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 ‘이상동기범죄’  원인과 사회적 현상
[전문가 진단] ‘이상동기범죄’  원인과 사회적 현상
  • 이수정 경기대 대학원 범죄심리학과 교수
  • 승인 2023.10.06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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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몸살이다. 수백 건 온라인 살인 예고 글 작성자들이 검거되었고 공공장소에서 흉기를 들고 설치는 사람들이 속속 검거되고 있다. 혹자는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며 한탄하기도 하지만 아직 이르다. 

총기난사로 하루에도 수백 명이 사망하고 있는 미국이나 한 달에도 수십 명 흉기난동이나 차량돌진으로 목숨을 잃고 있는 일본에 비하면 한국은 이런 흐름의 초입에 들어선 정도이다. 
첫 단추를 잘 끼우는 일은 옷을 제대로 입기 위해서는 절실한 일이다.

잘못되었다고 느낄 때 단추야 고쳐 끼우면 그만이지만 사람의 목숨은 회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7-8월간 일어난 공공장소에서의 무차별 범죄에 최선을 다해 대응해야 한다는 사실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일본에서 망상을 지닌 무차별 살인범에게 전 총리가 목숨을 잃고 현 총리도 폭탄테러로 인해 목숨을 잃을 뻔한 것처럼 우리도 정계 수장들이 온라인이기는 하지만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다행히 단단한 치안력으로 불행한 사태를 예방하고는 있지만 VPN 주소를 이용하여 해외를 경유하여 도달하는 모든 살인 예고범을 검거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현상의 선배격인 일본은 일찍이 공공장소에서의 무차별 살인사건의 원인으로서 히키코모리 현상이 문제임을 지적한 바 있다. 학령기에 이미 부적응이 시작되어 사회적인 고립을 경험하면서 막연한 피해의식과 사회를 향한 적대감을 키우던 자들이 폭력적인 온라인 게임 몰두로 현실판단능력 상의 혼동이 발생하여 이런 이상동기살인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조현병의 정신착란 상태는 아니더라도 이들은 자신을 배척하였던 바깥 세상에서 자신의 살인행각의 정당성을 찾는데, 어쩌면 세상을 향한 복수극이 이런 사건들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의 취약성이 근본 원인인 이런 사건들에서까지 빈부격차를 찾아내려는 올드한 범죄원인론은 이제 무력하다. 

80년대부터 시작된 히키코모리 현상은 이제 중년이 된 이들의 위협에 치를 떨고 있다. 관련 사건들은 이제 수없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특히 사회의 경종을 울리는 사건은 바로 일본의 전직 차관이었던 구마자와 시데아키의 살인사건일 것이다. 

그는 무차별 살인을 저지른 당사자가 아니라 아들을 살해한 비속살인범이었다. 2019년 6월 1일 당시 44세였던 구마자와 에이이치로는 가슴 등을 여러 차례 예기에 찔린 채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결국에는 숨졌다. 

그를 이렇게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76세의 친아버지였던 전 농림수산성 차관 구마자와 시데아키였다. 도쿄대를 나오고 평생 국가공무원으로 지냈던 그가 어느날 살인범으로 전락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그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자신이 장남을 흉기로 찌른 이유를 설명하였다. 오랜 기간 히키코모리였던 아들이 결국에는 다른 사람을 처참하게 해칠까 두려워 자기 손으로 살해했다고 자백하였다.

게임중독이었던 그의 아들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폭력적인 게임에 빠져 지냈고 게임만 하지 말라고 훈계하였던 부모에게도 종종 폭력을 행사하였다고 한다. 

그는 사건 당일에도 마루에서 신발을 끄는 소리가 나서 시끄럽다며 “다 죽여버리겠다”고 악을 썼다. 때마침 2명의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을 빼앗은 ‘가와사키 흉기 난동 사건’으로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꼈던 부친 구마자와 시데아키는 “가와사키 사건을 보고 내 아들도 결국에는 주변에 해를 가할지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고 느꼈다고 한다. 

발달장애로 인해 여전히 판단능력이 성숙하지 못하고 점점 더 포악해지는 아들을 보면서 흉기난동사건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는 것인데, 그 배경에는 아들의 잦은 존속폭행이 이유가 되었던 것 같다. 

이후 구마자와 시데아키에 대한 재판에서 피고인 측 변호사가 정당방위를 주장하였던 연유도 이런 피해자의 존속폭행력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변론에도 불구하고 그는 6년형에 처해졌다.

존속폭행이 어쩌면 무차별 흉기난동의 전조증상일 수도 있겠다. 구마자와 시데아키 사건에서 보듯이 어릴 때의 문제행동이 부모에 대하여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에는 자녀의 부모와의 동거가 어려워진다. 

8월 3일 발생한 '분당 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 최원종이 10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성남수정경찰서유치장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 연합
8월 3일 발생한 '분당 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 최원종이 10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성남수정경찰서유치장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 연합

가정에서의 문제 제대로 대처하지 않아 사회로 확대

강남역에서 비면식 관계였던 여성을 처참히 살해하였던 김성민도, 자기 또래의 과외교사를 살해하였던 정유정도 나아가 신림역사건이나 서현역사건의 주인공들도 가족과의 동거는 불가능하였다. 이들은 자발적 의지로 생계를 꾸리게 되어 자연스럽게 독립한 이들이 아니다. 집안의 문제거리로 전락하게 되어 결국에는 원하든 원치 않든 고립이 진행되는 것이다. 

취약성이 있을 것이다. 누구는 어릴 적 발달장애부터, 누구는 청소년 후기 조현병이 발병하여, 누구는 성인기 성격장애가 심화 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위험하게 진행되는 대상자는 거의 모두 부모와 적대적인 관계에 놓이게 된다. 

어쩌면 존속폭행이 미래 무차별 살인사건의 전조적인 주요 지표가 될는지 모르겠다. 만일 집안에서 일어나는 폭력행위를 사회적인 편견 없이 신고하고 처리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이런 대책 없는 폭력사태를 예방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겠다. 

8월 24일 강원 동해시 천곡동 소재 이마트 동해점에서 동해경찰서와 동해시청, 동해소방서 관계자들이 최근 다중밀집 장소에서 연이어 발생하는 흉기 난동 사건 등에 대비하기 위한 모의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
8월 24일 강원 동해시 천곡동 소재 이마트 동해점에서 동해경찰서와 동해시청, 동해소방서 관계자들이 최근 다중밀집 장소에서 연이어 발생하는 흉기 난동 사건 등에 대비하기 위한 모의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

부부간 폭력, 아동학대, 존속폭행들이 사적 공간에서 일어나는 그렇고 그런 사건이 아니라 장래 공공에 대한 위험의 예방이 될 것임을 고려해야 한다. 사소한 사건이라도 예산과 인력을 들여 치료적인 개입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정유정이 살인을 저지르기 전 부친과 나눴던 간절한 통화 녹취록 내용은 자신을 버렸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애정 갈구였다. 아직 정신연령이 중2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20대 후반의 정유정은 예전 부친의 교도소 출소 후 왜 함께 살지 않았느냐고 원망하고 있었다. 당시 사춘기 소녀였을 정유정은 아마 부친의 관심과 사랑을 갈구했던 것 같다. 

끔찍한 범죄사건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가정과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어제도 오늘도 국회 앞에서 교사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현장이 어려움에도 교육에 기대를 거는 데는 우리 사회의 모든 보호기능이 망가졌기 때문이리라. 미국이나 일본보다 늦은 것은 아니니 그래도 신발 끈을 다시 묶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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