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에게 들려주는 냉전 이야기
젊은이에게 들려주는 냉전 이야기
  • 미래한국
  • 승인 2010.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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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냉전의 역사 - 거래, 스파이, 거짓말, 그리고 진실 (THE COLD WAR : A New History)
▲ 존 루이스 개디스(John Lewis Gaddis) 著 / 정철·강규형 譯 (에코리브르 刊, 2010)

이 책은 냉전에 관한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루되 간결하고 읽기 쉽게 틀을 짠 대중서다. 사건의 단순한 연대기 서술을 자제하고 주제별로 접근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 루이스 개디스(John Lewis Gaddis)는 시대적으로 중복되고 공간을 뛰어넘으며 글을 전개한다. <미래한국>에서 유럽언론을 소개하는 정철 객원해설위원과 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부교수가 공동 번역했다.

조지 오웰이 <1984>를 쓰던 시점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마치 장편소설처럼 전개되는데, 저자가 냉전을 바라보는 시각은 긍정적이다. 전쟁은 정치적 의도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그 목적이 국가의 안보에 있다면 열전보다는 제한전(limited war)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전면전이 아닌 냉전 방식을 택해 그나마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역사가의 목소리와 함께 역사 현장이 생생하게 전달되며 비사를 가감 없이 첨가함으로써 각 인물들의 성격 묘사도 빼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역사학자의 저작인 만큼 정보 왜곡은 없다. 저자의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정치적인 인물들의 성향, 인간적인 얼굴이 역사를 바꾼다는 사실에 동화될 것이다.

세계는 20세기 후반 그야말로 ‘냉전(冷戰)과 열전(熱戰)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해왔다. 1945년 이전에 허다했던 강대국 간 전쟁은 그것이 영원한 양상인 양 굳어지게 했고, 레닌은 이런 전쟁들을 통해 자본주의가 자멸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변수는 핵무기다. 

강대국이 약소국 통제하는 데 한계 

핵무기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세계 양쪽 모두에 미치는 위험을 인식하면서 미국과 소련 사이에 핵무기를 써서는 안 된다는 합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냉전이며, 그렇게 해서 1945년 이후 전쟁들은 초강대국과 약소국 간 전쟁이나 약소국끼리 전쟁으로 제한되었다.

워싱턴이나 모스크바가 약소국들을 통제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미국과 소련을 제외한 비동맹으로 결속하기도 하고 약소국들이 변절하면서 상대방쪽으로 넘어가거나 또는 그렇게 하겠다고 위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냉전시대 미국 지도자들은 자국 내 민주주의 틀 안에서는 선을 유지하지만 외국에 대해서는 선이 되지 않는 방법도 터득했다. 그리고 냉전을 끝낸 것은 ‘보통 사람들’이었다. 사망한 지 31년이나 된 전 총리 임레 너지의 장례식에 몰려가 가시철조망이 낡았다고 선언한 헝가리 사람들, 자유 노조 솔리다르노시치를 집권시킨 폴란드 사람들. 그리고 헝가리에서 휴가를 지내고, 프라하에 있는 서독 대사관 담벼락에 기어오르고, 열병식에서 호네커에게 창피를 주고, 라이프치히에서는 경찰에게 발포하지 않도록 설득하고, 끝내는 문을 열어 장벽을 허물고 나라를 재통일시킨 독일인들이다.

“냉전은 공포가 되살아나면서 시작됐고 희망이 승리하면서 끝을 맺었다. 이는 거대한 역사적 격변치고는 이례적인 궤도였다.”

냉전 전문가 개디스는 냉전 자체를 역사의 무대로 보았을 때 당대를 관통하기 위해 여러 배우들을 등장시킨다. 이 ‘위대한 배우’들이 위대한 배역을 맡을 기회는 미·소 동맹국을 기반으로 한 구체적인 권력이 세력을 상실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에 찾아왔다. 

냉전, 전쟁 없이 한쪽 무너진 특이한 체제 

그들은 극적인 연출로 역사의 진로를 바꾸었으며 용기, 웅변술, 상상력, 결단력, 신념 같은 무형의 지배력을 구사했다. 각국 지도자들의 특성과 환경에 기반한 신경전을 현실로 보는 느낌이다.

냉전이라는 극장에서 흥행에 성공한 지도자들은 요한 바오로 2세, 레흐 바웬사, 마거릿 대처, 덩샤오핑, 로널드 레이건, 미하일 고르바초프이다. 이들은 기존 방식에 도전하고 관중들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켜 자신을 따르게 하는 능력이 있었으며 그럼으로써 오랫동안 냉전을 지속시켜온 세력에 대항하고 그들을 무력화시켰다.

냉전 기간 자원을 배분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데는 계획경제보다 시장이 효과적이라는 것이 입증됐다. 결과적으로 인민 생활이 향상되면 민주주의가 강화된다. 이러한 이유로 냉전 기간 중 민주주의만이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의견 일치를 보는 데 과거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다.

존 루이스 개디스는 예일대에서 강의를 하면서 ‘냉전을 현재 사건으로 여기지 못하는 새로운 세대를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양 강대국이 직접 전쟁을 치르지 않고 한쪽 제국이 스스로 무너지면서 평화적으로 해체된 매우 특이한 체제를 연구함으로써 냉전 현장의 일선이었고 아직도 잔재를 떨치지 못한 한반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새로운 냉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08년 8월 러시아는 그루지야를 공격했고, 미국은 인도적 지원을 명분으로 그루지야를 지원했다. 얼마 전(2010년 2월)에는 프랑스가 러시아에 미스트랄급 수륙양용 전함을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신냉전의 기류는 이처럼 본격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냉전 구도가 남긴 분단국가 한국은 냉전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을 실증한다.

개디스의 역사관에 따르면, 과거는 먼 미래에서 망원경으로 볼 때 반드시 다르게 보인다. 그렇다면 장대하고 아찔했던 지나온 순간과 불안한 현재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그 답은 위기 국면에서 이루어졌던 회담과 속임수, 독재자와 권력투쟁, 그리고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은 물론이고 지나간 냉전과 신냉전을 평가하면서 앞으로 찾아야 할 것이다. 그 일은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몫일 것이므로. 우리는 살아남았지만 앞으로 어떤 길에 들어서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책은 서문, 프롤로그, 1장 되살아나는 공포, 2장 죽음의 배와 삶의 배, 3장 통제 vs 자발성, 4장 자율성의 등장, 5장 형평 원칙의 회복, 6장 등장 배우들, 7장 희망의 승리, 에필로그, 옮긴이의 글로 구성됐다.

저자인 존 루이스 개디스는 냉전사의 수장이자 대표적인 현대사가. <뉴욕타임스>는 그를 ‘냉전 역사학자들의 학장’이라고 표현했다. 현재 예일대 역사학 석좌교수이자 냉전 국제사 프로젝트 자문위원이며 CNN 다큐멘터리 ‘냉전’의 고문으로 있다. 2005년 국가 인문학 대통령 훈장을 수상했다.#

강시영 편집국장 ksiyeong@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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