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위험한 북핵 인식
오바마의 위험한 북핵 인식
  • 미래한국
  • 승인 2009.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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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 박사의 전략이야기

8월 9일자 뉴욕타임스는 오바마의 북한 및 북한 핵문제에 관한 우려스런 인식을 보여주는 기사를 실었다. 동 신문은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북한 핵 프로그램의 완벽한 폐기보다는 핵 기술의 확산을 막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미 오바마는 MSNBC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더 이상 핵을 개발하지 않고, 도발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애매모호한 언급을 했다. ‘더 이상’ 핵개발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기왕의 핵개발은 용납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는 중대한 언급이다.

물론 그 이후 각종 언론매체들을 통해 전해진 오바마의 입장은 ‘북한의 핵무기를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북한의 핵을 ‘완전히 폐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느냐 혹은 ‘핵확산을 봉쇄하는 것’을 목표로 삼느냐의 문제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이며 우리에게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우리는 이 문제를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한다.

만약 미국이 북한의 핵기술 확산을 봉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그 같은 목표가 이루어지는 상황을 북한 핵문제가 해결된 상황이라고 간주한다면 그 경우 북한은 명실공히 미국이 인정하는 핵보유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여러 발 보유하고 있는 핵폭탄을 다른 나라에 건네지 않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북한은 기왕에 만들어 둔 핵무기로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음과 동시에, 핵확산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상당한 대가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해결방안은 1994년 10월 21일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국과 북한이 제네바에서 이룩한 핵합의가 그 전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미국은 북한의 핵활동을 ‘동결(Freeze)’ 하는 수준에서 문제를 덮는 방식을 취했다. 북한은 더 이상의 핵활동을 중지하고 미국과 관련국은 그 대가로 북한에 경수로 핵발전소를 제공하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1994년 봄 무렵 미국사람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1-2개 정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해 여름 미국사람들은 또한 북한 핵의 동결이라는 방안을 들고 나왔다.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한 후 미국은 북한과 급히 협상을 서둘렀고, 10월 21일 북한 핵을 ‘동결’ 시키는 선에서 핵합의를 이루어냈다. 미국사람들은 제네바 합의가 미국에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직전 필자는 북한 핵문제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를 위해 미국과 일본을 방문, 관련 인사들과 면담을 가질 기회가 있었는데 동경의 미국대사관에서 만난 로버트 카네다 씨는 미국이 인식하는 북한 핵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말했다.

필자는 미국이 북한 핵문제 해결 방안으로 ‘동결’ 이라는 말을 자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미국은 이미 북한이 핵폭탄을 1~2개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북한이 보유한 핵폭탄 1~2개는 인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 라고 질문했다. 놀랍게도 카네다 씨는 미국은 북한이 보유한 1~2개의 핵폭탄은 인정할 수 있다고 대답하며, 미국이 우려하는 바는 북한이 핵을 수십 발 만들어 중동의 국가들에 확산시키는 것이라며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필자는 미국은 북한의 핵 1~2개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은 한국의 경우 치명적인 위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카네다 씨는 그것은 한국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대답했다. 과연 북한은 이미 핵을 1~2개 가지고 있기는 한 것이냐는 필자의 질문에 그는 “어제 비가 왔는데, 오늘 ‘어제 비가 오지 않았다고 말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라며 반문했다.

지난 8월 9일자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북한의 핵이 확산되는 것을 봉쇄만 잘해도 되는 이유로 북한이 대단히 허약한 상태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김정일과 북한은 더 이상 클린턴 행정부 때처럼 공포를 심어줄 수도 없으며, 최근의 핵·미사일 실험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위협은 공허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 나아가 뉴욕타임스는 “북한 공군기들은 전쟁을 시작하기는 커녕, 장기간 공중에 뜰 만큼의 연료도 부족한 상태”라는 한국 관리들의 말도 인용했다.

한국관리가 했다는 말이 정말이라면 진정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전략론의 기본 원칙은 낙관적인 상황을 가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강성대국, 선군정치를 국가 모토로 삼아 수백만이 아사하는데도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한 나라가 북한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이 전쟁을 시작하고 수행할 수 있는 휘발유를 수개 월치 이상 비축해 두고 있다고 보고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전략적 사고다. 북한에 정말 석유가 없다면 그들은 서울에 도달하는 남침 통로 주변에 무수히 늘어서 있는 대한민국의 주유소를 장악할 계획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겠나?

물론 현재 오바마 행정부의 공식 목표는 여전히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핵폐기’다. 누구도 봉쇄가 1차 목표가 됐다고 공식 인정하지는 않는다. 헨리 키신저 박사도 오바마가 북한 핵을 봉쇄하는 것으로 정책 목표를 바꾸면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북한 핵무기 및 기술의 확산을 완전하게 ‘봉쇄’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미국의 대북 핵정책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애초부터 북한이 핵무기로 미국을 직접 공격할 가능성은 없었다. 북한의 핵무기가 테러리스트의 수중에 들어가고, 테러리스트가 북한제 핵폭탄을 미국의 어느 도시에서 폭발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다면 우리의 입장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북한이 핵폭탄을 여러 개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미국이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선언한다면 우리는 그날부터 북한의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용납하면 안 되는 상황이다.

북한이 6자회담을 거부하며 미국과의 양자 대화를 그토록 고집하는 이유는 북한 핵에 대한 미국의 위협 인식이 한국, 일본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약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인 기자를 풀어준 것을 기회로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고대하고 있다.

오바마식 발상은 결코 우리가 용납할 수 있는 북한 핵문제의 해결 방안이 아니라는 사실을 미국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인식시켜야 한다. #

이춘근 이화여대 겸임교수, 뉴라이트 국제정책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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