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2 온난화 주범설은 가설에 불과
CO2 온난화 주범설은 가설에 불과
  • 미래한국
  • 승인 2010.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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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온난화는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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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P 발행 Voice 2009년 12월호
아카소후순이치  미 알래스카대 명예교수

많은 사람들이 현재 지구는 ‘지구 온난화’의 위기 한복판에 있으며 그 원인은 이산화탄소에 있다고 믿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것이 불확실하다든가 잘못된 것이라면 어찌된 것일까. 하토야마 정부가 ‘1990년 대비 25% 삭감’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중대한 국제적 문제의 주도권을 잡을 것이라며 숨을 고르고 있는 것은 넌센스이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이산화탄소가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라는 것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 사실은 아니다. 이산화탄소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양 정치와 얽혀 전개되고 있다.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이다. 이렇게 되면 과학이 아니고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원래 나는 학자로서 정치 문제와는 연관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산화탄소가 온난화의 주원인이라는 말을 과학자가 제기한 것인 만큼 과학자로서의 책임을 느끼고 논쟁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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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에 대한 학문은 오래된 학문이 아니고 성숙되지 않았다. 온난화의 원인이 이산화탄소라고 한다면 적어도 먼저 ‘자연의 변동’에 의한 기온 상승과 이산화탄소에 의한 기온 상승이 각기 어느 정도 영향을 주고 있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기온은 1800년경부터 상승

나는 현재 ‘지구온난화’로 일컬어지는 기온 상승의 주된 요인은 ‘자연의 변동’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면 온난화를 나타내는 현상으로서 곧잘 쓰이는 것의 하나로 북극권 등에서의 빙하의 축소가 있다. 위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온난화의 진폭이 크기 때문이지만 그렇다면 빙하가 언제부터 축소됐는지 알고 있을까. 실은 1800년경 전후부터이다.

한편 이산화탄소가 급격히 증가한 것은 2차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1946년부터이다. 전쟁이 끝난 100년 이상 전부터 빙하는 축소되고 있다. 게다가 빙하가 축소되는 속도는 이산화탄소가 늘기 시작한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흔히 TV 등에서는 북극권 빙하의 말단이 굉음을 울리며 차례차례 바다로 낙하해 가는 모습이 방영된다. 빙하는 문자 그대로 ‘얼음의 강’으로서 느리기는 하지만 천천히 흐르고 있다. 말단 부분이 바다에 낙하하는 것은 빙하의 탄생 이후 매일 일어나고 있는 자연현상이다.

기온도 마찬가지로 역시 1800년경부터 오르기 시작해 이후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관계없이 거의 같은 비율로 상승하고 있다. 왜 1800년경 전후부터 온도가 오르기 시작했는가. 나는 소빙하기가 끝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빙하기에는 대빙하기와 소빙하기가 있다. 대빙하기는 거의 10만년 주기로 일어난다. 소빙하기는 이보다 더 짧은 기간으로 일어나는 것인데 현 단계에서는 규명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검증해가면 적어도 1400년경부터 1800년경까지 지구는 소빙하기에 들어 있었다고 생각된다.

당시의 세계 온도가 현재보다 1도 낮았던 것은 해저의 진흙을 계측하거나 그린랜드의 아이스캡에 포함된 산소의 동위체를 측정하는 등 여러 가지 조사로 알게 됐다. 1600년대에는 런던 테임스강이 얼어붙었다는 기록도 여러 군데 있다. 이것도 당시가 지금보다 추웠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또 일본에서도 스와호가 전면 동결돼 일어나는 현상인 오미와다리의 기록을 1450년경부터 추적해보면 1700년경부터 오미와다리가 있었던 날이 늦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伊藤公紀 씨의 연구에 의함) 소빙하기에 대해서는 최근 재미 있는 연구가 잇따르고 있다. 역시 태양 활동의 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태양 활동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다. 거의 11년 주기로 활발할 때와 약할 때가 반복된다. 최근 태양의 활동이 약화된 것 같아 화제가 되고 있다. 새로운 사이클에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흑점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연구가 나왔다. 흑점이 많이 나타나는 시기에 태양의 활동이 활발하다.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은 이 분야의 학문이 아직 오래된 학문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어떻든 1800년경부터 소빙하기를 벗어났다고 한다면 그 이후가 온난화의 과정이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1800년경부터 빙하가 축소되고 기온이 거의 같은 비율로 상승하고 있는 이유도 설명이 된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데이타를 검토하면 기온 상승은 일단 2000년에 멈췄고 오히려 약간의 한랭기를 나타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2000년 이후에도 이산화탄소의 배출은 늘고 있어 이런 점에서도 이산화탄소를 원인이라고 하기에는 모순이 있다.

2000년에 온난화가 멈춘 것은 ‘준주기변동’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수십년 주기로 온난기와 한랭기가 교체하는 것으로서 1910년부터 1940년까지는 온난기, 1940년부터 1975년까지는 한랭기 그리고 1975년부터 2000년까지가 다시 온난기였다.

1910년부터 1940년까지와 1975년부터 2000년까지의 두 온난기를 비교하면 기온 상승률이나 상승도(度)가 거의 같다.

태평양의 해수온도도 주기적으로 변동하고 있다. 이를 ‘태평양 진동’으로 부르지만 현재 태평양 중앙부의 해수온도도 저하되고 있는 상황이다.

IPCC(International Pannel on Climate Change·기후 변동에 관한 정부간 회의)는 2000년부터 기온이나 수온이 저하되고 있는 것을 ‘일시적 현상’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2~3년이라면 몰라도 10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면 기후 변동으로 봐야 한다. ‘일시적’이라는 것의 근거를 따져도 명확한 것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는 그 주장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2009년은 세계적으로 추웠지만 아마 앞으로도 온도는 낮아지고 준주기변동으로 2025년부터 2030년쯤에 다시 상승할 것으로 나는 보고 있다.

에스키모 가옥이 무너진 이유

중·저위도 지역에서는 온난화와 관련된 자연 현상이 흔치 않으므로 TV 관련자들이 가끔 알래스카의 내 연구실에 취재차 방문한다.

“뭔가 TV 화면으로 쓸 만한 것이 없느냐”고 묻는다. 그런 종류의 그림 하나로서 유명한 것이 ‘에스키모 주거지역에서 지금까지 해안이 얼음으로 막아졌던 것이 지구온난화로 사라져 침식돼 바다로 빠져버렸다’는 식의 것이 있다. 그런데 옛날부터 얼음이 접안하기 앞서의 가을에는 해안이 침식된다. 최근에는 홋카이도를 통과한 태풍이 베링해까지 살아남아 에스키모 가옥이 날아간 일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것을 되풀이해 설명해도 대개의 TV방송이 무너진 에스키모 가옥을 촬영해 방영했던 모양이다.

영구 동토에 집을 지었더니 얼음이 녹아 집이 기울어졌다는 것도 인기 있는 그림이다. 이것도 온난화 탓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싸구려 청부업자가 영구 동토 위에 집을 지으면 당연히 난방으로 인해 집 밑의 얼음은 녹는다.

킬리만자로의 빙하가 축소되고 있다는 얘기도 있는데 본래 정상 부근 기온은 연중 영하 7도이고 온난화 때문에 얼음이 녹는 것은 아니다. 얼음이 직접 수증기가 되는 승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삼림 벌채나 자연 변동에 의한 건조화 때문이다.

북극해의 얼음이 녹음으로써 흰곰이 멸종된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해빙(浿氷)의 감소는 노르웨이해나 베링해에서 유입되는 따뜻한 해류의 변동이나 바람 등에 의한 경우가 많다. 이산화탄소와는 관련이 없다.

게다가 얼음은 2008년, 2009년 공히 20% 증가했다. 실제로 북극해의 얼음은 연구자에 따라서는 20년 후에는 여름에 녹아 거의 없어질 것이라는 설도 있고 2100년이 돼도 90%나 남는다는 설도 있다. 전자만이 보도되는데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문제이다.

‘이산화탄소 증가로 온난화가 진행되고 지구는 큰 환경 피해를 당하게 된다’고 강조하게 된 데는 1990년 IPCC가 큰 역할을 했다.

IPCC는 1988년 지구온난화에 대한 연구를 수록·정리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기관이다. 당시 대처 영국 총리의 정치적 의도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대처 총리는 원자력 발전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국내에서 동의를 얻지 못했다. 그 무렵 미 항공우주국의 어떤 과학자가 이산화탄소를 줄이지 않으면 지구는 온난화해 큰 환경 파괴가 이루어진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여기에 주목한 대처 총리는 이를 연구하는 기관 설립을 위해 움직였던 것이다.

그 설립 경위를 보더라도 IPCC는 처음부터 대이변, 대재해를 예언하도록 운명지어진 조직이라고 말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IPCC는 2,500명에 이르는 학자를 모아 대논문집을 작성했다. 그것과는 별도로 온난화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수십명의 논문집의 ‘요약’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요약’은 전적으로 ‘전원일치의 요약’이 아니었고 성실히 요약됐는가에 대해서도 의혹이 있다. 실제로 IPCC에 참여했던 학자에게 물어보면 알게 되겠지만 2,500명 참여자 중 몇 사람이 ‘20세기 후반의 온난화는 대부분 이산화탄소에 의한다’는 기술을 충분한 이유와 숫자로 지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참여 학자를 자의적으로 선택한 일부터 IPCC는 누구나 참여하는 공평한 조직이 결코 아니었다. 예컨대 논문집 안에서 ‘소빙하기’라는 단어는 한 번 밖에 쓰이지 않았다.

미국에서도 IPCC의 가설에 대해 ‘하나의 가설’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IPCC는 ‘2000년부터 기온이 계속 올라가 2100년에는 6.4도 올라간다’고 예측하고 있다. 실제는 2000년부터 온난화가 멈춰졌고 최초의 10년에서 예측이 빗나가고 있다. IPCC 발표가 얼마나 신빙성이 낮은가를 보여주고 있다.

배출권 문제 논의는 하지 말아야

한편 ‘이산화탄소=온난화설’은 정치적 이용 대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온난화 방지를 자주 역설하는데 이 문제에 무관심했던 부시 전 미 대통령과 차이를 보이려는 의도이기도 할 것이다. 개발도상국이 온난화 방지에 찬성하는 것도 그렇게 함으로써 선진국으로부터 돈을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인도네시아에서는 삼림 보전을 위해 받은 돈으로 기존의 삼림을 벌채하고 대신 기름 짜는 야자수를 식수했다는 얘기가 있다.

하토야마 총리는 일본의 리더십으로 미국이나 중국이 동조할 것을 기대하는 모양이다. 일본의 온난화 가스 배출량은 세계에서 4%에 불과하며 그 25%는 1%에 지나지 못한다. 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것을 합하면 40%를 넘으니까 그다지 의미 있는 것도 못된다. 그래서 미국과 중국이 쉽사리 동조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2009년 6월 미 하원에서 지구 온난화 대책으로 ‘왁스만 말키 법안’이 통과됐는데 한때 교토의정서를 ‘심의 불요’로 처리한 미 상원이 호락호락 이 법안을 통과시키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중국도 ‘먼저 선진국이 감축시켜야’라는 주장을 철회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만약 ‘대운석이 지구를 향해 다가와 위험하다’는 얘기라면 각국이 긴급하게 대책을 강구할 것이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해서는 각국이 ‘큰일이다’고 하면서도 몇 번 회의를 해도 뭐 하나 결정되지 않는다.

온난화로 실제로 인명 피해를 입었다는 얘기는 없다. 기후변동이 IPCC가 하고 있는 연구에 따라 결론이 나는 것이 아니다. 대빙하기나 소빙하기가 있는 것 조차 분명하게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문이란 하나의 가설을 제안하는 그룹과 이를 반론하는 그룹 간의 건전한 토론이 있어야 진보하는 것이다. IPCC는 “학자의 역할은 끝났다. 이제부터는 정치가가 이산화탄소에 의한 온난화 대책을 강구해야 할 차례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학문의 발전을 방해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번역 이영훈 교포교육연구소 대표
1930년 일본 나가노현 출생. 1953년 東北대학 이학부 졸업. 알래스카대 박사. 1964년 동 대학 교수 임용. 1986~1999년 동 대학 지구물리연구소 소장.
2000~2007년 동 대학 국제북극권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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