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정치의 사법화가 부른 사법 공백
[심층분석] 정치의 사법화가 부른 사법 공백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4.01.1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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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공석 사태가 40일을 넘기고 있는 가운데 헌법재판소장 공석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국회는 이종석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청문회를 개최하고, 11월 23일 예정된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 투표를 상정하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어떤 결단을 내릴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에 따라 양대 사법 최고기구 수장 자리가 동시에 공석이 되는 초유의 사태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깊어가고 있다. 단순한 사법 기구 수장의 공백의 문제가 아니라 법관 인사 전반과 재판 일정 등에 큰 차질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의 재판들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견들이 지배적이다. 법관 인사에 따라 재판이 중단되거나 법관 교체가 일어나면서 소위 ‘지연된 정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11월 10일 유남석 헌재소장의 임기 만료로 유 소장이 퇴임하면 이은애 헌법재판관이 소장 권한대행을 맡는다. 유 소장의 자리를 채울 후임 헌법재판관 인선도 아직 되지 않아 1명 공석 상태인 헌재 재판관 8인 체제가 상당 기간 지속될 수도 있다. 공수처장 역시 공백 사태가 우려된다. 현 김진욱 공수처장의 임기는 내년 1월 20일까지. 3개월 정도 남았다. 아직 시간이 많은 것 같지만 초대 공수처장인 김진욱 처장이 임명되기까지 후보추천위원회가 구성되고 나서 7개월이 걸렸던 점을 감안하면 그리 여유롭다고 하기는 어렵다. 

대법원장의 경우 인선이 계속 늦어지면서 내년 1월 1일 퇴임하는 안철상·민유숙 대법관의 후임자 결정도 지연될 것이 예상된다. 대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 임명동의 절차가 지연될 경우 내년 초 대법원장을 포함해 대법관 3명의 자리가 빌 수도 있는 것이다. 대법관 3명이 공석이 되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혼란이 벌어질 것이라는 법조계의 우려가 등장하는 이유다. 

현실화 되는 대법원·헌법재판소 양대 공백

민주당은 느긋한 입장이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 헌법재판관 체제가 큰 변동 없이 유지되는 것이 민주당의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공공연한 비밀로 회자된다. 실제로 김명수코트는 중요한 문재인 정부하의 민주당 인사 관련 재판에 심각할 정도로 재판 지연을 초래해 왔다. 

그러한 사례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으나 기소에서 판결까지 3년 2개월이나 걸렸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지만 몇 달 안에 2심이 끝나도 법정구속되지 않고 대법원으로 넘어가면 내년 4월 총선 전에 선고가 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법조계의 시각이다. 

김명수 사법부와 조국 전 장관 사이에 암묵적 유착설이 나오는 배경이다. 뿐만 아니라 2018년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에 연루돼 기소된 한병도·황운하 의원 1심 선고 공판은 11월 말로 예정돼 있는데 거의 4년 만에 1심 판결이 나오는 셈이다. 그러나 이 사건도 아직 2, 3심이 남아 있어 재판에 의해 이들이 21대 국회의원직을 잃을 가능성은 없다. 특히 이 사건의 주요 피고인인 송철호 울산시장도 4년 임기를 다 누리고 이미 1년 전에 물러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김명수코트의 ‘지연된 정의’를 대표하는 사건은 역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사건이다. 법원에 넘겨진 지 2023년 10월 31일 기준으로 418일이 지났다. 국민의힘에 입당한 조정훈 의원이 최근 한 언론사를 통해 “심해도 너무 심하다. 마치 사법부가 이재명 대표 놀이터가 돼버린 것 아닌가:라며 ”예전에는 ‘정치검사’라는 말이 있었지만 지금은 ‘정치판사’”라고 꼬집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조 의원은 “사법부 또한 사람이 운영하기 때문에 흠결이 있을 수 있다”며 “법원은 이제 결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OECD 꼴등 수준의 사법부 신뢰도가 이 대표 재판 과정과 결과를 통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법원의 입장은 ‘불쾌하다’는 것이 보통이다. 윤준 서울고등법원장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치권이 진영논리로 법관들의 판결을 폄훼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 것이 대표적이다. 

윤 원장은 서울고법에서 열린 국감에서 “법원이 중립적으로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정치에 뛰어들거나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의 지적에 “법관들은 결정이나 판결할 때 가능하면 정치적인 색깔을 입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답했다. 이어 “사회가 진영논리에 빠져 자기한테 조금이라도 불리한 결정이나 판결, 혹은 표현 중 일부라도 있으면 그 법원 판결을 비판하고, 헐뜯고, 폄훼하는 경향이 최근 부쩍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법원에 개혁이 필요함을 고법원장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정치의 사법화가 부른 딜레마

지난 20여 년 이래 사법권의 부상과 확대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변화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이러한 변화는 굵직한 정치적 사회적 갈등 사안들이 종국에는 법원으로 넘어가 해결되는 경향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5·18 과거청산, 대통령 탄핵 여부, 신행정수도건설 근거법률의 위헌결정, 동성동본 금혼 위헌, 이라크 파병 여부, 낙천낙선운동의 선거법 위반, 간통죄 합헌, 사형제도 합헌, 존엄사 허용, 국가보안법의 폐지 여부,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 등등의 사안들을 다루면서, 사법부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무대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민주화에 따른 87년 헌법체제 가동 이후, 헌법재판권을 행사하는 헌법재판소가 설치되고, 이 헌법재판소는 일반적인 사법권의 최종심인 대법원과 견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사법권이 우리 사회에 중심을 차지하게 되면서 ‘정치의 사법화’가 민주주의 발전에 걸림돌로 등장할 수 있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치의 사법화’로 정치영역과 민주적 공론 영역에서 다뤄져야 할 사안들이 소수 엘리트 법관들에 의해 결정됨으로써 민주주의 발전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시민들은 물론이고 학자들 가운데도 정치의 사법화 현상을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갈등 문제로 다루는 사람들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정치의 사법화가 정치권은 물론 사법권에 마저 불신을 초래하는 이러한 상황은 개혁되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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