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적폐’가 된 국회
대한민국 ‘적폐’가 된 국회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4.01.09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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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총선을 6개월 앞두고 언론 사설들과 시민들 사이에 ‘국회무용(無用)론’이 회자되고 있다. 21대 국회가 총체적으로 실패했다는 의미에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6월 조사 발표한 ‘주요국 입법시스템 비교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16대 국회에서 37.7%였던 법안가결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같은 기간 20대 국회 13.2%, 21대 국회 초반에서는 9.4%까지 떨어지기도 해서 독일(67%), 일본(43.8%), 영국(16.5%), 프랑스(12.7%) 등 주요국 가결률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인 것으로 밝혀졌다. 

21대 국회는 넘치는 법안, 낮은 가결률이 특징이다. / 연합
21대 국회는 넘치는 법안, 낮은 가결률이 특징이다. / 연합

반면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16대 국회(2000~2004) 2507건에서 20대 국회 2만4141건(2016~2020)으로 5회기 만에 10배 이상 늘어났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주요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가파른 증가세다. 21대 국회도 출범 3년 만에 20대 국회 발의법안의 90%(2만1763건)를 넘어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만큼 입법안이 남발되고 있지만, 현실은 의원들이 법안 발의 실적을 올리기 위해 같은 내용을 쪼개 발의하거나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무더기로 입법안들을 발의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성폭행범 조두순이 출소했을 때 전자장치 관련 법안만 10개가 발의됐는데, 8개는 전자장치 피부착자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자는 비슷한 내용이었다(고영인, 강훈식, 권인숙, 김남국, 김예지, 백혜련, 김영배, 유정주 등 8명 대표발의).

지난해 1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입양 아동을 학대해 숨지게 한 ‘정인이 사건’이 알려지고 나서는 1월부터 3월까지 석 달 동안 38개의 법안 발의가 쏟아졌다. 반면, 정작 시급히 제개정해야 할 특별법들은 여야 정쟁과 갈등으로 지연되는 사태가 빈발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전세사기특별법’을 들 수 있다.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4월 대표발의한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안’은 사안의 시급성에도 불구하고 전세보증금 지원 방안과 피해자로 인정되는 범위 등을 놓고 한 달 가까이 여야 의견 대립을 계속하다 결국 가결이 아닌 ‘대안반영폐기’ 형태로 처리됐다. 

남발되는 입법안, 그러나 낮은 가결률
 
법안 분야에도 불균형이 심했다. 최대 관심 분야는 단연 ‘부동산’이었는데 관련 법안만 1200여 건이 제출됐고, 대안과 수정안을 포함해 36.7%가 본회의를 통과했다. 시기별로 보면 21대 국회 임기 1년 차인 초반에는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서 임대차 3법 등 집값 상승을 막기 위한 규제 법안들이 다수 통과됐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는 규제 완화 법안 통과가 늘었다. 반면 ‘노동’ 관련 법안의 본회의 통과율은 23.8%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공공개혁 분야도 20.4%에 그쳤다.

특히 노동 관련 법안은 임기 1년 차에 178건이 본회의를 통과했는데 2년 차에는 69건으로 급감했다. 노동과 사회 안전 분야의 소외 현상은 21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 때 국회의원들의 환경노동위원회 기피로 이어지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노동 이슈를 국정 과제로 앞세워 온 민주당에서도 희망 상임위로 환노위를 1순위 지망한 의원은 한 명도 없었다. 입법 효율성이 크게 떨어졌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보고서는 정부발의 법안과 달리 입법영향분석을 적용하고 있지 않은 의원발의 법안에 대한 입법영향분석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를 통해 발의법안이 늘면서 발생하는 비효율이나 규제법안과 유사·중복발의 증가, 법안 심사시간 부족으로 인한 입법품질저하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지금이 입법영향분석을 도입할 적기라고 강조했다.

현재 21대 국회에는 관련법 개정안이 6건 계류되어 있는데 18대 국회에서 의원발의 법안에 대한 입법영향분석을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된 이후 가장 많은 법안에 계류되어 있다는 점에서 국회내 공감대가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21대 국회에는 김태년 의원안, 신정훈 의원안(이상 더불어민주당), 윤재옥 의원안, 이종배 의원안, 정경희 의원안, 홍석준 의원안(이상 국민의힘) 총 6건이 계류 중이다. 영국의 경우 정부안과 의원안 모두 입법영향분석을 실시하고 있으며 법률안의 종류나 적용범위와 관계없이 상·하위법률 모두를 분석 대상으로 한다. 독일은 연방의회 요구에 따라 입법영향분석에 준하는 의견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의원입법 가능 분야를 제한하는 프랑스는 상·하원의장의 요청에 따라 최고행정법원이 의견을 제출한다. 

일본은 입법영향분석을 도입하고 있지는 않지만 의원의 법안발의 전 당내심사가 의무화 되어있다. 미국은 법률안 제출시 비용편익분석을 첨부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으며, 양원합의 전 입법영향 등에 관한 분석보고서를 첨부하도록 하고 있다. 
21대 국회가 황당한 것은 상당수 국회 상임위원회가 지난해 국감 결과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피감기관은 국감 결과보고서에 담긴 지적사항에 따라 후속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국회는 이를 검토해서 결과보고서 채택을 해야 하지만 손을 놓아 버린 상태다.

결국 국정감사는 하나마나한 결과를 가져왔다. 전체 17개 국회 상임위 중 2022년 결과보고서를 채택한 상임위는 국토교통위, 보건복지위, 외교통일위, 정보위, 여성가족위 등 5곳에 불과했으며 특히 국방위, 교육위는 지난해와 2021년 결과보고서도 채택하지 않았다. 운영위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는 지난해와 2020년 결과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은 채 2023년 국감을 맞게 됐다. 국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는 장면이다. 

가짜뉴스와 정쟁으로 지새우는 국감장과 상임위

21대 국회의 가장 후진적 현상은 야당인 민주당이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이용해 남발하는 가짜뉴스와 음모론, 국무위원 흠집내기와 같은 정쟁들이 일상으로 횡행해왔다는 점이다. 민주당 의원들이 제기했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장관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은 모두 허위로 판명되었지만 여전히 해당 의원들은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은 2023년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 ‘보이콧’을 통해 정쟁이 벌어졌어도 대통령 연설에는 여야가 함께 참여했던 관례를 깼다. 여기에 야당은 다수 의석을 악용해 양곡관리법, 노란봉투법, 검수완박법처럼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법안을 국민의힘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 대통령이 거부하면 그것을 권위주의나 독재로 비난하는 구태를 보였다. 그러한 가운데 가장 극명한 부도덕은 다름 아닌 민주당이 보인 ‘방탄국회’였다. 

이러한 국회를 보는 국민의 시선은 여든 야든 곱지 않다. 여야 의원 모두 수차례 ‘특권 내려놓기’를 공약에 내세우고도 선거만 끝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의 무책임과 장기간 국회가 공전돼도 매달 세비로 1285만 원씩 받아간다. 공식 연봉 외에 별도로 업무추진비, 차량 유지, 사무실 소모품 등으로 1인당 평균 1억153만 원, 의원실마다 8명씩 보좌진 인건비로 5억 원 안팎이 쓰인다. 선진국 의원보다 연봉이 높은 이들은 코로나 고통 분담을 외치면서도 2018년부터 줄곧 세비를 올렸다. 항공기 비즈니스석과 공항 귀빈실을 이용하고 KTX도 무료다. 시민단체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가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권과 특혜를 보니 줄잡아 186가지에 이르는 지경이다. 

이러한 특혜를 누리면서도 해를 거듭할수록 여야의 대결이 심해지면서 통상 여야 간 합의로 열리는 상임위 개최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법사위와 같은 중요 상임위 불발은 ‘네 탓 공방’이 벌어진다. 또 과거보다 의원들이 지역구 활동에 더 신경 쓰는 것도 상임위 활동 저하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는다. 한 야당 의원 보좌관은 “의원이 열심히 상임위 활동을 하는 것보다 지역구 행사에 한 번이라도 더 참석하는 게 낫다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털어 놓는다.

주말 지역구 활동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여야 의원 모두 금요일에는 상임위가 열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공개된 비밀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하는 국회법’이 있지만 제재 수단이 없어 실효성이 없다”며 “정파적 이유로 합의가 어려워지고 있고, 상대에 대한 정치적 들러리를 서지 않겠다는 심리가 작용하면서 악순환이 생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민통합을 위한 정치개혁, 화두 돼야

21대 국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다원화 된 국민의 정치적 요구를 수용하고 다당제를 통해 민주주의 기반을 확고히 한다는 차원에서 실행된 연동비례제를 거대 양당이 자신들의 위성 비례 정당을 내세워 주권자의 선택권을 제약했다는 점에 있다. 2020년 4월 15일 실시된 21대 국회의원선거 결과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에서 163석을 확보했으며,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의석을 합하면 180석으로 전체 의석의 3/5을 차지했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미래한국당과 합하여 103석을 확보했다. 

준연동형 선거제도의 도입을 통해 다당제를 지향하겠다는 취지와 달리 양당 중심의 국회가 등장한 것이다. 특이한 점은 총선은 코로나19 여파 속에 실시되어 투표율이 낮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고 선거구 획정의 지연과 공천을 둘러싼 정당 내부의 갈등, 위성정당의 등장으로 인해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선거 결과는 높은 투표율과 정부 여당에 대한 지지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당시 총선의 투표율은 66.2%로 71.9%를 기록했던 1992년 14대 총선 이후 역대 최고치였다. 높은 투표율은 이미 선거일 전 5일부터 양일간 실시된 사전투표에서 나타났는데 사전투표제가 도입된 2014년 이후 가장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코로나19의 여파로 투표 참여율이 저조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높은 투표율을 보인 배경에는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시기적으로 이번 총선이 대통령의 임기 중반에 실시된 선거이므로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이 투표 참여를 유인하는 효과를 보였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우리 선거가 정서적 양극화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강명세 서울대 교수의 연구 분석에 의하면 최근 대중의 정서적 양극화는 세계적 관심사이다. 특히 반대정당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개인의 정치 선택은 물론 고용, 진학 심사, 심지어 결혼 상대의 선택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코로나19 방역과 같은 것이 아니라 대중의 정서적 양극화 요인이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권자의 후보 선택에 미친 효과가 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재인 정부의 방역 대처, 저소득층지원, 기본소득 등 중요한 정책 변수는 후보 지지에 영향을 주지 못했으나 미래통합당에 대한 적대감이 높을 경우 민주당 후보를 선택할 가능성은 크게 상승했으며, 마찬가지로 민주당에 대한 적대감이 높을수록 미래통합당 후보에 대한 지지는 높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정치 양극화가 우리 국회의 비정상화를 추동해 내는 동력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여기에는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무책임한 정파적 선동업자들과 SNS, 그리고 이를 검증 없이 인용하거나 확산하는 포털과 미디어들의 부주의와 무책임이 지적된다. 국민은 단일한 주권자로서 서로 적이 될 수 없다는 칼 슈미트의 주장, 그리고 민주제는 시민 간에 우정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 성찰에 비춰 보면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은 국민통합을 위해 비상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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