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 있는 인재발굴 가능 공정·신뢰 확보가 관건
잠재력 있는 인재발굴 가능 공정·신뢰 확보가 관건
  • 미래한국
  • 승인 2009.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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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입학사정관제
▲ 지난 여름, 서울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2010학년도 입학사정관 전형 설명회에서 참석한 학부모 및 학생들이 각 대학 입학사정관들의 설명을 듣고 있다. 출처 뉴시스


교육문제 특히 대입은 국민적 관심사이다. 사교육비가 갈수록 증가하면서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전 정부에서는 교육의 본질에 충실히 접근하지 않고, 인기에 영합한 임시방편적인 정책을 남발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입학사정관제를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7월 27일 오전 라디오 연설을 통해 “임기 말쯤(2013학년도) 상당수 대학이 입학사정관제로 100%에 가까운 신입생을 선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부와 수능점수, 논술 등 성적 위주의 획일적인 학생선발을 배제하기 위해 대입자율화의 3단계 조치로 추진되고 있는 입학사정관제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은 “모든 학생들을 소중히 생각하면서 각자의 재능과 적성에 맞게 꿈, 역량, 잠재력을 키우는 게 진정한 교육”이라며 “이러한 원칙을 지켜나가기 위해 잘못된 규제를 풀어 자율화하고, 이념적·정치적으로 이용됐던 교육정책을 걷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현 정부의 대입제도 핵심으로 ‘입학사정관제’를 꼽은 이주호 차관은 “학생의 잠재력을 평가해 선발하는 입학사정관제는 성적 지상주의를 벗어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설명했다.

입학사정관제는 미국의 입학담당자(Admission Officer)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학생이 이수한 교육과정과 특별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해당 대학이나 모집단위 목적에 가장 적합한 자를 선발할 책무를 지닌다. 하지만 그 명칭에 ‘관(官)이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민간인 신분이고 또 폭넓은 전형 요소 고려를 위해 ‘입학사정인’ 혹은 ‘입학전형담당자’가 적합하다는 얘기다.

문제는 입학사정관제 도입이 얼마나 신뢰를 받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학 관계자들은 제도의 문제를 개선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지난 4월, 입학사정관제의 안정된 정착과 공정성·신뢰성 확보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대학입학전형위원회에 ▶입학전형공정관리위원회 및 자체감사위원회를 통한 자체 통제절차 마련 ▶대학별 ‘입학사정관 윤리규정 또는 윤리강령’ 제정 및 준수 ▶다수의 평가자에 의한 다단계 평가의 전형원칙 적용 ▶대학별로 구체적인 자체교육 및 전문기관에 위탁교육 계획을 수립해 입학사정관의 전문성을 강화하도록 주문했다.

지난 8월 열린 ‘입학사정관제 선정대학 총장 간담회’에서는 “비교과영역에서 고교와 대학이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이를 통해 공교육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뜻을 모았다. 또한 학생들의 소질과 능력, 적성 및 희망에 따라 선택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 필요성도 제기됐다.

대교협 입학전형지원실 관계자는 “학생의 교과.특별.재량활동에 관한 자료를 성실히 수집하고, 이를 충실히 기술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는 학생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아직은 시행 초기, 하나씩 보완해야

그러나 대입 현장에서 준비 없는 급격한 시행으로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2010학년도 대학 입시가 한창인 가운데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하고 있는 대학들은 선발 인원을 대폭 늘렸다. 지난해 4,000여 명 정도에서 올해는 47개 대학 2만695명으로 5배나 급증한 것. 이는 그동안 정부가 입학사정관제의 확대를 각 대학에 강력히 주문한 결과다. 하지만 각계에서는 정책의 진행 속도와 공정성에 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입시위주의 대입제도를 바꾸겠다는 정책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지는 전면 개편이 오히려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수험생의 성장 잠재력과 특정 분야의 재능 및 학습 과정 등을 중시하는 만큼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수 밖에 없다”는 한계점이 거론됐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김세연 한나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입학사정관의 19.9%가 1주일 미만의 연수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이 8월 한 달 간 47개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학생선발과 관련해 실질적 권한이 없다’는 답변이 30%를 차지했다. 46.1%가 입학사정관제로도 볼 수 없는 부분참여고, 이 같은 경우 입학사정관은 거의 서류 정리만 하고 실질적인 결정은 교수가 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또한 그들 중 14.1%는 ‘고액연봉을 제시받는다면 사교육시장으로 이직할 뜻도 있음’을 내비쳤다. 이는 대다수 입학사정관들이 비정규직인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입시전문가들도 “입학사정관은 고도의 전문성과 오랜 경험에 따라 축적된 노하우가 필요한데, 비정규직 비중이 지나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일부 대학들은 일단 비정규직으로 입학사정관을 채용한 뒤, 능력에 따라 정규직 전환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와 함께 자격증제도 도입에 관한 검토도 요구되고 있다. 입학사정관의 직업 불안정성에 대해 이주호 차관은 “내년엔 정규직이 많이 확대되도록 대책을 세워서 대학을 지원하겠다”며 “정규직으로 직장이 안정돼야 입학사정관들의 책임의식이 생긴다”고 입장을 밝혔다.

입학사정관제 운영에 따른 사교육 시장의 팽창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입학사정관제가 너무 빨리 확대되면서 사교육 풍선효과로 컨설팅업체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사교육을 받는 자녀를 셋이나 둔 한 학부모는 “단순 성적위주의 평가에서 벗어나 다양한 평가요소로 아이들의 잠재능력을 발굴하겠다는 취지엔 공감한다”면서도 “여기에 맞는 사교육이 정말 또 다시 생기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입학사정관제에 맞는 맞춤형 학원이 등장할 것이란 얘기다.

이에 조효완 서울진학지도협의회 회장은 “입학사정관 전형 만큼은 사교육기관에 의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학교 내에서 운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에 의해 해당 학생이 얼마 만큼 성장 발전했는가를 보는 것이므로, 분명한 공교육 영역이라는 것이다. 박철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수석부회장 또한 “근본적으로 대학들이 특성화되고 대학이 요구하는 인재상이 다양화될 때, 사교육은 줄어들 것”이라고 피력한 바 있다.

박종렬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은 “대입전형은 중·고등학교의 교육 운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사교육 시장과도 연계되어 있다”고 전했다. “입학사정관제는 대입전형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정의한 박 사무총장은 “객관적 전형자료에 의존한 형평성 위주의 전형이 아닌, 주관적 전형자료에 의한 인재선발”임을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입시 컨설턴트들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구체적인 전형 사례가 많지 않아 비교과에서 주목할 만한 사항이 거의 없는 일반고 학생들에 대해서는 학업 및 수학 능력과 교내외 수상실적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즉, 특목고나 특정계층만을 위한 전형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공정성 확보가 최대 관건

한편 입시부정이 개입될 가능성에 대해 이주호 교과부 차관은 “올해는 공정성 하나만큼은 무조건 신뢰받을 수 있게 하겠다. 만에 하나 공정성을 흐리는 대학이 있다면, 미지급된 지원금을 주지 않고 내년에는 지원 대학 대상에서 뺄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시행 초기부터 부정이 개입된다면 제도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각 대학들은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2010학년도 전형부터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한 연세대의 김현정 입학팀장은 “입시 진행은 복수의 입학사정관이 독자적으로 평가한다”며 “서류평가와 면접평가를 2단계로 진행하여 합격자를 선발한다”고 전했다. 연세대는 기존에도 입학사정관 전형과 비슷한 형태로 운용돼 왔다고 한다. 언더우드국제대학의 경우 세계 각국에서 지원하는 지원자의 특성과 모든 행정 및 교과운영이 영어로 진행되는 점을 고려해 서류평가와 영어면접을 적용하고 있다. 김현정 팀장은 <미래한국>과의 인터뷰에서 “올해부터는 서류평가자가 면접에도 참여해 지원자의 특성과 역량을 좀 더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언더우드국제대학은 전형의 특성상 본교 교원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내부 위촉 입학사정관 41명이 서류평가와 영어면접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힌 김 팀장은 “서류평가는 1명의 지원자를 3명의 서로 다른 입학사정관들이 독립적으로 평가해 모집인원의 약 3배수 내외를 면접평가 대상자로 선발한다”고 설명했다. 이후 심층면접은 영어로 시행되며, 서류평가 입학사정관을 포함해 2명의 입학사정관이 지원자 1인을 평가하고 있다. 전체 진행과정은 입학전형관리위원회와 학교 본부의 입시공정관리위원회에서 모니터링하고, 입시사정위원회에서 최종 합격자를 결정한다고 한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의 대학들은 일반적으로 표준화 시험에서 획득한 점수에 의해 학생을 선발하지 않는다. Academic 분야와 Non-academic 분야에 대한 입학사정관의 주관적이고 포괄적인 판단에 의해 지원자의 합격과 불합격이 결정된다고 한다. 특히 하버드·예일·스탠퍼드·애머스트 대 등 미국에서 최우수 대학으로 분류되는 사립대들은 Academic 분야 외에 음악, 미술, 체육, 리더십 등의 비교과 활동실적을 중요한 전형요소로 간주한다. 때문에 고등학교 재학기간 동안 이들 실적을 갖추지 못한 학생들은 입학하는 것이 어렵게 되어 있다.

반면에 주립대학들은 음악, 미술, 체육, 리더십 등의 비교과 활동 실적이 많지 않아도 비교적 입학할 가능성이 높다. 주립대들 중에서도 주에 따라(같은 주 내에서도 대학에 따라) 전형요소간의 비중이 서로 다른 양상을 나타낸다. 캘리포니아주 내의 주립대들 중에 버클리 대는 비교과 활동실적을 비교적 많이 요구하는 편이다. 이에 반해 샌디에고대는 비교과 활동의 비중이 낮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와 SAT 등의 학업성적 관련 전형요소만으로 선발하는 학생의 비중이 50% 정도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각 대학에서 입학사정관의 임무와 역할, 입학사정 과정에서의 비중은 대학별로 독특한 전형방식에 의해서 영향을 받게 된다.

이처럼 입학사정관제를 운영하는 모습은 대학별로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대교협은 관련 자료를 통해 “입학사정관 전형만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본인이 진학을 원하는 대학을 결정하고, 해당 대학이 어떤 전형을 실시하고 있는지를 알아본 뒤, 여러 가지 대안의 하나로 입학사정관 전형을 고려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권고했다. 고등학교에서도 각 대학의 입학사정관제에 대비, 대학별로 중점을 두는 사항을 잘 파악해 학생들이 적성과 소질에 맞는 곳을 잘 선택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대교협 관계자의 설명이다. #

김미희 기자 elikim@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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