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타나모 수용소 문제에 갇힌 오바마
관타나모 수용소 문제에 갇힌 오바마
  • 미래한국
  • 승인 2009.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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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여 명의 테러분자들 수감
▲ 관타나모 수용소에 테러 용의자들이 수감돼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당선되면 현재 290여 명의 테러분자들이 수감되어 있는 이 수용소를 폐지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현실 앞에서 그의 이상은 힘을 잃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기세좋게 폐지하겠다고 외쳐온 관타나모 수용소 문제에 정작 자신이 갇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5월 21일 워싱턴DC 내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부시 행정부 때 테러리스트들을 갇아두기 위해 쿠바 관타나모만에 세워진 수용소 폐지를 분명히 했다. 그는 “관타나모 수용소 수감자 문제는 그 시설을 폐지하는 나의 결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 시설을 처음 설치한 (부시 행정부) 결정 때문”이라며 부시 행정부를 비난했다.

관타나모 수용소는 테러분자들이 정당한 재판없이 이곳에 수감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럽 등으로부터 ‘인권의 사각지대’라고 비난을 받아온 곳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당선되면 현재 290여 명의 테러분자들이 수감되어 있는 이 수용소를 폐지할 것이라고 약속했고 실제로 취임 후 이틀만에 향후 1년 내 폐지할 것이라고 선언, 진보인권단체들을 환호하게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 헌법과 독립선언서가 소장되어 있는 국립문서보관서에서 이 연설을 행하며 자신은 인권, 자유, 생명을 존중하는 미국의 근본적 가치 위에 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현실 앞에서 그의 이상은 힘을 잃고 있다.

미 상원은 그 전날 오바마 대통령이 관타나모 수용소 폐지와 그 수감자의 미국 이송을 위해 요청한 비용 8,000만 달러를 90대 6이라는 압도적 차로 거부했다. 하원도 마찬가지였다.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이 등을 돌린 것이다. 이유는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지하면 그 안에 있던 미국과 미국인을 테러하려다 붙잡힌 위험한 수감자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관타나모 수용소 폐지를 주장해왔던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NIMBY(Not-In-My-Back-Yard) 현상’을 보이며 자기들이 속한 주에는 관타나모 수감자들이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하나같이 손사래를 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한 고립된 섬이 관타나모 수용소를 대체할 후보지로 오르자 민주당의 다이안 페인스타인 캘리포니아 상원의원은 “관타나모 수용소 폐지는 역사적인 조치이지만 우리 주는 안 된다. 다른 주 감옥을 찾아보라”고 말했다. 콜로라도에 있는 슈퍼막스라는 감옥이 후보지 물망에 오르자 민주당의 마이클 베넷 콜로라도 주지사는 바로 거부했다.

관타나모 수용소 폐지를 주도해왔던 민주당 짐 웹 상원의원(버지니아)은 지금은 폐지를 유보하자는 입장이고 민주당 상원대표인 해리 리드 상원의원은 관타나모 수감자 한 명도 미국본토에 발을 붙이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자기 주에 관타나모 수감자들을 받아들이면 다음 선거에서 낙선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미국 내 감옥에 관타나모 수감자들을 수감하는 것 역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로버트 뮬러 미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최근 의회청문회에서 “관타나모 수감자들이 미국 감옥에 들어오면 다른 일반 수감자들을 이슬람극단주의자로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근 뉴욕에서 유대인 회당 등을 폭파하려다 붙잡힌 미국인 3명이 감옥에서 다른 이슬람극단주의자에 영향을 받아 이슬람으로 개종해 이른바 ‘성전’(聖戰)인 지하드를 감행하려 한 것은 이 우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관타나모 수감자 중 50여 명은 외국으로 보낼 예정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을 받아들일 나라가 없다는 것이다. 관타나모 수용소 폐지를 줄기차게 주장하며 미국을 인권 침해국이라고 비난해온 유럽국가들은 관타나모 수감자 일부를 수용하라는 요청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예멘 등 중동국가는 이들을 받아 제대로 수감할 수 있을지 확신이 가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5월 21일 펜타곤 보고서를 인용,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있다 풀려난 사람들 가운데 7명 중 1명이 다시 테러분자로 돌아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관타나모 테러분자들을 미국 내 민간법원에서 재판할 경우 그 죄를 입증할 자료가 대다수 비밀보호로 되어 있고 대다수가 전장에서 붙잡혀 다른 자료가 있지 않아 민간법원에서 재판자체가 어렵다는 것도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딕 체니 전 부통령은 5월 21일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후 이틀째되는 날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지할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그것은 충분한 고려와 구체적 계획을 갖고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며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지하면 유럽의 박수를 받는 것은 쉽겠지만 정의와 미국 안보를 위한 대안을 찾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7월까지 관타나모 수감자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발표했다고 말했지만 현재로서는 대책이 막연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상황이 이렇게 되자 현실에 맞춰가고 있다. 그는 5월 21일 연설에서 처음으로 “미국에 중대한 위험이 되는 관타나모 수감자 일부는 재판없이 영원히 수감되어야 한다”며 “이것은 우리가 직면하는 가장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단체들은 오바마의 이 말에 실망하고 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사실 부시 행정부 당시 안보 관련 조치들을 말로는 비판하지만 실제로는 따라하고 있다. 애국법, 도청, 이메일가로채기, 군사법원, 무인비행기 공격, 이라크 주둔 미군 점진적 감축, 아프가니스탄 미군 증원 등이 그 예다.

오바마 대통령은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행해졌다고 하는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 물을 붓는 심문법인 ‘얼굴에 물붓기(waterboarding) 등을 야만적인 방법이라며 부시 행정부가 정도에서 벗어났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2002년 9월 미 중앙정보국(CIA)으로부터 ‘얼굴에 물붓기’심문법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고 그 때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이 알려지며 사실상 지지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자 이를 비난해왔던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 민주당은 당혹해 하고 있다.

공화당의 전통적 우세 이슈인 ‘국가안보문제’가 불거지며 이에 대한 공화당의 공세가 강화되는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이 관타나모 수용소를 어떻게 해결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워싱턴 이상민 특파원 smlee@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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