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 이제‘쿨’하게 물러서라
386, 이제‘쿨’하게 물러서라
  • 미래한국
  • 승인 2009.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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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386 칼럼
▲ 김기린 간사
‘386세대’라는 명칭이 90년대 말 전염병처럼 유행했던 것을 보면 세대의 가치에 대한 수요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나 역시 대학에 입학한 2003년 당시, 참여정부의 등장과 함께 전성기를 구가하던 386세대의 상징성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

또 민주국가를 거저 얻어 살고 있는 것 같은 나와 달리 자신을 희생해 이 땅에 민주화를 뿌리내린 386세대에 대하여 마음의 빚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이념 일변도로 구습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버티는 지금 그들의 모습이 더욱 안타깝다.

386세대는 영웅 심리의 늪에 빠졌다. 정치적 불모지에 자신들이 희생해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승리의 체험은 도취를 불러왔다. “우리가 움직이면 세상이 바뀐다”는 자신감은 “우리가 없으면 세상이 망한다”는 자만이 됐다.

게다가 1980년대에 대학에 갈 수 있는 건 상대적으로 혜택 받은 계층이었기에 386이라는 명칭에는 이미 대학을 다닌 이들과 나머지를 구분하는 특권의식이 내재한다. 물론 우리 주위에는 구석구석의 현장에서 조용히 그들이 외치던 가치들을 실현해가고 있는 생활인 386세대가 많다.

그러나 386세대의 순수성은 권력을 만나면서 빛을 잃었다. 노무현 정권을 거치며 386정치인의 현실감각, 실전능력이 만천하에 드러난 데다 현실과 타협하고 능력과 무관하게 권력에 집착하는 모습은 기대를 품었던 많은 이들에게 실망감만 안겨 주었다.

어떤 참신한 것도 시간이 지나면 고리타분해진다. 그런데 그들은 여전히 신선하고 도덕적이며 순수하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386세대라는 명칭에 순수한 진보성이 아직 남아 있었을 때 역사 속에 묻혔더라면, 그들은 여전히 존경받는 선배세대일 것이다.

그러나 권력에 매혹된 386세대는 구태의연한 태도로 이미 단물이 빠질 대로 빠진 이름을 계속 물고 늘어졌다.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다 보면 트렌드에 뒤처지고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게다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박연차 리스트’의 전말이 밝혀지며 좌파에 대한 상대적으로 깨끗하고 도덕적이라는 근거없는 선입견마저 깨져 버렸다. 이번 사건으로 전 정권의 부정부패가 낱낱이 공개되면서, 능력은 없지만 적어도 깨끗하다고 자위하던 국민들의 믿음이 산산조각 난 것이다. 우리 국민은 또 한 번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는 광경을 지켜보게 됐다.

그런데 이를 대하는 좌파 정치세력의 행보가 어떠한가. ‘노무현 정권이 과연 좌파였는가’라는 생뚱맞은 물음을 던지며 핵심을 흐리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386세대를 시대의 주역으로 도약시킨 상징적인 존재이다. 그를 앞세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다 누리고는 이제 방해가 되니 도마뱀 꼬리 자르듯 버리고 가겠다는 몰염치한 심산은 인간적으로도 용납하기 힘들다. 중이 고기 맛을 보면 절에 빈대가 안 남는다더니, 이미 기존의 지배구조에 타협한 386세대가 뿌리까지 부정하며 버티는 모습은 굴종에 가깝다.

조국의 민주화를 외치던 거대담론의 시대는 갔다. 세세하고 다양한 담론들이 혼재하고, 모든 문제가 생활 속에서 논의되며 그 안에서 가능하다. 감성을 중요시하고, 속박과 정체를 경멸하는 세대가 시대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기 자신이다. 그만큼 대중을 설득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밀도가 다르면 절대 스며들 수 없다. 보다 소프트하고 발랄한 시민운동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나는 공허한 이념에 경도되지 않은 새로운 세대를 기대하며 시민운동의 길을 선택했다.

80년대 자욱했던 최루탄 연기는 사라진 지 오래임에도 사회적인 활동에 대한 무겁고 어두운 이미지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 길을 걷겠다는 나를 염려하는 주위의 반응에서 내가 지고가야 하는 편견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그런 나에게 386세대라는 존재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한 자락의 선배이면서도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할 대상이다.

지난해 한 주간지에서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대표가 386세대에게 충고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만루홈런에 대한 추억을 잊고, 이제 생활로 돌아가 깨끗한 1루타를 노리라”는 것이었다. 좌파의 대표적 명사이자 386세대이기도 한 그의 자성에 공감한다.

386세대 스스로 자신들을 속박하고 있는 386이라는 때 묻은 이름에 안녕을 고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를 바란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미 아름답기엔 늦은 감이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밀려나는 모양새보다는 새로운 세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시쳇말로 쏘쿨(so cool)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최선이다.
‘386세대’와의 작별 이후 제대로 정체성을 확립한 건강한 진보의 탄생을 고대한다. #

/김기린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팀 간사, 숙명여대 정외과 졸업(03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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