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폭정인정 유화외교’의 초라한 결과
오바마 ‘폭정인정 유화외교’의 초라한 결과
  • 미래한국
  • 승인 2010.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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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개발 계속, 對이란 국제공조 붕괴
▲ 지난 6월 9일 UN 안보리 이란제재안 표결 장면. 맨 왼쪽의 UN 주재 터키 대사는 손을 들지 않고 미국주도의 이란 제재안을 거부하고 있다


로버츠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지난 6월 10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으로 미국의 전통 우방이었던 터키가 미국 주도의 UN 안보리 이란 제재안을 거부한 것은 유럽연합(EU) 때문이라고 말했다.

EU가 지난 50년 간 EU 회원국이 되려는 터키의 노력을 번번이 거부해 화가 난 터키가 서구와의 관계를 끊고 러시아, 이란 등과 가까워졌으며 이 까닭에 이란 제재안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UN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인 터키는 전날 브라질과 함께 이란의 핵개발 저지를 위한 제4차 UN 안보리 이란 제재안을 거부했다. 레바논은 기권, 결의안은 15개국 중 12개국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이전 제재보다 내용이 강력하다고는 하지만 만장일치로 채택되지 못해 전체 국제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의미가 퇴색됐다.


부시 대통령 때 이라크·레바논 등 중동 11개국 민주화 성공

터키가 미국에 등을 돌린 것이 EU 때문일까? 그것보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정책 기조인 ‘폭정인정 유화외교’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후 전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거의 다 뒤엎었다.

부시 대통령은 이란, 이라크,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이런 폭정(tyrant)은 종식 대상이지 협상할 상대가 아니라는 단호한 정책을 기조로 삼았다. 그는 특히, 중동에 민주주의와 자유 확산을 통해 폭정을 종식한다는 ‘중동민주화’ 정책을 펼쳤다. 부시 대통령은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폭정들을 인정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불안정’을 야기할 뿐이라며 당장은 불안정할지라도 중동에 민주주의를 심어 폭정을 제거하는 것이 진정한 안정이라고 보았다. 미국 안팎의 냉혈적인 ‘현실주의자’들은 부시 대통령의 이 구상이 비현실적인 이상주의라며 미 국익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중동에서는 민주주의가 안 된다는 비판적인 시각을 내놓았다.

▲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2005년 3월호
하지만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팔레스타인, 쿠웨이트, 이집트 등에서 11개의 선거가 높은 투표율을 보이며 치러졌다. 24년째 장기 집권하던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2005년 1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지시했고 같은 해 3월 레바논에서는 ‘백향목’ 혁명이라는 시민들의 궐기로 친(親) 시리아 정부가 무너졌다. 생명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투표에 참가한 이라크인들이 투표 후 손가락에 묻어 있는 잉크를 자랑하는 모습은 당시 언론을 통해 소개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국의 유력 잡지인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2005년 3월호에서 ‘민주주의가 중동을 뒤흔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부시 행정부는 이란에 대해서는 이란 국민과 정부를 구분, 이란 국민은 전폭적으로 지지하지만 이란 정부는 핵무기를 개발하고 테러단체를 후원한다며 배격, 이란 국민에 의한 이란정권교체를 지원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부시 대통령의 ‘중동민주화’ 정책은 중단되었다. 그는 포커스를 미 국내문제에 두며 중동정책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결과 핵확산 방지에만 신경을 쓰며 미국 속으로 고립해 들어갔다. 이란에 대해서는 이란 국민들의 인권, 민주주의 보다 이란 핵문제에만 집중, 이를 위해 이란의 집권자들과 아무 조건 없이 직접 만날 수 있다며 일련의 유화정책을 펼쳤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9년 3월 이란의 새해를 맞아 동영상으로 이란 정부와 국민들에게 새해 인사를 하며 부시 행정부 당시 상대하지 않으려 한 이란 집권자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협상에 더욱 치중, 지난해 10월에는 이란이 보유한 우라늄을 제3국으로 보내 농축 후 돌려받도록 하는 제안을 내놓았다. 지난해 6월 이란 대통령 선거가 부정선거라며 이란 국민 300만 명이 봉기, 피를 흘리며 이란 정부를 반대한 이른바 ‘녹색혁명’(Green revolution)이 일어났을 때 오바마 행정부는 내정불간섭 원칙을 운운하며 침묵, 이란 정권의 편을 들었다.


이란의 정치적 역동성을 바꿀 300만 이란인 봉기 기회 놓쳐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해 미 인권단체인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가 이란 민주주의 증진을 목적으로 펴내온 이란어로 된 온라인 잡지에 대한 지원비 300만 달러를 거부했고 이란 인권과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각종 단체에 대한 자금 지원도 중단했다.

유력한 미 보수논객인 찰스 크래스해머는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 집권층을 자극하지 않고 유화정책을 일관한 것은 협상을 통해 이란이 핵을 포기할지 모르고 그렇지 않더라도 국제사회가 미국은 외교적으로 할 만큼 했다며 이란을 고립시키고 미국을 지지하는 데 나설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1년 5개월이 지난 지금 결과는 그렇지 못하다. 오바마 행정부는 결국 이란 핵문제 해결을 위해 UN 안보리 제재안을 채택했다. 협상과 말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국제사회는 미국이 최선을 다했다며 이란을 고립시키며 미국의 편을 들고 있는가? 아니다.

터키와 브라질이 뜬금없이 끼어들어 이란과 핵협상을 하더니 미국 주도의 이란 제재 UN 결의안을 거부하고 나왔다. 오히려 단호한 이란정책을 펼치던 부시 행정부 시절 때는 3개의 UN 이란제재안이 모두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이란의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UN 제재안이 채택되기 전날 터키의 에도간 총리 및 러시아의 푸틴 총리를 만나 국제공조를 과시했고 제재안이 채택된 직후인 6월 11일에는 중국을 방문, 상하이 엑스포를 구경하며 UN 제재안은 쓸모없는 종기조각에 불과하다고 비웃었다. 이란이 국제적으로 고립된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6월 11일 이란의 ‘그린혁명’ 1주년을 맞아 오바마 행정부의 당시 침묵과 중동민주화에 손을 뗀 것에 대한 비판이 터져나오고 있다.

이집트 민주주의 운동가로 현재 미국에 망명 중인 사드 이브라힘은 지난 6월 15일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칼럼에서 “중동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시 전 대통령을 그리워한다”며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중동에서 인기가 없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열정적 지지는 독재정권 하의 아랍인들의 가슴을 울렸다”고 밝혔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은 이와 달리 안정을 추구하는 냉전시대로 복귀하며 폭군을 지지하고 있다”며 “이후 이집트에서는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도매급 투옥과 고문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유명한 중동전문가인 파우드 아자미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오바마가 먼 나라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미국의 합당한 관심사가 아니라는 정책을 펼치면서 세계는 ‘자유의 침체’를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11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칼럼에서 “그 사이 중국과 러시아는 공개적으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모욕하고 특히, 중국은 정치적 독재와 족벌경제의 모델을 세계에 자랑하며 얼마 전까지 민주주의의 모델이었던 터키는 미국에 등을 올리고 이란을 구애하고 있다”고 평했다.

브렛 스테픈 월스트리트 칼럼니스트는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의 정치적 역동성을 바꿀 지난해 300만 이란인 봉기의 기회를 놓쳤다”며 “이란 집권층은 이전보다 더 이란 국민들을 탄압하고 외국에 더 공격적이 되며 핵개발을 계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1년 5개월 간의 이란 정책이 보여주는 초라한 결과는 이란과 같은 불량국가들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와 자유 확산을 통한 폭정 종식’만이 해결책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

아틀란타=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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