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불교 정신으로 대한민국 지킨다
호국불교 정신으로 대한민국 지킨다
  • 미래한국
  • 승인 2010.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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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단체를 찾아서⑨
▲ 이석복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 사무총장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이하 대불총)은 지난 2월 13일 불교계의 대표종단인 조계종과 북한의 위장 종교기관인 조선불교도연맹(이하 조불련)이 최근 합의한 일련의 합의서를 두고 긴급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불교의 대표종단이 북한의 대남공작에 휘둘려서야 되겠는가?’라는 제하의 성명에서 대불총은 “대한불교 조계종 대표단과 조불련과의 2월 1일 평양 합의사항에 대한 무지(無知)와 우행(愚行)에 경악한다”며 “6·15남북공동선언의 이행과 민족의 화해와 협력에 기여하기 위해 합의했다는 공동사업을 즉각 반려하라”고 촉구했다.

조계종과 조불련이 합의한 공동사업에는 “금강산 신계사를 활성화하기 위해 성지 순례 등의 공동사업을 추진하며 서울 도선사의 108산사 순례단 4,000~5,000명이 3월에 신계사를 순례한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어 우려를 낳았다.

대불총은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북한의 조불련은 노동당의 위장단체이며 우리 불교계를 공산화 통일전략에 이용하고 외화벌이에 봉으로 삼기 위한 단체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며 “대한불교 조계종이 무분별하게 조불련과의 교류를 계속한다면 대다수 불교도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로부터 외면과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각성을 촉구했다.

이어 대불총은 2월 18일 조계사와 통일부 앞에서 각각 기자회견을 갖고 “국가와 국민과 불교도를 저버린 친북 승려를 규탄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통일부는 순례단의 금강산 방문을 불허했으며 이들의 공동사업은 무산되고 말았다.

지난 3월 18일 <미래한국>은 서울 예장동에 위치한 대불총 사무실을 방문해 이석복 사무총장(68·예비역 육군소장·전 5사단장)과 신윤희 감사(69·예비역 육군소장·전 헌병감)를 만났다.

수백 개의 불교계 단체 중 대한민국의 정체성 지키기에 앞장서고 있는 단체를 찾기는 쉽지 않다. 1,200만 불자(2005년 인구센서스) 가운데 70% 이상이 속해 있는 대표종단인 조계종 지도부가 좌익세력의 영향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지난 2006년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고 한미연합사의 해체가 가시화되던 시기, 뜻 있는 불자들은 불교계를 대표할 만한 애국단체가 없다는 현실에 크게 낙담했다. 이에 대한민국의 앞날을 염려하는 노승들과 재가 불자들의 권고를 받아 예비역 장성 불자연합회인 ‘성불회’의 박희도 장군이 ‘대불총’의 창립을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동의하는 33명의 뜻 있는 불자들이 충무로 대림정에서 발기인 대회를 했고 2006년 10월 30일에는 서울 충정사(忠正寺)에서 300여 명의 회원이 운집한 가운데 ‘대불총’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이라는 명칭이 갑론을박 끝에 단체의 목적을 가장 선명하게 천명한다는 회원들의 뜻에 따라 결정됐다. 대불총이 설립된 후 일부에서는 대통령선거를 위해 만든 선거용 정치단체이니 선거가 끝나면 없어질 것이라고 음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석복 사무총장은 “지난 15년에 걸쳐 불교계에서 기생해온 친북좌익세력이 제거되기까지 대불총은 그 사명과 책임을 다해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북핵실험과 한미연합사 해체 시도에 자극받아 설립

대불총은 박희도 상임대표(예비역 육군대장)를 중심으로 이종구 전 국방부 장관, 안병태 예비역 해군대장, 김홍래 예비역 공군대장, 정진태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이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또 조계종을 비롯하여 태고종, 천태종, 진각종 등 각 종단의 신도회장들과 연예계를 대표한 가수 송춘희 씨, 이건호 조계종 방생회장, 전용찬 전 강원경찰청장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 단체의 실무는 이석복 사무총장과 신윤희 감사, 박민규 행정실장 등이 맡고 있다. 서울 본부와 함께 대전, 대구, 부산, 인천, 강원 등에 지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직능별로 상이용사불자 지회와 해병대불자 지회 등이 참가하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1,000여 명의 충성 회원들이 대불총의 조직기구를 받쳐주는 골격을 이루며 다양하고 활발한 애국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금년 10월에 4차 창립총회를 앞둔 대불총에 등록된 회원만 현재 5,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관계자에 따르면 조계종에 등록된 승려는 모두 1만3,800여 명이다. 이 가운데 2%가 조금 넘는 300여 명의 승려들이 불교계의 핵심적인 좌익세력인데 바로 이들이 조계종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이 조계종의 인사권과 재정권 그리고 의결권을 가진 실세로서 종단을 사실상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승려나 불교도들은 이들의 주장에 찬성하지도 않고 대개는 무관심하다.

전국적으로 군종교구까지 26개의 교구가 소유한 조계종 사찰 가운데 조계사, 봉은사, 화계사, 도선사, 팔공산 갓바위(선본사) 등 막대한 재정을 주무르는 주요 사찰이 모두 이들의 수중에 있어 이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는 지적이다.

대불총의 호국불교 활동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도 바로 이런 측면에 기인한다. 조계종은 대불총의 주장에 각을 세우며 비협조적이라고 한다. 대불총이 호국불교를 주장하면 정부에 아첨한다며 대불총의 활동을 폄하하기 일쑤다. 조계종 측은 ‘호국불교’라는 용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한다. 반면에 태고종, 천태종, 진각종 등의 다른 불교종단은 호국불교의 정신을 내세우는 대불총의 애국운동에 우호적이며 전적으로 협력하여 지도법사까지 파견하고 있다.

조계종은 대불총이 매년 6월 사명당기념사업회와 함께 하는 사명대사 추모행사에도 외면해오고 있다. 동국대 정문 옆에 위치한 장충단 공원 내에 사명대사 동상이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계종이 무관심한 것은 의도적으로 호국불교 운동을 외면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지적이다.

대불총은 불교계의 전반적인 친북좌파적 성향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하면서 규탄성명을 잇따라 발표하고 노무현 정권 내내 불교계 내의 좌익 척결의 선두에 서왔다.

대불총은 작년 2월 4일에도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내 일부 승려와 재가 불자들로 구성된 이른바 ‘시국법회 추진위원회’가 2월 2일 화계사에서 대표자회의를 열어 2월 5일 오후 6시 30분에 조계사에서 시국법회를 봉행한 다음 촛불집회가 다시 열리는 청계광장까지 시위행진을 할 것을 결정한 시점이었다. 이 시국법회에서는 용산 사건 희생자 유족대표와 승려 100여명, 일반인 500여명이 동참할 것이며 용산 사건의 희생자들을 위한 49재를 조계사에서 범 종단 차원에서 봉행하도록 모색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대불총은 “우리는 이런 행동계획이 한국의 불교계를 대표하며 지도해야 할 조계종 일부 승려들이 할 일인지 크게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한국 불교계의 시국법회 추진자들에게 경고한다. 우리 불교 대표종단의 총 본산인 조계사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배신하는 일과 반국가 단체들의 촛불집회 동참 계획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대불총은 불교 안의 좌익세력과 불교 밖의 좌익세력이라는 두 세력에 대항하여 호국불교의 정신으로 싸우고 있다. 지혜를 구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대승정신으로 국가를 보호하고 애국하는 것이 곧 호국불교임을 강조하며 이것은 결국 “대한민국이 있어야 불교도 있다”는 말이라고 이석복 사무총장은 전했다.


전국 사찰 순회 안보교육 전념


이를 위해 대불총은 두 가지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첫째는 호국불교의 역사를 발굴하고 불교계를 개혁하는 것이다.

▲ 지난 2월 18일 조계사 정문 앞에서 개최된 대불총의 친북승려규탄 기자회견 장면
둘째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불총은 2009년 한 해 동안에는 현대사 재조명과 국가정체성 회복에 주력했다. 2009년 11월 3일 부산시청 회의실에서 ‘현대사 재조명 토론회’를 가졌고 11월 25일에는 서울 군인공제회빌딩에서 ‘호국불교역사 발굴 학술토론회’를 가진 바 있다. 대불총은 이렇게 각 도시를 순회하며 모두 12번의 세미나를 가졌다. 이 사무총장은 “일개 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정말 열심히 했다”고 자평했다.

2010년에는 세미나 보다는 순회 강연회에 치중할 것이라고 한다. 호국불교를 통한 불교계와 국민 계몽을 위해 중소도시 중심의 전국순회 강연을 계획하고 있다.

2007년과 2008년에는 전국의 사찰을 다니며 안보교육에 전념했는데 당시 불자대중의 호응이 컸다고 한다. 법회가 있는 전국 사찰을 찾아 다녔다. 1주일 두 번 정도 지프차로 먼 거리를 이동하는 순회 안보교육은 대불총의 사업 가운데 가장 힘든 사업이었지만 애국정신을 회생시킨다는 보람으로 감당했다고 한다.

다행히 안보강연을 들은 사람들은 저마다 법당에서 일찍이 들어본 일이 없는 얘기라며 “나라가 정말 이렇게 어렵습니까?”하고 걱정하며 깨닫게 해주어 고맙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최근에는 뚝섬유원지의 ‘방생법당’에서 월1회 법회를 갖고 시국에 대한 강연회도 갖고 있다.

이석복 사무총창은 대불총의 향후 계획과 관련 “호국불교 운동을 통해 불교계를 개혁하는 일에 주력하고 대한민국을 지키는 운동에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주력하는 한미연합사 해체반대 1천만 서명운동이나 4대강 개발 지지운동은 이러한 대불총의 목표를 이뤄가기 위한 구체적인 활동이라고 전했다.


법정의 이중성 지적

한편 최근 입적(入寂)한 법정에 대해 이석복 사무총장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밝은 면으로 욕심을 버리라는 ‘무소유’의 설법을 전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다른 하나로서 어두운 면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어두운 면이란 그의 실제 행동이 말과 모순된 점이라고 했다. 일례로 법정은 정부의 각종 국책사업에 대해 반대하며 배후조정을 했다는 흔적이 있으며,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에 대해서는 증오하면서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의 과오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점 등을 들었다.

신윤희 감사는 “법정이 삼성병원에 입원해 50여 일의 입원비가 6,000여만 원에 달했다든가, 자주 다닌 해외여행에서 늘 1등석 비행기에 1등급 호텔만 사용했다는 등의 말들이 ‘무소유’를 설파한 법정 자신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   
김창범 편집위원 cbkim47@hanmail.net
 



법정 스님에 대한 다른 견해

저서 <무소유>로 관심을 모았던 법정 스님이 지난 11일 입적했다. 그가 무소유를 얘기하나 실천을 하지 않았고 정치적인 승려였다는 주장이 있다. 이에 관한 두 필자의 글을 요약 소개한다.

호화로운 해외여행 즐긴 법정스님 
이상현 목사 

나는 청년기 때 법정 스님의 책에 매료된 적이 있다. 기독교인인 청년이 불교의 스님의 열성적인 팬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분이 중반기나 후반기에 쓴 책을 구입해서 읽고 있노라니 약간의 갈등이 생겼다.

승객 2천명을 태울 수 있는 1만9,000톤급의 호화여객선을 타고 에게해의 크레타섬에 가서 비치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해수욕을 즐기고([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pp231~234), 스위스와 독일 뮌헨을 여행하고(앞의 책, p34) 헐리우드를 활보하고, 자동차로 미국의 하이웨이를 드라이브하고, 인도에 가서 몇 달간 수행을 하는 등의 내용의 글이 계속 나타났다.

나는 법정 스님이 독자들을 비판력이 없는 무지한 바보로 취급하고 있든지 아니면 모순된 내용의 책을 읽고도 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의 무소유 사상을 높이 떠받드는 독자가 바보든지 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소프트웨어(통장의 넉넉한 외국여행자금)의 최대의 유소유자인 법정 스님이 소프트웨어(통장의 돈)는 별로 없고 자질구레하고 케케묵은 하드웨어(잡다한 고물 가구, 살림살이)만 소유한 서민 대중들의 그 하드웨어 소유를 집착으로 규정하여 죄악시하고 그 하드웨어들을 다 버리고 ‘텅빈 충만’을 느끼며 ‘무소유’의 삶을 살라고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다.

콩나물 팔아서 자신은 한 푼도 쓰지 않고 수억 원을 모아 장학금으로 낸 할머니야말로 참 무소유자이다. 자신이 수십개국 해외여행에 펑펑 쏟아 부어버리고 일부를 장학금으로 낸 사람은 절대로 무소유자가 아니다. 그리고 자신이 쓴 책을 계속 출간해서 그 인세로 계속 장학금을 대거나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사용하라는 유언은 남기지 않고 자신이 쓴 책은 모두 절판하라니 이 또한 잘못된 것이다.


무소유의 노래에 따라 합창하는 남녀들
이법철 스님 
 
1960년대 중반 필자는 해인사에서 법정스님을 처음 해후했다. 그는 해인사 해우소 가는 길 옆 건물의 끝 방에 기거하면서 책을 읽고 글쓰기 공부에 매진했다.

그의 글쓰기는 첫째, 사찰환경과 자연에 대한 찬미였다. 둘째, 무소유, “내 호주머니는 먼지 뿐일세” 식의 글을 썼다. 그 다음, “버리고 떠나기”, “맑고 향기롭게”를 연속 발표했다. 그는 마침내 신조어의 글쓰기로 대성공했다. 명성과 돈이 따랐다. 돈 많은 여신도들이 후원인이 되려고 경쟁했다.

그는 출판사에 불같이 호통을 치면서 인세를 챙겼다. 수십억의 인세와 신도들의 보시금, 사찰 방문 때의 보시금, 길상사에서 회주스님께 드리는 약값조의 보시금 등으로 어렵지 않게 살았다.

법정스님은 불교 이외에 어떠한 사상을 가진 분일까? 그는 목포상고의 선배인 DJ를 추종했다. 자신의 입으로 DJ에게 송금을 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그의 글은 자유대한을 사랑하고 보위하는 글은 없다. 세습독재체제 속에 수백만이 비민주, 무인권 속에 기아로 죽어가는 것을 환히 알면서 김일성, 김정일의 폭압정치에 대해서는 꾸짖는 것은 커녕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박정희를 독재자로 증오했다. 자유민주를 위해 월남으로 간 장병들을 증오했다. 왜 미국편에서 베트남 공산당에 총부리를 겨누냐는 지론이다. 그는 진보적 승려들이 부안방폐장, 새만금, 천성산, 사패산 등 국책사업의 저지할 때, 배후의 총사령관이었다. 사패산 농성에는 현장에 나타나 대정부 투쟁을 독려했다. 법정 스님이 건재했다면 이명박 정부의 ‘사대강 살리기’는 큰 암초를 만났을 것이다. 버리고 떠난다면서 왜 그리 집착했을까?

오늘날 불교의 호국론은 불교가 존재하고 중흥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 보위다. 예나 지금이나 위국헌신(爲國?身)하는 불제자들이 참된 불제자인 것이다. 미사여구, 언어문자를 내세워 세상을 현혹하고, 이중인생(二重人生)의 연기를 잘하는 자에 박장대호(拍掌?呼)하고, 울며 돈 바치며 추종할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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