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단체를 찾아서 ⑧ 라이트코리아
애국단체를 찾아서 ⑧ 라이트코리아
  • 미래한국
  • 승인 2010.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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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애국 특공대’ 격일로 가두집회
▲ 봉태홍 라이트코리아 대표

시민단체인 ‘라이트코리아(대표 봉태홍·51)’는 지난 1월 7일 ‘민주당은 서민고통을 외면하는 反서민정당인가?’라는 제목의 2010년 첫 성명을 터뜨렸다. 금년 신학기에 실시예정이던 학자금 대출제도인 ICL이 민주당의 외면으로 국회통과가 어렵게 돼 많은 학생들의 대학등록 길이 막히게 되자 전격 발표한 성명이다.

이틀 뒤인 9일에는 ‘서로 용서하는 마음으로 슬픔의 눈물을 거두기 바란다’며 용산참사 355일 만에 치러진 장례식을 앞두고 화해의 성명을 발표했다. 또 11일에는 ‘세종시 수정안, 국익을 우선하여 수용하라’는 시국성명을 발표했고, 이어 다음날 12일 오후에는 세종로 정부청사 후문에서 ‘세종시 수정안을 적극 지지한다’며 기자회견과 가두시위를 벌였다.

지난 1월 한 달 동안 라이트코리아가 행한 성명발표와 가두시위는 무려 16번에 이른다. 이틀에 한 번꼴로 행사를 한 셈이다. 2009년 한 해 라이트코리아가 추진한 가두시위만 60여 번에 달하고 각종 성명발표와 강연회 등을 포함하면 무려 140여 번의 행사를 가졌다. 좌파정권이 집권하던 2006년부터 2008년에 이르는 기간에는 이보다 2배가 넘는 활동이 있었다. 2007년의 경우는 가두시위만 150여 번에 달했다고 한다. 

1월 한달, 성명발표·가두시위 16차례

지난 3월 10일 <미래한국>은 충정로에 위치한 라이트코리아 사무실을 찾았다. 연일 외쳐대는 구호에 목이 쉬어버린 봉태홍 대표는 12일 청와대 앞에서 김성환 외교안보수석의 최근 망언을 규탄하는 김 수석 퇴진요구 시위를 준비하고 있었다. 일단 시위 주제가 결정되면 거침없이 행동에 나서는 특공대와 같은 활동성이 라이트코리아만의 장점이라며 봉 대표는 서두를 꺼냈다.

시위 현장에는 라이트코리아만 아니라 10여개의 다른 보수단체들이 늘 함께 한다. 그러나 성명서와 보도자료를 작성·배포하고 현장에 현수막과 휴대용 앰프, 스피커를 설치하는 일, 그리고 각 단체와 500여 명의 회원들에게 연락하는 등의 모든 실무는 라이트코리아가 맡는다. 때로는 단순한 기자회견이 아니라 기발한 퍼포먼스로 시위 현장을 뜨겁게 달구기도 한다. 라이트코리아의 집회에는 통상 30, 40명에 이르는 열혈 회원들이 참석한다.

작년 12월 27일에는 여주 신륵사 앞 남한강에 황포돛대를 띄워놓고 ‘우리의 강, 깨끗하고 안전하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 ‘4대강 물길 따라 새로운 대한민국이 열린다’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걸고 ‘4대강사업 성공기원’ 행사를 가졌다. 그리고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민주당을 향해 “4대강 사업이 국가예산을 낭비하는 불필요한 사업으로 여론을 호도했다”며 “수십조 원을 북한에 퍼다 주었어도 비판은 커녕 춤추고 박수치고 맞장구를 치던 자들”이라고 성토했다.

또 12월 11일에는 6·25남침피해유족회, 자유개척청년단 등과 함께 충남 연기군 조치원역 광장에서 ‘세종시 논란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가진 바 있다. 이날 라이트코리아 시위대는 먼저 세종시 건설 현장을 찾아 건설청 정문 앞에서 ‘망국적 수도분할 세종시 원안 수정하라’ ‘예산낭비 국익훼손, 세종시 행정부처 반대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금년 2월 8일에는 청주의 충북도청에 이어 충주시청으로 달려가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또 2월 19일에는 전주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다른 시민단체들과 함께 ‘빨치산 교육 교사 무죄판결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 파괴세력에 면죄부를 준 것은 판사의 정의와 양심이 죽고 법치가 무너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대한민국상이군경회 전북지부와 한국자유총연맹 전북지부 회원 200여명이 동참했다.

자유넷·프리덤뉴스 등 인터넷신문 설립 

봉태홍 대표는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중소기업과 개인사업 등 다양한 경험을 쌓고 30대의 젊은 나이로 정당 활동에 투신했다. YS와 JP가 3당을 합당한 1992년 무렵 민자당에 입당하여 대학생청년조직의 고문을 맡았다. 그리고 1997년 대선 때 이회창 캠프에 참여하여 한나라당 청년위원회 부위원장과 중앙위원 등을 맡은 바 있다. 그가 시민단체 활동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정권 때인 2003년부터다. ‘21세기 깨끗한 사람을 만드는 사람들’을 설립하여 보수우파의 이념적 활동을 규합했고 인터넷 활동 네트워크로서 ‘자유넷(2005)’ ‘프리덤뉴스(2005)’ 등을 만들어 우파운동의 허브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후 봉 대표는 반핵반김국민협의회 운영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 국민행동본부의 기획위원장 등으로 보수우파 활동의 전면에 나섰다.

2006년 3월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위원장 하경철)는 제162차 심의회에서 민주화운동 심의신청자 33명 가운데 29명의 행위를 유신체제의 권위주의적인 통치에 항거한 행위로 판단, 민주화운동 관련자 인정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김일성의 지령을 받고 대한민국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남민전(南民戰) 사건 관련자들을 노무현 정부가 민주화 유공자로 공식 인정한 것이다.

이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생각한 봉 대표는 2006년 4월 4일 강승규 당시 프리덤뉴스 공동대표와 함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범국민운동 차원에서 라이트코리아의 출범을 선언했다. 이때 뜻을 같이 하고 동참한 애국단체가 국민행동본부, 대한민국건국회 등 47개 단체에 이른다.

봉 대표는 라이트코리아 설립 취지문에서 “라이트코리아는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의 정신으로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기에 나선다”며 1) 대한민국 건국사 바로 세우기, 2) 친김정일 좌파세력 척결, 3)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정통성 사수 등 ‘3대 운동’을 내세웠다. 이날 라이트코리아는 보수단체의 연대투쟁을 다지자는 뜻에서 서울시청 광장에 58미터의 국내 최장 현수막을 내걸어 화제를 낳기도 했다.

봉 대표는 라이트코리아가 그동안 참여해온 국가 사회적 과제는 크게 5가지였다고 밝혔다. “첫째는 무엇보다 국내 좌파세력의 척결입니다. 특히 민노당, 민노총, 전교조, 전공노 등을 대한민국에서 뿌리째 뽑아버리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라이트코리아는 지난 1월 26일에도 ‘불법 정치활동, 전공노, 전교조 해체하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 300여 명이 법을 무시하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에 가입해 당비를 납부하고, 불법 집단행동과 반정부시위 참여 등 불법 정치활동을 일삼아 왔다고 고발했다.

둘째, 한미동맹 강화를 계속적으로 외쳐왔다. 작년 12월 8일 라이트코리아는 ‘국방부는 아프간 전투사단 파병을 요구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부와 국회가 아프간 파병에 능동적으로 전투병 증파를 결정할 경우 불과 28개월 앞으로 다가온 한미연합사 해체 시기를 재조정할 수 있는 명분을 갖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한미연합사 해체는 노무현 정부가 대책 없이 자주국방이라는 미명하에 대한민국 심장부에 박아놓은 대못 중에 가장 큰 대못’이라며 ‘한미동맹과 전작권이야말로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셋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각성을 촉구해왔다. 특히 6·15남북선언을 즉각 폐기하고 버려진 북한인권을 돌아보고 납북자와 국군포로를 송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작년 11월 30일에는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납북자가족모임(대표 최성용)과 함께 ‘일천만 이산가족 생사확인 및 납북자·국군포로 송환 촉구대회’를 개최하여 이산가족의 생사, 소재확인의 전면적인 시행과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 및 조선족 탄압의 중단과 납북자, 국군포로 송환을 위한 정부의 노력 요구 등을 결의한 바 있다.

라이트코리아에서는 젊음이 느껴진다. 상대적으로 연로한 회원이나 대표가 이끄는 다른 보수시민단체와 비교해 볼 때 50대 초반의 봉 대표 나이와 단체의 즉각적이고 능동적인 행동력 때문일 것이다.

 “시민운동은 무엇보다 순수해야 한다”

▲ 2월 22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국회의 세종시 이전을 촉구하는 봉태홍 대표
라이트코리아의 활동은 그동안 줄기차고 집요하게 이루어져 왔다. 봉 대표는 라이트코리아가 표적으로 삼은 전교조, 민노당, 민노총 등 좌파의 기관과 단체들이 반드시 와해되는 길을 걸었다고 주장했다. ‘서해교전 순직 장병 위령제’ 등 동교동 김대중 전 대통령 집 앞에서 벌인 수십 차례의 시위라든가, 2006년 8월 15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봉 대표가 홀로 15일 간에 걸쳐 단식하며 ‘노무현 대통령 퇴진하라’며 벌인 시위 등이 그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2009년 1월 초부터 1년 내내 줄기차게 이어진 라이트코리아의 MBC 방송허가 취소운동도 또 다른 사례다. 성명발표, 기자회견, 1인 시위, 보수단체 연대시위 등으로 MBC 방송의 편파성과 부당성을 집요하게 주장함으로써 좌파 방송의 현실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봉 대표는 라이트코리아 활동에는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2008년 6월 21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시위를 저지하는 반대집회에서 몇 명의 회원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을 때 갑자기 수천 명의 촛불시위대들이 그들을 둘러싸는 일이 발생했다. 다행히 경찰이 출동하여 그들을 보호해 주었지만 봉 대표와 경찰 등 10여 명은 촛불시위대로부터 빠져나오는데 거의 1시간이 걸렸고 사방에서 피켓과 주먹이 날아왔다.

겨우 시위 현장을 빠져나왔을 때 또 다른 함정이 봉 대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장에서 봉 대표가 ‘노인을 폭행했다’는 주장이 동영상과 함께 유포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봉 대표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사람 12명을 경찰에 고발하여 이들 가운데 1명은 구속시켰고 4명으로부터는 사과를 받아냈다.

봉 대표는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지켜온 원칙 한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운동은 무엇보다 순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국활동을 하면서 어떤 보상을 기대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시민단체는 스스로 자구 노력을 하며 대의를 위해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봉 대표는 금년 회원 10배 증가와 500명 이상의 동원 체제를 갖추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김창범 편집위원 cbkim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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