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리뷰] 국회, 입법만능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자
[입법리뷰] 국회, 입법만능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자
  • 유상범 국민의힘 국회의원·미래한국 자문위원
  • 승인 2021.04.0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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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국회에서 ‘정인이법’(아동학대 살해죄를 신설하는 아동학대범죄처벌특례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정인이는 입양 후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숨진 여자아이의 이름이다. 이 사건의 언론 보도 이후 커다란 충격을 받은 국민들은 정인이의 묘소를 찾아 애도하고 SNS에서도 “정인아 미안해”라는 말로 함께 슬픔을 나눴다. 직접 경찰서와 법원을 찾아 학대 양부모에게 강한 처벌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렇게 엄청난 국민적 공분이 일어나자 정치권도 앞다퉈 수십 개의 개정안을 쏟아내고 논의가 시작된 지 단 3일만에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저마다 이를 성과로 내세웠다. 

대표적인 졸속 과잉 입법인 임대차보호법이 야당의 퇴장 속에 여당 단독으로 2020년 7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대표적인 졸속 과잉 입법인 임대차보호법이 야당의 퇴장 속에 여당 단독으로 2020년 7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런데 정작 전문가들이 정인이법의 통과를 반기지 않았다. 지난 10년간 장애인·여성·아동의 인권 피해 소송을 전담해온 김예원 변호사는 “정인이법은 정인이를 위한 법이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정인이법으로 도입된 형량 강화와 피해 아동 즉시 분리 조항 등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사 개정안 37개 중 35개는 졸속이라는 평가도 덧붙였다. 정인이법은 결국 통과된 지 한 달 만인 지난 2월 국회에서 다시 개정이 논의됐다.


정인이법 사례는 우리나라 입법 현실의 문제점을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뒷북’과 ‘졸속’과 ‘보여주기’의 삼박자가 모두 갖춰져 있다. 국회에서는 사건과 사고 예방을 위해 필요한 논의들이 미뤄지고 있다가, 문제가 터지고 나면 뒤늦게 여론에 떠밀려 관련 입법을 졸속으로 처리하는 현상이 반복된다. 요컨대, 우리의 입법은 빨라야 할 때 정작 늦었고, 숙고해야 할 때 빨랐다.


이러한 문제점의 원인은 무엇일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일 안하는 국회’라는 진단이다. 이는 입법부 공직자의 개별적인 의지와 역량에 초점을 맞춘 원인 분석이다. 그러나 역대 국회의 구성원이 지속적으로 바뀌고 있음에도 이 문제가 크게 개선되지 못했으므로 졸속 입법이라는 결과에 대해 충분 조건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일 수 있다.

입법과잉의 시대, 규제입법은 하책(下策) 중의 하책

졸속입법의 구조적 원인은 주로 ‘입법과잉(立法過剩)’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말 그대로 국회가 발의하는 법안이 너무나 많아 졸속입법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국회에서의 입법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사회도 더 바람직한 모습을 갖출 것인가? 언제부터인가 입법을 ‘질(質) 보다 양(量)’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생겼다.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법안 발의 건수로 평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기존에 있던 법에서 한자어를 우리말로 순화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몇 가지 자구(字句)만 바꾸는 법안을 다량으로 발의해 법안 건수를 늘리는 경우도 왕왕 있다. 물론 이것은 결국 개정되어야 할 것이 개정된 것이므로 큰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과잉입법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아직 우리 사회의 소수에 불과하다. 입법은 국가가 법규범을 정립하는 것이다. 법규범은 기본적으로 “~ 해야 한다”는 형식으로 규제의 성격을 지닌다. 규제는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결국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부담을 지우게 된다.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의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20대 국회 규제법안은 3924건(약 16%)이었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는 더 빠른 증가 속도를 보이고 있다. 개원 1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벌써 1300여 건 이상(20대 국회의 33%에 해당함)의 규제법안이 나왔다. 이대로라면 21대 국회 종료 시점에는 6200여 건의 규제입법이 탄생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게 된다.


규제입법은 하책(下策) 중의 하책이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보다 손쉽게 규제를 선택하고 단순히 양형이나 처벌수위를 높이는 방식을 선호하는 것이다. 


지난 해 여당이 통과시킨 이른바 ‘5·18 역사왜곡 처벌법’이 대표적이다. 이 법은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하여 왜곡하거나 비방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이 법의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을 하지만 입법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특정 사실의 악의적인 왜곡 우려에도 불구하고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헌법적 가치이다. 사회적으로 보다 소중한 가치가 침해받을 수 있으므로 이러한 문제는 국가 형사처벌의 테두리에 넣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자정 작용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형평성의 문제도 있다. 만일 종북세력이 6·25전쟁을 ‘남한이 미제국주의자의 사주를 받아 북한에 선제 공격을 개시한 침략 전쟁’으로 왜곡한다고 했을 때 이를 처벌할 것인가? 게다가 민주당은 과거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했으니 이는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입법이다. 


입법과잉의 또 다른 문제점은 충분한 법안 검토 시간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검토 시간의 부족은 입법의 질적 저하를 야기한다. 지난 20대 국회(2016~2020년)를 기준으로 발의된 법안은 총 2만4141건이다. 하루 평균 66건이 발의되는 셈이다. 국회의원 1인당 검토해야 할 법안의 수도 80.5건에 이른다. 


이는 세계 주요 국가의 평균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이다. 예컨대 미국은 국회의원 1인당 40.6건을 검토해 우리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하다. 영국의 경우 1인당 0.9건을 검토해 우리의 80분의 1밖에 되지 않고, 프랑스는 3.5건으로 우리의 20분의 1, 독일은 1.2건으로 우리의 60분의 1, 그리고 일본도 1.3건으로 우리의 60분의 1 수준에 그칠 뿐이다.


어느 순간부터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정치적, 정책적, 또는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안들까지도 모두 입법을 통해 해결하려는 풍토가 만들어졌다. 무엇이든 법으로 정하기만 하면 되니 상대적으로 더 빠르고, 더 손쉬워 보이기 때문이다. 입법만능주의에 빠진 것이다. 

알렉시스 토크빌은 "민주주의에서 가장 위험한 내부의 적은 다수의 횡포"라고 우려했다. 사진은 의사봉을 두드리는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알렉시스 토크빌은 "민주주의에서 가장 위험한 내부의 적은 다수의 횡포"라고 우려했다. 사진은 의사봉을 두드리는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문제 해결을 위한 입법만능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이번 정권에 와서는 특히 더 심해졌다. 민주화운동의 역사왜곡이 있으면 안 되니 법에 형사처벌 조항을 만들면 되고, 검찰 수사에서 잘못이 있었으니 검찰의 수사권을 폐지하면 된다는 식이다. 기존 질서나 체계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 없이 압도적인 의석수를 이용해 마구잡이로 입법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그들은 미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알렉시스 토크빌이 “민주주의에서 가장 위험한 내부의 적은 다수의 횡포”라고 우려했던 사실을 과연 알고는 있는가. 현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1대 국회를 원구성 시점부터 지금까지 내내 일방적으로 운영해왔다. 공수처법 통과, 야당의 거부권을 삭제한 공수처법 개정안 통과, 검·경 수사권 조정, 판사 탄핵, 각종 추경안 통과까지 입법권을 정치적 보신과 선거 승리의 수단으로 남용하는 여당을 두고 언론은 ‘독주’를 넘어 ‘폭주’라고까지 비판했다. 


다수의 일방성이 지배하는 국회와 입법권의 무제한적 행사가 결합한 민주제는 겨우 형태만 갖추고 있는 형식적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게다가 입법형성의 자유는 무한하지 않고, 또한 무한한 자유가 바람직하지도 않다. 입법권은 헌법에서 유래하는 것이기 때문에 헌법의 기속을 받는다. 이러한 한계를 벗어난 입법행위는 입법재량의 한계를 일탈하여 입법권을 남용하는 것이 된다. 입법만능주의는 여러 사회적 대가를 치르게끔 한다. 헌법상 자유 민주주의 질서, 책임주의 원칙, 체계정합성, 여타의 헌법 합치성 등을 위협한다.


필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속해 있다. 모든 법률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의 심사를 마친 다음,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를 거쳐야 한다. 여기서 체계의 심사가 바로 앞서 말한 위헌 여부, 다른 법률과의 저촉 여부, 현행 법체계와의 정합성 등을 심사하는 것이다. 필자는 모든 것을 법률로써 해결하려는 폐단을 줄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입법과잉과 졸속입법은 ‘발의는 과다(過多)하고, 숙의는 과소(過小)하다’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이것이 국회가 직면한 가장 주요한 문제점이다. 그런데 이상의 내용처럼 입법만능주의가 입법과잉을 야기하고, 입법과잉이 졸속입법을 야기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첫걸음은 결국 국회가 입법만능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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