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중국-러시아의 ‘딜레마 동맹’
[글로벌] 중국-러시아의 ‘딜레마 동맹’
  • 김민정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3.09.0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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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이 만나 태평양 아시아 안보협력을 논의하는 와중에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 관계도 발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이제까지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불가근 불가원이었다면 이제 이 두 국가의 협력관계는 군사협력을 통한 안보동맹으로 심화되고 있으며 경제와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서로 국익을 교환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이에 한미일 vs 북중러의 신냉전적 대결 국면은 더 심화되는 양상이다. 

최근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는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진행되는 협력 동향을 면밀히 주시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중 관계 심화에 대한 러시아 내 논쟁 동향 분석’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태림 유럽 러시아 연구부 교수와 최진백 중국연구센터 연구교수, 장세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등이 참여한 이 발제와 토론 보고서에 따르면 심화되는 중국과 러시아의 안보협력이 유엔의 분쟁조정 기능을 무력화시키면서 북한의 대남 도발을 부추길 가능성에 우려를 표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중국과 러시아가 안보협력을 추구하는 이유는 미국과 서구세계의 압박에 맞서 ‘반미연대’ 기치를 높이기 위함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 3월 러시아 모스크바를 찾아가 강력한 연대를 과시했다. 러시아 중국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양국은 각자의 주권과 영토보전, 안보를 지키고자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화답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오는 10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끝 모르는 우정’을 주제로 협력을 과시할 예정이다. 러시아의 우방 벨라루스는 중러가 주도하는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가입을 공식 신청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유리 우샤코프 러시아 대통령 외교담당 보좌관은 기자들에게 “푸틴 대통령이 (중국의) 초대를 받았다”며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국제협력 정상포럼’이 열리는 오는 10월 방중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일대일로 포럼은 시 주석이 일대일로 사업의 성과를 공유하고 참여국과 관계를 강화하고자 마련한 국제행사로 2017년과 2019년에 이어 세 번째다.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안보와 경제가 블록화로 진행되는 양상이다. 
 

지난 3월 모스크바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건배를 하고 있다. / 연합
지난 3월 모스크바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건배를 하고 있다. / 연합

심화될 중·러 군사기술 협력

일단 주목되는 부분은 중국과 러시아 사이의 군사협력 부분이다. 이는 우리 안보와 직결되어 있는데, 북한이 이 집단안보에 가세하게 되는 경우 때문이다. 리상푸 중국 국방부장 겸 국무위원과 니콜라이 예브메노프 러시아 해군 총사령관은 지난 7월 3일 베이징에서 만나 합동 훈련과 해상 순찰을 정례화하는 등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날 회동은 러시아 무장반란 사태 이후 처음 러시아와 중국의 군 고위급 인사가 만난 것이라 관심을 끌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선언들이 이전에 있었던 중·러 정상회담에서 이미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화상으로 진행된 정상회담에서 푸틴은 시진핑에게 양국 군사협력 수위의 격상을 제안한 바 있는데, 이번 회담에서 관련 발표가 없어 그 이면이 주목되었다. 소인수 회담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되는 러측 인사는 러시아 안보회의 부의장이자 대통령 직속 군산복합위원회를 맡고 있는 메드베데프 위원장, 쇼이구 국방부 장관, 슈가예브 연방 군사기술협력청 청장, 보리소프 우주개발청 청장, 체르니쉔코 중·러 정부 간 위원회 의장이자 과학기술 담당 부총리였다.

본지 <미래한국>이 입수한 외교안보연구소의 보고서에 의하면 동 회담에서 중·러 간 새로운 군사 관련 합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 가운데 러시아의 군사기술 이전 문제가 관심을 끈다. 

러시아는 중국에 대한 핵심 군사기술 이전을 전략적 계산 하에 보수적으로 허용했으나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이후 서방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대중국 군사협력에 좀 더 적극적으로 돌아섰다고 평가된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중국의 지원을 끌어내는 지렛대로서 러시아 측이 핵심기술 이전 논의를 개진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서는 판단하고 있다. 

또 중국이 군사기술에서 장족의 발전을 이뤘으나 지대공 미사일, 전투기 엔진, 잠수함 등에서는 여전히 러시아의 기술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전부터 러시아 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국에 기술 추월을 당하기 전에 중국과 기술을 공유하고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중국 무기 생산 네트워크에서 러시아 지분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된 바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기존 러시아 내 담론의 맥락에서 볼 때, 이번 정상회담에서 중·러 양국 간 군사협력에 대한 일진보한 합의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양국이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AI와 IT 분야를 통한 군사협력 전개 가능성도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외교안보연구소의 판단이다. 

2022년 9월 16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담의 정상들
2022년 9월 16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담의 정상들

미국, 러시아 제재로 위안화 강세

보고서는 이와 함께 중·러 간에 금융 지원 및 제재 우회 결제시스템 관련 협의도 있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러시아 기업들의 중국 금융 접근 방안이나 무역결제 방식에 대한 협의로 추정된다. 양 정상이 양국 간 중점 개발하기로 합의한 경협 분야 가운데 금융 분야도 있는데, 현재 서방의 대러 제재가 금융 분야에 특히 집중된 상황에서 중·러 양국 간 금융 협력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우회 방안들이 논의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러시아가 국제은행간 통신협정(SWIFT) 결제망에서 퇴출된 후, 러시아가 중국의 ‘위안화 국제결제시스템(CIPS)’을 활용해 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와 같은 제재 우회 결제방식 효율화에 대한 논의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국이 러시아로부터 사들인 원자재와 상품에 대한 자국화(위안화) 결제 비율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권이 이 전쟁의 책임을 물어 강도 높은 대(對)러시아 제재를 취하자 해외 판로가 막힌 상황을 이용해 중국이 러시아산 천연가스, 석탄 등 원자재와 상품 수입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에 의하면 지난해 중국의 러시아산 원자재 수입 규모가 금액 기준으로 전년보다 52% 증가한 880억 달러(117조5000억 원)에 이르렀으며, 이들 거래 결제의 상당 부분이 위안화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앞서 러시아 중앙은행도 지난해 러시아 수입 결제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년의 4%에서 23%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현재 중국과 러시아 간 무역의 3분의 2가 위안화로 결제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BNP파리바 자산운용의 치로 선임 투자전략가는 “미국이 주도하는 러시아 제재 이후 달러화 익스포저(위험 노출)를 줄이기 위해 위안화 진영에 합류하는 국가가 늘면서 장기적으로 ‘눈덩이 효과’(snowball effect)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이 같은 변화는 1∼2년에서 심지어 30년까지 매우 장기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며 “향후 몇 년 간은 위안화가 주로 상품과 에너지 교역에 사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러 협력으로 위안화의 위세가 높아진 것이다. 이와 함께 보고서는 중·러 간에 에너지 협력 부분도 중요하게 봤다. 

중·러 정상회담에서 발표될 가장 큰 실질적 합의로 지목되었던 사업이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과 중국 동북 지역을 연결하는 ‘시베리아의 힘’이었다. 중국 입장에서도 지금이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시점이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구체적 합의 발표가 없었던 배경이다. 그러한 원인으로는 ▲인프라 투자 주체 또는 장기 공급가에 대한 합의 불발, ▲중국의 에너지 수입원 다변화 원칙 하에 러시아산 물량 일정 수준 제한 의지, ▲2022년 11월 체결된 중국의 카타르와의 27년 가스 장기 도입 계약, ▲중국의 중앙아 내 신규 가스관 추진, ▲중국의 대유럽 관계에서의 갈등 증폭 우려와 같은 요인들이 작용했다고 보고서는 분석하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주저하는 태도가 러시아로부터 장기 공급가를 최대한 양보받는 지렛대가 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서로를 여전히 의심하는 중·러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에 대해 러시아 내 대표적인 중국 전문가 까쉰(Vasily Kashin) 박사는 중국의 기본적 입장에는 러시아에 대한 무기 지원도 하지 않고, 중국의 글로벌 회사들이 러시아를 떠나는 등 대미, 대유럽과의 관계에서 어느 선 이상의 부담을 지지 않으려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특별군사작전’ 중인 러시아에 대한 시진핑의 방문은 중국이 러시아에 대한 지지 메시지를 분명히 한 것이라는 사실에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없으며, 동시에 중·러 관계가 ‘동맹 이상’의 높은 수준이라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까쉰은 또 러시아의 경제가 장기적으로 성장이 둔화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협력 강화는 그 둔화 속도를 늦출 수 있으며, 실제 중국이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또한 그는 향후 에너지를 포함한 대중국 수출 확대는 극동 러시아의 인프라 확충의 촉진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까쉰은 서방의 전면적 제재 시작 이후 공급 부족이 가시화되었던 산업 장비와 전자제품이 중국으로부터 공급되었고 중국이 러시아 농업 상품에 대해 시장을 열어준 측면을 예시하면서,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이 다수 실현될 경우 중·러 간 경제, 기술, 군수산업 부문에서 상호 연결성이 한층 견고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외에도 정부 정책 홍보 라인이나 다수의 러시아 내 전문가들은 중·러 양국 경제 구조가 완벽하게 상호보완적이라는 점,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의 타이완 문제를 둘러싼 극단적 대립이 임박한 점을 들며 중국과의 관계 강화의 장점과 중·러 간 전략적 연대의 필연성을 강조하고 있음이 지적된다. 하지만 러시아 내에서는 과도한 중국 의존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중·러 정상회담 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4월에 러시아 내 가장 대표적인 국제정치 저널에 토르쿠노프 러시아 최고 학부 총장과 스트렐초프 아시아 국제정치 학부 학장의 공동 전략 보고서가 게재되었는데, 여기에는 러시아의 대중국 경사 심화로 인해 러시아가 직면하게 될 대내외적 문제에 대한 우려들이 다수 제기됐다. 

동 보고서에 지적된 부분들은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있었던 러시아 내 아시아 지역 전문가들 세미나에서 제기된 것들과 유사한 문제들인 바, 러시아 내 일련의 전문가들 내에 공유되는 문제 의식으로 봐도 무방해 보인다. 

동 보고서는 중·러가 공조했을 때 양국의 공동 의제가 보다 효과적으로 세계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측면과 중앙아시아 등에서 중·러 간 실용적으로 잘 조율된 협력 방식 등을 고무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러시아의 경제, 외교 등 전 분야에서 대중국 경사가 심화될 경우의 전략적 딜레마를 지적하고 있다. 이는 대중 관계 심화 속 독자 세력을 추구하는 러시아의 진지한 고민을 담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외교안보연구소 보고서는 지적한다. 

한편 과연 중국이 러시아에 투자를 과감히 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존재한다. 보고서는 세계 대부분 국가들의 외국인 투자 구조에서 중국의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러시아에서는 2014년 이후로 그 비중이 증가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내용상으로도 서비스, 첨단기술 분야에서의 투자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이제 러시아가 접근권을 상실한 서구 기술 및 자본 시장에 대한 대안으로 중국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 기업들의 러시아에 대한 특별대우는 없다’는 것은 러시아 전문가들 내 전반적으로 공유되는 인식으로 관찰되는데, 중국 정부가 에너지 분야를 제외하면 대체로 대기업의 경영 관련 결정에 관여하지 않는 상황에서 러시아를 ‘변두리 시장’으로 인식하는 중국 대기업들이 러시아 투자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 전반적 평가라는 것이다. 반면, 다른 일각에서는 제3국을 통한 중국의 우회 투자 규모가 압도적으로 큰 바, 직접투자 수치만을 보고 중국의 러시아 투자규모를 평가하는 것은 정확한 상황 진단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러시아 측 보고서의 저자들은 중국이 구 소비에트 공간에서도 자국의 글로벌 전략 하에서 행동할 수 있다는 여지를 두고 있으나, 실제로 그와 같이 중국이 러시아의 핵심 이익을 침해할 가능성은 낮아 보이며, 러시아를 ‘하위 파트너’로 취급하는 태도 역시 스스로 경계하면서 미·중 전략 경쟁이 지속되는 한 대러 관계의 안정적 관리를 추구할 것으로 외교안보연구소는 판단했다. 

러시아는 최대 핵보유국이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며 중국이 아직 확보하지 못한 군사기술 보유국으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보여주듯이 자국의 핵심 이익에 대한 러시아의 비타협적 태도를 중국은 잘 알고 있으며, 중·러 정상회담 직후 벨라루스 내 전술핵 배치를 발표하는 등의 러시아 행보의 ‘예측 불허성’은 중국이 러시아를 여전히 두려워하는 요소 중 하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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