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에 빠진 미디어법, 원칙대로 처리하자
딜레마에 빠진 미디어법, 원칙대로 처리하자
  • 미래한국
  • 승인 2009.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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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재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위원
▲ 변희재 위원
여야 추천 10명씩 동수로 구성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이하 미디어위)의 활동이 6월 말로 100여일 만에 끝났다. 결국 각 정당 추천의 정파성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각자 따로 보고서를 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른바 한나라당 추천위원들은 한나라 법안에 찬성의견을 낼 것이고 민주당 추천위원들은 반대할 것이다. 그리고 법안에 대한 논쟁은 다시 국회 문방위로 넘어올 전망이다.

미디어위는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지만 좌우 양 진영의 시민사회 및 학계인사들이 한 자리에서 소통을 하면서, 향후 미디어법의 처리에 대한 문제를 짚어보는 데에는 그 의미가 있었다. 어차피 미디어위는 여야의 대리전 양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여야 위원 단 한가지 쟁점도 합의 못해

미디어위의 100여일 동안 방송법, 신문법, 정보통신망법, IPTV법 등에서 기존의 여야 문방위에서 대치하던 논점 중 합의가 된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신문과 대기업이 방송을 소유 및 겸영할 수 있게 하는 찬반이 분명한 쟁점은 말할 것도 없다. 인터넷 피해자를 구제하는 구체적인 조항이 담긴 정보통신망법조차도 합의되지 못했다.

이렇게 각자의 다른 의견이 합의되는 것은 둘째 치고, 인터넷실명제, 제한적 본인확인제와 같은 정확한 개념조차 합의되지 않았다. 미디어위 인터넷분과에 참여한 필자는 인터넷실명제와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그 기능은 물론 제도의 입안까지 완전히 다른 것이라는 점을 누누이 설득했다. 그러나 민주당 측 위원들은 이에 대해 아무런 합리적 반론도 제시하지 않은 채 이 두 제도가 똑 같다는 주장만 되풀이 했다. 이런 기초적인 개념조차 합의가 안 되니, 의견이 합의될 가능성은 없었던 것이다.

필자가 놀란 점은 민주당 측 추천위원 중 시민운동가들이 아니라 학계인사들조차 똑 같은 행태를 보였다는 것이다. 즉 민주당 측 추천위원들은 처음부터 열린 자세로 법안을 논의할 생각이 없었고, 모든 개정안에 반대하면서 여론조사를 실시하여 반대투쟁의 명분을 삼겠다는 의도만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한나라당 측 추천위원들이 열린 자세를 보였던 것은 아니다. 다만 평소에 운동권의 동지로서 탄탄한 팀웍을 갖추고 참여한 민주당 측 위원들과 달리 한나라당 측 위원들은 대개 잘 모르는 사이들로 구성되었다. 그러다보니 민주당 측 위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활동한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한나라당 측이 원했던 방향, 예를 들면 회의 비공개 같은 것이 한나라당 측 위원들 중 다수가 공개를 주장하면서 뒤집히기도 했다. 반면 민주당 측 위원들끼리 의견이 엇갈렸던 적은 내 기억으로는 없었던 것 같다.

여전히 국민여론 70%가 미디어법 개정 반대

현재 민주당 측 위원들은 각자의 시민단체로 돌아가서 미디어법 개정의 입법 저지를 위한 총력투쟁에 들어갈 태세이다. 이러한 투쟁의 중심에는 전국언론노조가 있다. 실제로 회의 막판에 가장 먼저 퇴장을 결정한 것도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이었다. 이 언론노조를 중심으로 민언련, 미디어공공성포럼, 언론연대 등 진보좌파 시민사회와 언론단체는 대대적인 반대투쟁 여론을 형성할 것이다.

이들이 자신을 갖고 있는 점은 국민의 70% 이상이 미디어법 개정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이다. 아무리 국회에서 한나라당 측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하더라도 70% 이상의 국민이 반대한다면 이를 밀어붙이기란 쉽지가 않다.

한나라당의 경우 4월 재보선 패배 이후 아직까지도 내부 전열을 정비하지 못하고 있다. 쇄신위 활동은 당의 통합은 커녕 한 발 앞으로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원내대표 선거로 오히려 이른바 친이와 친박의 갈등은 더 깊어졌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70%가 반대하는 미디어법을 한나라당이 단합된 힘으로 통과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한나라당 내부 인사들조차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한나라당, 미디어법 통과시킬 확신 없어

일단 한나라당 출신의 김형오 국회의장의 태도가 명확하지가 않다. 여야 간사들 간의 합의로 6월 표결처리가 약속되었지만,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무효를 선언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의 단독처리가 가능하려면 김형오 의장의 직권상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김의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디어법은 서두를 일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물론 이것이 직권상정을 거부한다는 명시적 표현은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거부할 명분으로서는 충분한 발언이다.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쇄신파와 친박 진영 의원들의 미디어법 처리에 대한 부정적 정서이다. 애초에 한나라당 측은 미디어법을 제안할 때, 당내 다수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오히려 재보선 이후 분열된 한나라당의 내부 사정 상 간극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쇄신파와 친박 진영 의원들은 “과연 현재의 한나라당의 대국민 지지도나 신뢰도로 볼 때, 국민여론 설득없이 쟁점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건으로 집권 여당의 지지도가 크게 떨어진 예상치 못한 변수도 발생했다.

반면 이른바 친이 직계의원들의 입장은 단호하다. 만약 이번에도 미디어법을 상정하지 못한다면 결국 집권 내내 미디어법 통과는 물거품이 된다는 우려들을 하고 있다. 심지어 쇄신파나 친박 진영 의원들의 동의를 구하지 못하고, 최악의 경우 표이탈로 표결처리가 부결된다 하더라도 원칙대로 6월 국회에서 표결처리를 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의원들도 있다. 여야 간에 표결처리를 합의해놓고, 법안을 올리지도 못한다면 이제 앞으로 그 어떤 법안도 여야 합의로 처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미디어법 개정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는 조선, 중앙, 동아와 같은 메이저신문사의 입장도 이와 유사하다. 중앙일보의 한 관계자는 “외부에 비치는 것처럼 우리가 반드시 방송사업을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국회에서 표결처리하기로 합의했으면, 부결되든 가결되든 표결처리해야 하는 것이지, 여론 따라 원칙이 흔들리는 것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지금으로서는 미디어법 처리를 예상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아예 상정을 하지 않는 경우, 상정하여 한나라당의 이탈로 부결되는 경우, 상정하여 통과되는 경우 이 세 가지의 상황만 설정해볼 수 있다.

미래 불투명, 원칙대로 표결처리해야

상정하지 않는 경우는 집권여당의 신뢰성이 크게 떨어지며, 미디어법 처리를 요구하는 우파시민사회의 대대적인 정부 비판이 예상된다. 반면 상정하여 부결되는 경우는 이명박 정부가 소수여당이라는 점이 드러나며 큰 폭의 정계 개편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상정하여 통과될 경우, 민주당과 좌파시민사회의 강력투쟁으로 큰 판의 좌우전쟁으로 번지게 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당리당략만으로는 어떤 상황이 더 유리할지 계산하기도 어렵다.

만약 필자 개인의 입장을 묻는다면, 계산으로 답이 나오지 않을 때는 원칙대로 가는 게 맞다는 것이다. 표결처리 하기로 했으면 표결처리하는 것이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집권여당으로서 책임을 지는 것, 그 방법 밖에 없지 않을까? #

변희재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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