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쌀소비 촉진 대책
확실한 쌀소비 촉진 대책
  • 미래한국
  • 승인 2009.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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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영인 한국자조금연구원 이사장
▲ 박영인 서울대 초빙교수 / USGC(美 곡물협회) 한국회장


한국인의 에너지원은 바로 ‘쌀밥의 힘’이라 말해오던 그 귀중한 쌀이 이제는 푸대접을 받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다. 먹거리인 쌀 자체의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먹고 남아돌아 가격이 떨어지고 과잉 재고처리에 정부가 너무 힘겨워 해서 그렇다.

1970년대의 개발연대에는 농정의 제1과제가 식량자급이고 쌀 증산은 그 첫 과제였는데 2000년대에 들어 경제가 많이 발전되고 식생활 패턴이 크게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겪고 있는 일종의 ‘배부른 비명’이라고나 할는지.

요즈음 언론과 국감을 통하여 쌀 문제가 심각하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있다. 농민만 해도 수확해야 할 벼를 논에서 갈아엎고 농협 RPC(미곡종합처리장)를 봉쇄하며 생산비에 밑도는 쌀값 대책을 세우라고 소리 높인다. 심지어는 여성 농민대표들이 서울에 와서 삭발시위까지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의 대응과 정치권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현재로서는 공급과잉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다. 똑 같은 한반도 내에서 북쪽은 쌀이 모자라 배가 고프고 남쪽은 쌀이 남아 지천인 상황이 몹시 씁쓸하게 느껴진다.

문제의 핵심은 쌀 소비가 감소하는 데 있다. 수급 불균형 문제를 보면 공급 측면의 논농사와 쌀 수입, 수요 측면의 국내소비와 쌀 수출, 또는 북한제공 등 많은 요인이 있지만 모두 쉽지 않은 사항들이고 이 가운데 가장 큰 문제가 바로 국내 쌀 소비가 계속 줄고 있다는 사실이다.

30년 전만 해도 국민 1인당 연간 2가마 가까운 쌀을 먹었는데 지금은 1가마(80kg)도 안 되는 수준이다. 이는 이미 일본이나 대만에서 다 경험한 바이고 이대로 가면 그 추세는 지속될 것이 뻔하다. 오죽하면 얼마 전 대통령 지방 순시에서도 쌀 소비촉진 방안을 언급했겠는가. 이제는 쌀 소비 촉진이 미래 한국의 중요한 과제로 되어가고 있다.

쌀 소비 위축의 문제는 농민의 쌀값 하락으로 직결되어 더욱 걱정이다. 전에는 소위 ‘이중곡가제’라 하여 정부의 매입과 재고조절 및 물가안정 정책으로 농민가격을 일정수준 보장해 주기도 했는데 WTO와 세계화 이후 시장경제체제가 이렇게 상황을 바꾸어 놓았다.

그래서 정부는 우선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해 가공식품을 개발하고 쌀 많이 먹기 캠페인을 다각도에서 벌이고 지자체, 농협, 기타 쌀 관련 단체들도 이에 동조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농가 조수익의 40%, 경지면적의 60%를 차지하는 이 쌀의 위상과 국민정서를 생각해서라도 소비촉진을 통해 쌀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반드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려되는 사실 하나는 쌀이 너무나 정치성을 띤 품목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농민은 쌀 문제라 하면 무조건 정부가 해결해 줄 것을 요구하고 정부는 그때 그때 상황 적응적인 대책 남발에만 익숙해져 있다.

이번에도 손쉽게 가공식품화나 대북지원, 또는 행사성 대책을 말하고 있는데 이러한 부분적인 일과성 소비확대 방안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쌀 가공만 해도 밀가루 대체인 경우 쌀값이 밀의 4배이고, 또 우리가 생산하는 쌀은 국제시세의 5배 가량이다.

게다가 국민들이 너무 오래 밀가루 음식에 입맛이 젖어 있는 것도 문제이다. 쌀 소비를 늘리려면 장기적이고 일관된 소비촉진 전략의 수립과 실행이 절대적으로 긴요하다.

여기서 우리는 가장 확실한 쌀 소비 증가대책으로 쌀 자조금제도를 생각할 수 있다. 자조금이란 단어는 아직 우리말 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아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용어이지만 축산과 원예 부문에서 이미 널리 활용되고 있는, 농민이 자기 산업을 스스로 지키려고 하는, 농업 내부의 자구대책이다.

쉽게 말하면 품목별(소, 돼지, 파프리카 등)로 소속 농민들이 생산물을 팔 때마다 극소액(대개 판매액의 0.1~0.5%)을 공제/징수(십시일반)하여 그 품목의 소비 촉진과 관련 연구 및 교육에만 사용하는 자조사업 자금이다. 이는 농업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에서 1930년대 이래 실시하고 있는 법정 방식으로 시장경제체제에서 농민과 정부가 공동 수행하는 프로그램이다. 민주주의를 도입했듯이 우리도 이미 자조금 제도를 들여와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쌀 자조금은 아직도 논의만 해오는 과정에 있다. 이 제도는 해당 전 농민의 투표과정을 거친 사전 동의가 필요하고 일단 실시하게 되면 모든 쌀 농민이 의무적으로 조금씩 부담(가마당 몇 백 원씩만 부과해도 수백억 원이 거출됨)해야 한다.

이러한 자조금은 납부자인 쌀 농민의 대표조직이 관리, 집행하게 되고 그에 따르는 별도의 입법이 필요하다. 정치성이 짙은 쌀 문제라서 미온적인 정부, 이기적인 각 단체, 정부 의존적인 농민의 합의 하에 쌀 자조금을 제도화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에 속한다.

그러나 그 중요성이 쌀에 버금가는 한우의 경우를 보면 이미 5년 전에 모든 절차를 밟아 지금 연간 220억 원에 달하는 재원으로 한우지키기(주로 소비촉진)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우육이 수입육의 3배 가격 인데도 현재 소값은 계속 오르고 앞으로 소파동이 일어날까 우려할 정도이다. 우리는 ‘한우자조금’ 이름으로 최불암을 내세워 ‘이 땅위의 자존심, 천상천하 한우독존’이라 TV광고 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기업들은 일반상품을 유용하게 잘 만들어 소비자에게 광고한다. 쌀도 마찬가지이다. 양질의 쌀, 나아가 기능성 쌀까지도 생산, 가공하여 소비자가 즐겨 먹을 수 있도록 알려야 하는 것이다.

밥이나 떡만이 아니고, 국수와 라면 이외에 과자나 각종음료, 기호성 식품에도 쌀이 들어가게 다양한 용도를 연구, 개발하고 HRI(호텔, 식당, 기관소비처)에 대량으로 공급하고 어려서 부터 쌀 식품에 익숙하게 하는 교육 등 지속적으로 소비 홍보하는 촉진활동을 수행하는 것이다.

나아가 수출과 유통, 생산계획도 자조금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쌀 자조금 사업은 법대로 추진해 쌀 산업이 존재하는 한 농민주인이 산업발전의 주체가 되고 필요한 것만 정부의 도움을 요청하는 체제로 정립시켜야 한다. 성숙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하의 진정한 쌀 산업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쌀 자조금은 확실한 쌀 소비 촉진 대책일 것이다. 그러나 누가 이 어려운 법제화 작업을 앞장서서 해내려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모든 사람의 일은 아무의 일도 아니라는 속담이 떠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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