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 노조가 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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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0.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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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총 탈퇴한 노조의 긍정적 변화
▲ 지난해 9월 쌍용차 민노총 탈퇴 찬반 투표 현장 /출처:뉴시스


# GS칼텍스 노조는 상급단체였던 민노총이 ‘울타리’가 아니라 ‘족쇄’였다고 한다. 2004년 10월 민노총 탈퇴 이후 쟁의부를 없앤 이 노조는 대신 사회봉사부를 만들어 저소득층 어린이들의 급식비를 지원하고 방과후학교를 돕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2007년 노조 규약 전문에는 ‘무분규와 상생의 노사관계를 이룩한다’는 문구를 넣었다.

# KT 노조는 민노총 탈퇴로 절약한 상급노조 활동비를 이웃 사랑 실천에 사용하고 있다. 취약계층 고교생과 소년소녀가장, 형편이 어려운 비정규직 등 320명에게 매년 6억 원 가량을 장학금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김구현 KT 노조위원장은 “이제는 조합원들이 주체가 되어 사회적 소외계층까지 배려하는 노동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인천지하철 노조는 민노총을 탈퇴하면서 노조의 위상이 축소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기우였다고 한다. 탈퇴 이후 인천시 산하 공기업 노조들과 노동자협의회를 구성하면서 인천지하철 노조의 입지가 오히려 강화된 것이다. 최근에는 지역 경제포럼과 봉사활동 등에 적극 참여하면서 지역사회와의 관계도 개선해 나가고 있다.

‘공공의 적’이었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소속 노조들이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내다 버리고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이와 함께 경영난 극복에 동참하며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노조도 눈에 띈다.

영진약품 노조 관계자는 “민노총이었을 때는 회사가 어려워지면 구조조정에 따른 노사갈등이 팽배했지만 탈퇴한 지금은 조합원들 사이에 ‘어느 정도 양보하더라도 고용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민노총 지침에 따라 간부들이 주도해 움직이던 조합 운영 방식도 조합원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이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해 민노총을 탈퇴한 울산NCC 노조 관계자는 “예전에는 민노총에서 내려오는 파업 지침을 처리하느라 바빴지만 올해부터는 조합원 복지 현안을 챙기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에 민노총의 그늘에서 벗어난 충북지역 상용직 노조(충북도청을 비롯해 도내 6개 지자체 직원으로 구성)도 “민노총으로 활동하는 동안 타 사업장에서 근로하는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거나 최악의 경우 자살을 선택하기도 했다”며 민노총 활동에 대한 후회가 컸음을 전했다. 이후 상생과 화합의 장을 만드는 노조의 필요성을 절감한 충북지역 상용직 노조는 “민노총이 가고자 하는 길과 목적을 따를 수 없어 탈퇴를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전국 여러 기업과 공공부문 노조를 중심으로 민노총 탈퇴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해 현대자동차와 KT 노조 등에 이어 올해 한국행정연구원, 울산항만예인선,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영화진흥위원회 노조 등이 파업만능주의로 퇴행하고 있는 민노총에 결별을 선언했다. 환경부 노조와 부산 공무원노조 해운대구지부도 민노총과 통합공무원노조 가입을 철회했다. 이는 통공노의 민노총 가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반영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파업 만능주의로 퇴행하는 민노총

이와 함께 좌파 노동운동의 입김이 강하면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의 지역구이기도 한 경남 창원산업단지에도 민노총 탈퇴 바람이 불고 있다. 공작기계 생산업체 두산인프라코어와 건설기계 제작업체 볼보건설기계코리아 등이 민노총을 박차고 나온 것이다.

이에 이정훈 볼보건설기계코리아 노조위원장은 “회사와 무관한 정치투쟁에 나서는 민노총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신이 컸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이 노조위원장은 “다국적 기업인 회사 여건상 외국 주주들이 한국의 적대적 노사문화 때문에 투자를 꺼리기도 했다”며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민노총 탈퇴를 결정, 상생하는 노사관계를 정립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작년 9월 민노총을 탈퇴한 쌍용자동차 노조 관계자도 “총파업 때 지도부와 민노총, 금속노조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며 “조합원 권익 보호보다는 정치투쟁에 골몰한 민노총의 극단적인 투쟁 방식에 조합원들이 강한 거부감을 느껴 결국 등을 돌리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민노총 지도부가 소속 노조의 노사 화합과 양보 교섭 사례가 나올 때마다 징계 방침을 내려온 것도 탈퇴를 부추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다.

이성희 인천지하철 노조위원장은 “민노총 가입 후 노사관계가 만신창이가 되고 조합원 갈등도 극에 달했다”며 “정치 현안이 생길 때마다 민노총에서 투쟁 지침이 내려왔고 조합원들은 집회 현장에 동원될 수 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이 노조위원장은 “현 정부를 타도 대상으로 규정하고 무조건적인 대립각을 세운 민노총은 정작 조합원들의 요구는 조합 정책에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소속 노조들의 잇단 탈퇴로 조직적 위기를 맞은 민노총에 대해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민노총 식의 좌파 정치조합주의가 근로자들이 살아가는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탈 조직이 더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법과 원칙’을 앞세운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이 민노총에는 큰 도전이 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노동전문가들은 “지난 정부에서는 웬만한 정치파업에 대해 관용을 베풀었지만 이명박 정부는 불법 파업에 ‘無관용’을 고수하고 있어 민노총의 입지가 갈수록 약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처럼 급속도로 흔들리고 있는 민노총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낸 노동계 관계자는 “1980년대 말부터 노동현장에는 주체사상을 비롯한 시대착오적인 좌파이념이 깊이 침투해 폭력적이고 反기업주의 방향으로 노동운동이 흘렀다”며 “1995년 설립된 민노총은 대한민국의 정체성마저 부정하는 반정부적 집단처럼 돼버려 노동자들의 권익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정치적 구호를 내걸고 총파업을 벌여왔다”고 지적했다.
 

노사 상생 통해 기업 경쟁력 높여야

지난 2006년 ‘뉴라이트 신 노동연합’을 만든 故 권영목 씨 또한 ‘민주노총 충격보고서’에서 민노총의 부패상과 도덕성 상실을 폭로한 바 있다. 1980년대 노동운동가로 활동했던 권 씨는 이 보고서에서 “민노총 지도부가 시대착오적인 낡은 이념과 투쟁 일변도의 노동운동을 벌이고 있다”며 내부적으로도 부패한 집단임을 꼬집었다. 지난 1998년 민노총 간부가 재정사업비 5억 원을 빼돌려 주식투자를 했던 것이 발각된 ‘재정위원회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조동희 서울지하철노조 정책실장은 “1997년 IMF를 기점으로 경영과 자본은 빠르게 변모해 온 반면 노동운동은 시대에 맞춰 변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조 실장은 “오히려 노동운동은 계파 대립 등이 극심해지면서 정치이념 지향으로 몰려갔다”며 “기득권 지키기 노동운동으로 변질되면서 내부 혁신이 불가능한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토로했다.

노동 전문가들은 민노총이 강경 일변도의 투쟁방식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민노총은 계속되는 소속 노조들의 탈퇴를 “자본과 정권에 의한 민노총 탈퇴 공작에 의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쌍용차의 금속노조 탈퇴 투표 직전에도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노조운동 와해를 노린 정부와 사측의 정치공작”이라며 투표 중단을 촉구한 바 있다.

이탈 사태를 낳은 구조적 문제에 대한 반성도 없이 대다수 조합원들이 지지한 결정 조차 무시해버리는 민노총의 안일한 태도에 노동계 안팎에서는 비난 여론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더욱이 온건파로 알려졌던 김영훈 민노총 신임위원장이 오는 4월 말 총파업을 벌일 뜻을 밝힌 가운데 노사정 6자 대표자회의를 비롯한 일체의 노정 대화를 거부하겠다는 성명까지 발표해 국민들의 작은 기대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이에 소속 노조의 민노총 탈퇴와 국민들의 차가운 시선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 

김미희 기자 elikim@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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