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지상세미나] 지역의 힘으로 다시 대한민국
[국회지상세미나] 지역의 힘으로 다시 대한민국
  • 이철우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 경상북도지사
  • 승인 2024.01.16 17: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방소멸 위기, 실천적 방향과 대안’

지난 10월 27일 경북도청에서 제2국무회의라고도 불리는 제5회 중앙지방협력회의가 열렸다. 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장·차관, 시도지사 모두에게 책을 선물했는데, 그 책은 서애 류성룡 선생이 저술한 ‘징비록(懲毖錄)’이다. 

징비(懲毖)는 ‘지난 잘못을 경계해 삼간다’는 뜻으로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임진왜란(1592~1598) 동안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한편, 전쟁이 발발한 원인부터 전쟁 과정 중에 조정의 실책을 기록한 반성적인 글이다. 후세를 위해 부끄러운 역사를 이겨내고 오늘을 있게 한 위대한 기록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회에서 열린 '지방 소멸 위기, 실천적 방향과 대안' 세미나에서 시도지사 등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
국회에서 열린 '지방 소멸 위기, 실천적 방향과 대안' 세미나에서 시도지사 등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

징비록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지방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지방 관료가 한양에서 파견되다 보니 주인의식이 없었고,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관료가 먼저 도망가니 지방이 무너지며 불과 20일 만에 수도 한양이 함락됐다. 

지역이 소멸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각 지방정부는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중앙정부가 기획한 국가재정사업을 지역에 유치해 인구 유출을 막아보자는 필사적인 몸부림인 것이다. 

지역의 주인은 지방정부인데 각종 사업을 총괄하는 곳은 중앙정부이다 보니 전국에 유사한 사업들이 붕어빵처럼 펼쳐져 있고, 지방정부 간에는 경쟁을 계속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지방을 살릴 수 있는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의 특성과 발전 방향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데, 각 부처로 분절된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지방정부의 생존을 위한 간절함을 이해할 수 없다. 지역의 주인인 지방정부가 주체가 되어 지방시대를 열어야 하는 이유다. 

지방정부에 권한 대폭 넘기고 메가시티 지방도시 만들어야

망국의 병(病), 수도권 집중으로 대한민국이 신음하고 있다. 출산율은 0.7명대로 역대 최저수준으로 떨어졌고, 출생아 수도 20만 명대로 감소했다. 인구의 50.3%, 청년인구의 55%가 국토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고, 1000대 기업의 86.9%가 수도권에 위치해 지방의 청년들은 취업을 위해 지역을 떠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도지사를 6년 해보니 지방정부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정말 없다. 조직에 대한 권한도 예산에 대한 권한도 모두 중앙의 통제를 받다 보니 중앙정부에 읍소하는 게 일이 되어 버렸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행안부 허락 없이는 ‘국’ 하나도 신설하지 못하는 현실이고, 재정적인 측면에서도 중앙정부 의존도는 높아지고 있다. 2023년 조세 중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은 74:26이다. 심지어 지방세 26%를 광역정부와 기초정부가 나눠야 하기 때문에 지방자치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도지사로서 10조 원이 넘는 예산을 운영하고 있지만, 도지사가 주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예산은 1000억 원에 불과하다. 예산 대부분이 보조금이라는 형태의 꼬리표가 달린 예산이기 때문이다. 

중앙지방협력회의를 위해 경북도청을 찾은 대통령께도 강력히 얘기했다. 

“지방정부가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권한과 자율을 부여해야 한다. 제주특별자치도가 된 지 17년이 지났지만 크게 달라진 게 있나? 지역의 산과 바다, 문화자원을 모두 중앙에서 관리하고 있어 지방정부가 나서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싱가포르는 제주도의 절반 밖에 안 되는데도 국제적인 도시가 되었고 교육 수준도 높다. 울릉도만이라도 도지사가 직접 운영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모든 권한을 달라”고 요청했다. 

경북이 주장하는 외국인 광역비자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한을 지방정부로 대폭 이양하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고, 국가와 지방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역사와 정체성을 같이하는 충청, 호남, 부산경남(PK), 대구경북(TK)을 통합해 500만 지방 메가시티를 만들어 국제적인 도시와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수도권 빨대 현상을 타파하고 지방 도시의 원심력을 확장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 구현을 국정 목표로 삼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지방시대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대통령과 시도지사가 참여하는 중앙지방협력회의를 활성화하고 분기별로 정례화함에 따라 중앙-지방간의 의사소통 방식이 기존의 수직적에서 수평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또한 국회 차원에서도 지방소멸 방지와 지방시대 구현을 위한 입법 활동이 늘고 있고 국회입법조사처에서도 적극 지원하고 있어 고무적이다.

하지만, 부처의 칸막이는 생각보다 높다. 조직과 예산, 규제 권한을 움켜쥐고 지방정부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만들고 있으며, 이에 대한 피해는 온전히 국민들의 몫이다. 범국가 차원에서 ‘지방시대’를 국가 아젠다로 설정해 대폭 권한을 이양하고 지방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사회적 공감대를 함께 형성해 나갈 때 진정한 지방시대가 되어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다. 

이번 정부에서 대학교육 진흥 권한을 지방정부로 이양하고 지방에 글로컬 대학과 같은 국제적 강소대학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추진 중인데, 이를 위한 제도적 기반으로 ‘외국인 광역비자’ 제도를 제안한다. 

현재 법무부 주도로 도지사가 비자를 추천하면 법무부가 허가해 주는 형태인 ‘지역특화비자’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북이 주장하는 외국인 광역비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비자 발급 일부 권한 자체를 시도지사에게 넘겨주자는 것이다. 외국의 청년들이 우리 지역의 대학에 와서 교육받고 빈 일자리를 채우며 본국의 가족들과 함께 지역에 정착해 사는 다양한 공동체의 모습을 만드는 것이 지방소멸 방지를 위한 또 다른 대책이 될 수 있다. 

국회에서도 광역비자 도입을 위한 법률 개정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임이자 의원이 발의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과 ‘인구감소지역 특별법 개정안’은 인구감소지역을 관할하는 시도지사가 외국인 산업인력과 이공계 유학생의 체류 및 거주지역을 해당 시도로 한정하는 광역비자를 법무부장관과 협의해 발급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울러 외국인 유학생의 부모에게 취업비자를 주는 정책도 추가적으로 도입해 볼 만하다. 지방대학에 외국인 유학생 1명이 입학할 때 부모 2명에게 취업비자를 줄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면 소멸의 위기를 겪고 있는 지방정부에도 큰 힘이 될 것이다. 

성장세 산업을 지역 밀착형 산업으로 재구조화

지방이 살기 위해서는 성장세에 있는 국가전략산업의 주 활동무대를 지방으로 이전해야 한다. 과거 산업화 시절에는 지방의 산업단지들이 국가 기간산업을 지탱하면서 대한민국 발전을 견인했다. 포항의 철강산업단지, 구미의 국가산단, 울산의 조선과 자동차 산업 등이 예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수도권 규제 완화와 더불어 주력 산업들이 수도권으로 집중되었다. 반도체는 용인, 수원, 평택을 중심으로 클러스터가 형성되었고, 디스플레이 공장들도 파주에 자리를 잡으면서 수도권 집중은 더 가속화되었다. 

지방이 살기 위해서는 성장산업으로 국가전략산업으로 관리해 의도적으로 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할 수 있는 지원체계를 갖춰야 한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국가첨단전략산업법’은 국가첨단전략기술을 지정하고 보호·육성하기 위한 방안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를 지정할 수 있게 하였다.

그 결과, 7곳의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가 지정되었다. 국가적 효율성을 위해 용인·평택을 반도체특화단지로 지정하기도 하였지만, 비수도권에서는 유일하게 구미가 반도체특화단지로 지정되었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점유율을 가진 배터리 산업은 포항, 울산, 청주, 새만금을 특화단지로 지정했다.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국가전략산업으로서의 가치를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목표에 투영시킨 정책적 판단이기 때문이다. 

경북의 배터리 특구 성공 사례는 배터리라는 성장세에 있는 산업을 지방에 정책 특구 형태로 공간을 만들어 준 대표적인 예이다. 제대로 된 정책을 펼친다면 지방에도 기업들이 투자할 충분한 유인책이 되고, 지방정부와 대학은 맞춤형 인재를 육성해 기업에 공급하면, 지역에 대한 재투자는 물론 선순환이 될 것이다. 

지역특화산업과 대학을 연계

경북은 22개 시군의 특화산업을 중심으로 대학과 기업을 매칭해 인재를 육성해 기업의 인재 채용을 지원하고, 지방정부는 청년들이 정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K-U시티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교육부의 지방대학 진흥권한 이양과 RISE시법사업 선정은 지방정부가 주체적으로 사업을 펼칠 수 있는 정책적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중앙정부-지방정부-대학-민간의 새로운 역할 분담으로 지방을 살리기 위한 실험들이 경북에서 계속 진행 중이다. 비수도권에 민간이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도록 범국가적인 사회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국회 차원에서 불필요한 규제 완화를 위한 입법적 노력이 병행된다면 ‘지방시대’가 새로운 국가성장 동력으로 작동할 것이다. 

얼마 전 경북도청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 한덕수 국무총리,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과 함께 ‘지역의 힘으로 다시 대한민국’이라는 기념식수 표지석을 남겼다. 표지석의 문구와 대통령의 의지처럼 ‘대한민국 어디서나 잘살 수 있는 지방시대’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