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명 방중단 이끈 오자와 이치로
600명 방중단 이끈 오자와 이치로
  • 미래한국
  • 승인 2010.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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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전 총리 잇는 친중파
[PHP 발행 Voice 2월호]
아오키 나오도(靑木直人) 저널리스트

중국 지도부와 두터운 친분 과시
김일성과 국교 정상화 선언한 가네마루와 같이 일북 수교에 적극적

제2의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의 탄생인가.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간사장은 죽은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에게 가장 총애 받았던 정치인이다. 2009년 9월 민주당은 오자와 주도 하에 자민당으로부터 정권을 빼앗아 마침내 여당의 지위를 획득했다.

그 직후부터 하토야마(鳩山) 정권은 자위대의 동인도양에서의 아프가니스탄 지원활동 철수를 결정하고 미국과 협의 중이던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문제를 백지화했다.

한편 중국과의 관계는 한층 강화돼 12월에는 사상 처음으로 600명에 이르는 대방중단(?訪中團)을 오자와 지신이 인솔해 후진타오 주석 등과 만났다.

민주당 내에서는 벌써부터 간부들 사이에 ‘미중일 등거리 외교’를 공공연하게 얘기하고 있다. 오바마 미 행정부는 ‘하토야마 정권은 일본의 노무현 정권’이라 부르며 반미에 대한 경계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야기는 3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6년 8월 17일 도쿄 구치소 현관을 나온 한 대의 고급승용차가 都內의 메지로(目白)를 향하고 있었다. 차내 주인공은 록히드사로부터 수뢰 의혹을 받은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 방금 보석으로 석방된 그는 차내에서 처음으로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제기랄! 미국에 당했다.”

다나카 저택으로 달려간 파벌 의원들에게 다나카는 외쳤다. “이제부터 죽기 살기로 미키(三木. 당시 일본 총리) 그리고 미국과 싸울 것이다.”

이때 다나카 곁에 당시 2선인 오자와 이치로 의원이 있었다. ‘미국에 당한 오야지(보스를 뜻함)’의 모습은 오자와에게 인상적이었다.

‘미국에 당한’ 다나카는 대조적으로 중국과의 관계는 양호했다.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됐던 중국과의 정상화를 단기간에 실현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모택동은 다나카에게 일본과 중국이 힘을 합쳐 미국과 소련에 대결하자는 제안까지 했다.(필자 저 ‘다나카 가쿠에이와 모택동’ 참조)

일중의 정상화 이후 다나카는 중국의 오랜 친구 ‘우물을 파준 정치가’로서 파격적 대우를 받았다. 일본을 방문한 역대 중국 요인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메지로(目白)의 다나카 저택을 방문했다. 요승지 중일우호협회 회장, 등소평 부총리, 조자양 총리, 호요방 총서기 등 쟁쟁한 최고 수뇌부이다.

여기서는 중국의 장래도 얘기됐었다. 등소평은 재빨리 다나카에게 당시 중국 국내에서는 금기사항이었던 자본주의적 경제정책에 대해 “귀국하면 대수정주의를 펴겠다”고 속내를 얘기하기도 했다.

문혁(문화대혁명)에서 경제건설로, 등소평은 그 2개월 뒤에 개최된 11기3중전회에서 크게 정책을 전환, 그 1년 후 일본으로부터 최초로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개발도상국 경제개발 촉진을 위한 선진국의 경제 협력 중 정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를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1970년대 말 등소평이 매월 다나카에게 친서를 보내 협력과 자문을 요청하기도 했다. 등소평 등 현대화세력의 최대 아킬레스건은 자본 부족이었으며 다나카는 맹우인 오히라 마사요시(?平正芳) 당시 총리 도움으로 원조 요청에 응했었다.

당시 선진국으로서 이처럼 중국을 지원한 나라는 일본 외에 없었다. 현재까지 자본 3조엔, 자원 개발을 목적으로 한 차관 3조엔 등 모두 6조엔을 지원한 일본은 최대의 자금 제공국가가 됐다.

일본 정계의 최고 실력자에 군림하기 시작한 오자와 이치로가 제2의 다나카 가쿠에이가 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 최고 수뇌와의 사이에 구축한 개인적 인맥은 그의 정치력을 제고하고 갖가지 이권에도 이어져 있다.

2009년 12월 10일 모두 600명, 의원만 143명이나 되는 민주당 방문단이 베이징을 방문했다. 일행은 후진타오 국가 주석과 만나 한 사람씩 악수와 기념 촬영을 했다. 중국 언론은 이날 최대 뉴스로서 이 모습을 방송했다.

600명의 방중단은 그의 정치력과 힘을 내외에 알리는 모습이 됐고 이는 마치 자민당의 시대는 끝났고 새로운 패자(覇者)가 자기임을 선언하는 듯한 것이었다.

 

일본으로부터 원조를 끌어내는 ‘환경 ODA’

정치적 공백 속에서 장쩌민의 뒤를 이은 후진타오 등 공산주의청년단과 야당 당수였던 오자와가 ‘장기계획’을 통해 오랫동안 구축해온 후진타오 국가 주석과의 연계가 상대적으로 부상했다고 할 수 있다.

장기계획의 파트너는 후진타오 출신 기반인 공산주의청년단. 오자와는 이것과 가장 관계가 깊은 정치인이다. 사실 이번에도 오자와와 대표단이 만난 것은 후진타오 국가 주석, 루하오 공산주의청년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 등 공산주의청년단 라인의 요인들이고 환영만찬회도 공산주의청년단과 관련이 깊은 중화전국청년연합회가 주관했다. 즉 장쩌민·쩡칭홍 라인과 관련이 깊었던 자민당과는 다른 인맥인 것이다.

그는 다나카가 전성기에 했던 것처럼 중국 최고 수뇌에 통하는 파이프와 돈을 잡으려고 한다. 그런데 오자와의 방중으로 일본의 대중(對中) 감정 악화에 다시 불을 붙였고 시진핑 중국 국가 부주석의 후계 경쟁에도 마이너스 효과가 되고 말았다.

오자와는 중국에 대해서는 이상할 정도로 배려를 보이는 반면 미국에 대해서는 냉정하다. 시퍼 주일 미대사에 대한 무례한 대응, 7함대만 있으면 된다는 발언, 자위대의 동인도양의 아프가니스탄 지원 철수,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 등 ‘미국에는 분명하게 말하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큰 시대의 패러다임 변화가 있다. 지금 일본의 제1교역국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옮겨갔고 이라크 전쟁과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 미국의 패권에도 그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까지나 미국 일변도로 있어 좋은가 라는 잠재적 국민 심리도 존재한다.

중국과의 경제 관계가 강화되고 새로운 정치적 관계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다. 한국·중국과 FTA를 체결해야 한다는 재계의 입장도 강하다.

그러나 오자와의 동아시아 접근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거기에는 개인적 이권도 있는 것 같다.

먼저 중국이다. 2008년 폐지됐음에 틀림없는 엔 차관이 현재 ‘환경 ODA’로 부활되기 시작했다. 기반이 되는 것이 2008년 탄생된 ‘일중환경기금’인데 목표는 일중 양국 정부가 함께 중국의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공적 지원을 하려는 데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자국의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자금을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기금’은 일본으로부터 또다시 공적 원조를 얻기 위한 한 ‘장치’로 보일 뿐이다.

환경 문제는 고도성장의 부산물로서 바야흐로 중국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일 뿐 아니라 환경산업이 해외기업을 포함해 대형 비즈니스로 성장하고 있다. 오바마 미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과의 공동성명에서도 양국이 이 분야에 협력하는 데 합의했고 중국이 일본으로부터도 ‘전략적 호혜관계’라는 명목으로 지원을 받기로 돼 있다.

4년간 2조8,000억 위안, 거의 40조 엔이다. 이런 규모의 뉴비즈니스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개최된 일중 성(省)에너지·환경보호종합포럼에는 일본과 중국에서 1,000명이나 되는 관계자가 모여 일중 민간기업의 참여와 협력이 확인됐다. 연설자는 오자와 저택에 하숙한 적도 있는 공산청년단 출신 리커창 부총리이다.

이때의 참가자 중에는 오자와 600명 방중단에 참여했던 회사 임원도 많으며 오자와 후원회 회원기업도 있다.

중국 뿐만 아니다. 오자와는 한반도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그는 위헌 가능성이 있는 재일외국인에 대한 지방 참정권 부여를 서울 방문 중에 한국 정부에 말해 “차기 정기국회에서 의결한다”고 했다. 또 북한과의 관계 개선 움직임도 있다.

그의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한 인식은 다음과 같다.

“납치문제는 북한에 뭐라고 말해도 해결이 안 된다. 돈을 가득 가지고 가서 ‘몇 사람 내달라’고 할 수 밖에 없다”(산케이신문 2009년 3월 2일자)

“납치문제 해결에 끝나지 않고 일북 관계 개선에 대해 결론을 내려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한국 민주당 대표단에게 조선일보 2009년 11월 3일자)

지금까지의 ‘납치문제 해결 없이 국교 정상화는 없다’는 정부의 기본적 입장을 크게 바꾸는 것으로 사실상 납치문제를 배제하는 것이다. 이미 북한에서 오자와를 초청했고 이에 대해 오자와는 극비 측근에게 친서를 휴대, 북한을 방문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야마자키 히로시 자민당 전 간사장은 밝히고 있다.

 

중국·한국·북한에 대한 파이프가 오자와에게 집중

걱정되는 것은 이런 정보들이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부 제2부와 관련되는 군 정보기관으로부터 나왔다는 점이다. 군 뿐만이 아니다. 그는 김정일과 친한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장과 상시 정보 교환을 하고 있다.

일본과 북한의 정상화가 실현되면 경제 원조가 시작된다. 엔 차관이나 무상원조가 그것인데 일본의 엔 차관은 조건이 있지 않다. 반드시 일본 제품을 살 필요는 없다. 원조 프로젝트 요청은 기본적으로 북한 정권이 하는 것으로 어느 업자가 수주하는가의 여부는 북한의 뱃심에 달려 있다.

말하자면 김정일에게 미움을 산 정치인과 업자는 일본의 원조라하더라도 수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만화 같은 이야기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북한에 신뢰를 얻고 있는 일본 정치인에게 의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 무상원조는 일본만이 참여할 수 있지만 여기서도 정치인이 개입한다. 지원이 유력한 것은 북한 최대의 댐 수풍댐이다. 이는 일제시대 일본의 니시마츠 건설이 공사를 청부받았고 지금도 건설 관련 자료는 이 회사에 있다. 니시마츠라고 하면 오자와에게 헌금한 의혹이 있는 그 니시마츠이다.

국교 정상화로 북한에 줄 돈은 최저 1조 엔이라고 하는데 나는 니시마츠의 헌금은 앞으로 있을 일북 국교 정상화를 위한 선행 투자가 아닌가 생각한다. 니시마츠만이 아니다. 국내에서 일거리가 격감한 종합건설의 특수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김일성이 가장 신뢰했던 일본 정치인은 죽은 가네마루 신(金丸信)이었다. 이는 그가 3당 공동성명을 성립시켜 ‘일북 국교 정상화와 지원’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오자와는 당시 자민당 간사장이고 가네마루의 비장(秘藏)의 일꾼이었다. 북한에 대한 그의 신뢰는 깊다. 이대로 정상화가 실현되면 오자와가 원조 돈을 잡게 된다. 종합건설사 수뇌들이 오자와를 깎듯이 모시지 않는 한 수주업자로 선택되지 못할 것이다. 답례는 ‘돈’과 ‘표’이다. 이것이 이권이라고 불리는 것의 정체이다.

수풍댐이 최신형의 리폼(리모델링)에 성공하면 전력은 북한 뿐만 아니라 강 건너 중국에도 송전된다. 일본과 북한의 정상화로 전력이 부족한 중국에도 전기가 공급된다는 계략이 숨어 있는 것이다.

최근 중국은 도문강(圖們江) 지역 공동개발 계획이라는 것을 밝혔다. 중국이 국경선을 따라가면서 개발·개방 지역을 만들자는 것인데 이런 계획은 처음 있는 것이다. 이 계획에 북한을 참여시켜 그들의 싼 노동력을 이용해 일본 등으로부터 투자를 장려하자는 것이다. 일본과 북한의 관계 개선은 중국의 국익에 이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사실상의 책임자는 리커창 중국 부총리이다. 그는 차기 총리 최유력 후보인데 이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실적이 필요하다. 최대의 난관은 해외로부터의 투자에 있다. 일북 국교 정상화와 경제 지원은 이를 촉진할 것이다.

이와 같이 중국, 한국, 북한 정상들과의 파이프는 오자와 개인에게 한층 더한 정치적 영향력과 이권을 안겨주는 구도로 돼 있다.

38년 전 모택동은 오자와의 스승이었던 다나카 가쿠에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나카 선생이 짠다면(한 패가 되려고) 철저하게 짜지 않으시렵니까.”

미국에 당한 록히드 사건과 정상화라는 명목으로 이루어지는 접근. 다나카 가쿠에이의 DNA는 오자와 이치로에게 계승되려 하고 있다.#

필자 약력 - 1953년 일본 시마네현 출생. 중앙대 졸업. 1988년 다음해의 중·소 정상회담 실현을 예상해 주목받았다. ‘다나카 가쿠에이와 모택동’(講談社) ‘중국에 먹혀들어가는 일본’(PHP) 등 저서 다수

번역·이영훈 교포교육연구소 대표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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