상에서 직접 재배한 무와 배추를 수확한 뒤 소금에 절인다. 염장을 한 배추를 다시 꺼내서는 고춧가루가 잔뜩 들어간 양념으로 김치를 만든다. 이어 이미 장독에 놓아두었던 김치를 꺼내 비계가 섞인 돼지고기와 함께 찌개 요리를 만든다. 영락없는 김장과 김치찌개 만들기 영상이다. 리즈치는 여기에 ‘중국 전통요리’ ‘중국음식’이라는 해시태그를 붙였다. 김치가 쓰촨성의 채소절임인 ‘파오차이(泡菜·발효하지 않은 중국식 반찬)’의 일종이라는 주장이었다.
영상은 공개한 지 하루 만에 수백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유튜브 구독자가 1400만 명을 넘는 리츠치에게는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상은 곧 중국의 김치공정을 상징하는 영상이 됐다. 리츠치는 중국 쓰촨성의 농촌에 거주하는 일반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은 공산당의 정책을 선전하는 요원이라는 의심을 받는다. 중국 공산당은 구글이나 트위터, 페이스북뿐만 아니라 유튜브도 자국 내에서는 서비스를 금지하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 1400만 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가 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치공정’ 논란이 본격화된 ‘리츠치’의 유튜브
리츠치의 영상이 공개된 뒤 한국 네티즌들은 이를 공산당의 김치공정의 일환으로 여기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국 관영매체들이 김치공정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고, 올 초부터는 중국 공산당이 직접 김치공정을 하는 가운데 리츠치의 영상이 떴다는 이유에서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노출된 리츠치 영상을 본 한국 네티즌들은 흥분했다. 리츠치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거세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중국인들이 한국을 비난하고 나섰다.
중국인들은 “파오차이는 쓰촨성 전통음식이다. 쓰촨 사람들이 파오차이를 요리해 먹을 때 한국에는 김치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한국을 비난했다. 어떤 중국인들은 “중국의 파오차이 요리법은 매우 다양하다. 무식한 한국인들이 모르면서 리츠치를 비난한다”고 주장했고 어떤 중국인은 “또 한국이냐, 이젠 지긋지긋하다” “나라가 작으니 속도 좁다”며 한국을 조롱했다.
리츠치에 앞서 지난 1월 3일 장쥔 유엔 주재 중국대사가 트위터에 김장하는 사진을 올렸다. 위생 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두른 장쥔 대사는 김치통을 앞에 두고 갓 담근 김치를 들어서는 엄지를 드는 사진을 올렸다. 그러면서 “겨울 생활도 다채롭고 즐거울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직접 담근 김치를 먹어보는 것”이라며 “별로 어렵지 않다. 동료들도 정말 맛있다고 했다”는 글을 달았다.
여기서 장쥔 대사는 김치(kimchi)라고 적었다. 이는 얼핏 그가 한국 음식인 김치를 정말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내 일각에서는 중국 관영매체들이 한창 김치공정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중국 대사가 한국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트위터에 올린 게 석연치 않다고 지적했다. 우려는 사실이 됐다.
지난 1월 13일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법률위원회(이하 정법위)는 위챗 공식계정에 “유튜버 리츠치가 김치를 담근 영상 때문에 한국인들의 집중비난을 받고 있다”며 “김치를 처음 만든 중국은 (한국인의 공격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정법위는 공안과 무장경찰, 검찰과 법원을 총괄 감독하는 공산당 중앙기관이다.
정법위는 이어 “한국은 김치 수입량의 99%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자기네 언론조차 ‘우리가 김치 종주국이냐’고 외칠 정도”라며 “(한국이 김치를 놓고 중국과) 사사건건 다투며 불안감을 보이는 것은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치는 5000년 중국의 찬란한 문화 가운데 ‘구우일모(九牛一毛·아홉 마리 소의 털 한 가닥)’에 불과하다”면서 “한국이 김치와 곶감, 단오절의 유래를 놓고 한국 전통이라고 우기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불신 때문에 생긴 불안감 탓”이라며 “자신감이 없으면 의심이 많아지고 갖가지 피해망상에 빠지게 된다”고 한국을 폄하했다.
정법위는 또한 지난 1월 1일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이 최근 김치공정 관련 질문을 받고서는 “그런 논쟁이 있었느냐? 나는 잘 모르겠다”며 웃고 넘긴 것을 두고 “화 대변인의 담담한 태도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면서 “우리가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은 바로 대국으로서의 진정한 문화적 자신감과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자화자찬 했다.
파오차이 ISO 인증 받은 지난해 11월부터 김치공정 본격 개시
이어 “무언가를 처음 발명했다는 것은 출발선상에서 이겼음을 의미하지만 결코 영원히 앞서나간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발명품을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런 문화유산 그 자체와 수많은 최초를 창조하기 위한 중국의 혁신정신을 보호해야 한다”고 정법위는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화민족 안의 창조정신으로 위대한 부흥을 실현해야 한다”고 선동했다.
보다 역겨운 주장도 전해졌다. 중국 랴오닝성 라디오 아나운서 ‘주샤’는 지난 1월 13일 웨이보에 김치공정과 관련한 1분 34초짜리 영상을 올렸다. 그는 “최근 중국 유튜버가 파오차이를 담그는 영상을 두고 한국에서 논란이 일었다”며 “같은 음식이라도 나라가 다르면 의미도 달라진다”고 주장했다. 리츠치의 영상과 이를 비난한 한국 네티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후 이어진 말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폄하와 조롱이었다.
주샤는 “중국에서 김치라는 것은 조선족이라는 한 소수민족의 전통음식에 불과하다”며 “중국 동북지역에서는 잔칫상에 파오차이가 올라오면 손님들이 그냥 가버릴 수도 있다. 파오차이 같은 하찮은 음식이나 주며 푸대접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찮다”는 그의 말은 중국식 파오차이가 아니라 ‘조선족의 파오차이’, 즉 김치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주샤는 이어 “중국은 전통 음식이 많기 때문에 파오차이 하나를 위해 따로 냉장고를 갖추는 것도 불필요하다”며 한국의 김치냉장고 문화를 비웃었다.
그는 계속 비웃는 표정으로 “소국(한국)이 이웃 대국(중국)에 무례하게 굴다가는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며 “(한국인들은) 무식하다. 모르면 책 좀 읽어라”는 막말을 해댔다. 한비자가 군주가 저지르면 안 될 10가지 과오를 설명한 ‘십과(十過)’ 가운데 열 번째 “나라가 작은데도 다른 나라에 무례하고 간언하는 신하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빗대 “한국도 중국에 무례하게 굴면 망할 것”이라고 협박한 셈이다.
사실 중국이 김치공정을 벌여온 것은 꽤나 오래 전부터다. 하지만 최근처럼 노골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부터다. 당시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쓰촨성의 전통음식 파오차이가 국제표준화기구로부터 ISO 24220을 얻었다”면서 “이로써 이제부터는 중국 김치가 세계 김치 시장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됐다”고 주장했다. 환구시보의 주장은 자매지 글로벌 타임스를 비롯해 중국 관영매체 전반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내 언론들이 팩트체크를 해본 결과 환구시보의 주장은 오보 정도가 아니라 왜곡 보도였다. 당초 쓰촨성 파오차이가 ISO 24220을 얻은 것을 전한 중국시장감관보는 “이번에 ISO 인증을 받았으니 중국 파오차이도 세계 시장에서 인지도를 올릴 수 있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을 환구시보는 ‘한국 김치의 굴욕’이라는 제목을 달아 “중국 파오차이가 한국 김치를 제쳤다”는 식으로 왜곡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중국 공산당 매체들이 너도나도 받아 보도한 것이었다.
중국의 왜곡된 주장이 전해지자 국제표준화기구가 상황 수습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1일 국제표준화기구의 산드린 트란차드 홍보담당자는 “ISO 24220은 중국 파오차이에 대한 것으로, 해당 인증은 김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확인해 왔다고 한국경제신문이 보도했다. 트란차드 씨는 이어 “새로운 표준을 만들 때는 소비자협회, 학회, 비정부기구, 정부기구 등으로 구성된 기술위원회에서 결정하며 모든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고려한다”며 “파오차이 표준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으며 이는 김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영국 BBC도 나서 “중국 관영매체의 김치 주장은 오보”라고 지적했다. 방송은 ‘파오차이’와 ‘김치’는 엄연히 다른 음식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ISO 인증서를 보면 중국 음식은 ‘Paocai’로 표기돼 있고 “해당 식품규격은 김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반면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는 2001년 한국 김치를 국제표준이라고 인정했다.
중국의 이런 억지는 한복, 태권도, 단오, 설날 등 한국 전통문화가 모두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게 실은 중국의 동북공정 계획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전통무술 쿵푸가 MMA 나 UFC 등 종합격투기에 참패를 당하는 반면 태권도 선수 출신의 종합격투기 선수들이 승승장구하자 중국 내에서는 태권도 배우기 열풍이 일었다. 특히 태권도 도장은 수련생에게 예절과 도덕, 공정함 등을 강조하면서 중국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러자 지난해부터 “태권도의 유래는 중국”이라는 이상한 주장이 유튜브와 SNS 등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시작은 영국이었다. 영국에서 제작된 ‘러프 가이드 투 코리아’라는 여행 안내서를 보면 “한국 태권도의 유래는 중국”이라며 “그 원류는 당나라에서 건너온 것”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해당 가이드북의 내용 자체가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음에도 중국 관영매체는 이를 인용해 “태권도 종주국은 중국”이라는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이 문제는 올들어서는 ‘반크’ 등 국내 단체들도 강력히 문제를 제기했다.
‘한복공정’도 지난해 우리 사회를 들끓게 했다. 지난해 중국 드라마에서 한복, 갓, 망건 등을 착용한 모습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어 “한복은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애초 명나라의 복식이 한국에 전해진 것”이라는 주장이 중국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에는 중국 게임업체가 한복을 중국 전통 복장이라고 우기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사실 이 한복공정이 시작된 계기는 상당히 유치하다.
중국 공산당은 중화주의를 선전하면서 중국 전통 복장으로 ‘한푸’를 적극 홍보했다. 한푸란 한나라에서부터 중국 고위층이 입던 전통 복장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정작 중국인들이 한푸를 한국의 한복에서 온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2019년 국내에서 방영을 한 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보급된 좀비 드라마 ‘킹덤’은 큰 화제가 됐다.
중국, 김치뿐만 아니라 태권도, 한복도 이미 ‘공정’ 개시
특히 서양 사람들은 한복 가운데 도포와 갓, 망건 등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 때문에 아마존에서는 갓이 팔리기도 했다. 이런 킹덤의 인기는 중국에도 전해졌다.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으로 전통 문화가 모두 사라져 중국 전통 복장을 알 수 없는 중국인들에게 한푸는 그저 한복의 짝퉁으로 여겨졌다. 이를 역전해 보려 중국 관영 미디어들이 나서 한복이 한푸의 일종처럼 보이도록 하는 드라마를 제작한 것이었다. 중국은 심지어 “일본 기모노도 중국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전통문화 뺏기는 실은 2005년 전후로 시작됐다는 평가가 많다. 2003년을 전후로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가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했던 ‘동북공정’은 모든 한국인의 분노를 자아냈다. 한국인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힌 중국 공산당은 새로운 방식으로 ‘공정’을 벌이게 된다.
하나는 역사 왜곡, 다른 하나는 문화적 침략이었다. 먼저 역사는 유럽과 미국 등 동아시아에 대해 잘 모르는 나라의 학술단체나 출판사 등에 막대한 자금을 후원해 한반도 역사를 왜곡해서 전파하는 것이다. 그 결과 앞서 언급한 ‘러프 가이드 투 코리아’와 같은 역사 왜곡 서적이 유럽에 퍼지게 됐다.
다른 하나는 태권도, 한복, 김치, 단오, 온돌 등 스키타이족에서 유래, 고구려와 백제, 신라를 거쳐 한국 전통의 것이 된 문화들을 중국에서 유래했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었다. 실제 태권도 중국 유래설은 2007년과 2012년에도 논란이 된 적이 있고 김치 중국 기원설은 10년 전 국내 좌익매체에서 주장한 바 있다.
2005년 강릉 단오절 행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을 때는 중국 당국이 “우리 전통문화를 뺏아갔다”고 난리를 피우기도 했다. 강릉 단오절의 경우 일반적인 단오 행사와 다르기 때문에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는 점은 알아보지도 않았던 것으로 후에 알려졌다.
이처럼 중국이 한국 전통문화양식이 세계에 알려질 때마다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우기는 논리는 이렇다. “한국이 만든 전통 A, 한국은 과거 중국의 속국이고 한국인은 중국이 만들었다. 따라서 모든 A는 중국의 문화”라는 식이다. 이는 사실 2050년까지 동아시아를 장악하는 패자가 되겠다는 중국 공산당의 장기 전략에 따른 것이다.
한국 전통 문화는 모두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을 펴 한반도를 문화적으로 복속시키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7년 4월 트럼프 미 대통령을 만나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고 떠들어 댔던 것도 이런 ‘공정’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중국이 이런 억지를 부리기 위해서는 한국 스스로가 전통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빈틈’이 필요하다. 김치의 경우에 그런 부분이 있었던 것이 드러났다. 민간단체 ‘반크’는 지난 1월 11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양우)가 지난해 7월 발표한 훈령 제427호를 개정해 달라”고 국립국어원과 한국관광공사 등에 요청했다. 해당 훈령에 “중국에서 이미 널리 쓰이는 음식명의 관용적 표기는 그대로 인정한다”며 그 예로 ‘김치찌개’를 ‘파오차이탕’이라고 번역해 놨다. 중국에는 찍소리도 못하는 한국 정부가 이런 식으로 중국 공산당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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