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왜 새로운 통일전략인가?
[포커스] 왜 새로운 통일전략인가?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4.01.1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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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윤석열 정부는 新통일미래구상을 발표했다. 이는 과거의 7·7선언을 바탕으로 한 기존의 통일전략에 대한 일대 수정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그러한 변화의 인식 배경에 대한 국민적 여론 수렴이 필요했으나, 국내 정치권의 정쟁 소용돌이 속에 제대로 소통되지 못한 점이 있었다. 이에 본지 <미래한국>은 당시 윤석열 정부의 신통일미래구상의 정책적 배경이 되었던 ‘통일미래기획특별위원회’의 신통일미래구상안(案)을 입수해 이 가운데 핵심이 되는 국제질서의 변화 부분을 발췌하여 싣는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기는 21세기 신냉전의 발상과 북핵 위기를 반영하여 새로운 전략적 패러다임과 정책의 제시가 필요한 시점이다. 민족의 패러다임에서 정치체제와 이념의 패러다임으로 전환이 불가피한 시점이다. 대한민국 국민 5100만 명은 자유민주주의체제, 북한 주민 2500만 명은 전체주의 독재체제 하에서 민족이 분단된 채 살아가고 있다. 북한 주민들도 동포로서 우리 헌법 4조에 규정된 자유, 인권, 개방 및 복리 등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구체적으로 누릴 권리가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이 21세기의 화두가 되어야 한다. 통일은 동질적 정치체제를 평화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미국 국제정치학자 마이클 도일(Michael Doyle)이 주장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서로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자유민주평화론(Democratic peace theory)은 지난 150년의 국제정치사에서 입증되었다. 

정권이 바뀌고 시대가 변화해도 불변하는 원칙과 가치를 앞세운 새로운 정책 기조가 필요하다는 것이 지난 30여 년 대북통일정책의 교훈이다. 한 대통령의 임기보다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안목의 시간을 갖고 담대하게 정책을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확증편향의 양극화로 인한 국내 이념적 분열을 아우를 통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통일방안의 수립이 시급한 시점이다. 

한국을 둘러싼 국제정치와 통일 환경 변화

7·7선언과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수립되던 시기는 동서냉전이 끝나고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가 형성되던 때로, 이념 대립으로 인한 갈등은 사라지고 대신 종교와 민족 분쟁 등 다른 갈등이 주목받게 된 시기였다. 경제적으로는 무역과 투자가 국가 간 장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뤄졌고, 세계화(globalization)의 물결이 한국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통일담론을 이끌면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도출했다. 반면 북한은 동구권의 붕괴와 함께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존을 위협받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러한 환경에서 당시 한국 정부는 통일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고, 북한에 대해서도 다각적 교류 협력을 제시하여 신뢰를 회복하고 화해·협력단계를 완성하여 자유민주주의 민족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2023년 한국이 당면한 국제정세는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수립되던 시기와 비교해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첫째,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은 1994년 당시 단극체제에서 신냉전으로 불리는 양극체제로 변화했다(Abrams, 2022; Ferguson, 2019). 신냉전은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 미국이 동서냉전 이후 만들어 놓은 국제질서를 중국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도전하기 시작했고, 미국과 중국이 안보와 경제 등 중요한 지점에서 본격적으로 패권을 다투기 시작한 미·중 전략경쟁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더해 친서방의 민주주의와 반서방의 권위주의 국가 간 연합의 대결로 정치체제 경쟁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대립 구도는 더 심화하고 있다(차두현, 2022). 마지막으로 한반도 지역에서는 신냉전을 한·미·일과 북·중·러가 대립하는 역내 양극체제로 해석할 수 있다. 북·중·러의 협력이 강화함에 따라 북한 핵무기에 대한 유엔의 제재나 남북 간 독자적인 협력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둘째, 북한은 2006년 핵무기 실험에 성공하기 시작한 후 꾸준히 핵능력을 고도화해왔고 이를 실전에 사용할 수 있는 투발 수단도 다양하게 개발해왔다. 2017년 말을 기점으로 핵무력 완성을 선포하고, 법제화까지 완성함으로써 비핵화의 가능성은 작아지고 있다. 

이미 북한은 핵개발을 국가의 주요 전략으로 설정했고, 협상에서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 발표했으며(Bennett et al, 2021), 스스로 비핵화를 선택한 우크라이나가 침공당한 상황에서 핵보유에 대한 결의는 더 커질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조한범, 2022).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북한은 핵전쟁 억지력과 국방력 강화 노선이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평가할 것이고 이를 계기로 북·중·러 안보협력 또한 강화될 가능성이 커졌다(이기동, 2022).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 한·미·일과 북·중·러가 대립하는 한반도 신냉전 체제는 중요한 통일 환경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는 여러 방면으로 통일 전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의 위협과 북한 체제를 지지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연합전선으로 인해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화해·협력단계가 1994년 당시 예상보다 어려울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북핵과 체제의 문제는 새로운 미래 체제를 구상하는 통일 구상에서 진지하게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세계질서 판도에 대한 인식이 우리의 통일미래구상에서 중요한 이유는 국제정세의 방향과 한국의 대북정책 나아가 한반도 미래에 대한 구상의 방향이 맞을 때 구상의 실현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세계질서 판도를 바꿀 만한 변화를 세계와 한반도 차원에서 살펴보고 이러한 여건 가운데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아래와 같이 생각해볼 수 있겠다. 

세계질서를 바꾸는 첫 번째 주목할 만한 변화는 구질서의 붕괴와 새로운 세력권의 판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2022년 10월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을 통해 탈냉전 시대의 종식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고 중국을 미래 최대의 위협으로 규정하였다. 이에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서방과의 전쟁에 돌입한 러시아는 중국과 힘을 규합하여 대미, 대서방 전선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새로이 형성되는 판에서 과거와 같은 초강대국, 단극(unipolar)의 부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는 가깝게는 9·11과 2008년 금융위기,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대표적인 위기의 시기에 대응하는 미국의 역량이 과거와 같지 않다는 점을 볼 때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어느 한 나라가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거나 패권국이 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이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을 규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해 북한 관영 매체가 공개한 '화성-17형'
지난해 북한 관영 매체가 공개한 '화성-17형'

셋째, 복합위기의 본격적인 도래가 예고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기후변화&#8231;환경 문제 등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국가와도 손을 잡지 않고는 대응이 어려운 글로벌 복합위기는 어쩌면 세력권의 판 보다 인류를 더 큰 위험에 몰아넣을 수 있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의 국가들이 뜻을 같이 하지 않는 국가와도 협력을 지속해나갈 대표적인 분야가 이 복합위기 대응과 관련이 있다. 나아가 중견국, 약소국들도 위기 대응 체계의 공동 주주가 되면서 더 큰 목소리를 갖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넷째, 세력의 단위가 흩어지고 모이는 과정을 거듭하며 주권국가 이외의 비국가 행위자들의 영향력이 증가하는 현상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복합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이미 국가가 아닌 다른 층위의 이해관계자 집단이 작동을 시작하였다.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채널과 활동의 플랫폼을 통하여 기업, 시민사회, 이익단체, 기타 초국가 단위 행위자들의 역할은 탈근대적 사회로 이행을 촉진하고 있다. 이 같은 세계질서의 변화 중에서도 한반도 주변을 둘러싼 중요한 변화를 살펴보려고 한다. 이는 앞선 판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미중 간의 경쟁,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로 인해 악화일로를 걷는 한반도 주변 환경,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더 심화되고 있는 신냉전 구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신냉전적 진영화 속에서 남북 및 북미 간 한반도 비핵화 협상이 정체되면서 평화 정착 및 통일 프로세스는 언제 다시 재개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특히 미국 정부는 강력한 대중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미래 상당 기간 동안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역시 2022년 12월에 발표한 일련의 안보전략서를 통하여 공격능력과 군현대화 등 군사적 대중 압박에 동참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 중심의 1인 체제를 장기화하면서 대만 포위 군사 훈련 등 역내 군사 활동의 빈도를 높이고 미국에 대한 맞대응의 수위를 높일 것이다. 

이 같은 미중 경쟁과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북핵 문제의 해결, 한반도 미래를 둘러싼 미중 간의 협력, 국제사회의 일치된 대응을 기대하기는 점점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북한이 강조하는 신냉전(new Cold War)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질서 대전환의 시작

이념에 기초한 진영 간 대립보다는 전략적 목적 달성을 위하여 국가들 간 편의에 의한 정치적 결합이 보다 보편적인 특징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렇게 새로운 형태의 진영화 속에서 각국은 전과는 다른 역할을 부여받게 될 것이다. 이같이 지정학적 경쟁의 수위가 높아지는 한편 위기의 세계화(globalization of risks) 현상, 즉 세계가 함께 겪어야 하는 초국경적 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점은 글로벌 협력의 필요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처럼 어느 한 국가나 지역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위기의 발생과 만연화는 유사한 위기를 경험하는 집단 간의 더 공고한 협력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보건, 환경 등 초국가 위협이 증대되는 상황은 남북이 힘을 합하여 헤쳐 나가야 할 공동의 도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남한과 북한의 정부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정부 및 비정부 행위자들과 전과는 다른 방식과 깊이로 교류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향후 미중 관계가 어떤 양상으로 변화할지 지금은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의 글로벌 위상과 역할, 한반도 미래를 위한 노력은 이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에 상당 부분 연동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 진영이 국제질서를 이끄는 경우와 함께 중국이 앞장서는 반서방 진영이 국제질서를 이끄는 경우도 함께 상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은 한국의 통일미래구상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요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즉, 한국의 통일미래구상은 진영 간 또는 이익을 공유하는 국가들간의 일시적 이합집산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가치와 규범에 뿌리를 깊숙이 내려야 할 것이다. 

이처럼 보편가치를 지향하는 신흥선진국으로서 한국의 외교는 조화와 협력을 지향하는 중견국 외교의 미덕을 유지해야 하겠다. 즉 한반도 미래의 거버넌스를 위해 한국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보다는 미중 전략 경쟁과 동아시아 세력 구도의 변화, 환경·보건·비확산·신기술과 같은 초국가적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노력을 통해 한반도의 미래가 곧 인류 미래의 희망을 여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초국가적 위협, 지구적 거버넌스, 지구화 시대에 다른 나라에 모범이 되는 한국의 외교와 대북 정책의 원칙을 마련하는 것은 우리 외교의 미래를 위해 지금부터 시작해야 할 작업이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과는 이 원칙에 기반하여 관계를 발전시키고 지역의 통합에 본이 되는 모델로 확장시킨다면 한반도 미래를 위한 설득력 있는 거버넌스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한반도 미래 거버넌스는 한반도를 넘어 글로벌 거버넌스의 원칙과 맞닿아 있고 확장성을 지닐 때 실현 가능성을 높일 수 있고 지구에 기여하는 신흥선진국으로서의 책무를 이행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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