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관료들의 벽, 윤석열은 넘을 수 있을까
[심층분석] 관료들의 벽, 윤석열은 넘을 수 있을까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3.06.23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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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종류가 난립을 해 가지고 이게 도대체 경쟁이 되겠습니까? 이건 경쟁을 안 시키려고 하는 거야.” 

지난 5월 31일 윤석열 대통령은 사회복지 관련 국정회의에서 분통을 터뜨렸다. 
사회보장 관련 부처와 위원회가 한자리에 모인 사회보장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중앙부처에 1000여 개, 지자체에 1만여 개 정도로 난립한 복지사업을 구조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나온 반응이었다. 

이보다 앞선 5월 10일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탈원전, 이념적 환경정책에 매몰돼 새로운 국정기조에 맞추지 않고 애매한 스탠스를 취한다면 과감한 인사조치를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관련 국무위원이 ‘공무원들을 잘 설득해 업무를 추진하겠다’고 보고하자 “장관이 설득해야 할 것은 공무원이 아니라 국민”이라고 일침을 날렸다. 윤 대통령은 새로운 국정 기조와 맞지 않는 관료가 있을 경우 “억지로 설득해서 데리고 갈 필요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직 사회에 기강을 잡겠다는 것이고 정부 개혁을 단호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던 것이다. 

지난 5월 10일로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맞았다. 언론들이 보도한 평가는 엇갈렸다. 정파성을 갖지 않는 중도적 의견들 중에는 대체로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한 부패와 적폐를 척결하겠다는 의지는 확인했으나 도대체 우리 사회를 어디로 인도하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평가들이 많았다. 

이에 대해 본지 <미래한국> 고문인 류우익 전 이명박 대통령실 실장은 최근 미래한국 편집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아젠다는 그 방향이 옳지만 이를 선도적으로 이끄는 정부 부처가 안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러한 영향으로 국정의 방향과 목표가 구체적이지 못하며 소통에 여전히 장벽이 있다는 다른 편집의원들의 평가도 있었다. ‘대통령 혼자 일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들도 있었다. 한마디로 대통령이 거대한 관료주의의 장벽에 막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관료주의는 강고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

관료들도 자신을 위해 일한다

‘영혼이 없는 공무원’. 우리 관료주의를 빗대어 하는 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공무원들에게는 영혼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방황하는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책임은 1차로 정치권에 있다. 특히 민주당의 고질적인 복지 포퓰리즘과 탈원전, 외교안보 노선의 일탈은 정부 관료들의 자율적 책임과 권한을 크게 손상시켰다는 평가가 있다. 여기에 기회주의적이고 출세지향적인 관료들의 야합이 묵묵히 일하는 공직사회를 규범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시키며 전횡을 일삼아 온 증거들이 속속 검찰 수사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대표적으로 산자부의 블랙리스트와 방송통신위원회의 불법적인 TV조선 불이익 점수 조작의 전모들이 말해주고 있다. 특히 과반을 차지하는 야당의 입법 횡포는 윤석열 정부의 법률안을 한동안 원천 봉쇄하면서 급변하는 나라 안팎의 위기 상황에 적시 대응과 관리에 실패하는 상황들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의 저변에는 대한민국 공직사회의 고질적인 관료주의, 부처이기주의, 복지부동이 적폐로 심화되어 온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의 관료사회를 연구하는 학계의 주장들을 종합해 보면 한국 정부의 행정조직은 가족주의라는 집단중심 문화와 경쟁이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소속 부처를  위해 개인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는 문화가 존재하며, 조직의 성공과 실패를 자신의 성공과 실패로 여기는 조직 동일시가 강하게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즉, 관료들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조직에서 찾기도 한다. 

이때 가족주의 문화는 조직 구성원들에게 소속감, 안정감 등을 제공하며, 또 구성원들 사이의 응집력을 높여 조직 목표 달성을 위한 협력을 용이하게 하는 장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부처 간에 칸막이를 형성하거나, 외부 집단에 대한 배타성 등으로 인해 다른 조직과 협력적 관계보다는 경쟁 구도를 형성하게 되어 부처 이기주의와 같은 부정적인 행태로 이어지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오늘날 행정학의 주류를 이끄는 공공선택론에 의하면 관료들도 자신을 위해서 일한다. 즉 관료는 조직의 목표나 절차적 규범과는 상관없이 철저히 자신의 이익(self-interest)을 조직을 통해 추구하는 합리적 행위자라는 것이다. 이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공공선택론의 거두, 고든 털럭(Gordon Tullock)에 의하면 관료제는 필연적으로 팽창한다. 관료들은 자기 부처의 예산과 조직, 권한의 확대를 본능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료들의 목표는 승진에 있으며, 자신이 소속된 조직 규모가 커질수록 수직적 계층이 증가하고 자신의 승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에 털럭은 관료 조직에서 성공적으로 빠르게 승진하는 사람들의 경우 무자비하고, 자신의 성과를 좋게 보이도록 정보를 조작하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상위직급은 조작에 능하여 부도덕하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어 관료제는 태생적으로 비능률적·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으며, 무능하다고 봤다. 이러한 비효율성을 제거하기 위해 털럭과 같은 공공선택론은 민영화, 분권화 등을 통해 경쟁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반론도 존재한다. 제한된 예산을 확보하려는 관료들 간에 경쟁이 오히려 상호 견제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례로 1970~1980년대 한국의 고도성장을 이끈 주역에는 강한 정부 관료제가 제시된다. 

특히 이 시기에 관료제 내부 경쟁은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러한 인센티브에 따라 한국의 관료들은 강한 애국심과 함께 개인의 출세와 가문의 영광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가능했다. 당시 경제기획원은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조직 간 그리고 지역 간 경쟁을 통해 예산을 배분하는 역할을 했다. 해외 원조 등을 통해 얻은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원칙은 ‘주어진 목표를 단기간에 완수하기 위해 인력과 물자를 집중하고, 참여자들 간의 경합을 붙이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5개년 개발 계획, 새마을 운동 등이 대표적이었는데, 목표를 명확히 하고, 목표 달성 여부에 따라 상 또는 불이익을 받게 되는 체계가 확립되었던 것이다. 

민간의 정부업무 평가 강화돼야

한국의 강력한 관료제가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산업화와 고도성장을 이끈 역할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결과, 사회에 다원성이 증가하고 민주적 절차성과 경제의 효율성이 중요하게 자리 잡은 오늘의 현실은 한국의 강력한 관료제에 대해 시민의 감시와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민간의 정부 감시와 정책 참여, 그리고 평가의 통로는 선진국에 비해 부끄러울 정도로 제약되어 있다. 

현재 국무총리 산하 정부업무평가위원회가 있고 여기에 민간위원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위상과 역할은 제한적이다. 무엇보다 46개 부처의 업무를 1년 내내 평가해야 하는 정부업무평가위원회의 민간위원장은 공공위원장인 총리와 동등하지만 비상임이다. 전문성을 가진 연구원들조차 민간위원회 소속은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은 정부가 자신의 정책과 기관을 평가하는 민간 부문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과 제약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정부업무평가위원회는 기재부가 주관하는 ‘재정사업평가위원회’보다 권한과 위상이 높음에도 예산과 조직, 인력면에서 오히려 정부업무평가위원회를 압도하는 상황이다. 민간을 들러리로 세워 정부업무평가를 정부가 주도하겠다는 발상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따라서 윤석열 대통령은 민간 전문가들을 확충하고 예산과 권한을 늘려서라도 정부업무평가에 민간참여 부분을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니면 감사원처럼 독립되어 정부의 정책과 기관을 부처의 입김 없이 평가하는 평가원과 같은 조직도 검토해 볼 만하다. 정부 혁신을 하려면 그 목적에 걸맞은 조직과 기능이 부여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9일 국무회의에서 이례적으로 ‘과감한 인사조치’를 거론한 것은 복지부동으로 일관하는 각 부처 공무원들과 업무성과가 미흡한 장·차관들에게 보내는 ‘엄중한 경고’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한국전력 구조조정과 원자력발전산업 육성, 4대강 보 활용 등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한화진 환경부 장관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면서 ‘용산발 고강도 공직사회 수술’이 임박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함께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혁신안으로 유연한 인사 시스템과 파격적인 성과주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공직 사회를 일 잘하는 ‘애자일(agile·민첩한) 정부’로 탈바꿈하겠다며 “민간 수준의 유연한 인사 시스템과 파격적인 성과주의를 도입해 활력이 넘치는 공직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관행과 규제의 틀을 과감하게 깨야 한다. 민첩하고 유연한 정부로 거듭나야 한다”고도 말했다. 정부 개혁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시그널이었다. 

윤 대통령의 발언에 맞춰 대통령실은 기존 3대 개혁(노동·교육·연금)에 정부개혁을 더한 ‘3+1 개혁안’을 공개했다. 정부개혁안에는 ▶민첩·유연한 정부 ▶형식주의 타파 ▶성과주의 확산 등의 내용이 담겼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집권 2년 차를 맞아 정부 개혁을 3대 개혁과 함께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제 1년 남짓 다가온 총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중간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이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는 ‘근본 개혁’의 아젠다를 세우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구태의연하고 낡은 정부의 관료주의 시스템을 확 뜯어 고치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시민이 참여하고 주도하는 정부 업무에 대한 평가부터 그 길을 터 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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