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에 역행하는 MB 교육정책
자율에 역행하는 MB 교육정책
  • 미래한국
  • 승인 2009.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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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진단] 김정래 부산교대 교수
▲ 김정래 부산교대 교수(서울대 교육학과 졸업 / 영국 Keele University 박사)

최근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보면, 일종의 배신감마저 느끼게 된다. 대선 당시 필자가 토론회에서 이명박 후보의 교육공약을 이렇게 평가한 바 있다. “‘관치’에서 ‘자율’, 사교육비 획기적 절감, 학교의 자치적 자율경영 강화, 교육 안전망 구축, 개방적 평생 학습체제 구축, 대학교육의 개방화, 세계화 등 하나하나가 모두 손색이 없는 방향으로 평가된다... 학생의 학교 선택권 확대, 교원평가 및 학교 평가로 교육 내실화 제고 공약도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이들 공약을 한 마디로 묶으면 교육의 자율성 확보이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따라야 한다는 논평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는 교육정책에서 ‘자율’과 ‘경쟁’을 표방하여 지지를 얻어낸 정권이다.

그러나 집권 중반에 이른 현재의 시점에서 자율과 책무성, 선택과 경쟁은 찾을 수 없고 여전히 국가 통제와 규제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면서 말로만 ‘자율’을 내세우니 ‘짝퉁자율’, ‘관제(官製) 자율’이라고 하는 것이다.

대학입시 문제를 대학에 전폭적인 자율권을 준 것처럼 말하면서도 이 업무가 교육부 대학학무과에서 대학교육협의회로 이전했을 뿐이라는 말이 나오는 형편이고, 수험생들에게 가장 비중 있는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도 여전히 국가가 관장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대학입시를 통제하고 있다. 또 대학입학사정관제도는 원래 선진국에서 각 대학이 자유로운 재량권을 행사하도록 한 제도인데, 우리는 전국 각 대학이 당장 2010학년도 입시부터 이 제도를 도입하도록 교육당국이 실질적으로 권고하고 있다. 전적으로 대학 자율에 의존해야 할 대학입학사정관제도가 당국의 ‘강권’에 따라 시행되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각종 지원금과 교부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공약에서 내세운 ‘관치에서 자율’이 아니라 ‘관제 자율’이다.

자율의 핵심은 국가의 정보독점이 아니라 개방에 있으므로 교육정보도 개방해야 한다. 하지만 학부모와 일반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자신의 자녀를 가르치는 교사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소속 교원단체를 밝히라는 요구를 거부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전교조 등 해당 단체는 사생활 보호 등을 내세우고 있으나, 학부모가 교원의 소속 단체를 아는 것은 교원 개인의 사생활이 아니다. 자녀를 가르치는 교사의 이념 성향을 알아야 하는 것은 교사의 종교나 여가활동, 가정사를 아는 것과는 궤를 달리 하는, 학부모의 당연한 알 권리이다. 이는 시도 때도 없이 강조하는 ‘공교육’ 맥락에서 볼 공적인 문제이다. 당국의 불분명한 태도로 이 문제 역시 미제(未濟)로 남아 있다.

최근 들어서 자율에 역행하는 교육정책은 극치를 이룬다. 이른바 외고 말살 시도가 그것이다. 그 배경은 집권 초 금융위기와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곤혹을 치른 대통령이 금년 들어 ‘중도’ 노선을 표방하고 이에 따라 서민대책을 강구함으로써 급상승한 지지율에 고무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서민 생계대책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겠다. 다만 대통령의 ‘이념 없는 중도’와 서민대책의 일환으로 잡은 사교육대책이 엉뚱하게 외고 말살로 이어졌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서민대책’은 ‘사교육비 경감’에서 찾고, 다시 ‘사교육비 경감’은 ‘외고 입시’에 있다고 교육 당국이 보는 도식이 심각한 원인 혼란에 빠졌다는 것을 필자는 여러 경로를 통하여 이미 지적한 바 있다. 따라서 다시 상론은 하지 않겠으나, 사교육의 기형적 팽창의 원인은 다양한 교육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현행 평준화 체제이다. 그나마 다양한 교육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현행 평준화 체제의 ‘보완책’으로 나온 것이 외고를 비롯한 특목고의 설립이다. 그러니까 사교육 대책을 마련하려면, 외고를 손댈 것이 아니라 평준화 정책을 근본적으로 손을 보아야 한다. 오히려 외고처럼 수준 높고 다양한 교육욕구를 충족시키는 학교들이 선발에서 자유롭고, 또 이런 학교가 자유롭게 많이 설립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자율’이다.

‘원인 혼란’에 빠져 기획한 외고 말살 의도가 금년에 ‘재미’를 본 대통령의 서민대책이 단기적 성과를 거두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항간에 나돌고 있다. 흔히 경제논리로 교육논리를 재단하지 말라는 사람들이 이른바 ‘민생’이라는 경제논리로 교육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자충수에 빠진 셈이다. 이러한 집권세력의 정치적 고려가 무엇이건 간에, 외고 말살 정책이 서민생계에 도움이 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교육이 줄어들지도 않는다. 사교육에 대한 강경책이 나오면 나올수록 사교육은 음성화되어 결과적으로 서민 자녀들만 피해를 본다. 사교육의 주범은 평준화 정책이기 때문에 외고를 마녀 사냥하듯이 혹세무민(?世誣民)하지 말아야 한다.

작년 10월 발표된 서울시교육청의 고교선택제는 ‘선택’과 무관한 정책이다. 게다가 작년에 발표된 원안마저 개악한 수정안은 과연 이명박 정부가 교육 자율 의지가 있는가를 의심케 한다. 당초 원안을 제시한 서울시교육청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80%의 학생이 원하는 학교에 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은 자신들이 실시했다는 시뮬레이션의 전모를 공개하지 않아 신빙성에도 문제가 있지만, 설사 그 말을 수긍한다고 해도, 원하는 학교에 배정받지 못한 나머지 20%의 학생들의 처지는 무엇이 되는가?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서울시교육청은 교육감 대행체제로 들어서면서 좌파 눈치 보기 때문인지, 관료체제의 속성 때문인지 자신들이 하겠다던 것마저도 그 시행을 며칠 남겨두지 않고 학군(學群) 내 ‘거주자 우선 배정’ 원칙을 적용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1단계의 20% 학생 이외의 나머지는 추첨에 따라 희망하는 학교와는 무관하게 배정받게 되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런저런 이유를 여러 가지 둘러대지만, 자율 의지가 말살된 ‘짝퉁 자율’이다.

교육당국은 겉으로만 자율을 줄기차게 외치면서, 여전히 ‘시혜’를 베푸는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외고 대책(?)’을 발표하면서 외고를 그대로 존속시키되 규모를 축소시켜야 한다고 한 바 있다. 그나마 평준화 체제의 여러 제한된 환경 속에서 우수인력을 배출한 학교에 포상은 커녕 ‘손을 보려다 봐준 꼴’을 만들어버렸다. 이 문제만 놓고 보아도 MB 정부의 교육정책이 어디까지 ‘자율’과 역행할 것인지 내심 걱정이다. 평준화 정책은 학교선택과 학생선발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악폐이다(평준화 정책의 여러 가지 폐해는 필자의 졸저 “고혹평준화 해부”를 참조하시오). 따라서 진정 자율을 하고자 한다면 평준화 정책을 근원적으로 폐지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솔직히 ‘자율’과 ‘선택’에 역행하는 정책을 자꾸 펴는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어정쩡한 ‘중도’를 내세우며 좌파 노선을 떨치지 못하는 한 MB의 정책은 지지자들마저 외면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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