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방보고서와 한미동맹
미 국방보고서와 한미동맹
  • 미래한국
  • 승인 2010.03.1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춘근 박사의 전략이야기
▲ 이춘근 이화여대 겸임교수


냉전이 종식된 지 몇 년이 지난 1997년 미 의회는 국방부로 하여금 4년마다 국방정책에 관한 보고서(Quadrennial Defense Review Report·약칭 QDR)를 작성, 의회에 제출할 것을 요구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미 국방부는 1997년부터 QDR을 작성하기 시작, 2001년, 2006년 그리고 금년 2월 4번째 QDR를 발표했다. QDR이란 문자 그대로 ‘4년 주기 국방보고서’ 이지만 반드시 향후 4년 동안만의 국방정책을 기술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장기적인 미 국방 목표가 기술되기도 하며 2001년 9·11 직후 간행된 QDR 처럼 국방정책의 시급한 고려 사항이 포함될 수도 있다.

세계 평화 위해 막강한 군사력 유지 천명

금년 2월 1일 간행된 제4차 QDR은 부시 대통령 및 공화당 행정부에 의해 진행돼 왔던 미국의 반테러 전쟁 정책과는 입장을 달리 하는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간행된 국가안보 관련 최초의 공식보고서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동안 전문가들은 언론에 공개된 오바마 대통령 및 고위관리들의 언급들에 근거해 오바마 행정부의 국가안보 정책을 분석해 왔는데, 이번 2월 1일 QDR이 간행됨에 따라 우리는 오바마 행정부의 공식적인 국가안보 및 국방정책의 기조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번 QDR은 미국은 현재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 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미 국방정책의 최우선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아프간 및 이라크에서 진행 중인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목표와 함께 미국은 세계의 다른 중요한 지역의 안정 유지와 도움이 필요한 국가들을 지원할 것이며 지구 차원의 공동선(common good)을 위해 노력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현 국제 상황이 대단히 복잡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특히 중국과 인도의 부상(?上)은 미래를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고 예상한다. 특이한 사실은 중국을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라고 중립적으로 묘사한 반면 인도는 세계에서 제일 큰 민주국가라고 우호적인 의미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변화하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남고, 세계 안정과 평화를 위해 핵심적인 동맹국들과 협력을 더욱 증진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세계화와 기술 확산을 통해 국가가 아닌 행위자(non-state actor), 예컨대 알 카에다와 같은 테러 조직이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에 대처할 것이라고 말한다.

동 보고서는 대량파괴무기 확산을 우려하고 있으며 특히 대량파괴무기를 보유한 국가가 불안정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경우, 혹은 붕괴되는 경우를 우려한다고 말하고 있다. 대량파괴무기를 보유한 국가가 붕괴하는 경우 대량파괴무기 제조용 물질과 기술의 급속한 확산이 야기될 수 있는데 이는 미국 및 여타 국가의 국가안보에 직접적인 위해가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국내적으로 불안정하고 붕괴 위기에 처한 대량파괴무기 보유국이 어느 나라인지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북한도 대상국 중 하나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미국의 입장과 행동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동 보고서는 그 외에도 희소한 자원으로 인한 국제 갈등 문제, 환경 변화, 새로운 질병의 확산, 지역 간 인종 및 언어 갈등 문제도 미 국방정책의 고려 사항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이 같은 안보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다른 나라와는 상대가 되지 않을 막강한 군사력을 유지할 것이며 먼 지역에서, 장기적-대규모의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로 남아 있을 것임을 약속한다. QDR 2010 보고서는 미 군사력이 최강의 위치에서 변화된 안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병력 구조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주한미군, ‘배치’에서 ‘주둔’ 개념으로 변경

우리의 주요 관심은 오바마 행정부의 첫 번째 공식 국가안보전략 문건인 2010년 QDR이 한국에 대해서는 어떻게 언급하고 있느냐의 여부일 것이다. 본문 총길이가 105페이지에 이르는 2010년 QDR에서 한국 및 북한 관련 언급은 그다지 많지 않다. 북한에 관한 문장이 세 부분 나오는데, 북한이 이란과 더불어 국제사회의 규범을 어기고 미사일 및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언급과 미국은 이란과 북한 등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에서 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분쟁을 방지하고 억지하는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는 언급 뿐이다.

한국에 관한 문장은 총 4번에 걸쳐 나오는데 두 번은 주한미군 관련 언급이고 나머지 두 번은 한미동맹과 관련된 언급이다. 주한미군 지위 관련 부분은 “주한미군의 지위는 전방 배치군(forward deployed)으로부터 가족을 동반하는 전방 주둔군(forward stationed)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주한미군을 가족을 동반하는 주둔 병력으로 정상화시키면 거의 5,000명에 이르는 군인 및 군인가족들이 한국에 전방 주둔한다”라고 되어 있다.

미국은 그동안 한국에 있는 미군을 전투를 위해 전방 배치되어 있는 군사력이라고 간주했었는데 앞으로 주한미군은 전방 주둔된 병력으로 바꾸려 한다. 즉 한국에 있는 미군은 다른 지역에서 발발한 전투임무 수행을 위해 파병될 수 있으며, 다른 지역에서의 전투임무가 종료된 후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주둔하는 미군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주둔군이므로 주한미군의 근무 기간도 현재의 1년에서 3년으로 늘어날 것이며, 가족을 동반하는 군대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주한미군이 다른 곳에 파견되면 한국이 분쟁 당사국이 된다며 적극 반대했지만 이는 21세기의 변화된 국제 상황을 전혀 무시한 요구였다. 한반도에 주둔하는 미군은 오직 한반도 내에서 야기되는 분쟁에만 대비해서만 주둔하라는 요구는 결국 주한미군의 철수를 촉진하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주한미군이 전략적 유연성을 가지게 될 경우 미국이 대만 문제 등에서 중국과 갈등을 일으키거나 혹은 전쟁에 빠져들어 갈 경우 주한미군이 동원될 가능성이 많으며 그때 미군에게 기지를 제공하게 된 한국은 중국과 적국이 되어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논리를 제시하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반대했다.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하는 상황에서도 한국이 중립을 지킬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국제정치학의 기초를 무시한 것이었다. 미국과 중국이 군사 충돌을 한다면 그것은 사실 3차 세계대전을 의미하며, 그때 지정학적으로 지극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 한국은 중립을 지킬 도리는 없을 것이다.

주한미군에 대한 지위 변화는 2009년 이명박·오바마 대통령의 정상회담 당시 한미 양국은 한미동맹을 21세기형 전략동맹으로 확대 발전시킬 것이라는 약속에 이미 공식적으로 포함되는 것이었다.

전작권 전환 연기 반영치 않아

그러나 QDR 2010은 2012년으로 약속되어 있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를 연기하기 원하는 한국 국민 상당수의 의견을 반영하지는 않고 있다. 한반도 안보 환경 악화를 우려하는 900만 명 이상의 한국 국민들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 연기를 탄원하는 문서에 서명했지만 QDR 2010은 한국의 영토를 함께 방어하는 데 있어서 한국군이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하고 2010년 전시작전통제권은 한국군으로 전환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한미연합사 해체는 노무현 정권이 원한 것이고,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자동적으로, 무조건 참여해야 하는 책임을 면하게 될 미국이 내심 즐거운 마음으로 응해준 것이다. 미국은 말로는 함께 한반도를 지킬 것(combined defense)이라고 말하지만 한국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방위가 아니라 전쟁 억지(deterrence)다. 전쟁이 발발하면 우리도 북한을 격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수백만 한민족이 죽은 후의 승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북한의 전쟁 도발 야욕을 ‘억지’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도저히 넘볼 수 없는 보다 확실한 억지력이 필요하다. 기왕의 한미연합사 체제는 그야말로 막강한 전쟁 억지책이었다. 동맹이론을 연구한 학자들은 가장 확실한 동맹은 동맹국의 군사력이 하나의 지휘체계에 통합되어 있는 경우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노무현 정권은 확실한 전쟁 억지 장치를 허물었고, 안보와 평화를 염려하는 많은 국민들은 한미연합 전쟁 억지 장치를 당분간이나마 더 지속시키기 위한 노력에 힘겨워하는 상황이다. #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