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크메르루주 정권과 북한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정권과 북한
  • 미래한국
  • 승인 2010.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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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뷰] 도널드 커크 편집위원·전 뉴욕타임스 특파원
▲ 크메르 루주군


1945년 독일 히틀러 나치 정권이 패망하고 1953년 소련의 조셉 스탈린이 죽은 이후, 지구상에서 가장 잔혹한 정권의 오명은 아마도 북한보다 먼저 1978년 12월 공산 베트남의 침공으로 쫓겨나기 전까지 1975년부터 캄보디아를 장악했던 폴 포트의 크메르 루주 정권에게 돌아갈 것이다. 당시 약 200만 명의 캄보디아인들이 크메르 루주 정권의 손에 의해 기아, 처형, 고문, 질병으로 죽었다.

크메르 루주 정권 하에 캄보디아인들이 당한 고통은 북한에서 오랜 기간 계속되고 있는 만행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오늘날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은 매혹적인 실크와 조각, 은제품, 기념품 등의 물건을 파는 상점들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식당들은 다양한 메뉴를 제공하고 있고 거리에는 오토바이 스쿠터들과 사람과 물건들을 실어나르는 큰 차량들로 혼잡하다. 인터넷 카페가 도처에서 늘어나고 있고 카지노와 나이트클럽은 비싼 돈을 지불하고 재미를 보려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국립박물관과 왕궁은 최소 2,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캄보디아 문화와 유산을 볼 수 있게 하고 있다.

캄보디아가 끔찍한 독재에서 엄밀히 말하면 민주사회는 아니지만 이렇게 활발한 국가로 변화한 것이 주는 교훈은 뭘까? 훈센 총리가 베트남의 후원을 힘입어 지난 25년간 캄보디아를 다스리고 있는 방식은 이상적인 것은 아니다. 1,500만 캄보디아 인구 중 얼마나 많은 수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대규모는 아니지만 여전히 고문과 살인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하지만 불완전한 세계에서 캄보디아는 ‘평화의 오아시스’라는 예전의 명성을 회복하고 있다. 미국과 남베트남이 공산 북베트남과 전쟁을 하고 있을 때 캄보디아는 불안정한 중립을 유지했는데 당시 노르돔 시아누크 캄보디아 왕자는 이런 캄보디아를 ‘평화의 오아시스’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이 ‘평화의 오아시스’는 1975년 캄보디아의 구 정권이 패배한 후 2주 뒤 미국이 후원한 남베트남 정권이 붕괴될 때까지만 지속되었다.

놀랍게도 시아누크는 살아남았고 ‘왕’시절 만큼의 삶을 구가하면서 주기적으로 수도를 뒤흔드는 비열한 힘의 정치 위에 우뚝 솟아오를 수 있었다. 마침내 2004년 그는 자신의 아들인 노르돔 시아모니가 후계자로 왕관을 쓰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현 상태의 평화와 번영을 유지하려는 필요에서 비롯된 타협의 결과다. 폴 포트 정권은 붕괴됐고 북한 김정일 치안요원만이 능가할 수 있는 수준의 잔혹한 고문을 자행해온 폴 포트 측근들은 도망을 가거나 죽고 체포되면서 영원히 사라졌다. 

그런데 한 가지 아이러니가 있다.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을 통일하고 크메르 루주 정권을 몰아낸 세력이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의 공산주의자들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공산 베트남 군대가 2개 한국군 사단의 지원을 받던 미국과 남베트남 연합군과 싸우고 크메르 루주 정권을 몰아낼 수 있었을까? 베트남에서는 1975년 공산주의가 승리한 후 북한만큼 참혹한 독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부분적인 이유다.

베트남 지도부는 정책을 바꾸면서 변화했고 그 사이 시장경제가 번성하기 시작했다. 베트남 사람들은 1975년에는 가능해보이지 않았던 문화 및 경제적 자유를 어느 정도 얻었다. 더욱이 베트남 공산정권을 1969년 자신이 죽을 때까지 이끌었던 호치민이 반대자들은 탄압했지만 베트남인들을 가혹하게 억압했다는 악평을 받지는 않았다.

전혀 다른 사회와 문화를 가진 캄보디아와 북한을 비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여기에서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김정일 독재와는 타협이 안 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와 같은 정권들은 갑자기 인도주의적 정책들을 택하지 않았고 권력을 떠받드는 기둥 즉, 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북한이 정책을 바꾸거나 핵무기 폐기를 포함, 합의한 것을 지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캄보디아인들을 크메르 루주 정권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한 것은 대격변이었다. 마찬가지로 북한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격변이 필요할 것이다. #

번역·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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