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을 넘어 제3세력과의 연대 고민이 필요
美中을 넘어 제3세력과의 연대 고민이 필요
  • 아산정책연구원 이재현  지역연구센터장 /  강충구  연구원 
  • 승인 2024.01.1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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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탱크로부터 듣는다 / 아산정책연구원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사이 위치한 한국은 한반도 주변 4강(미, 중, 일, 러) 외교에 집중해왔다. 최근에는 역내 불확실성이 높아져 4강과의 협력을 중시할 수밖에 없게 된 면도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가 4강 외교에서 벗어나 유럽연합(EU), 아세안(ASEAN), 인도, 아프리카 국가 등으로 협력 대상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중 아세안은 세계 교역에서 영향력을 키우며 우리에게 중요 협력대상이 되고 있다. 실제 아세안은 중국에 이어 우리의 제2 교역대상이다. 

본원은 국내 대(對) 아세안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2019년 이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개최 직후 실시한 당시 조사에서 한국인은 아세안이 우리나라 국익에 있어 중요하다고 답했다. 또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도 절반 가까이 안다고 했고, 그중 대다수는 정부 정책을 지지했다. 대 아세안 인식 제고에 기대를 갖게 한 결과였지만, 조사 설계상 변화를 추적할 수 없는 한계는 뚜렷했다. 

현재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의 큰 관심사 중 하나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과 두 강대국 사이 선택의 문제다. 미국, 중국을 제외한 차순위 협력대상에 대한 관심은 비교적 적다. 미국, 중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 또는 세력과의 협력, 즉 제3세력과의 협력에 대한 조사자료는 한국에서 찾기 어렵다. 

아세안 지역의 경우, 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Institute of Southeast Asian Studies)가 매년 이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미중 사이 한국인의 선택, 미중이 아닌 제3세력을 택할 경우 어느 국가나 지역을 택했는지를 살펴봤다. 그리고 응답자 연령대, 이념성향, 미중 인식에 따라 제3협력 대상으로 유럽연합, 아세안, 일본 등을 고른 답이 어떻게 다른지, 또 그 이유는 무엇인지 분석했다. 분석 결과, 한국인은 미중을 제외하고 중요 협력대상으로 유럽연합을 꼽았다.

흥미로운 점은 유럽연합 다음으로 지목한 대상이 아세안과 일본이었다는 점이다. 추가로 응답자 연령대, 이념성향, 미중 인식 등의 응답자 특성에 따른 선택에는 유의할 결과가 드러났다. 다수가 미중을 제외한 협력대상으로 유럽연합을 꼽았지만, 아세안과 일본을 택한 답은 응답자 특성에 따라 달랐다. 

윤석열 대통령이 9월 6일(현지시간) 자카르타 텔콤 본사에서 열린 한·아세안 AI 청년 페스타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9월 6일(현지시간) 자카르타 텔콤 본사에서 열린 한·아세안 AI 청년 페스타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제3 협력대상은?

이는 우리에게 두 가지의 시사점을 준다. 우선 국내 미중 사이 선택에 관한 여론조사는 많지만 제3협력대상에 대한 조사는 거의 없다. 한국의 커진 국력을 감안하면 미중을 넘어 전략적 다변화가 필요하고, 따라서 제3협력대상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에 대한 개별 조사와 해석이 필요하다. 또 한국 사회에서 아세안에 대한 인식은 아세안 자체 장점보다 아직은 마음에 들지 않는 선택지에 대한 대안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한국의 대 아세안 외교, 아세안 국가의 한국에 대한 공공외교가 풀어야 할 숙제다. 

과거 본원 조사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한국인은 미중 대결구도 속 1차 협력대상으로 중국보다 미국을 선호했다. 2022년 한국인은 85.5%가 미국을 고른 반면에 중국을 꼽은 비율은 9.9%였다. 이는 2023년에도 다르지 않았다. 한국인의 80.1%가 미국을 택했고, 중국을 택한 응답은 13.1%에 불과했다. 이 경향은 2014년부터 지속되어 왔고, 미국을 꼽은 답은 최소 58.7%로 적어도 절반 이상이 전략적 협력대상으로 미국을 택한 것으로 나타났다(최고 85.5%). 

여기에는 미국이 과거 70년 동안 한국과 동맹을 지속해 온 상대라는 점, 반도체나 배터리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공급망 재편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 등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중국을 택한 비율은 2015~2016년 두 차례 30%대를 기록했으나 그 전후로 20%대에 머물렀다. 최근 이 수치는 10% 내외까지 감소해 한국인의 미국 편향은 더 두드러졌다. 이는 북한의 도발이 잦아지고, 강도가 높아지면서 우리 안보의 중추인 한미동맹의 중요성이 부각됐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미중을 제외한 협력대상으로 한국인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살펴봤다. 한국 응답자는 본원 조사의 질문, “선생님께서는 미중 전략경쟁 구도의 불확실성에 대비해 다음 중 어디와 협력관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에 미중을 제외한 우선 협력대상으로 유럽연합을 꼽았다. 33.1%가 유럽연합을 중요 협력대상으로 봤다.

성별, 이념성향, 미중 인식에 관계없이 유럽연합을 제3 협력대상으로 가장 많이 선택했다. 한국과 유럽 사이 지리적 거리, 그리고 유럽, 유럽연합이라는 지역 혹은 지역협력체 단위의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유럽을 선진국 집합으로 보는 한국인의 정서가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는 아세안(19.2%)과 일본(18.2%)을 택한 한국인의 비율이 비슷했다(인도 7%, 호주 4.3%, 영국 2%). 미중을 제외했을 때 유럽연합 다음으로 아세안, 일본을 꼽은 비율이 19% 내외로 비슷한 점은 유의할 결과다. 한국인이 아세안을 일본만큼 중요하게 봤다는 뜻이다. 아세안은 한국 주변 4강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아세안을 개발도상국 모임으로 인식하고, 중요한 글로벌 행위자로 여기지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아세안을 유럽연합 다음으로, 일본과 함께 제3 협력대상으로 본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지난 5년간 지속된 신남방정책, 한-아세안 간 늘어난 교역-투자 규모, 중국을 대체할 경제 협력 상대로 부상한 아세안의 위상이 부각되며 한국인의 아세안 인식이 바뀌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반면, 한국인이 일본의 중요도를 낮게 평가한 점은 수년간 악화된 양국 관계, 일본의 수출통제 조치 등 경제 보복 여파로 나빠진 국내 대일 여론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ISEAS 조사에서 아세안 응답자는 “미중 경쟁의 불확실성에 대비해 제3세력과 협력해야 한다면 누가 가장 믿을 만한 전략적 협력대상인가?”라는 질문에 42.9%가 제3 협력대상으로 유럽연합을 택했다. 미중 다음으로 유럽연합을 꼽은 점은 앞서 살펴본 한국 조사와 일치한다.

다음은 일본(22.6%), 인도(11.3%), 호주(9.3%), 영국(6.8%) 순이었다. 한국을 택한 비율은 3.2%에 그쳤다. 여기서 눈에 띄는 점은 한국 조사에 비해 유럽연합을 꼽은 비율이 10%p 이상 높았다는 점이다. 한국인에 비해 아세안 응답자가 유럽연합에 느끼는 전략적 거리감이 가깝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어 일본은, 1950년대 후 지속적으로 이뤄진 동남아와 협력이 만들어 낸 인식의 기반이 탄탄해 유럽연합 다음으로 꼽힌 듯하다. 

위의 한국, 아세안 조사 결과를 정리하면 첫째, 두 조사에서 미중을 제외한 전략적 협력대상으로 유럽연합을 우선 꼽은 점은 일치했다. 물리적 거리를 감안해도 유로존의 정치∙경제 영향력을 높게 봤기 때문으로 보인다. 둘째, 유럽연합 다음으로 아세안 응답자는 일본, 한국 응답자는 아세안과 일본을 꼽았다. 역내 일본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이해가 된다.

다만, 한국 응답자가 일본만큼 아세안을 중요하게 본 점은 의외다. 이는 한국인이 제2 교역 상대가 된 아세안의 위상 변화를 일부 인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셋째, 아세안 조사와 달리 한국 조사는 모름∙무응답이 14.1%나 됐다. 4강에 집중된 한국 외교로 인해 한국인이 미중을 제외한 다른 선택을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뜻으로 읽혀 흥미롭다. 

베트남 호치민시
베트남 호치민시

세대별로 다른 제3 협력국 인식

한국인의 인구사회학적 특성에 따른 제3 협력대상 인식은 연령대, 이념성향별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전반적으로 미중을 제외하고 유럽연합을 중요 협력대상으로 꼽은 것은 60세 이상을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동일했다. 20대부터 50대 모두 40% 이상이 미중을 제외하고 유럽연합을 중요 협력 상대로 꼽았다. 이와 달리 60대는 일본을 택한 비율이 31.7%로 가장 많았다. 흥미로운 대목은 30대, 50대는 유럽연합 다음으로 일본이 아닌 아세안을 꼽은 점이다.

30대, 50대가 아세안과 일본을 택한 비율은 그 격차가 10~15%p로 꽤 컸다. 60세 이상, 20대는 유럽연합 다음으로 일본을 중요 협력대상으로 꼽았는데, 그 비율은 각각 31.7%, 24%였다. 여기서는 60세 이상 고령층이 일본을 중요 협력 상대로 본 점, 30대와 50대는 일본보다 아세안을 택했다는 점, 20대와 60세 이상이 아세안보다 일본을 택한 비율이 높은 점이 주목할 만하다. 

미중 전략적 선택, 안보∙경제에서 어느 나라가 중요하다고 보는지와 관계없이, 한국인은 대체로 유럽연합을 제3 협력대상으로 봤다. 한국인이 유럽연합을 제3 협력대상으로 꼽은 점은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경제와 안보에서 중국이 중요하다고 본 이들이 아세안을 유럽연합만큼 중요하게 봤다는 것이다. 반면, 어느 경우에도 한국인은 일본을 최우선 제3 협력대상으로 보지 않았는데, 미국을 택한 응답자만 유럽연합 다음으로 일본을 꼽았다. 

위에서 전략적 선택, 경제∙안보 중요 국가 선택에서 중국을 고른 이들 중에 아세안을 제3 협력대상으로 꼽은 이들이 상당한 점은 다소 의외다. 이는 미중 사이 미국을 택한 응답자가 유럽연합, 일본, 아세안 순으로 제3 협력대상을 택한 반면에 중국을 택한 응답자는 아세안을 유럽연합만큼 중요한 제3 협력대상으로 봤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이 아세안의 군사력, 외교력, 전략적 무게를 높이 평가해 아세안을 고른 것은 아닐 것이다. 아세안 때문이 아니라 안보에서 중국이 중요하다고 본 응답자는 안보에서 미국과 차이 없는 일본, 유럽연합을 택하기보다 다른 선택지를 꼽았을 가능성이 있다. 

美中을 넘어 아세안에 관심 가져야

본 연구에서 다루려고 했던 핵심 질문은 미국과 중국 외 제3 협력대상으로 어느 국가 혹은 지역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이다. 물론 미국과 중국이라는 한국에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두 국가가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협력대상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미중 양국에 한국의 모든 외교 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지나친 의존은 우리의 자율성을 제약한다. 이런 점에서 미중 외 제3 협력대상을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다. 한국에서 이 질문을 던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한국의 대외정책 범위가 넓어질수록 미중을 넘어 제3세력과의 연대, 협력은 반드시 고민해야 할 부분이고, 향후 한국인의 제3 협력대상 인식에 관한 개별 조사도 필요해 보인다. 

유럽연합, 일본, 아세안 등을 포함한 제3 협력대상 인식 조사에서 의외로 아세안을 택한 한국인이 많다는 점은 눈에 띈다. 결론을 대신해 이에 대한 해석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인구사회학적으로 30~50대, 중도 및 진보층이 유럽연합에 이어 일본이 아닌 아세안을 제3 협력대상으로 꼽았다. 아세안이 일본보다 앞섰던 연령대와 이념성향을 감안하면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에 대한 지지와 그에 따른 아세안 중요성 인식, 일본에 대한 상대적으로 강한 반감 등이 드러난 결과로 보인다. 

미중을 제외한 제3 협력대상 선택에 있어 경제, 안보에서 중국을 중요하다고 본 응답자는 상대적으로 일본보다 아세안을 선호했다. 하지만, 이는 중국에 대한 상대적 호감이 아세안으로 연장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이 응답자 군은 아세안을 중국과 유사한 세력, 혹은 중국의 연장선상에 놓고 보기보다 중국에서 얻는 경제 이익을 보완할 수 있는 시장으로 보거나 안보적으로 미국, 일본과의 협력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미국을 택하지 않은 이들이 일본 대신 아세안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아세안 입장에서 아쉬운 대목은 아세안이 자체 경쟁력을 가지고 유럽연합, 일본 사이에서 한국의 제3 협력대상으로 온전히 자리잡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아세안을 제3 협력대상으로 선택한 한국인은 다른 선택을 피하기 위한 반대급부로 아세안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일본에 대한 반감, 혹은 미국과 보조를 맞추는 일본이 아닌 다른 선택지로 아세안을 택한 점은 한국인이 아직 아세안의 강점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즉 한국과 아세안 사이 경제 관계, 사회문화 교류의 폭에 비해 아세안의 중요성이 국내에 덜 확산됐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런 점은 향후 한국의 대 아세안 정책뿐 아니라 아세안 국가의 대 한국 공공외교가 풀어야 하는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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