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일본, 대만과 손잡고 반도체 부흥 노리나
[심층분석] 일본, 대만과 손잡고 반도체 부흥 노리나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4.01.11 16: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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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반도체 제국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지난 9월 1일 일본에서 라피더스(Rapidus)라는 반도체 공장의 기공식이 있었다. 한국 삼성전자와 대만의 반도체 기업 TSMC는 긴장감을 가지고 이 기공식을 지켜봤다. 라틴어로 ‘빠르다’라는 의미의 라피더스(Rapidus)는 일본 정부가 반도체 산업 부흥을 위해 민간 대기업과 합동으로 설립한 기업이다.

지난해 11월 일본 정부 주도하에 도요타, 키옥시아, 소니, NTT, 소프트뱅크, NEC, 덴소, 미쓰비시UFJ은행 등 8개 대기업이 설립했다. 일본 정부는 첨단 반도체의 국산화와 자국의 반도체 산업 강국으로서의 부활을 이끌 라피더스에 총 3300억 엔(약 3조 원)의 지원금을 제공할 것을 공약한 바 있다. 

NHK 월드방송 보도에 따르면 라피더스는 2025년 시제품 생산라인 완공과 함께 2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의 반도체 시험 생산을 시작, 2027년부터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현재 2나노 이하의 칩은 전 세계적으로 상용화된 적이 없는 최첨단 제품으로, 한국 삼성전자와 대만 반도체 업체 TSMC의 경우 2나노 반도체의 양산 목표 시점을 2025년으로 잡고 있다.

일본 정부가 경쟁국들에 밀려 잃어버린 반도체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2030년까지 자국산 반도체 매출을 2020년 대비 3배인 15조 엔(약 148조 원)으로 끌어올리기로 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까지만해도 전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50%에 달했으나 이후 한국의 삼성전자 등 자금력이 풍부한 경쟁업체들에 밀려 현재 점유율은 10%에 지나지 않고 있다. 

반도체 기술특허 병목점 노리는 일본

대외경제연구원 보고서에 의하면 일본 정부가 반도체 전략을 통해 표방한 경제안전보장 관점에서의 국제전략이란 반도체 소재·제조장치의 공급망 실태 파악과 보호·육성, 미국, 대만, 유럽 등 ‘동료국’과의 산업정책 협력 강화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일본은 반도체 소재·제조장치 기술을 다른 국가가 대체할 수 없는 전략상 ‘초크포인트’(choke point)기술로 인식하고, 공급망 실태 파악과 아울러 기술보호, 산업육성 등 국내 대책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자민당 신국제질서창조전략본부는 정부가 수출규제나 기술유출 방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반도체 소재·제조장치 중에서도 ‘민감기술’을 특정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일본은 또 반도체 기술유출 방지에 유념하면서 국제전략으로서 미국, 대만, 유럽 등 ‘동료국’과 협력해 이노베이션과 안정적 공급 확보를 도모한다는 방침이다.

일본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동료국’과의 협력 사항을 보면, 미국은 반도체를 포함한 민감한 서플라이체인 및 민감기술의 육성·보호, 대만은 일·대만 산업협력 가교 프로젝트 교류 회의, 반도체 수급에 관한 정기적인 의견교환, 일본 AIST(산업기술종합연구소)와 대만 TSRI(대만반도체연구중심)간 ‘beyond 2nm 트랜지스터국제공동연구’ 추진, 그리고 유럽은 반도체 공급망 및 이노베이션에 관한 일·EU 공동 심포지엄 개최다. 

현재 일본은 반도체 협력국으로 한국을 상정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의미는 향후 일본이 미국을 공급처로 해서 대만의 TSMC와 손잡을 경우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따라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인 것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2021년 성장전략을 통해 경제안전보장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명시한 가운데 일본에서는 반도체산업을 경제안전보장 정책의 핵심고리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확산되고 있다. 
무라야마유조(村山裕三) 도시샤(同志社) 대학 교수는 2019년 7월 대한   (對韓) 수출규제처럼 일본은 경제안보전략 수립에서 반도체 재료, 반도체 제조장치, 공작기계, 계측기계와 같이 다른 국가에서 대체할 수 없는 ‘전략적 불가결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일본기업들은 전(前)가공의 소재분야, 그중에서도 실리콘 웨이퍼, 포토 레지스트, 에칭가스, 소자형성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아울러 반도체 전(前)가공의 제조장치 분야에서도 2020년 세계 10대 반도체 제조장치 기업 가운데 일본기업으로서는 도쿄일렉트론(4위), 어드벤테스트(6위), 스크린홀딩스(7위), 히타찌하이테크(9위) 등 4개 기업이 이름을 올리고 있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 구마모토 TSMC 반도체 공장
일본 구마모토 TSMC 반도체 공장

일본, 대만 TSMC와 손잡는 이유는?

일본 정부는 자국의 반도체산업은 시장 규모가 큰 메모리와 로직 분야에서 매우 열세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해외, 특히 대만 TSMC 등 로직 첨단반도체 제조업체를 국내 유치하는 전략으로 보완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진다. 2020년 대만 TSMC가 일본에 ‘TSMC Japan 3D IC 연구개발센터’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한 사례는 일본 기업의 경쟁력이 높은 소재·제조장치 분야의 기술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국내에 첨단 로직 반도체 양산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일본정부의 전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세계 최대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 등에 거액의 보조금을 제공하며 자국 내에 공장을 신설하거나 기존 공장을 확장하도록 하는 장려책을 시행 중이다. TSMC는 내년 말 가동을 목표로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으며 일본 정부의 이 공장에 대한 지원 규모는 총 4760억 엔(약 4조7000억 원)에 달한다.

TSMC와 공동 연구개발에 참여하는 일본기업은 이비덴, 아사히카세이, 신에츠화학 등 반도체 소재 기업과 디스코, 시바우라메카트로닉스, 키엔스 등 반도체 제조장치 기업 등 20개에 달하고 있다. 올해 삼성전자도 요코하마에 반도체 개발 시설을 건립해 한일 양국의 관련 산업 협력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일본의 보조금 규모는 1000억 원대로 4조 원대의 대만 TSMC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일본이 반도체전략을 통해 과거 1980년대 반도체 ‘왕국’을 부활시킬 수 있을지 여부는 경제산업성이 사활을 걸고 있는 ‘첨단 로직 반도체 양산체제 구축’ 여부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정부가 비록 반도체 후(後)공정 연구개발이지만 대만의 TSMC 유치에 성공한 것은 ‘일본 만의 방식’이라는 자기완결주의를 포기하고 해외 첨단 반도체 제조기업을 유치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한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일본이 추진하고 있는 반도체 부흥 전략은 대만 TSMC를 파트너로 하고 있다. 앞으로 일본의 이러한 반도체 부흥 전략이 한국의 삼성전자나 하이닉스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세심한 관찰과 대응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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