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바그너그룹 쿠데타 푸틴 영향력 강화될까, 약화될까
[심층분석] 바그너그룹 쿠데타 푸틴 영향력 강화될까, 약화될까
  •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 승인 2023.07.3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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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4일(이하 현지 시각) 일어났던 러시아 용병조직 ‘바그너그룹’의 쿠데타에 러시아군 최고 수뇌부도 가담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내년 3월 대선에서 ‘5선’을 노리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꿈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부하를 많이 잃었다며 쿠데타를 시도했다. 그는 지난 24일 새벽 러시아 로스토프주에 진입해 지역 군사령부를 점령했다. 그는 휘하 병력을 이끌고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했다. 25일까지 하루 만에 1000km 가량을 진격해 모스크바에서 약 300km 떨어진 리페츠크주까지 다다랐지만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중재에 성공해 모스크바 입성을 포기하고 바그너그룹에 해산을 명령했다. 

이어 프리고진이 벨라루스로 향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프리고진은 곧 “푸틴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은 아니다”라는 영상메시지를 텔레그램에 공개했다.

그는 메시지에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을 비판했다. 프리고진은 “이번 쿠데타는 러시아 군 수뇌부를 겨냥한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비전문적인 군사 행동과 결정을 통해 바그너그룹을 파괴하고 엄청난 오류를 저지른 관리들을 비난하기 위해 진격했다”고 주장했다. 

바그너그룹이 하루 만에 쿠데타를 포기한 뒤 푸틴 대통령이 나섰다. 푸틴 대통령은 26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바그너그룹 용병들을 애국자라 부르며 러시아군에 합류하는 것도, 귀가하는 것도, 벨라루스 망명도 허락한다고 밝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예브게니 프리고진을 형사 기소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의 사면이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바그너그룹을 그대로 두지 않고 정부 휘하에 놓기로 했다. 

바그너그룹
바그너그룹

러, 쿠데타 중단하자 전 세계 바그너그룹 장악에 나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8일 “러시아 정부가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바그너그룹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러시아 외교차관이 시리아로 날아가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게 러시아 정부의 뜻을 전했고, 러시아 외교부 고위 관리들이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바그너그룹의 쿠데타가 아프리카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확장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또한 러시아 비상사태부는 말리에 관용기를 보냈다. 

바그너그룹은 러시아 정부의 비호 아래 이들 나라에 진출해 돈벌이를 하고 있다. 요인 경호부터 해당 국가 정규군이 수행하기 어려운 전투나 ‘더러운 일’을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 6만여 명으로 알려진 병력 가운데 우크라이나 참전 병력을 제외하고 1만 명 이상이 아프리카와 중남미에서 활동 중이라고 한다. 푸틴 정부는 이런 바그너그룹의 해외 주둔 병력을 러시아군 휘하에 편입해 해당 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더 강화하려 한다는 분석이 많다. 

푸틴이 바그너그룹을 장악하는 데 발 빠르게 나선 것을 두고 “러시아 지도부 분열을 수습하기 위한 것”이라고 풀이하는 전문가도 있다. 러시아군 총참모부 정보국(GRU)이 쿠데타를 사전에 알았고, 러시아군 최고위 간부가 쿠데타와 관련한 혐의로 체포·구금된 것을 지도부 분열의 근거로 제시한다. 

지난 28일 모스크바타임스는 소식통을 인용해 “당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통합사령관을 지낸 세르게이 수로비킨 러시아군 통합 부사령관 겸 우주항공군 사령관을 바그너그룹 쿠데타와 관련한 혐의로 체포·구금했다”고 보도했다. 소식통은 “수로비킨 대장이 쿠데타 기간 동안 프리고진의 편을 들었다”며 “내부적으로 수로비킨 구금 정보는 함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대러 제재로 문을 받았던 독립 라디오 방송 ‘모스크바의 메아리’ 전 편집장 알렉세이 베네딕토프는 “수로비킨 대장이 사흘째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고 있으며, 그의 경호원들과도 연락이 두절됐다”고 주장했다.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친러 군사블로거로 알려진 블라디미르 로마노프 또한 “수로비킨 대장이 바그너그룹 쿠데타를 수습한 직후 모스크바 근교에 있는 레포르토보 교도소에 구금됐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7일 “수로비킨 대장이 바그너그룹 쿠데타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28일 이런 보도들에 대해 “추측성 가십에 불과하다”며 관련 내용을 부정했다. 

수로비킨 대장은 시리아 내전 당시 프리고진과 함께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군 내에서는 무자비함과 유능함 때문에 ‘아마겟돈 장군’으로 불린다. 군내 인망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외신들은 “수로비킨 대장이 실제로 바그너그룹의 쿠데타를 묵인·방조했다면 러시아군 수뇌부 내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음을 의미한다”며 “그 외에 다른 장성들도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갈아치우고자 했던 프리고진의 시도에 동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바그너그룹 쿠데타를 두고 “국가와 대통령의 등에 칼을 꽂는 짓”이라고 비난했던 GRU 국장 블라디미르 알렉세예프 중장도 몇 시간 뒤 로스토프나도누에서 프리고진과 대화를 하는 모습이 찍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8일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프리고진의 쿠데타 계획을 실행 이틀 전에 파악했다”고 서방 관료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프리고진은 쇼이구 국방장관과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러시아 남부에서 생포할 계획이었다.

게다가 빅토르 졸로토프 러시아 국가방위군 사령관도 27일 러시아 국영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프리고진 측에서 6월 22~25일 사이 시작할 쿠데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유출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주요 안보기관은 쿠데타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29일에는 다른 뉴스가 나왔다.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은 “바그너그룹이 쿠데타를 일으키기 전 휘하 병력을 러시아군에 편입시키는 것을 거절하자 자금과 보급품 공급이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쇼이구 국방장관이 바그너그룹을 장악하려고 하자 프리고진이 거부했다는 것이다. 

통신은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국방위원장을 인용해 “프리고진이 ‘바그너그룹’의 러시아군 편입을 거부한 뒤 당국은 ‘우크라이나에서 진행 중인 특수군사작전에 참여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바흐무트에서 휘하 병력을 많이 잃은 프리고진은 이에 분노했고 쇼이구 장관과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제거하려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예브게니 프리고진
예브게니 프리고진

쇼이구 국방장관 역량 부족 판명

푸틴, 5선 도전하기로

이처럼 바그너그룹이 쿠데타까지 일으키면서 제거하라고 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은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특히 쇼이구 국방장관은 푸틴 대통령이 한때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처럼 자신을 대신해 대통령이 될 사람으로 눈여겨보기도 했다. 비상대책부 장관을 지내면서 다양한 재난·재해에 잘 대처해 국민들 사이에서 인기도 매우 높았다. 

하지만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 이후 쇼이구 장관의 전쟁 수행 역량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차기 대통령’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럼에도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 자리는 여전히 지키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 때문인지 푸틴 대통령은 내년 3월 대선에 직접 출마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지난 1월 전해졌다. 러시아 매체 ‘코메르산트’는 소식통을 인용해 “푸틴 대통령이 차기 대선을 위한 캠프 구성을 관계자들과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2024년 3월 대선에 출마하지 않는다는 것이 푸틴 대통령의 공식 입장이었기 때문에 큰 논란이 일었다. 

푸틴 대통령에 5선에 도전하는 것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2020년 개헌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중임 2회’로 제한한 뒤 “개헌안은 차기 대통령부터 적용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5선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법보다는 러시아 지도부, 즉 전직 KGB 출신인 ‘실로비키’와 푸틴을 강력히 지지했던 정경 유착 재벌 ‘올리가르히’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달렸다. 

현재 푸틴 대통령이 처한 딜레마는 ‘무능한 측근’을 제거하느냐 ‘유능한 반란세력’을 살려 두느냐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3년 동안 집권하면서 전직 KGB 출신 재벌과 옐친 시절 국유자산 민영화와 시장 독과점을 통해 재벌이 된 세력들과 함께 부와 권력을 누렸다. 프리고진 또한 그 중 한 명이다. 

프리고진은 고르바초프 대통령 시절인 1988년 거리에서 핫도그 장사를 시작했다. 장사가 성공하자 그는 체인점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큰 성공을 거뒀다. 1996년에는 ‘콩코드 케이터링’을 설립해 모스크바 등 러시아 곳곳에 고급 레스토랑을 차렸고, 1998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선상 레스토랑 ‘뉴아일랜드’를 열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집권한 뒤인 2001년부터 밀접하게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푸틴의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2년에는 러시아군의 급식 90%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연간 8억 달러(약 1조550억 원)를 계약금으로 받았다. 군 이외에 러시아 정부에 급식을 공급한 것까지 더하면 계약금만 30억 달러(약 3조9500억 원)에 달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작은 올리가르히’에서 ‘큰 올리가르히’가 된 것이다. 그리고 2014년 푸틴 대통령과 군정보국의 비호 아래 용병 집단 ‘바그너그룹’을 설립했다. 이를 두고 국내 네티즌들은 “쉽게 말해 백종원이 용병집단을 차려서 정보기관의 지원 아래 전쟁 선봉에 선 셈”이라고 설명했다. 

프리고진은 시리아, 아프리카 지역에 바그너그룹을 투입하면서 푸틴 대통령의 마음에 쏙 들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바그너그룹은 최선봉에서 우크라이나 병력에 맞섰다. 전쟁 초기 러시아군 지도부가 보여준 엉성한 전술과 지휘에도 불구하고 바그너그룹은 우크라이나군에 타격을 줬다.

이런 역량을 보인 프리고진과 바그너그룹을 모두 ‘제거’한다면 푸틴에 충성하는 올리가르히들이 “오랫동안 충성해봤자 필요 없어지면 제거당할 것”으로 생각하고, 서방 진영과 손을 잡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프리고진과 바그너그룹, 그리고 이들의 쿠데타를 사실상 묵인한 고위급 장성과 고위 관료들을 그냥 놔두는 것도 푸틴 대통령의 권력 장악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쇼이구 장관과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교체하라”는 프리고진의 주장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한 셈이라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 또한 쇼이구 장관과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교체할 경우에는 아예 “프리고진의 주장이 맞다”고 인정하는 셈이 된다. 

푸틴 대통령이 내년 3월 대선에서 이기려면 그 전까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를 완전히 장악하는 것은 물론 현재 전선에서 밀리고 있는 크름반도 영토를 전쟁 전 수준으로 회복해야 한다. 현재 우크라이나군은 서방에서 제공한 무기를 잘 활용해 크름반도의 상당 부분을 수복한 상태다.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서도 분전하며 전쟁 전만큼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영토를 수복했다. 

반면 러시아는 오랜 기간 훈련을 받지 않은 징병한 병사들을 대거 전장에 투입하면서 많은 병력 손실을 봤다. 징병한 병사들이 맥없이 쓰러지는 것을 본 러시아 청년들은 너도 나도 해외로 탈출했다.

현재까지 수백만 명의 청년들이 해외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전쟁을 유지하기 위한 숙련된 병사는 물론 징병할 만한 인력 자원마저 부족하다. 

게다가 이번 쿠데타의 후폭풍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 권력의 배경이 되는 실로비키와 올리가르히까지 푸틴 대통령에게 등을 돌릴 수 있다. 이들이 등을 돌리면 대선 때 ‘최후의 수단’이 될 ‘부정투표’도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즉 프리고진이 일으킨 쿠데타는 이해관계로 얽힌 러시아 지도부에 균열을 만들었다.

푸틴 대통령이 앞으로 남은 9개월 동안 러시아 지도부를 장악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국민들에게 자랑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내년 대선에서 승리를 얻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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