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탱크로부터 듣는다] 반도체 산업, 인력이 핵심이다
[싱크탱크로부터 듣는다] 반도체 산업, 인력이 핵심이다
  • 곽노성  한반도선진화재단 기술혁신연구회 부회장 
  • 승인 2023.06.23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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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지금 대내외적으로 매우 큰 위협에 직면해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기술 패권 경쟁을 넘어 대만의 무력 침공 우려로 확대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풀린 많은 지원금과 낮은 금리는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가져왔다.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올린 기준금리는 그간 풍부한 유동성에 의존했던 부동산 등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무역적자가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유독 원화만 약세를 띠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부동산을 제외한 대외 안보와 무역적자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반도체 산업이다. 

2022년 4월 29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한국과학기술원(KAIST) 내 나노종합기술원에서반도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2022년 4월 29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한국과학기술원(KAIST) 내 나노종합기술원에서반도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반도체는 인공지능, 전기차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에서 소프트웨어와 함께 양대 축으로 불린다. 반도체가 없으면 인공지능을 운영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차도 생산하기 어렵다.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면서 많은 산업 분야에서 반도체 활용이 크게 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은 물론 유럽까지 나서서 자국에 반도체 생산 공장을 늘리는 보조금 정책을 공격적으로 펼치고 있다. 반도체는 국가안보를 결정하는 핵심 인자다. 

대만의 TSMC를 두고 실리콘 방패라고 한다. 미국이 대만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TSMC 는 애플, 엔비디아 등 미국 팹리스 반도체 기업의 설계에 따라 최첨단 반도체 생산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함께 인공지능 양대 강국이다. 데이터는 정부가 수집하는 중국이 더 많다. 유일한 약점은 고성능 반도체다. 만일 TSMC가 중국에 넘어가면 미국의 패권 경쟁 판도는 달라진다.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20%일 정도로 삼성,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산업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그렇다 보니 원화 환율은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에 큰 영향을 받는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높아 수출이 잘 되면 달러가 많이 들어와 원화 가치가 올라간다. 반면 지금처럼 가격이 폭락하면 수입 물가 상승을 초래해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된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으로 반도체 전문가를 임명했고 교육부 개혁의 화두를 던지면서 반도체 인력양성을 주문했다. 물론 외부의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본래 반도체 산업 정책은 산업부 소관이다. 그렇다 보니 반도체 전문가를 과기부 장관으로 임명한 것에 대해 의아해하기도 했다. 
교육부의 수도권 중심 반도체 인력양성을 두고도 지방소멸이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너무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럼에도 과기부 장관 임명은 반도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반도체 인력 양성 또한 수도권 정책보다 국가의 위기 대응이 더 중요하다는 전략적 선택을 표명했다는 점에서 현재의 위기를 예견했다고 볼 수 있다. 
국정운영이 제 궤도에 오르면서 각종 반도체 정책이 수립되고 현안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본격화되었다. 정파를 넘어 야당 출신인 양향자 의원을 위원장으로 한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반대하는 야당을 설득해서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시설투자에 시설투자의 세액 공제율을 확대했다. 대기업은 당초 8%에서 15%로, 중기업은 16%에서 25%로 확대했다. 삼성전자가 계열사에서 자금을 융통하고 SK하이닉스가 부족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외화채권을 발행하는 어려운 상황을 넘어설 수 있는 최소한의 발판을 마련했다. 

권역별 반도체 공동연구소 운영 계획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산 AI 반도체를 활용한 K-클라우드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인공지능 개발은 학습과 추론으로 나뉜다. 논리를 개발하는 학습에는 엔비디아의 범용 반도체를 많이 쓰지만, 추론에서는 꼭 필요한 기능을 더 빠르게 할 수 있는 맞춤형 반도체가 필요하다. 그런 이유로 구글을 비롯한 글로벌 빅 테크는 자사 맞춤형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AI 반도체가 출시되었으며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산업부는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 강화 전략을 발표했다. 시스템 반도체는 인공지능은 물론 전기차, 신재생에너지 등 많은 분야에서 사용되며 전체 반도체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의 시스템 반도체 점유율은 3% 정도로 70%를 차지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큰 차이가 있다. 이를 위해 경기 용인시에 세계 최대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메모리-파운드리-팹리스-소부장 관련 대중소 기업이 생태계를 만들게 된다. 지금 우리가 부족한 반도체 설계 기업과 후공정 기술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도 함께 추진할 예정이다. 

교육부는 수도권(3곳)과 함께 비수도권(5곳)의 반도체 특성화 대학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비수도권 소재 국립대학에 반도체 교육·연구 기능을 수행할 권역별 반도체공동연구소를 지정, 운영할 계획이다. 산업부는 산업계와 공동으로 석·박사급 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대학 정원과 교원에 대한 규정을 개정할 예정이다. 지역에서의 마이스터고, 계약학과, 특성화 대학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그간 수도권 집중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면서 지방의 산업에 필요한 반도체 인력을 공급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수출에 의존하는 반도체 산업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수입국의 무역장벽이다. 특히 미국은 반도체 지원법을 통해 해외 공장을 유치하고 자국 기업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중 가장 큰 문제는 반도체 지원법의 투자 인센티브를 받는 기업이 중국 등 우려 대상국 내에서 설비 확장을 제안하는 소위 가드레일 조항이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전체 출하량의 약 40%를 중국 시안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는 D램의 약 50%를 중국 우시에서 생산하고 있다. 

일단 최악은 피했다. 삼성과 SK하이닉스는 중국 내 생산설비의 생산능력을 10년간 5% 이내로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일부 첨단 장비도 반입이 가능하다. 두 회사 입장에서는 앞으로 큰 부담을 갖게 되었지만 그래도 당초 예상했던 것에 비해서는 완화된 것이라고 한다. 우리 정부가 미국과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거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기업과 정부의 노력에도 앞날이 그리 밝은 것만은 아니다. 메모리 반도체의 부가가치는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와 CPU  (중앙처리장치)나 GPU(그래픽 처리 장치)를 조합해서 컴퓨터를 완성하는 방식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애플의 M1 칩이다. 속도를 높이기 위해 기존 CPU에 메모리 반도체를 결합했다. 이렇게 되면 메모리 반도체를 시장에 출하하던 방식에서 기업에 납품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지금 크게 하락한 가격도 예전 수준으로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는 전문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고 롤러코스터급의 시장 사이클이 완화될 것도 아니다. 

우리 스타트업과 정부는 국산 AI 반도체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이미 엔비디아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고 앞으로는 구글이나 테슬라가 자체 AI 반도체를 직접 설계했던 것처럼 마이크로소프트 등도 자체 AI 반도체를 설계할 예정이다. 국내 팹리스 기업에 큰 기대를 걸기 어려운 이유다. 그렇다고 TSMC처럼 AI 반도체 위탁생산량을 늘릴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는 위탁생산 경험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2015년 삼성전자와 TSMC 생산 칩의 성능 차이가 크다는 소위 칩게이트 논란이 있기 전에는 삼성도 애플의 CPU를 생산했다. 

더 큰 문제는 이해충돌이다. 삼성전자가 자체 CPU를 설계하는 상황에서 굳이 경쟁 상대인 삼성전자에 반도체 생산을 위탁할 이유가 없다. 자칫 기술이 빠져나가면 더 큰 경쟁 상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TSMC는 고객과는 경쟁하지 않는다면서 철저히 위탁생산만 고집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의 파운드리 능력을 키우려면 고객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인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어떤 기업도 경영권이 흔들릴 위험에 감히 그런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풀어야 할 또 다른 숙제는 반도체 인력 확보다. 저출산 영향으로 대학 진학 인구도 크게 줄었다. 정부는 각종 인력 양성을 추진할 계획이지만 정작 학생들의 생각은 다르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의대를 가는 것이 공식이다. 2학기에 다시 시험을 보는 반수는 기본이고 재수, 삼수도 많다. 그들에게 지금 국내 반도체 기업은 그리 좋은 직장이 아니다. 업무는 고되지만 퇴직하면 보장되는 것이 없다. 양과 질에서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이제는 학생들에게 글로벌 생태계를 보여줘야 한다. 우수 인력은 꼭 국내에만 있을 필요는 없다. 능력을 키워 실리콘밸리로 가는 것도 인정해줘야 한다. 그렇게 큰 인력이 다시 돌아오면 국내에서 또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력 정책은 정부나 기업의 입장을 고집한다고 되지 않는다. 수요자의 관점에서 풀어나가야 한다. 부족한 인력은 해외에서 충원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제 민족의 정체성보다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관점에서 산업 정책을 운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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