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오바마의 이란핵 외교
실패한 오바마의 이란핵 외교
  • 미래한국
  • 승인 2010.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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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브라질 등 신흥강국 미국 역할 무시
▲ 이란 농축 우라늄 터키 반출 안에 합의한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 마무드 아마디네자르 이란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좌로부터)


오바마 행정부가 취임 후 지금까지 16개월 동안 펼쳐온 이란핵 외교가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이란은 지난 5월 17일 터키와 브라질의 중재를 받아들여 자신들의 우라늄 일부를 터키로 보내 농축을 받도록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EU 등이 그동안 그렇게 하라고 타이르고 협박해도 꿈쩍하지 않던 이란이 터키와 브라질의 제의는 수용한 것이다. 당연히 미국과 EU 등의 반응은 불쾌함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합의가 지난해 미국이 제안한 내용과 비슷하지만 이란 핵개발 중단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 속빈 강정이라는 지적이 크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이란에 1,200킬로그램의 이란의 우라늄을 러시아로 보내 농축을 받게 한 후 돌려받도록 하는 제안을 했다. 이는 무기화할 수 있는 우라늄을 사실상 빼앗는 것으로 이란의 주장대로 그들의 핵개발이 평화적 목적을 위한 것이라면 동의할 것이고 이를 통해 이란의 핵개발이 중단되고 시간을 벌 수 있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이란이 터키·브라질과 합의한 내용에는 3, 4% 수준으로 저농축된 우라늄은 터키에 보내지만 20% 농축된 우라늄은 이란이 그대로 보유하게 되어 있어 이란의 핵개발이 중단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외무장관이 이번 합의가 이란 핵무기 중단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즉시 반박 발표문을 낸 것도 이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란이 터키·브라질과 합의하면서 2006년 이란 핵문제가 불거진 후 이 문제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해온 미국이 무시되고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나뉘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틀 뒤 중국·러시아의 지지를 얻어 4차 이란제재결의안을 마련하면서 이란핵 문제의 주도권을 다시 잡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먼저, 이 결의안은 사실상 터키와 브라질의 중재 내용을 거부하는 것이라 현재 UN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인 이 두 나라는 결의안을 찬성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만장일치를 기대하는 미국에는 뼈아픈 상처가 되는 것이다.

미국이 이번 결의안을 급하게 마련하느라 이란과의 경제적 관계로 이란 제재에 회의적인 중국과 러시아에 양보를 많이 해 제재 결의안이 이빨 빠진 호랑이라는 지적이 크다.

미국이 주장해왔던 이란 중앙은행을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것이나 이란의 중추산업인 원유·가스 산업에 대한 제재 등이 빠졌기 때문. 이에 따라 중국회사들은 이번 제재결의안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란의 원유를 구매할 수 있고 이란원유개발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중국은 실제로 결의안 발표 직후인 지난 5월 20일 향후 10년 간 600억 달러를 투자해 이란의 원유를 개발한다는 협정을 이란과 체결했다. 또 이란 남부 천연가스 개발사업을 프랑스 기업 대신 맡아서 하고 있다. 중국은 또 이란이 터키·브라질과 합의한 것을 환영하고 찬성했다. 미국과 궤를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 가장 큰 충격은 터키와 브라질이 미국의 역할을 대신해 이란 핵문제 해결에 나섰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5월 17일자에서 미국은 터키와 브라질의 이 움직임을 알고 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담에서 이란이 UN의 요구와 제재를 피할 빌미를 주지 말라며 간접적으로 주의를 줬다.

하지만 두 나라는 미국의 말을 듣지 않았고 백악관은 이에 두 나라에 분노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어떻게 된 것인가?

오바마 행정부가 취임 후 이란핵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16개월 간 보여준 외교 위주의 접근이 미국의 유약함을 드러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대선에서 이란핵 문제 해결을 위해 이란 지도자들과 무조건 직접 만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부시 행정부가 이란 지도자들을 직접 만나지 않는 등 외교를 통한 방법을 등한시해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이유에서다. 이란을 악의 축 중 하나로 규정한 부시 행정부는 이란 지도자들과 이란 국민을 구분해 사실상 이란 국민에 의한 이란 정권교체를 지지하면서 이란 지도자들과의 직접 대화를 피했다. 하지만 정권 후반기에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중심으로 이란핵 문제 해결을 위해 이란과의 대화에 적극 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후 공약대로 외교를 통한 이란핵 문제 해결에 주력, 2009년 3월에는 이란 새해를 맞아 동영상으로 이란 지도자들과 국민들에게 새해 인사를 하기도 했다. 동영상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1979년 이란과 외교 관계를 단절한 후 역대 미 정부에서 의도적으로 회피했던 이란 지도자들에게 적극적인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리 하메네이는 당시 오바마의 손길을 바로 뿌리쳤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취임 후 지금까지 외교를 통한 이란핵 문제 해결이라는 기조를 유지해왔다. 특히, 지난해 10월에는 이란이 보유한 우라늄을 제3국으로 보내 농축 후 돌려받는 제안을 내놓았다. 이란은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답하지 않다가 비슷한 내용의 터키와 브라질의 중재는 받아들이면서 미국의 뒤통수를 때린 것이다.

미국 유력한 보수논객인 찰스 크라우스해머는 지난 5월 21일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 결과는 오바마 외교정책에 대한 판결”이라며 “터키와 브라질이 그동안 오바마 행정부를 보면서 미국의 적과 함께 사과와 유화적인 정책만 펴는 오바마 대통령한테 두려워할 것이 없겠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크라우스해머는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의 쇠퇴를 인정하고 선언하면서 그 빈 공간에 터키와 브라질과 같은 신흥 강국들이 들어오게 했다고 분석했다. #

아틀란타=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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