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vs 범죄자 인권, 무엇이 먼저?
피해자 vs 범죄자 인권, 무엇이 먼저?
  • 미래한국
  • 승인 2010.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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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간 형집행 안해 현행법 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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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살인마’로 불리는 유영철의 범죄행각은 고교 2학년 때부터 시작되었다. 친구 몇몇과 서울 성동구에 있는 주택가를 침입, 절도한 혐의로 소년원에 들어가 14차례 특수절도 및 성폭력 등으로 형사입건 되는 등 11년을 전국 각지 교도소에서 보냈다. 사회에 대한 반감을 갖고 2003년 9월 11일 교도소를 출소한 그는 불과 약 2주일 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명예교수 부부를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1명을 처참히 토막 내고 지문을 도려내 증거를 없애고, 손목을 잘라 시신을 불에 태웠다. 유영철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연쇄 살인자 30인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경찰에 붙잡힌 유영철은 검찰에서도 충격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잡히지 않았다면 백 명은 더 살해했을 것이다”, “희생자 시신의 일부를 먹었다”. 입이 딱 벌어지는 내용들이다. 실제 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 네 구의 사체에서 간(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뇌수(腦髓)도 먹었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5년 6월 9일 대법원은 유영철의 사형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현재 그는 서울구치소에서 복역 중이다.

유영철은 수감 중에도 “죽더라도 대형 경제사범과 조직폭력배 한 사람씩 두 명은 죽이겠다”고 말하는 등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수감 중 서울구치소 내 자신의 독방에서 벽에 설치된 선풍기 전기선에 목을 감고 자살을 기도했지만 근무 중이던 교도관에게 발각돼 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사형집행 안해

현재 유영철과 같은 국내 사형수는 총 61명. 우리나라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7년 23명을 사형에 처한 이후 13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때는 대통령 자신이 사형수였던 경험 때문에 사형 집행에 부정적이었고 ,노무현 정부 때는 소위 진보 진영이 내세운 가치 중 하나가 ‘사형 반대’여서 집행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있다. ▶관련기사 11~14페이지 

2004년 유영철 사건을 계기로 ‘사형제도 존치’에 힘이 실리면서 그가 과연 처형될 것인지 관심이 쏠리기도 했지만 그것도 그때 뿐이었다.

최근 부산 여중생 이모 양을 살해한 피의자 김길태가 검거된 이후 다시 ‘사형제를 존속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김길태는 변태적으로 이 양을 성폭행 한 뒤 목을 졸라 죽인 후 시신을 인근 물탱크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지난 2월 25일 헌법재판소의 사형제 합헌 결정에서 합헌 대 위헌 의견이 5대 4로 비등하게 나오는 등 이번 헌재의 결정은 ‘사형제 존폐’에 대한 논의를 화두로 던져주고 있다.

지난 3월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장은 사형제 찬반에 관해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이날 한나라당 의원들은 사형제가 유지되는 만큼 흉악범의 사형은 집행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민주당 의원들은 신중론으로 맞서면서 최근 13년간 중단됐던 사형집행의 재개 가능성을 시사한 이귀남 법무부 장관의 발언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최병국 한나라당 의원은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에게 인권을 운운하는 것은 지나치다”며 “상징성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집행을 해야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라고 사형집행 찬성의 입장에 섰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사형제를 유지하는 나라에서 흉악범죄가 줄고 있다는 통계는 없고, 과거 졸속한 사형집행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생명을 앗아갔는가” 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여론 주도층에서도 사형제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기는 마찬가지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지난 3월 18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인간의 생명은 존엄한 천부적 가치이자 권리로, 공권력이라 해도 생명을 앗아가는 것은 금해야 한다”며 “사형제 자체가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지난 3월 21일 “여성들을 참혹하게 살인하고도 사형제도가 없다면 이 나라의 기강이 서겠나. 이런 점은 고쳐야 한다. 범죄자의 인권은 있고 어린 아이들과 아녀자들의 인권이 없는 나라라면 인권이 없는 나라인 셈”이라며 사형제 유지를 옹호했다. 그는 또 “사형선고는 받았는데 사형집행이 안 된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종교계에서도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한국교회 진보 연합단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생명은 천부의 기본권이며 이를 사람이 빼앗아가서는 안 된다”며 “사형제를 폐지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대다수 교단을 대표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은 “죄의 값은 사망이라(성경 로마서 6장 23절)는 하나님의 법에 비추어 볼 때, 엄격히 규정된 법에 따라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사람에게 그 죄에 합당한 벌을 주는 것은 국가 질서를 유지시키는 일에 필요하고, 재소 기간 중 교화되고 죽음 앞에서 종교에로 귀의하여 내세에 대한 소망을 갖고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며, 그가 범한 죄에 상응하는 벌의 일부나마 받는 것이 될 것”이라며 사형제존치 입장을 표명했다.
천주교와 불교계는 대체로 사형제 폐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정진석 추기경 등 천주교 신자 10만481명의 서명을 담아 사형제 폐지를 위한 입법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인권위원회는 지난 3월 22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함께 사형집행 재개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범죄 처벌·예방 vs 범죄자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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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논의를 종합해 보면, 사형제 존폐 논쟁은 ‘사형제의 범죄 억제 효과’를 감안해 필요악으로서 사형제를 존치하자는 입장과 ‘인간의 생명 존중’ 자체에 방점을 두면서 범죄자의 인권까지 옹호하는 사형제 폐지 입장으로 양분되고 있다.

사형제 폐지론자들은 사형제는 범죄자의 ‘교화’를 실현할 수 없는 원시적인 형벌이며, 사형제의 범죄 억제효과가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형제를 폐지했다가 부활시킨 미국의 일부 주에서 살인 사건 발생률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 논거다. 게다가 오판에 의해 사형이 집행됐을 때, 그 결과를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을 사형제 폐지의 근거로 꼽고 있다.

그러나 사형 선고에 있어서의 오판 가능성은 첨단·과학화된 수사기법과 명백한 흉악범죄자에 대한 선별적 사형 선고, 철저한 증인·증거주의 채택 등으로 극히 낮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심급마다 재판관 구성이 3인 합의제로 되어 있고 변호사가 없는 심리는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61명의 사형수 중에는 간첩죄 등 비생명침해 사범은 한 명도 없어 과거 문제가 됐던 사형죄의 정치적 악용 가능성도 사라진 상태다.

박준선 한나라당 의원은 사형제가 범죄 예방과 관련이 없다는 주장에 관해서 한 월간지를 통해 “사형제 존치와 범죄 발생률과의 상관관계를 정확히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살인죄 등 강력범죄의 발생은 경제 상황, 교육정도, 윤리의식, 인구변화 등의 다양한 사회 문화적인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박 의원은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사형을 찬성하고, 사형이 범죄억제 효과가 있다고 믿고 있다”며 “특별한 상황에서 살인의 범의(犯意)를 품을 수 있는 잠재적인 범죄자인 일반 국민이 그렇게 믿고 있다면 수치로 계산할 수 없으나 사형은 범죄 억죄력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사형제 폐지론자들이 ‘모든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범죄자의 인권마저 옹호하면서 피해자의 인권이나 사회 기강 확립 측면에서의 접근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피해자 가족 자살, 짓밟히는 피해자 인권

이러한 논쟁 속에 무참히 짓밟히는 것은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인권이다.

유영철에 대한 1심 공판이 있었던 지난 2004년 9월. 법정에 출두한 유영철은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한 피해자 가족들에게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막말을 서슴지 않는다.

“걔는 내가 편하게 죽였다”, “내가 그런 애들을 죽인 것은 사람들을 죽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공판이 끝난 뒤 약 두 달쯤 지난 후, 연쇄살인범 유영철에게 희생된 피해자의 친동생은 사건 두 달 뒤 실의에 빠져 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영철에게 희생당한 서울 황학동 노점상 안모 씨의 친동생이었다. 그는 서울 행당동 자신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천장에다 스스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안모 씨의 막내 동생도 사건이 있은 지 1년 후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한 가정이 풍비박산 난 것이다. 유영철에게 직접 살해당한 안모 씨는 인천 앞바다에서 불태워진 차 안에서 손목이 절단된 채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었다. 유영철은 그의 양 손목을 절단해 인천 앞바다에 버렸다.

피해자의 가족들 중에는 범죄로 인해 가장을 잃어 생계를 이어가기가 막막한 경우도 부지기수지다. 현재 정부는 ‘범죄 피해자 지원법’에 따라 사망한 경우 최고 천만원의 구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돈’으로 가족을 잃은 슬픔을 대신할 수는 없는 형국이다.
사형수들에 대한 형 집행이 미뤄지면서 살인자를 추앙하는 반 인륜적, 반 사회적 분위기또한 확산되고 있다.

▲ 영화 <집행자>의 한 장면
지난 2004년 유영철이 검거된 이후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유 씨의 팬카페가 등장해 국민들을 경악하게 했다. 이 카페의 이름은 ‘살해짱 유영철 씨 팬카페’. 당시 회원수가 240여 명이었던 이 카페는 공지글을 통해 “멋진 유영철 씨 팬클럽이 되었으면 합니다. 즐거운 시간이 되어요”라며 유 씨를 옹호하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풍겼다. 유 씨의 실화는 2008년 ‘추격자’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잔인한 살해 묘사가 특징인 이 영화는 전국 관객 500만을 넘어서는 흥행을 기록했다.

지난해 사형선고를 받은 연쇄살인범 강호순을 옹호하는 팬카페도 생겼다. 이 카페의 이름은 ‘연쇄살인범 강호순님의 인권을 위한 팬카페’. 카페 주소에는 ‘I love hosun’이 명기되어 있었다. 이 카페 회원수는 1만5,000명을 넘어섰고, 수십만 명이 방문할 만큼 관심이 뜨거웠다. 이 카페의 운영자 중 한 사람은 17세 남학생이었다. 강호순은 2006년 9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경기도 서남부 일대에서 부녀자 8명, 장모와 처까지 살해하는 반 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인물이다.

최근에는 부산 여중생 살해사건의 피의자인 김길태를 옹호하는 카페들도 생겨나 이미 회원수천 명을 넘어섰다.

이에 따라 사회적인 기강 확립을 위해서도 이미 정해진 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형제 찬성 83.1%

지난 3월 12일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소장 진수희)가 전국의 성인남녀 3,04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ARS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집행 사형수에 대한 사형집행 공감도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91.4%가 ‘그간의 사형 미집행이 오히려 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공감을 표시했다. 공감하지 않는다는 의견은 8.6%에 그쳤다.

응답자의 83.1%는 범죄예방 효과 등을 이유로 사형제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응답자의 11.1%는 사형수의 인권을 앞세워 반대 입장을 보였다.

현행 형사소송법에서는 ‘사형집행명령은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하여야 하며, 사형의 집행은 법무부 장관의 명령이 있은 때로부터 5일 이내에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3년간 법무부가 사형을 집행하지 않음으로써 ‘사법부가 결정한 것을 왜 행정부가 지키지 않느냐’는 비판도 많다.

이에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지난 3월 16일 청송교도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청송교도소에 사형집행시설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며 사형집행을 염두에 두는 발언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사형제도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지난 대선 당시 “범죄 예방이라는 국가적 의무를 감안할 때, 사형제는 유지돼야 한다”며 “다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죄목이 지나치게 많은 점은 고쳐야 한다”고 했다. 현행 법에서는 마약류관리법, 마약류불법거래방지특례법, 문화재법 등 국민 생명과 직결되지 않음에도 사형을 법정형으로 규정하고 있는 법조항이 많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최병국 한나라당 의원도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무기징역의 경우 10년 이상 수감생활을 하면 가석방이 돼 사실상 유기징역과 같은 성격이 된다”며 “사형제가 존치되면서 개선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진다면 이러한 점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서은옥 기자 seo0709@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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