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북송 50년, 일본인 처의 수기
재일교포 북송 50년, 일본인 처의 수기
  • 미래한국
  • 승인 2010.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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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풍향계 - 일본

마이니치신문 12/11

“그이와 같이 모란봉을 산책하는 것이 꿈이었다”... 조악한 종이 14장에 작은 글씨로 빽빽히 쓰인 한 북송 일본인 처의 수기를 입수했다. 50년 전인 1959년 12월 14일의 첫 출항을 시작으로 ‘지상의 낙원’을 믿는 9만명 이상의 재일교포가 니이가타항에서 북송선을 탔다. 그 중 약 1800명이 일본인 처였고 아이들과 남편까지 포함한 일본 국적 보유자는 약 6800명이었다.

지금 북한에 생존한 일본인 처의 숫자는 정확히 알 수 없고 그 중 고향 방문이 가능했던 것은 97년부터 3회에 걸쳐 총 43명 뿐이다. 10명 미만의 일본인 처는 탈북에 성공해 일본으로 돌아와 살고 있다.

“파란 하늘에 솜처럼 나타났다가 어느 새 사라지곤 하는 구름을 볼 때마다 나는 고향 일본을 생각한다”. 70대에 들어 선 그녀의 수기의 일부다.

이 수기는 도쿄의 전문학교에서 재일교포인 남편을 처음 만나는 약간 감상적인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3~4년 공부하고 나서 5년 뒤에는 꼭 돌아 올게요” 하는 말을 부모에게 남기고 20대 부부는 ‘사회주의 조국’을 향해 북송선에 올랐다. 배의 한 구석, 그들 부부에게는 그래도 독방이 주어졌으나 달콤한 꿈은 거기까지 뿐, 도착한 항구에는 무서운 현실이 기다렸다.

자본주의 국가, 그것도 원수인 일본인에 대한 엄중한 감시 아래 이국 땅에서 반세기를 살아 남았으니 그녀의 각성과 경계가 얼마나 철저했고 현명했는지 추측할 만하다. 탈북에 성공한 사람들이 전하는 바로는 지방에서 굶어 죽고, 수용소에서 억울하게 죽은 북송교포도 많다고 한다. “나무 열매, 약초를 뜯어 빈 배를 채우며 연탄이 떨어지면 방안이 얼어붙는다”... 하늘의 별따기라는 평양 거주자, 대학 졸업 엘리트의 생활이 이렇다.

혹한의 평양 아파트에서 추위에 떨며 절실한 기대를 적은 수기. 그 간절한 마음에 응답하고 싶다. 김정일 이후로의 권력 이양이 시작된 지금 평양 수뇌부는 대담한 정책 변화를 시도할지도 모른다. 사전에 대응전략을 짜고 기회가 오면 이를 확실히 포착해 고통 받는 일본인 처들이 고향 땅을 밟을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

정리. 김용선 객원해설위원 (태평양아시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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