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2일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6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그런데 후임 대법원장으로 지명되었던 이균용 후보자가 10월 6일 국회의 임명동의를 위한 투표에서 부결되었다. 1988년 노태우 정부 당시 정기승 후보자의 부결 이후 35년 만에 대법원장 후보자의 국회 인준이 실패한 것이며, 그로 인해 대법원장 공석이 장기화될 전망이다.
법원은 3심제에 따라 기본적으로 대법원, 고등법원, 지방법원의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지방법원에 속한 지원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고등법원급의 특허법원, 지방법원급의 가정법원, 행정법원도 있다. 또한 제1심은 지방법원 단독판사가 하고, 제2심은 지방법원 합의부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모든 재판의 제3심은 대법원이다. 그러므로 대법원은 최고법원일 뿐만 아니라, 최종심이다. 물론 상소를 하지 않으면 제1심이나 제2심에서 판결이 확정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법원에 대한 상고의 제한이 문제되고 있다. 대법원의 과중한 업무 때문에 상고의 제한이 불가피한 부분이 있지만, 소송당사자 중의 상당수는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대법원이 최종심이라는 것은-신영철 전 대법관 사태에서 보듯이 사법부의 독립 때문에 대법원이라 해도 하급심 재판에 관여할 수 없지만 - 하급심 재판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대법원의 기존 판례에 어긋나는 하급심 판결이 나오는 것은 - 미국처럼 선례의 법적 구속력이 인정되지는 않고 있지만- 쉽지 않은 것이다. 그로 인하여 대법원을 이끄는 대법원장이 법원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강력하다.
대법원장 이외에 13인의 대법관들이 있고, 대법원의 중요한 사항들은 대법원장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법관회의에서 결정하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대법원장의 대법원 내에서의 위치는 다른 대법관들과 크게 다르다.
우리가 제왕적 대통령에 대해 계속 말하지만, 제왕적 국회의장이라는 말은 없다. 또한, 제왕적 대법원장에 대한 논란은 있어도 제왕적 헌법재판소장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보다 국회의장이 국회 내에서 국회의원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수 없고, 마찬가지로 헌법재판소장도 헌법재판관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장은 대법관 임명 제청과 법원 전체에 영향력 커
그러나 대법원장은 - 비록 삼권 전체에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통령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 사법부 전체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것은 앞서 이야기한 대법원이 하급심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과 더불어, 대법원장이 대법관의 임명에 깊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즉, 헌법상 대통령이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임명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대법원장의 제청이 필요하다. 그로 인하여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임명된 대법관은 대법관회의 등에서 대법원장에게 한발 양보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다.
대법원장을 통제할 수 있는 최고위 법관인 대법관들이 이런 상황인 만큼, 다른 법관에 의해 대법원장이 통제되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제왕적 대법원장의 위상은 적어도 현행헌법 하에서는 확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개헌을 통해 제왕적 대법원장 문제를 해소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지만, 적어도 현재의 상황에서는 대법원장의 공석이 법원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대법원장이 공석이 되면, 권한대행이 필요해진다. 법원조직법 제13조 제3항은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장이 궐위되거나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선임대법관이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권한대행이 대법원장의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 권한대행을 비롯하여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등 궐위 또는 사고로 인하여 권한대행 체제로 중요 국가기관을 운영했던 경험이 여러 차례 있다.
1960년 4·19혁명 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을 때, 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되었을 때도 권한대행이 있었고, 민주화 이후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소추되었을 때 대통령 권한대행이 있었다. 그밖에 헌법재판소에서도 전효숙 사태 당시를 비롯하여 헌법재판소장이 공석인 경우가 여러 차례 발생했고, 그때마다 권한대행이 직무를 대행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권한대행의 경험을 겪으면서 많은 논란 끝에 권한대행이 수행할 수 있는 직무의 범위는 이른바 ‘현상유지적 권한’에 한정된다는 점이 이론과 실무에서 확실하게 자리매김되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대통령이 탄핵소추를 통해 권한이 정지되고,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하는 동안에 대통령이 임명했던 장관을 교체하고, 정부 정책의 기본 방향을 변경하는 것과 같이 그 정부의 기본적인 틀을 바꾸는 활동은 권한대행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는 점이 널리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대법원장의 권한대행에서도 마찬가지로 인정될 수밖에 없다. 대법원장 권한대행이 대법원장의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기본적인 틀을 바꾸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현상유지적 권한’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현상유지적 권한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최근 중요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 세 가지 있다.
첫째, 대법원장 권한대행이 대법관 임명을 제청할 수 있는지 문제된다. 특히 내년 1월 1일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게 될 안철상 대법관과 민유숙 대법관의 후임 문제는 상당히 시급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학계나 법조계에서는 대법권 임명제청권은 권한대행의 권한으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 이유는 헌법상 ‘대법원장’의 제청권으로 명시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는 대법원의 구성을 바꾸는 것이라는 점에서 현상유지적 권한으로는 보기 어렵다는 점 때문이다. 또한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임명제청권도 권한대행이 행사할 수 없는 것으로 보는 기존 학계의 중론에 비춰 볼 때, 이와의 체계적 일관성을 고려하더라도 대법원장 권한대행이 이를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것이다.
둘째, 대법원장 권한대행이 법관 인사를 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다. 특히 법원장 등의 고위직 인사, 부장판사 등의 승진 인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법원 내에서는 매우 중대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인사가 현상유지적 권한의 행사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권한대행이 할 수 없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다수이다.
다만, 2년마다 정기적으로 법관의 임지를 바꾸는 인사에 대해서는 이를 가능하다고 보는 견해와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견해가 맞서고 있다. 이를 현상유지적 권한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임지의 변경 자체도 법원 내에서는 근무평정 등과 관련된 중대한 인사이기 때문에 대법원장이 아닌 권한대행이 하기에 부적절하다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을 권한대행이 주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다. 이는 무엇보다 전원합의체 결정에서 대법원장이 갖는 특수한 지위 때문이다.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2명의 대법관과 대법원장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서 대법원장은 최종적으로 투표하며, 대법원장의 투표에 의해 최종 결과가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대법원장 권한대행이 이를 행사하는 것이 적절한지 논란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10월 16일 대법관회의에서 이를 인정하는 결정을 했다.
다만, 심리할 사건의 선정, 선고 여부 등은 권한대행이 사건의 시급성과 필요성을 고려해 결정하기로 했다. 전원합의체 사건을 무한정 미룰 수 없다는 판단과 함께 매우 민감한 사건에 대해서는 대법원장의 임명 이후로 미룰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결국 신임 대법관의 임명제청은 대법원장 권한대행의 역할 밖이므로 신임 대법원장의 임명 이후로 늦춰질 수밖에 없고, 그밖의 문제들도 신임 대법원장의 임명 이전에는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내년의 법원 정기인사 이전에 신임 대법원장이 임명되지 못할 경우에는 법원 내에 적지 않은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대법원장 선임 절차 충분한 검토 시간 필요
대법원장 공석의 장기화로 인한 사법 공백, 그리고 그로 인한 국민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일단 후임 대법원장의 임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대통령이 후보자를 빨리 지명하는 것도 필요하고, 국회에서도 임명 동의를 서두르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대통령의 후보자 지명 과정에서는 철저한 사전 검증을 거쳐야 할 것이며, 국회의 임명 동의 과정에서는 정파적 고려보다는 법원의 안정을 비중 있게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더욱이 오는 11월에는 헌법재판소장의 임기도 만료되는데, 후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해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는 등, 국회의 임명동의안 부결이 다른 고위공직자로 확대될 경우에는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과는 별도로, 이와 유사한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중장기적인 대책을 세우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헌법개정을 통해 대법원장의 임명방식 자체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나아가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다는 것이 제왕적 대통령을 가능케 하는 핵심적 요소의 하나라는 점은 널리 인정되고 있다. 따라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극복을 위해서도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등의 임명방식 개선은 필요하다. 다만,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있으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등의 추천위원회를 두고, 그 추천 결과에 대해 국회의 인사청문과 동의를 거쳐 대통령은 형식적으로 임명하는 방식도 고려될 수 있다. 또는 대통령의 관여를 완전히 배제하고, 대법관들의 호선으로 대법원장을 선출하고 국회의 인사청문과 동의 절차를 거쳐 확정하는 방법도 논의되고 있다. 각각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다만, 대법원장 등의 공석 사태 장기화를 막는 것과 관련하여서는 대법원장 등의 임기말에 비로소 후임 대법원장 등의 선임을 위한 절차를 시작할 것이 아니라, 충분한 시간 여유를 두고 절차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추천위원회를 통한 선임의 경우에는 국회의 인사청문 및 동의절차에서 부결될 경우에 대비하여 - 비공개를 전제로 - 후보자의 순위를 정하는 것도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가장 우려되는 점의 하나는 유능한 인재들이 계속 사법부를 떠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대법원장이나 헌법재판소장으로 적합한 인재들이 계속 줄어든다면, 대법원장 등의 인선에서 유사한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므로 이제는 사법부 내에서도 유능한 인재들을 잘 관리하고 성장시키는 것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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