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럽 재정위기, 강 건너 불 아니다
남유럽 재정위기, 강 건너 불 아니다
  • 미래한국
  • 승인 2010.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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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미래한국·자유기업원 공동기획]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과)
▲ 조동근 명지대 교수


우리나라 정부 재정지출 대비 복지지출의 비율이 아직 낮기 때문에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들이 힘을 얻고, 복지관련 예산은 지속적이고 급속하게 팽창하고 있다. 이는 2011년 예산요구액에서도 그대로 확인되고 있다. 


복지의 함정

복지예산은 일단 팽창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정부 재정지출 대비 복지지출 비율이 지나치게 과다하면 그 경제는 자생력을 잃는다. 포퓰리즘에 오염된 좌파 정치인들은 아직도 우리나라가 OECD의 평균에 비춰 복지지출에 인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달리 생각을 해보자. 출산율은 떨어지고 은퇴자는 늘어나는데, 성장잠재력을 북돋기보다 국민의 숨겨진 분배욕구 마저 찾아내 이를 자극 -예컨대 무상급식 공약- 한다면, 한국경제는 순항하지 못할 것이다. 한국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긴 호흡의 재정건정성 제고를 위해서 복지지출의 팽창 속도를 늦춰야 한다.

그리스를 위시한 남유럽 재정위기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하지만 공통된 요인은 정부가 국가경제의 실력 이상으로 돈을 지출했다는 사실이다. 남유럽 국가들은 세입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방만한 사회보장 지출과 공무원 급여를 통제하지 못했다. 이들 지출은 통상적으로 ‘법’에 의해 뒷받침되므로 한 번 시행되면 ‘경직성 경비’를 넘어 ‘의무지출’이 된다. 경제력이 ‘의무지출’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재정위기는 현실화된다.

기획재정부가 6월말 접수한 50개 중앙관서의 2011년 총지출 요구 규모는 예산 219조4,000억 원, 기금 93조5,000억 원으로 모두 312조9,000억 원이다. 이는 올해 총지출 292조8,000억 원보다 6.9% 증가한 것으로, 2009년 증가율 4.9% 보다 크다. 그리고 총지출 규모 312조9,000억 원은 정부의 2009~2013년 재정운용계획상 2011년 전망치인 306조6,000억보다 6조 원 이상 많은 규모다. 총수입의 추계가 309조5,000억 원인 점을 고려하면 내년에도 적자 국채를 발행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전년 대비 증가율과 증가규모, 절대 지출수준 등을 종합해 볼 때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보건·복지·노동 분야이다. 이들 분야의 지출 목적은 ‘서민의 민생안정’이다. 이들 지출에는 ‘기초생활보장, 기초노령연금, 건강보험 지원, 중증 장애인연금, 4대 공적연금에 대한 의무지출’ 등이 포함돼 있다. ‘보건·복지·노동’에 포함되지 않은 ‘복지성 지출’도 존재한다. 서민의 주거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보금자리주택’ 건설예산이 그것이다. 보금자리주택 예산증가분(1.4조 원)을 포함하면, 2011년 복지지출 관련 예산요구액 증가분은 총 7.5조 원에 이른다.

절대규모 81.2조 원, 전년대비 7.4% 증가율을 보인 ‘보건·복지·노동’ 지출액은 과다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2011년에는 미국발 서브프라임 위기에 따른 글로벌 경제위기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것으로 판단된다. 재정측면에서의 신중한 출구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이 같은 복지예산 요구는 분명 지나치다. 벌써 파열음이 들리고 있다. 국가부채 증가에 따라 국채이자 지급액이 내년에 처음으로 20조 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복지예산과 자활 의지


국회 예산정책처가 최근 발간한(2010.7.11.) ‘남유럽 재정위기와 정책 시사점’ 보고서는 경청할 만하다. 요지는 ‘한국 복지지출의 증가 속도가 최근과 같이 이어진다면 6년 뒤 국가 전체의 생산력 대비 복지 지출 규모가 재정위기 진앙지인 그리스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 보고서에 의하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우리나라 복지지출 비중은 1997년 3.8%에서 2008년 8.3%로 10여년간 2.2배로 증가했다. 그리고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년간 복지예산은 매년 17.4%씩 늘었다. 같은 기간 동안 정부 총지출 증가율 7.1%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은 것이다.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된다고 가정하면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지출 비중은 6년 후 20%에 달한다. 이는 복지 과잉으로 재정위기에 몰린 그리스의 복지 지출 비중(20.2%, 2008년 기준)과 같은 수준이다. 물론 하나의 시나리오지만 복지지출의 불가역성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1999년 김대중 정부에 의해 도입됐다. 국민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복지정책에 큰 획을 그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복지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였지만 최근에 역작용이 가시화되고 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선정되면 4인 가족 기준으로 114만1,026원이 현금으로 지급된다. 여기에다 출산 시 50만 원, 장례 시 50만 원이 추가 지급되고, 중·고교생 자녀는 입학금, 수업료, 교과서비 등을 무료로 지원받는다. 그리고 ‘의료급여 수급권자’로 자동 지정돼 진찰, 검사, 치료, 입원 등 거의 모든 의료비가 무료로 제공된다.

문제는 기초생활보장제의 ‘유인구조’(incentive scheme)가 잘못 설계됐다는 것이다. 수급자가 일을 해도 실제 소득은 늘어나지 않는 구조로 설계됐다. 생계비를 정액으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보충급여 원칙’에 따라 최저생계비(4인 기준 136만3,000원)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방식으로 지원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4인 가족기준의 가장이 월 50만 원을 번다면, 정부 지원 최저생계비에서 자신이 번 소득을 차감한 86만3,000원을 지급받는다. 따라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일할 이유가 없다. 그러다 보니 수급자의 위치에 ‘안주’한다는 것이다. 실업이 ‘좋은 직업’인 셈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서 탈락할까봐 돈을 벌지 않는다는 역설이 현실화되고 있다. 2008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중에서 실질적으로 소득이 늘어나거나 취업해 ‘탈수급’한 세대 비율은 전체의 5% 미만으로 추정됐다.

국가의 책임은 ‘노동 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은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상당한 정도 ‘노동 의사’가 없는 사람을 돕고 있다. 국가의 복지에도 원칙이 분명히 서야 한다. 그것은 ‘스스로 돕는 자를 국가가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에 안주하게 하는, 차상위계층에게 박탈감을 주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근로장려유인제도’로 환골탈태시켜야 한다. 이 같은 제도개혁에 눈을 감고 잘못 설계된 사회보장제도를 지탱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국가를 파산의 길로 내모는 것이다.


남유럽재정위기의 교훈

2009년 말부터 시작된 남유럽국가들의 재정위기의 최대의 잠재적인 요인, 즉 재정위기의 ‘화약고’는 방만한 복지제도 운영이었다. 세입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사회보장지출, 공공부문 임금’ 등 의무지출을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GDP 대비 2009년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비중은 각각 13.6%와 115.1%이다. 재정위기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남유럽국가들의 재정위기가 ‘강 건너 불’만은 아니다. 최근 복지지출의 팽창속도는 이미 경계수위를 넘었다. 그럼에도 복지예산을 더 늘려야 한다는 좌파의 주장은 날로 힘을 얻고 있다. 이제 ‘밀튼 프리드만’의 지혜를 빌려야 할 때이다. ‘재정지출준칙’을 만들어 정치적 동기에 의한 불필요한 복지지출 팽창을 막아야 할 것이다. 그 길이 ‘노동의 능력’을 갖지 못해, 국가가 진정으로 보호해야 할 계층에 필요한 재원을 ‘대폭’ 배분하는 길이기도 한다. 노동 의사가 없는 계층은 남의 ‘자비’에 의존하느니 ‘가난의 길’을 택해야 한다. #


서울대 공대 건축학과 졸업
미 신시내티대 경제학 박사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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